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담론]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전략적 평화담론 모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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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및 동북아 지역은 새로운 평화담론과 패러다임이 쉽사리 적용되지 못하는 특수한 지역으로 여겨진다. 한반도 및 동북아 지역에서는 북핵문제뿐만 아니라 미·중 전략경쟁의 열전의 장으로 부상하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2020년 초부터 불어닥친 코로나19를 비롯하여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로 한반도 및 동북아 지역의 정세는 더욱 불확실해지고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비전통안보적 위기 상황이 정치, 외교, 군사 등 전통적 안보과 결합하여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 구도가 코로나19와 맞물리며 미국이 ‘신냉전’ 구도를 노골화하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에 대한 ‘중국책임론’ 공세뿐만 아니라 남중국해, 대만 및 홍콩문제, 쿼드 및 오커스 등 외교적 대치와 군사적 긴장 등 전략적 대립각이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새로운 평화담론보다는 전통적 평화의 담론 즉 소극적 평화의 달성여부가 우선시 되고있는 한반도 및 동북아 지역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남북 간에도 긴장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북한은 2020년 단거리급 신종 무기 및 대공미사일 개발 공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 과정 공개를 비롯하여 2021년 9월에만 4차례 새로운 미사일을 시험발사하며 전략무기의 개발을 지속하며 군사력 증강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 역시 2021년 9월 독자 개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수중 발사 시험을 진행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의 미사일 전력 증강이야말로 북한의 도발에 대한 확실한 억지력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에 북한은 김여정 부부장이 SLBM 수정 발사 시험에 비난하는 담화를 발표하며 남북관계가 완전히 파괴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남한이나 북한과 같은 약소국의 입장에는 스스로 안보를 지키지 못하는 평화담론은 언제나 불안전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침략을 억지하는 문제는 곧 안보를 지키는 문제와 같기 때문에 평화학의 핵심은 안보로 간주되는 경향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결국 한반도 및 동북아를 둘러싼 여러 긴장요소들로 인해 한반도 정세 불확실성의 ‘안전망’이 없는 상태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정세는 한반도의 평화를 구축하는 데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면서 기존 평화담론이 자리잡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고 있다. 이에 기존의 전통적 평화담론이 아닌 새로운 방식과 내용을 적용하여 한반도에서 평화구축을 시도할 필요성이 존재한다.
전통적인 평화개념과 담론은 주로 국가 간 분쟁해결, 국제관계와 국제질서의 관리 및 유지라는 측면에서 다뤄졌다. 아론(Raymond Aron)은 국제관계학을 ‘평화의 학문이자 전쟁의 학문’으로 규정했다. 이는 평화학이 전쟁연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거나 혹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됨을 의미한다. 당시 국가 간의 무력충돌이 평화의 가장 큰 위협요소라 인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20세기의 평화학은 개별국가의 주권보호, 영토보전을 중심으로 하는 안보학과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면서 발전했다. 전통적인 평화의 개념은 국가성을 강조한 전쟁의 반대 개념으로 인식할 수 있지만, 탈냉전 이후 발생한 학살, 인종문제, 난민, 전염병, 기후변화 등 초국적이고 다양한 위협상황을 해결하는 개인적인 문제와도 연관지을 수 있다. 정의, 행복, 자유 등 인간의 가치와 이상을 표현하는 개념들과 접목하여 어떻게 평화의 상황을 인식해야 하는지, 어떠한 방식으로 실현해나가는지에 따라 평화의 개념을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평화연구와 평화담론에서 폭력을 근절하거나 예방하고, 평화를 조성하고 확립하려는 일련의 논의 체계와 내용을 학문적으로 탐구하는 것에서 평화의 개념이 사용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평화담론이 국제정치학에서는 전쟁방지와 분쟁해결을, 인문학에서는 평화교육과 평화운동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부분과 서로 교차점을 지닌 영역으로 파악되어 평화의 개념의 다변화와 확장이 나타나고 있다. 