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시아 지역 다자협력 구축: 러시아의 관점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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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동아시아 지역 내 성공적인 다자협력 구축에 대한 전망은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역내 국가들간의 입장 차이가 상호 모순적이고 지나치게 깊을 뿐만이 아니라 역내 양자 군사 협력 또한 과도할 정도로 굳건하다.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통의 목표로 정치적 상호협력을 추진할 수 있는 여지도 상당히 적다. 북한 핵개발이 오늘날 이 지역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유일한 위협 요소일 뿐이다. 북핵이라는 공통적인 위협은 6자 회담을 탄생시켰고 참가국들을 협상테이블로 이끌어냈지만 각기 동상이몽을 하고 있는 현실이다. 모두 6자회담의 궁극적인 목표 달성에는 뜻을 모으고 있지만 공통의 목표 달성 이후에 각자가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이득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러한 참가국들의 입장 차이로 인해서 북한은 다양한 패를 잡을 수 있게 되었고 6자회담은 실패 직전에까지 몰리게 되었다.
6자회담을 동아시아 역내 안보 확보를 위한 협상 메커니즘 (negotiating mechanism)으로 전환하겠다는 발상이 더 심각한 문제이다. 참가국들이 무엇이 자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어떻게 안보를 강화할 것인지에 대해서 종종 대립적인 인식의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중국에게 있어서 군사력의 현대화는 자국의 안보 확보를 의미하지만 미국과 일본은 중국정부의 군사력 증강을 점차 강해지는 “중국의 위협 (China threat)”으로 해석하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 내 다자 협력 구축에 대한 필자의 전망은 여기까지이다. 왜냐하면 동아시아 역내 협력 구축은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러시아가 동아시아 지역의 다자협력관계에 합류할 수 있는 여지도 없다. 그러나 객관적인 관점에서 6자회담 자체와 다른 다자협력의 구축을 위한 메커니즘에 러시아보다 더 관심이 많은 국가는 없다. 그 이유는 동아시아의 한 방어기구인 6자회담이 러시아가 동아시아는 물론 아시아 태평양 지역과 통합해야만 하는 다소 절박한 필요성을 실현시켜 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24년전 미하일 고르바초프 (Mikhail Gorbachev) 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서기장은 블라디보스톡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외부 자원 (external resource)”을 활용하여 시베리아와 러시아 극동 지역의 개발을 추구한다는 기치를 주창한바 있다. 그는 이들 지역이 소비에트와 아시아 태평양 지역간의 경제적 통합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할 것으로 믿었다. 이후 보리스 옐친(Boris Yeltsin) 전 러시아 대통령이 이 기치를 이어받았고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대통령이 이 기치의 실현을 시도하였다. 2000년에 발간된 푸틴 전 대통령의 외교 정책서인 “러시아 연방의 외교 정책 (Foreign Policy Doctrine of the Russian Federation)”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이미 러시아를 “유라시아에서 가장 위대한 힘”으로 간주하고 외교정책을 수립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도 러시아는 그에 걸맞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 외무부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 (Sergey Lavrov)는 최근에서야 “동부 러시아와 아시아태평양 지역간의 경제적 연계 강화를 위한 조치들이 현재에도 효과가 미흡할 뿐만이 아니라 뒤쳐져있고 또한 균형감을 상실 한 채 추진되고 있다”고 인정하였다. 러시아가 1990년대에 동아시아 국가들과 맺은 양자 협력 관계의 성과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러시아와 이들 국가들 간의 교역량 급증은 단지 과거에 비해 상호무역교류가 증가했음을 의미 할 뿐이다. 특히 더 많은 러시아산 원자재들이 아시아 산 소비재 생산에 사용되었지만 러시아가 원했던 실질적인 경제협력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러시아-중국간 교역 개발로 극동러시아의 남부지역이 중국 경제에 의존하게 되었지만 상호 이로운 경제적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러시아 정부는 시베리아-태평양간의 에너지 수송 경로의 결정에 영향력을 발휘함으로써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경쟁에서 3자로서 이득을 보고자 하였지만 이러한 정책으로도 그다지 효과를 얻지 못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동부 러시아 지역의 개발” 정책을 우선시하고 있으며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활용하고자 하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는 러시아 정부는 그 밖의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하였다. 이를테면 시베리아 산 자원 중 석유와 가스 확보에 관심있는 국가들에게 이에 대한 접근 허용 및 태평양 연안까지 자원 수송, 시베리아 횡단철도 (Trans-Siberian line)와 한반도 종단철도(Trans-Korean line)와 같은 러시아 수송로 사용, 그리고 극동지역 도로, 항구, 통신 인프라 개발로 지역 경제에 외국인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계획을 내놓았다. 러시아는 이러한 분야에서의 양자 협력보다 다자 협력 관계 구축을 더 선호하고 있다. 