• 홈
  • Publications
  • JPI Archives
  • 평화담론

평화담론

제목, 작성일, 조회수, 내용, 항목으로 구성된 표입니다.
[평화담론] 포스트 팬데믹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접경 환경협력과 평화구축
등록일
2022-02-14
조회수
30
  1. 문제제기: 초경계, 비인간행위자, 그리고 평화구축

팬데믹 이후 세계는 개인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생명과 안전, 건강, 최소한의 사회경제적 안정에 대한 유례없는 초국경적 위협 앞에서 안보, 평화, 일상, 생태 환경 등 주요 개념 및 가치들에 대한 새로운 사고와 접근, 실천방안들을 탐색하게 되었다. 2020년 1월 20일 한국에서도 감염자가 발생한 신종코로나19바이러스감염증의 세계적 확산은 2021년 12월 현재 오미크론 변이에 이르며 심대한 경제사회적 침체와 불평등, 인종주의 등 혐오와 배제의 정치 동학의 격화를 낳고 있다. 팬데믹은 팬데믹 이전부터 존재했던 다양한 초경계적(transboundary) 위험, 인간 뿐 아니라 다양한 비인간행위자들의 상호작용과 네트워크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한반도 평화구축(peacebuilding)의 문제와 연관해 말한다면, 기후변화 적응과 완화, 감염병 방역, 재난재해 공동대응, 생태ㆍ환경 협력 등 기존에 관련 담론이 존재했지만 전통안보의 관점에서 주변화 혹은 병행되는 데 머물렀던 주제들이 비전통안보 이슈 영역의 돌출, 미시적 위험의 거시적 안보문제로의 전환 가능성에 대한 관심에 따라 새로운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 글은 포스트 팬데믹 한반도 평화공존을 준비하며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한 초경계 환경협력을 통한 평화구축의 시각을 검토한다.

서두에서는 포스트 팬데믹 시대 환경협력을 통한 평화구축에 대한 문제제기로, 우선 한반도 동해의 오징어 잡이와 관련된 다양한 층위의 면면을 살펴본다. 2010년대 중후반 한국, 일본의 뉴스미디어들은 일본 해안, 그리고 동해안에 떠내려온 북한의 목선 보도로 떠들썩했다(김병규 2017; 조기원 2017; 김진우 2019). BBC가 ‘유령선’이라 보도하기도 한 북한의 목선들은 사람의 흔적이 없거나 혹은 시신을 싣고 떠내려온 경우들도 있었고(BBC 2015; 2017), 2012년 출범한 김정은 정권이 국가적 차원에서 생산량 증대에 힘을 쏟은 수산업 부문의 열악한 동원 현실을 방증하는 사례라는 관심을 받기도 했다. 2013년 연말 김정은 위원장은 2015년까지 세 차례 연속, 그리고 2017년에도 군 수산업 부문 공로자들에게 직접 표창을 수여하는 등 ‘사회주의 강국건설’의 주타격 전선으로 농업과 함께, 축산, 수산업 생산량 확대에 다양한 관심을 가졌다. 수산업 전선은 2014년 공식화된 김정은 정권의 새로운 경제관리개선조치(‘우리식 경제관리방법’)를 배경으로 기업체 자율성 및 인센티브 강화 맥락과 함께(이석기 외 2018), 실제로 사적 운용되는 어선들이 국가제도 등록, 자원 지원 정도에 따라 국가에 대한 배태성(embeddedness) 혹은 상대적 자율성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현실을 가진다(Ward et al. 2019). 무엇보다 동해의 오징어 잡이 수역과 관련된 중요한 변화로는 2004년부터 중국 어선의 동해 수역 입어(入漁)에 따른 경쟁의 심화가 자리잡고 있어, 북한 어선들이 러시아 수역에 들어가 조업을 하면서 부실한 어선 설비의 파손과 일본 해안가로의 출현으로 이어진 배경이 있다(Park et al. 2020).