평화개념의 모호성에도 불구하고 평화구축(peace building)이라는 개념을 통해 평화를 실질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평화구축이란 용어는 갈퉁(Johan Galtung)이 1975년 전쟁과 분쟁 등으로 나타난 폭력적 상황이 끝나고 평화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단순히 전쟁이 종식된 소극적 평화(negative peace) 차원이 아닌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로의 이행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로 알려진다. 갈퉁은 평화구축의 개념을 기존에 사용되던 평화유지(peace keeping), 평화조성(peace making)과는 구분되는 개념으로 제시했다. 평화구축은 폭력적이고 갈등적 상황이 만들어지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갈등의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여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구조와 관계를 만드는 과정으로 정의내린다. 평화유지의 개념이 전쟁 이후 휴전을 보장하고 무력충돌의 재발방지를 관리감독하는 조치에 초점을 맞춘 활동이라 보았다. 평화조성은 중재와 협상을 통해 관련 당사자들을 이해시켜 화해를 도모하기 위한 활동으로 파악했다. 즉 폭력적 상황을 중지시키고 외교적 노력을 통해 비폭력적인 대화를 하도록 하고 궁극적으로는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평화를 만들어 나가도록 하는 행위로 보았다. 갈퉁은 평화구축의 개념에 대해 평화유지와 평화조성의 개념과 구별하여, 분쟁이 발생한 사회 내에서 존재하는 구조적인 모순과 갈등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해결하려는 노력을 시도하여 사회경제적 재건과 발전을 통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평화의 상태로 전환시키는 포괄적인 활동으로 파악했다. 평화유지, 평화조성이 단기적이고 폭력적인 분쟁상황을 해결하려는 소극적 평화를 강조하였다면, 평화구축은 중장기적인 목적으로 갈등의 완전한 해결을 통해 적극적 평화를 실현시키기 위한 의미로 볼 수 있다. 평화구축은 평화유지와 평화조성을 통해 폭력적 상황이 해결되더라도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평화의 실천적 노력과 행동들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파악했다. 2000년대 이후 평화구축 개념은 분쟁과 갈등 사회의 복원을 넘어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폭력적 구조를 해결하여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평화 달성하기 위한 과정과 그 과정 속에서 발생한 다양한 문제들을 해소하고 해결하려는 접근방식과 활동까지 포함시키고 있다. 즉 평화구축에 대해 단순히 평화를 조성하는 차원을 넘어 분쟁 이후의 국가 및 사회 재건 등을 통한 갈등전환적 차원으로 확대시켜 파악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평화구축은 “지속가능한 평화롭다 지대의 형성을 위해 요구되는 모든 노력”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모든 폭력을 예방하고 감소 및 전환하여 모든 사람들이 모든 형태의 폭력에서 벗어나 삶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에 최근 사용되고 있는 평화구축의 개념에서는 갈등의 구조적 전환을 통한 평화적 환경과 상황을 형성하여 변화된 평화적 환경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개인과 사회차원에서 역량을 강화하는 제반활동을 포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평화구축은 갈등이 발생하고 해결된 상황에서 나타난 관계의 구조를 분석하여 해당 상황의 문제점과 극복방안을 마련하는 종합적인 해결방식으로 제시하는 분석역량까지도 요구하고 있다. 평화구축이 단순히 평화를 형성하고 만드는 것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평화적 상황을 지속, 유지시키는 종합적인 방안을 강구하는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21세기의 평화연구에는 민주적 평화, 자유주의적 평화, 안정적 평화, 사회주의적 평화, 지속가능한 평화, 정의로운 평화, 시민의 평화, 초합리적 평화 등 다양한 의미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복합적, 혼종성을 기초로 평화를 효과적으로 구축하기 위한 대안적 평화학 전급법이 나타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기존 좁은 의미의 평화개념을 넓은 의미로 확장하여 혼합적이고 혼종적인 의미로 전환하기 위한 포괄적 접근이 새롭게 나타나게 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댄 스미스(Dan Smith)는 평화를 형성하고 유지시키기 위한 방안에 대해 안보(security), 정치구조(political framework), 사회경제적 기반(socio-economic foundations), 화해와 정의(reconciliation and justice) 등 4가지 부문으로 구분하여 제시한 평화구축 방안을 보면 알 수 있다. 해당 4가지 각각의 부문들이 어떻게 조합하여 성과를 도출하느냐에 따라 평화구축의 정도와 역량이 결정될 수 있다고 파악했다.
