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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 없는 세상”과 핵우산
등록일
2010-04-28
조회수
8
  불과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구호에 머물렀던 오바마 대통령의 “핵무기 없는 세상” 구상이 미국의 핵 정책으로 실현되고 있다.  4월 한 달 동안 오바마 행정부는 향후 5-10년간 미국핵전략의 기초가 되는 핵 태세 검토보고서(NPR: Nuclear Posture Review)를 발표하고, 미-러시아 간 새로운 전략무기 감축협정에 서명하는 데에 이어서 핵 안보 정상회의도 개최하는 등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드는 노력을 숨 가쁘게 전개하였다.  한국은 미국에 이어 내년에 제2차 핵 안보 정상회의를 개최하게 되어서 “핵무기 없는 세상”의 비전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미국의 중요한 동반자가 되었다.
 


  앞으로 다가올지 모르는 “핵무기 없는 세상”에서 미국의 對韓 핵우산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지난 수십 년간 미국 핵우산의 혜택을 받아온 동맹국으로서 우리는 미국의 새로운 핵 정책을 세심하게 모니터하고, 우리에게 주는 함의를 특히 핵우산에 대한 함의를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새로운 핵 정책에는 전 세계적인 핵 감축을 실현하려는 이상주의와 냉전의 종식 이후의 새로운 안보위협에 대해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실용주의가 공존하고 있다. 2010년 핵 태세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핵 정책은 과거 냉전적 사고에 입각한 전략으로부터 “근본적 전환(fundamental shift)” 을 하여 미국 방위전략에서 핵무기의 역할을 줄이고, 핵 정책의 주안점을 국가 간의 핵전쟁의 방지에서 핵확산과 핵 테러의 방지로 전환하였다. 이러한 핵 정책 기조의 전환은 바로 이상주의와 실용주의가 결합된 결과이다.


  문제는 한반도에 있어서는 아직 냉전이 끝나지 않고 있고 남북 간 전쟁의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행히도 미국의 새로운 탈냉전적 핵 정책이 아직 냉전적 상황이 끝나지 않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지(extended deterrence) 제공이나 안보 공약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것이 핵 태세 검토보고서의 발표를 앞두고 오바마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 전화통화의 핵심이다. 이러한 내용은 클린턴 국무장관에 의해서도 재차 확인되었다.


  억지란 상대방이 공격할 경우 강력하게 보복할 것을 위협함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애초에 공격을 안 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억지, 특히 확장억지가 성공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공격 시 반드시 톡톡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보복이 따를 것이라는 위협이 신뢰성(credibility)을 갖추어야 하고, 보복에 필요한 군사적 능력(capability)도 실제로 따라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과 클린턴 국무장관에 의한 확장억지 제공과 안보 공약의 재확인은 바로 북한의 공격 시 미국의 보복의지에 대한 신뢰성을 높여 북한이 오판을 하지 않게 하는 데 기여하여 새 핵 태세 검토보고서를 둘러싼 한국내의 우려가 상당히 불식되었다.


  그런데 미국의 확장억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북한의 입장에서 미국의 확장억지가 유효한 것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 정치지도자의 공약만이 아니라 그러한 공약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실제적 능력이 충족되어야 한다. 핵 태세 보고서가 중요한 이유는 이 보고서가 바로 미국이 억지에 필요한 군사적 준비를 갖추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기 때문이다.


  핵 태세 검토보고서는 뉘앙스가 많은(carefully-nuanced) 상징적인 문서이기도 하면서, 군사기술과 전략에 관한 지식을 요하는 전문적인(technical) 문서이기도 하다. 만약 한국과 미국의 역할과 입장의 차이, 그리고 한국어와 영어의 언어적 차이를 염두에 두지 않고 핵 태세 검토보고서를 분석할 경우 자칫 정확하지 못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의 새로운 핵 정책을 보다 정확히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이 글에서는 한·미간에 해석의 차이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개념과 용어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선제공격 vs. 선제사용