2006년 가족과 목선으로 서해안 DMZ를 건너온 탈북민 박명호에 따르면, 무게를 늘이기 위해 물에 살짝 적셔서 내놓는 낙지나 해안가에 흩어진 도루묵알을 볼펜으로 집어넣은 수컷 도루묵을 유통하는 북한 주민들 때문에 가까운 북한 해산물에 대한 수요가 높았던 중국은 아예 북한 수역에 대한 쿼터제를 요구했다(박명호 2018). 함경북도 김책 앞바다에서 시작해 연장을 거듭, 현재 강원도 바다까지 확장된 중국의 북한 해역 내 조업 실태, 특히 중국의 ‘어둠의 선단’들이 2016-2017년 유엔 대북제재 강화 이후에도 어느 정도 규모로 오징어잡이를 지속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최근 다양한 위성자료를 종합ㆍ분석한 박재윤 외의 연구가 밝혀낸 바 있다(Park et al. 2020). 연구는 2017-2018년 북한 해역에서 조업한 오징어잡이에 특화된 쌍끌이어선, 야간조업등 어선, 북한의 소형어선 등을 위성자료를 통해 특정해, 2017년 900여척, 2018년 700여척의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을 밝히고, 이들이 어획량 약16만톤, 액수로는 약4억4천만달러(5천253억원)를 벌어들였음을 확인했다(Park et al. 2020, 2-3).

박재윤 외의 연구는 그 자체로 인간-비인간행위자의 상호작용, 역내 지정학, 학계ㆍ전문가들의 초국경적 과학기술협력이라는, 초경계 환경 협력의 중요 주제들을 확인해준다. 연구가 지적한바, 동해에서 잡히는 살오징어(Todarodes pacificus)는 한국의 생산가치로 최대 수산 수출품목, 일본에서 5위에 드는 수산 소비품목, 북한에서 3위에 드는 수출품목을 차지하며 해수 온도상승을 포함해 2003년부터 한국ㆍ일본의 오징어 수확량 감소의 원인이 관심사가 되어왔다. 연구는 한국과 일본 연구소, 국제기구 등 다양한 과학기술 전문가들의 통합 연구를 통해 이러한 수확량 감소의 원인으로, 그간 공적 모니터링 체계에서 잡히지 않아 검증할 수 없었던 중국 ‘검은 선단’들의 정체와 그들의 어로 활동 규모를 파악했다. 이를 통해 북한 수산물 수출제재에 대한 유엔 대북제재 이행 상황에 대한 유의미한 정보 제공과 함께,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 결과 북한 어선들의 러시아 해역 불법 조업 및 난파(일본 해역 출몰)라는 동북아시아 차원에서 주목된 인간안보 이슈에 대한 배경을 설명해냈다. 이들의 통합 연구는 살오징어 조업을 둘러싼 지정학과 어민들 및 사회공동체의 일상, 안전에 이르는 문제들을 다룬, 일종의 초국경적 ‘인식공동체’ 구성을 가늠하게 하는 하나의 사례로 읽을 수 있다

최근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소개한 동해의 오징어잡이를 둘러싼 환경-정치적 맥락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공통의 바다라는 공간의 활용과 갈등, 이와 밀접히 연관된 지정학적 문제와 평화구축으로의 전환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환기한다. 살오징어와 같이 인간의 정치적 경계와는 다른 생태 환경적 경계에 놓인 돼지, 혹은 아프리카돼지열병, 신종코로나19바이러스와 같은 병원체 등 다양한 비인간행위자들의 월경성, 초경계성은 이러한 비인간적/미시적 요인들과 관련된 위험이 정치적 의제로 전환, ‘안보화’(securitization)되면서 국가안보적 차원으로 떠오르는 신흥안보 이슈에 대한 인식과 대응을 촉발한다(황진태 외 2019; 주윤정 2020; 민병원 2012; 김상배 2016; 김상배ㆍ신범식 2017; 2019). 신흥안보의 시각은 미시-거시, 인간-비인간 행위자 등을 가르는 전통안보적 관점을 넘어 어떤 조건, 기제를 통해 이러한 경계를 넘어서는 집단의 주요 안보 이슈들이 구성되는가에 관심을 가지는 점에서(김상배ㆍ신범식 2017; 윤정현 2020), 기존에 고착화된 경계에 대한 유연한 이해와 다층적 대응을 가능하게 한다. 이 글은 이러한 초경계, 비인간행위자를 포함해 지역, 민간 시민사회 다양한 이해와 행위자들을 포괄하는 환경적 평화구축(environmental peacebuilding)의 관점에서 포스트 팬데믹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한반도 ‘생명공동체’ 담론을 검토하고 접경 환경협력의 대안적 방향을 살펴본다.        