이러한 총체적이고 복합적인 접근방식을 모색하려는 새로운 평화연구의 기본적 인식에서 전략적 평화의 개념이 도출될 수 있다. 전략적 평화는 분쟁 이후 평화구축을 위하여 가용가능한 행위자와 영역, 수준을 통합적으로 관리하여 평화의 형성을 전략적이고 효율적으로 도모하기 위한 방안에서 강구된 것이다. 전략적 평화는 기존의 민주평화, 자유주의적 평화, 소극적 평화, 적극적 평화 등 이분법적이고 단편적인 평화의 개념을 통합하여 전략적인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파악하려는 데 기본적 인식을 지니고 있다. 분쟁 이후 평화구축을 위하여 단기적으로 투입되는 인도적 지원과 중장기적으로 투입되는 국제개발협력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통합성 차원이 전략적 평화가 추구하는 방향이라 할 수 있다. 노트르담 대학교의 Kroc 국제평화연구소에서 제시한 전략적 평화의 개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략적 평화에 대해 폭력이나 심각한 불의의 상태에서 벗어나 정의가 실현되는 평화적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일련의 보완적 실천으로 파악했다. 전략적 평화는 지역 문제, 즉 주어진 갈등 상황에서 현장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이를 국내, 국제 행위자 및 기관들과 연결하여 갈등을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전략적 평화는 인권, 경제적 번영, 지속가능한 환경, 폭력 문제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면서 평화협정의 모니터링, 무장 세력의 해산, 인권 침해자에 대한 책임 처벌, 경제개발, 화해, 난민 재정착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해 지속가능한 평화와 정의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들이 포함된다. 전략적 평화는 인종, 종교, 계급 등의 구분적 요소를 넘어 보다 건설적인 관계를 형성할 것을 요구한다. 전략적 평화를 통한 평화구축은 분쟁국가 내부의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치명적인 갈등과 분열을 야기했던 구조적 조건을 변화시키려는 노력들이 포함된다. 전략적 평화를 위한 노력들에는 갈등예방, 갈등관리, 갈등해결, 갈등전환, 갈등 후 화해 등 폭력과 갈등에서 벗어나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 사안들이 포함된다.
전략적 평화의 기본적 관점에서는 평화구축은 결코 분절적이거나 일방향적이지 않다는 점을 공유한다. 평화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며 각 구성요소들이 국제적, 국내적 상황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갈등의 복합적 양상으로 회귀하며 순환한다고 본다. 갈등의 복합화, 다원화, 다변화에 따라 평화를 구축하는 과정에서도 어떤 특정 공동체의 관점에 기초해 고립된 채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현실적 시각에서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 이러한 접근법의 기본적 인식에서 전략적 평화의 개념이 도출되는 것이다. 따라서 전략적 평화는 단번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과정이 반복되면서 형성된다. 평화는 단지 배타적으로 혹은 우선적으로 어떤 성과를 유지하려는 상황에서 구축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의 변화와 과정에 대한 흐름 속에서 평화를 추구하고 지속시키는 것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평화는 전쟁과 폭력에 의해 무너진 사회를 재건하는 과정 속에서 이를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는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 따라서 평화를 구축하는 작업은 정적인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평화를 구축하는 과정은 다양한 관점과 수준에 걸친 변화를 요구하며, 장기적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비전과 설계를 요구한다. 변화의 과정에 관한 비전과 설계는 평화가 구축되는 방법과 조건을 파악하는 데 쉽게 이해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지속적으로 평화를 형성하기 위한 과정의 반복을 통해 갈등전환(conflict transformation)이 나타나게 된다. 전략적 평화를 통한 평화구축과 갈등전환은 지속가능한 평화를 추구한다. 갈등전환이 단순히 갈등이 해결, 해소된 상태를 넘어 갈등상태가 평화상태로 전환되어 지속가능한 평화구축의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갈등전환은 갈등해결(conflict resolution)보다 넓은 개념을 인식하면서 평화구축과정에서 갈등해결적 측면보다 전환적 측면을 강조한다. 갈등전환적 측면에서 본 전략적 평화는 결국 특정한 시대와 공간으로 분절되거나 구획될 수 없는 인간적 삶의 문제라고 인식하게 된다. 평화는 단기적으로 전쟁과 폭력에 의해 무너진 일상적 삶의 다양한 차원을 엮어내고 회복하는데 기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략적 평화는 이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서로 다른 존재들 간의 갈등과 충돌 속에서도 최선의 안정과 조화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방식과 문화의 형성을 시도한다. 따라서 전략적 평화를 실현하는 작업은 다양한 평화의 실천들을 발굴하고 연결하는 역동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전략적 평화는 분절적인 것이 아니라 평화의 구성요소들 간에 연결 가능성을 추구한다. 각 구성요소들 간 연결은 평화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고립된 평화의 실천은 아무리 정당하고 강력하더라도 홀로 고립되어 진행되는 것은 취약하고 결국 쉽게 사그라지기 마련이다. 역사적으로 분쟁과 폭력은 국제적, 국내적 요소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엉켜 서로 상충할 때 증폭되었다. 따라서 평화의 달성 또한 이미 상존하고 있는 갈등의 복합적 요소들을 인지하는 동시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작은 평화의 노력들을 연결하려는 노력 속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기존의 군축, 평화협정 등 전통적 타결책에 매몰되지 않고 보다 인간적이고 문화적 관점에서 일상 속 다양한 평화의 실천사항들을 발굴하고 연결 짓는 노력을 통해 지속적으로 평화가 형성될 수 있다. 