러시아-아시아태평양 지역간의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 안보 분야에서의 다자 협력 기구들은 또 다른 중요한 경로가 될 수 있다. 2008년 러시아의 “외교정책원칙(Foreign Policy Doctrine)”은 러시아는 “대테러 관련 역내 협력을 강화하고 문화권들(civilizations)간의 안보확보와 대화유지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주장하고 유럽에 대한 러시아 외교정책의 핵심은 “진정으로 개방되고 민주적인 지역 공동 안보와 협력을 확보하여 밴쿠버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유럽-대서양 지역의 일치(unity)의 실현”이라고 주창하였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Dmitri Medvedev) 러시아 대통령 또한 상하이 협력기구(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가 “유라시아 지역의 통합 프로세스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고 동북아시아에서 “공동의 안보를 위한 개방적인 시스템을 설립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정부는 독립적인 주체로서의 동아시아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이 지역으로부터 비롯될 수 있는 러시아의 국가안보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의 성격과 강도 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 상황 조차도 핵확산이라는 국제적 위협 차원에서만 인식하고 있어 우려되는 사태가 실제로 발생할 경우 자국이 받을 영향과 극동러시아에 초래할 수 있는 비극을 도외시하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도전과제들 보다는 통제권 밖에 있는 극동지역-동아시아 경제적 교류에만 몰두하고 있다. 2009년 5월 12일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서명한 “2020년을 향한 러시아 국가안보전략(Russia’s National Security Strategy to 2020)”은 NATO와 미국의 대 유럽 정책,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지역, 에너지 수급 불균형, 핵무기 확산, 테러리즘, 국제 범죄조직을 러시아 국가안보에 대한 주요외부 위협들로 명시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볼때 러시아 정부가 꼽은 이 위협 요소들의 대부분이 동아시아 지역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문서 어디에도 동아시아에 대한 언급은 찾아 볼 수가 없다. 한반도상황을 국제 정책 추진의 방해 요소로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러시아 정부는 동아시아 지역에 실제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이 지역의 다자협력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하고는 있으나 다자협력을 실현할 수 있는 명확한 모델을 고안하지 못하고 있으며 영향력을 발휘 할 수 있는 경로나 수단도 갖추지 못한 실정이다. 동아시아 지역 안보 확보를 위한 메커니즘들을 개발 할 수 있다면 6자회담은 러시아가 역량을 발휘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 정부는 한반도 상황을 해결하는 독자적인 대안이 있거나 북한정부에 대해 효과적으로 영향력을 행사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과는 달리 순수하게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고 있고 북한정부에 대해서도 특정한 권리(personal claims)를 요구하지 않는다. 단지 러시아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비핵화를 바랄 뿐이다. 평화롭고 핵으로부터 자유로운 한반도는 러시아에게 있어서 아시아태평양과의 경제적 통합을 위한 또 다른 중요한 돌파구가 될 수 있다. 한반도종단철도와 야쿠츠크-사할린-한반도를 관통하는 가스 배송선을 건설한다면 이를 통해서 아시아태평양과의 경제적 통합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다자협력체제의 구축을 통해서 러시아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국가들보다 더 많은 이득을 획득할 수 있다. 양자 군사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이 역내 다자 협력 체제 설립을 위해서 앞장 설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중국도 북한과 상호원조조약(Mutual Assistance Treaty)을 맺은 상태이다. 반면에 러시아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넓다. 따라서 러시아에게 6자회담은 “한반도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또한 러시아는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보를 위한 매카니즘 설립을 위해 6자회담 국가들과 협력할 것이며 이러한 러시아의 협력을 6자회담의 틀안에서 모든 참가국들에게 적절한 정치외교적 방법으로약속하겠다”며 6자회담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기도 했다. 이처럼 동아시아 정치 행위자들에 비하여 유리한 입장에 있는 바, 러시아가 동아시아 지역의 다자 협력 구축의 한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 러시아 정부가 먼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태평양 지역에 대한 관심사를 명확하게 정의하는 일이다. 그 다음으로 한때는 폭넓게 추진되었었지만 과거 20년 동안 소원해져버린 아시아 지역과의 외교에 다시 활기를 불어 넣어야 한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빅토르 라린 (Victor Larin)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극동지역역사, 고고학, 민족학 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