2. 환경-평화 넥서스와 ‘공간’, ‘맥락’의 중요성


여기서는 평화구축의 전환적 프레임워크로서 환경-평화 넥서스(nexus)에 대한 국내외 연구를 검토하고 최근 환경적 평화구축 담론이 강조하는 맥락, 공간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춘다.

한반도 평화구축에 대한 기존 연구들은 탈냉전 이후 평화협정, 평화체제에 대한 연구 관심의 증대로부터, 최근에는 비교 평화과정의 사례연구 및 평화구축, 갈등전환 이론적 논의의 한반도적 적용 시도(김동진 2013; 구갑우 2013; 정주진 2013), 기존에 분리되어 다뤄진 통일-평화의 문제를 분리/통합과 같은 보다 보편적 개념에서 이해하거나 평화구축 문제와 통일 문제를 결합, 지속가능한 평화와 통합을 연속선상에서 이해하려는 이론적 시도 등이 이어져왔다(분리통합연구회 2014; 김학노 2019; 김종법 외 2020; 이옥연 2015; 구갑우 외 2019; 이무철 외 2019; 2020; 김일기 외 2019; 김학재 2020).

평화과정의 비교적 관점에서 한반도의 평화과정을 보다 보편적 틀에서 이해하거나 통합의 문제를 연방주의, 협의주의 등 이론적 바탕 위에서 복수의 정치 단위들의 만남의 방식, 깊이에 대한 문제로 접근하는 등의 이러한 연구들은 한반도 통일, 평화의 문제를 한반도 특수의 구체적 맥락에 집중해 논의한 기존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기여했다. 글로벌 규범의 한반도적 적용이라는 문제의식은 최근에는 특히 남북한의 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이행에 대한 평가와 전망과 관련해 세계적 규범의 동형화(isomorphism), 자국 맥락에 맞는 토착화에 주목하는 개발협력을 통한 평화구축 연구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김태균 2019; 2020; 박지연ㆍ손혁상 편 2020, 최규빈 2020).

탈냉전 이후 국제정치학에서 전통안보 개념을 넘어선 인간안보(human security) 개념에 대한 다양한 논의는 한반도 평화과정의 맥락에서는 최근 북한의 발전과 인권, 평화의 ‘트리플 연계’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인도협력연구실 편 2019; 홍석훈 외 2019; 문경연 2019). 인간안보의 다양한 측면 중 ‘공포로부터의 자유’로 대표되는 시민적ㆍ정치적 권리와 ‘궁핍으로부터의 자유’로 대표되는 경제적 권리, 발전권과 관련해, 핵개발과 권위주의 체제를 지속하는 저개발국 북한의 맥락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으나 장기적이고 점진적 프로세스로서 평화구축 이행 과정에서 발전, 인권 논의를 병행해야 할 중요성은 주지되고 있다. 인간안보 이슈는 팬데믹 국면에서 개인의 일상, 안전에 대한 위험 자체에 대한 공동 대응을 위한 프레임으로 더욱 관심이 제고되었다(이신화 2006; 이혜정ㆍ정지범 2013).

팬데믹 이후 초국경적 바이러스의 위험은 월경하는 비인간행위자에 대한 관심과 초경계성을 가지는 비인간행위자, 인간행위자 간 상호작용의 네트워크, 이들이 위치한 공간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다. 한반도 평화구축의 맥락에서는 남북한 접경 지역에 확산된 말라리아, 아프리카돼지열병 사례와 같이 비인간행위자와 인간행위자 간 상호작용, 전염병 이해와 관리의 정치적 역학 등에 대한 관심과, 파주 등 접경지역의 에드벌룬, 전단 살포과 연관된 다양한 지역 주민, 지역 및 중앙 정부, 국내외 비정부 행위자 등 다양한 이해와 가치의 다층적 행위자들의 공존, 대결이 이뤄지는 공간으로서 접경 지역의 지정학에 대한 주목 등이 이뤄졌다(김준서 2019; 이승욱 2018; 박배균ㆍ백일순 2019).