전략적 평화를 통한 지속가능한 평화는 ‘평화’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서 연속되는 과정과 지향으로 바라보며 기존의 평화담론, 평화구상, 평화실천들을 연결해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한 연결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지속가능한 평화구축의 본격적인 출발점은 연결에 있다. 지속가능한 평화구상은 이미 존재했지만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평화구상과 실천들을 현재 상황에 맞게 연결시켜 기존 평화구상과 정책 및 실천들 간의 공통성과 관계성을 추구한다. 기존의 평화연구가 단순히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조건들을 만들고, 실행하며, 유지하는 방법, 그리고 그와 관련된 주제들을 연구하는 것이라면, 전략적 평화는 지속가능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기존의 논의들과 실천들의 어울림에 주목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한반도 및 동북아 차원에서 국제질서의 불확실성의 증대에 따른 새로운 안보위협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평화실천 구상을 마련하기 위한 의미 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 평화구축을 위한 연결성은 전략적 평화의 개념의 핵심적 요소라 할 수 있다. 평화구축은 장기적으로 사회의 모든 수준에서 지역 및 세계 사람들 간의 관계가 연결되어 그 관계가 유지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략적 평화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과 단체, 정책 입안자 및 정부, 국제기구 관계자들과 연결을 통해 구축된다. 전략적 평화는 갈등해결을 목표로 분쟁지역에서 평화와 정의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사회, 제도, 정책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정상적 관계가 유지되는 것을 추구한다. 따라서 전략적 평화는 각 요소들간의 연결을 통해 평화의 질이 향상, 유지되는 양질의 평화(quality peace)를 추구한다. 전략적 평화가 바라보는 인식적, 실천적 다양성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이들 간의 관계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국제질서의 불확실성이 만들어내는 복합적 갈등과 안보위협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한국의 미래에 대한 사회과학적 대응체계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 이론적, 정책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평화담론 및 연구에서는 평화가 부재한 상황을 전제로 새로운 평화의 형태를 구축하는 데 주목한다면, 전략적 평화에서는 기존 평화담론, 평화구상, 평화실천을 연결하여 새로운 평화모델을 논의하고 찾아가는 데 초점을 둔다.
전략적 평화라는 개념을 통해 한반도에서 새로운 평화담론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에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 한반도에서 현재의 정전상태를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평화조성(Peace-making), 평화유지(Peace-keeping), 평화구축(Peace-building) 등 3가지로 구분하여 평화를 창출하는 능동적 과정이 필요하다. 평화조성은 갈등의 전환을 의미하는 데 남북 간 정치・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를 위해 군사분야의 협상, 대화 등을 진행하여 군사적 긴장의 상태를 평화공존의 상태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평화유지란 남북 간의 무력충돌이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우발적 무력충돌 방지조치나 공격적 무기의 배치를 제한하고, 나아가 군비축소와 같은 적극적 조치를 취하여 평화의 상황을 유지시키기 위한 노력을 의미한다. 평화구축은 지속가능한 평화상태를 위해 평화협정과 같은 제도적 장치를 통해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이를 정착시키기 위한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는 전쟁의 원인이 구조적으로 제거된 상태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는 결국 하나의 통일국가를 만들어 전쟁의 위협을 구조적으로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통일 역시 평화적 상태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통일로 인해 또 다른 갈등과 폭력이 발생한다면 이는 진정한 통일이 아니며 평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평화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통일은 남북대립과 폭력으로 파괴된 사회를 정상적 상태로 만드는 평화조성, 평화유지, 평화구축의 장기적 과정으로 파악해야 한다. 둘째,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담론은 인간다운 삶이 실현될 때 가능하다. 21세기 평화학에서는 국가안보의 개념에 대한 변화를 요구한다. 즉 국가안보의 궁극적 목적에 대한 인식부터 수단에 대한 논의까지 광범위한 변화를 요구하며, 그 중심에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반으로서 평화에 대한 소망을 요구한다. 따라서 평화학적 관점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란 과거 정치・군사적 대결과 갈등의 시기에서 벗어나 다양한 범위와 영역에서 안전하게 인간다운 일상적인 삶이 보장되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국가안보는 국민의 생명보전의 측면만을 강조할 뿐 실질적인 인간의 삶의 모습이나 행동에는 덜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평화학적 관점에서 국가안보의 형성이 평화라고 할 수 없다. 평화체제는 단순히 국가안보를 해결하는 군사적 긴장해소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간다운 삶이란 인간안보를 실현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경제안보, 식량안보, 보건안보, 환경안보, 개인안보, 공동체안보, 정치안보 등 UNDP가 1994년 인간개발보고서를 통해 제시한 7가지의 인간안보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실천하는 것이다. 