2018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진전은 정치ㆍ군사적 문제 뿐 아니라 다양한 부문, 영역의 화해와 교류협력, 평화구축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고조시켰다.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현재에 이르는 교착은 다시 정치ㆍ군사적 문제 해결의 선차성과 기능주의적 접근의 한계를 확인했으나, 팬데믹 이후 다양한 미시적 위험의 양적ㆍ질적 전화 가능성, 다층적 행위자들의 개입과 상호작용에 따라 전통안보/비전통안보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전망은 새로운 안보에 대한 개념적 이해와 접근, 평화구축 대안 창출의 필요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평화구축의 이론적 논의 중 환경적 평화구축(environmental peacebuilding, 이하 EPB) 담론은 비정치적 이슈인 환경 영역의 협력으로부터 갈등당사자들의 상호작용, 대화와 협상 증대, 협의 공간의 제도화, 공유 가치와 정체성의 형성, 나아가 공공재 관리의 집합행동을 통한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향하는 평화구축의 조건과 메커니즘에 대한 분석 및 대안을 제공한다(Dresse et al. 2019; Ide 2017).

최근 드레세 외 연구는 초기조건, 메커니즘, 결과의 세 가지 측면에서 기술적(technical), 복원적(restorative), 지속가능한(sustainable) 환경적 평화구축의 세 가지 유형화를 통해 환경적 평화구축의 이론화를 시도했다. 드레세 외가 제시한 1)자원 부족과 상호이익의 초기조건에서 기술적 협력, 행동 조율 기제를 통해 환경문제 완화와 접촉 증대 결과를 낳는 기술적 EPB, 2)상호의존, 공유 가치를 바탕으로 상호작용의 중립적 공간, 대화와 협상 메커니즘을 거쳐 신뢰 구축, 공유된 정체성을 형성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복원적 EPB, 3)환경적 지속가능성 결핍 문제와 함께 수평적 권력관계를 바탕으로 공공재 관리, 집합행동을 통해 자원배분의 불평등을 개선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는 지속가능한 EPB의 유형은, 한반도 평화구축의 맥락에서는 예컨대 오징어잡이와 같이 남북한 상호이익이 존재하는 문제에서 첫째 기술적 EPB의 초기 조건을 어떻게 확보하고 이를 통해 복원적 EPB, 지속가능한 EPB로 진화하는 경로를 만들어낼 것인가를 탐색하는 데 가이드를 제공한다. 남북한 간 자원보호와 상호이익이 접합되는 환경협력의 공간으로부터 접촉의 증대, 상호의존, 공유 가치와 정체성의 형성, 공유재 관리의 제도화 창출을 통해 평화구축을 만들어가는 아이디어와 연관해, 국내에서도 ‘그린 데탕트’에 대한 일부 논의들이 존재했으나(이재승 외 2014; 고상두 2014),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맞물려 정책적 동력이 제한된 측면도 크다. 그럼에도 팬데믹 이후 다양한 초경계적 인간-비인간 행위자 상호작용, 네트워크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대응과정에서 환경적 평화구축의 문제의식과 대안적 모색은 한반도 평화구축에 있어서도 중요하게 부각될 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  

  1. 한반도 ‘생명공동체’ 담론과 접경 환경협력

코로나19 팬데믹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함의는 팬데믹이 야기한 새로운 안보에 대한 접근의 절박성과 설득력, 새로운 평화 담론과 대응에 대한 요구 및 시도들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는 팬데믹 이후 한국 정부가 강조한 한반도 ‘생명공동체’, ‘평화공동체’, ‘보건의료공동체’ 및 ‘동북아 방역-보건협력체’ 논의를 검토하고, 환경적 평화구축 및 평화구축의 최근 ‘지역적 전회’(local turn), ‘공간적 전회’(spatial turn)의 관점에서 접경 환경협력의 대안적 방향을 논한다.

2020년 9월 유엔 총회 비디오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의 방역 및 보건협력과 연계된 동북아 방역-보건의료 협력체 아이디어를 제시했다(청와대 2020a). 연초부터 한국 정부는 인간안보, 한반도 생명공동체 개념을 팬데믹 하 남북관계의 진전과 협력을 위한 키워드로 제기했다(청와대 2020b). 인간안보, 이와 연동된 한반도 생명공동체 개념은 기존의 충분한 학술적, 정책적 논쟁을 기반으로 제시되었다기보다 글로벌 비상국면에 대응한 ‘한국판’ 평화 담론으로 위로부터 도입된 측면이 크다. 그럼에도, 한반도 생명공동체 개념은 팬데믹 상황에서 한국 사회에 안보 환경 변화에 대응하면서 평화프로세스를 지속하는 시각으로서 모호하지만 미래지향적 비전을 제공했다. 팬데믹 이전에 이미 교착된 남북관계와 함께, 팬데믹 하 변화된 상황에서 직면한 새로운 인간안보 상의 이슈들에 대한 공동의 대응의 조건, 쟁점, 정책 방향에 대한 논의들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의 한반도 생명공동체 레토릭과 함께 주목할 사회적 문제제기, 담론들을 살펴보면, 팬데믹 하 북한의 식량안보, 에너지안보에 대한 국내외 우려와 함께 국제사회 및 한국의 인도주의적 협력의 필요성, 그리고 유엔 대북제재 레짐 완화에 대한 요구를 들 수 있다. 재미 한국인 의사협회를 중심으로 2000년대부터 방북 활동을 통해 북한 보건의료 인력들과 교류, 협력지원을 지속하는 박기범(Kee B. Park)은 대표적으로 미국 한인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협력, 보건의료협력을 통한 건강안보, 식량안보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주장했다(Park and Kim 2020). 특히 박기범은 대북 의료지원 활동 및 네트워크 경험에 입각해, 팬데믹 하 유엔 국제기구 및 국제 NGO들의 대북 인도주의 사업이 현재의 유엔 대북제재 레짐 하에서 거의 제 기능을 할 수 없으며 최악의 상황으로는 철수를 선택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대북제재 레짐의 수정을 주장했다(Park and Kim 2020).

팬데믹 상황에서 2016-2017년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에 따라 새롭게 채택된 유엔 대북제재 레짐은 미국, 일본, 중국, 한국 등 개별 제재와 함께 농업생산을 필두로 북한 민생 경제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했고 대북 인도주의 사업 전망을 불투명하게 만들었다(Smith 2020a; 2020b; Zadeh-Cummings and Harris 2020; White 2020). 코로나19는 이미 2018년부터 대북제재 레짐의 강화에 따른 북한 무역수치의 감소 국면에서 지속되었던 북중 무역마저 거의 단절에 가까운 급감을 초래했다(최장호 2020; 홍제환 2020). ‘물샐 틈 없는 방역’을 위한 강력한 국경봉쇄는 보건의료 설비와 의약품이 미비한 북한의 합리적 선택이지만 장기화된 봉쇄의 부정적 효과는 특히 글로벌 남반부 저개발국가들의 경제침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건강안보, 식량안보 등 인간안보 측면의 현실적 우려가 제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World Economic Forum 2020; Park 2020). 강력한 대북제재 레짐과 팬데믹에 대항하는 북한의 ‘비상방역체계’가 겹쳐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살 자유와 직결된 최소한의 건강안보, 식량안보를 보장할 수 있는 인도주의적 지원 및 협력이 가로막힌 상황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의 초국경적 위협 앞에서 한국과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책임에 대해서 근본적인 성찰을 제기한다. 스미스(Hazel Smith)는 특히 팬데믹 하 유엔 대북제재가 갖는 윤리성, 효과성, 비례성을 비판하면서 이를 철폐할 데 대한 국제 NGO, 인도주의 공동체 차원의 관심을 환기했다(Smith 2020a; 2020b). 제재 문제에 대해서는 특히 팬데믹 하 대북제재 결과 어린이와 여성 등 취약 인구 및 젠더적 영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Park and Kim 2020; Korea Peace Now 2019).