단지 종전선언 혹은 평화협정을 통해 전쟁이 종식된 상황이 평화라고 불리는 소극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남한사람이든 북한사람이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어야 진정한 평화가 실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평화의 과정에서 전쟁과 테러로부터의 위협 못지않게 빈곤과 기아, 질병, 불평등, 차별 등으로부터의 위협도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과제라는 점이다. 셋째,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담론은 분단체제가 극복될 때만이 가능하다. 분단이 만들어낸 폭력적 활동과 구조, 담론에 따라 발생된 분단폭력을 해결해야 한다. 분단체제 하에 자행되던 각종 인권탄압 행동을 해결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분단으로 인해 발생된 폭력적 상황이 우리 사회에 구조화되어 있기에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분단구조를 타파하고 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강제적인 힘을 사용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을 불러일으키기에 평화학적 입장에서는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분단폭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갈등과 대립하고 있는 문제들을 중재하고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통합적 리더십이 요구된다. 즉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용서와 화해 등 관념적 차원의 해결을 통해 지속가능한 평화를 구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넷째,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담론은 일상적 평화를 형성할 때 가능하다. 2018년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 간의 긴장완화로 전쟁위험이 줄어든 상황이 존재하지만, 평화학적 관점에서는 더 근본적인 것은 평화의 조건을 전쟁의 부재에서 찾기보다는 일상적 삶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인류역사에서 지금까지의 평화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화가 아니라 구체적 전투행위가 잠시 멈춘 정전(停戰) 상태를 의미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쟁의 부재상태는 인류역사에서 아직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전쟁의 부재가 평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일상화가 평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갈등은 인간이 사회적인 생황을 영위하는 동안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를 해결하는 형태에서 전쟁이나 폭력이 사용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갈등과 분쟁의 해결방식으로서 전쟁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우리 인간의 머리속에서 지우고 갈등과 분쟁에 대한 평화적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전향적 사고가 평화학적 관점에서 요구된다. 즉 한반도의 평화는 기존체제의 현상유지와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분쟁과 갈등의 근원이 되거나 위협하는 구조적 요소를 없애고 해결할 때 가능해진다. 갈퉁에 의하면 구조적 폭력은 부정의한 사회적 조건 속으로 발생하는 데, 이로 인해 인간 개인의 잠재력이 실현될 수 있는 기회가 상실되는 상황을 제거시킬 때 평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구조적 폭력이 개인마다 다르기에 어느 하나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를 해결하여 평화를 실현하는 것은 난해한 작업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국가안보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을 규정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평화를 위한 국가안보가 그 평화의 목적인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규제할 수 있게 되어 버린 매우 역설적 상황에 대한 해결까지도 평화학적 관점에서는 요구한다. 한반도와 같이 갈등의 내용이 역사적이고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지역에서는 어떻게 하면 갈등을 잘 관리하고 풀어나가느냐의 문제가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평화를 단순히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의 기대감에 대한 굴곡이 존재하듯이 평화를 지향하고 실천하는 과정 속에서 실패와 성공이 나타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상호신뢰, 모든 당사자 포함, 핵심 문제의 논의 및 해결노력, 평화적 수단과 방법 사용 등을 모두 고려하여 전략적 평화의 관점에서 평화를 달성하는 노력이 진행되어야 하겠다. 결국 전략적 평화가 내포하는 연결성, 지속가능성은 평화란 끝없이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부단히 어려운 작업의 연속이라는 것을 함의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겠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 유기은 박사후연구원
황수환은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외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연구교수, 강원대 통일강원연구원 선임연구원, 경남연구원 남북교류협력연구센터 팀장, 평화나눔연구소 연구위원을 역임했다. 주요 연구분야는 남북한 관계, 한반도 통일, 평화연구이다. 주요 연구로는 『12개 렌즈로 보는 남북관계』(공저), 『분쟁의 평화적 전환과 한반도』(공저), 『DMZ 평화와 가치』(공저), 『평화공감대 확산 추진전략과 정책과제』(공저)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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