한국 내에서는 인도주의적 협력과 관련해 2018년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된 남북한 간 보건의료, 산림, 재난 대비 관련 협력 의제를 바탕으로 팬데믹 상황에서 한반도의 초국경적 방역 및 보건협력을 진행할 데 대한 다양한 제안들이 지속되었다(신영전 2020a; 신영전2020b; 전우택 2018). 포스트 팬데믹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다양한 제언은 한편으로 김정은 시대 북한이 재난위험경감, 산림화, 보건의료, 생태ㆍ환경 보호, 기후변화 적응 및 완화 등 다양한 비전통적 의제와 관련된 역량 강화, 법제도 개선 등의 노력을 보인 변화와도 연관된다(Cho and Kim 2021; 강택구 외 2016; 임예준ㆍ이예창 2017; 오삼언 외 2018; 오삼언ㆍ김은희 2020; 최현아 2019; 최현아 2018; Habib 2015; 2010). 2021년 7월 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 이행 상황에 대한 첫 자발적 국가리뷰(Voluntary National Review)을 제출한 북한은 김정은 시대에 들어 다양한 국제사회 플랫폼을 통해 기후변화, 농업 및 식량안보, 재난위험경감 등과 관련된 자국의 의무 이행 노력을 알리는 동시에 국제기구, NGO의 지원ㆍ협력에서도 적극적 양상을 보였다.

한반도 평화구축에서 인도주의적 지원, 개발협력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최근의 논의는 남북관계 교착 상태에서 실질적 진전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으나, 지속가능한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한국의 국내정치적 합의, 국제사회적 지지를 확보하는 중장기적 과정에 중요한 담론으로 의미가 있다. 여기서는 평화프로세스의 교착 국면에서 한반도 평화 문제에 있어 공간, 스케일에 따라 분단, 비평화의 지정학, 지경학에 대한 이해, 구성이 다르게 형성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생명공동체’, 인도주의적 협력 관련 다양한 담론을 실현하는 공간, 시작점으로서 접경 지역을 중심으로 한 환경협력 방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최근의 평화구축 연구의 ‘지역적 전회’, ‘공간적 전회’에 따르면(Brigg and George 2020; Ide 2017; Mac Ginty and Richmond 2013), 갈등, 분쟁 상황에서 로컬-글로벌 스케일의 다양한 조우 과정에서 갈등, 분쟁이 펼쳐지는 공간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담론적으로 끊임없이 구성되는 것이다. 갈등과 평화의 동학에서 행위자, 아이디어가 어떻게 스케일을 넘나들며 변화하는지, 인간-비인간 행위자, 정체성이 어떻게 공간에 따라 구성되고 또 구성하는지에 주목하는 연구들은 왜, 어떻게 어떤 공간, 지역이 갈등 상황을 다르게 인지, 대응하고 평화구축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하는가를 탐색한다.

한반도 평화구축과 관련해서는 파주 전단살포를 둘러싼 지역 주민, 경기도, 파주시 등 지방정부와 의회, 중앙정부와 국회, 지역시민사회단체 및 해외 NGO의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지정학ㆍ지경학을 통해 이러한 공간적 차이, 지역적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이승욱 2018). 공간에 따른 유동성/확정성, 스케일적 구성 자체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재구성됨을 강조하는 ‘스케일의 정치’의 관점에서, 우리는 파주를 포함해 경기도 강원도 DMZ 접경 지역의 사람들, 다양한 민간 행위자들이 분단과 비평화 상태, 평화구축의 문제를 어떻게 다르게 인식, 구성해왔고 이 과정에서 국가 혹은 글로벌 스케일과 경쟁해왔는지 파악하고 다시 이들 접경지역으로부터 새로운 평화구축의 아이디어와 대안들을 도출해낼 수 있다. 특히 DMZ 생태평화공원 조성을 포함한 접경지역의 환경협력은 지역주민, 지방정부, 학계ㆍ전문가ㆍ시민사회, 국제기구 등 다층적 행위자들의 거버넌스를 통해 해당 공간, 지역에 대한 다양한 정의와 평화구축의 접근법을 조율하고 합의하는 과정으로서 지속가능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형성에 기여할 것이다(이기영 외 2019; 박은진 외 2012).  

  1. 결론: 포스트 팬데믹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접경 환경협력

다시 북한 목선의 출몰과 그 배경이 된 동해의 오징어잡이 문제로 돌아가보자. 드레세 외(Dresse et al. 2019)의 유형화에서 제시한 대로 환경적 평화구축(environmental peacebuilding)이 기술적 유형에서 복원적 유형을 지나 지속가능한 환경적 평화구축의 유형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및 동북아에서 어떤 평화구축 노력을 전개해야 할까.

환경적 평화구축의 이론적 논의와 최근 평화구축 연구의 ‘지역적 전회’(local turn), ‘공간적 전회’(spatial turn)을 유념하면, 동해의 오징어잡이에 연관된 다국적, 다층적 행위자들과 비인간행위자들의 상호작용과 갈등에서 선차되어야 할 것은 이들이 위치한 두 가지 맥락(context)으로서 환경 및 정치적 맥락의 특성에 대한 이해이다. 지속가능한 환경적 평화구축에 이르기 위해서는 북한의 동해수역을 포함한 해양 생태계 공간과 중국의 ‘검은 선단’, 북한의 소형어선, 그리고 한국, 일본의 오징어잡이어선들과 남북, 일, 중의 해경이 위치한 정치적 경계의 공간이 일치하는 단계, 예컨대 오징어 개체가 감소하는 환경적 도전에 대해 동해를 일종의 공유재 관리의 공간으로 접근하는 도약이 필요하다. 이러한 지속가능한 환경적 평화구축의 목표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교착의 현 단계에서는 장기적 목표로 존재한다고 할 때, 초기 단계의 기술적 협력, 혹은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조건 조성의 차원에서 필수적인 것은 박재윤 외(Park et al. 2020)의 연구에서 확인되는 과학기술 연구자, 전문가, 관련 시민사회의 ‘인식공동체’ 차원의 노력을 통해 환경적 맥락의 변화, 인간-비인간 행위자의 상호작용, 연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다. 동시에 동해 공간을 둘러싼 지정학적 경쟁이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 다양한 층위에서 벌어지는 서사, 동원, 정치를 파악하고 이를 변화시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구축의 관점에서 해당 정치적 공간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평화프로세스의 상대방인 북한과 동북아에 대한 맥락화된 이해를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미중 전략적 경쟁 국면을 배경으로 유엔 대북제재와 팬데믹 장기화에 따른 북한 경제상황 악화 조건에서 최근 가시화된 북중 간 전략적 밀착은 중국 어선들의 북한 해역 쿼터제와 북한 오징어잡이 소형 어선들의 러시아 해역으로의 항해에 중요한 배경이 될 것이다. 또한 한국 정부로서는 환경적 평화구축의 주요 상대방으로서 북한과의 지속적 협의 채널을 통한 신뢰 구축과 함께 역내 정치군사적 대결 완화를 위한 평화프로세스 지속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평화의 제도화와 환경적 평화구축의 노력이 함께 축적되는 과정에 지속가능한 평화구축의 경로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다층적 스케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특히 접경 지역공간을 중심으로 환경적 평화구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접경지역, 민간 행위자들의 고질적 갈등에 대한 축적된 이해와 해결 담론은 국가 차원의 전략과는 다른 경험과 가치, 대안적 아이디어를 가질 수 있다. 한반도 접경지역, 즉 경기도, 강원도 등 내륙과 해상의 DMZ 일대의 다양한 행위자들을 포괄하는 한편, 학계ㆍ전문가ㆍ시민사회 참여를 활성화함으로써 한국은 지속가능한 환경적 평화구축을 위한 역량 구축과 제도화에 기여할 수 있다. 환경적 평화구축을 통한 ‘그린 데탕트’는 갈등 당사자들의 위치한 공간에 대한 맥락적 이해와 더불어 다층적 행위자들을 포괄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과정을 통해서 실현 가능할 것이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 유기은 박사후연구원
 

저자소개

김태경은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이다.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에서 북한의 체제형성기 사회주의 문예건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조선화’(Koreanization)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구관심분야로는 북한정치, 남북관계, 한반도 평화구축, 동아시아 냉전사 및 냉전문화 등이 있다.
파일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