  일각에서는 새로운 핵 태세 검토보고서에서 미국이 NPT 회원국으로 비확산의무를 준수하는 비핵국가에 대해서는 핵 선제공격을 포기하는 한편, 북한이나 이란처럼 NPT회원국이 아니거나 NPT회원국이면서 핵 비확산 의무를 준수하고 있지 않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핵 선제공격 정책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정확하지 않은 해석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새로운 핵 태세 보고서에서 밝힌 내용은 NPT 회원국으로 비확산 의무를 준수하는 비핵국가에 한해서 핵 선제사용(nuclear first use)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국가가 미국이나 동맹국에 대해 공격을 하려고 한다면 미국은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한 그 나라에 대해 선제공격(preemption)을 할 수 있으며,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한 그 나라에 대한 예방공격(prevention) 또한 이론적으로 불가능하여 보이지 않는다. 오바마 행정부는 부시 행정부의 선제공격전략을 아직 공식적으로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을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미국의 새로운 핵 정책 아래서 미국은 현재 북한에 대해 핵 선제사용 및 핵 선제공격이 모두 가능하다. (그리고 개연성은 떨어지겠지만 핵 예방공격도 배제된 것이 아니다.) 만약 미래에 북한이 NPT에 재가입하고 비확산의무를 준수한다면 그런 경우에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핵 선제사용은 포기하겠지만,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이나 예방공격은 계속 가능하다. 미국의 새로운 핵 정책이 확장억지의 유효성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한국 내에서 별로 존재하지 않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오바마 행정부도 부시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북한에 대한 핵 선제사용 정책과 핵 선제공격의 옵션을 유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확장억지 vs. 핵우산

  핵무기는 일반적으로 사정거리, 파괴력, 그리고 용도에 따라서 전략 핵무기와 전술 핵무기로 나눌 수 있다. 예컨대 핵탄두 ICBM은 전략 핵무기이고, 단거리 핵미사일은 전술 핵무기로 분류하는 것이 관례이다.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지의 제공에 있어서 전통적으로 미국의 핵무기가 특히 전술 핵무기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미국은 90년대 이후 전술 핵무기를 대폭 감축하여 현재 남아 있는 미국의 전술 핵무기는 유럽에 배치되어 있는 소수의 전술 핵무기와 미국 본토에 보관되어 있는 전술 핵무기가 전부이다.


  2010 핵 태세 검토보고서에 의하면 오바마 행정부는 전술 핵무기의 감축을 계속하여, 전폭기와 중폭격기에 전술핵무기를 전진배치 할 능력은 계속 보유하지만, 특히 아시아에서 확장억지를 제공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여온 토마호크 미사일은 퇴역시킬 계획이다. 대신 토마호크 미사일의 퇴역에서 발생하는 전력의 공백은 전략 핵 폭격기, 핵탄두 ICBM, 핵탄두 SLBM, 그리고 최첨단 재래식 무기로서 메울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북한의 공격을 억지하기 위하여 핵탄두 ICBM 이나 SLBM 같은 전략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불필요하게 보인다. 지리적으로 협소하고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 남북한의 경우에는 단거리 핵미사일이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핵탄두 ICBM이나 SLBM에 못지않은 인적, 물적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보다 중요하게는 북한에 대해 전략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 있다. 예컨대 북한 내에서 핵탄두 ICBM의 폭발 시 그 충격과 낙진으로부터 한국과 중국이 피해를 입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을 목표로 한 ICBM 발사를 중국이나 러시아가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오인하고 미국에 대해 ICBM으로 반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험성은 핵무기를 대체하기 위해서 오바마 행정부가 개발하고자 하는 재래식 전 세계 신속 타격(PGS: Prompt Global Strike) 무기에도 공히 적용된다.  따라서 미국과 러시아에게는 ICBM, SLBM이 전략핵무기이고 억지에 필요하겠지만, 남북한의 경우에는 아직도 전술적인 핵무기가 실질적으로 전략적인 핵무기이고 억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전술 핵무기의 감축을 계속하고 토마호크 미사일을 퇴역시키는 오바마 행정부의 결정 때문에 향후 미국의 對韓 확장억지는 그 성격의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그 동안 ‘확장억지’와 ‘핵우산’은 통상적으로 동의어처럼 사용되었지만, 앞으로는 ‘확장억지’와 ‘핵우산’을 반드시 동의적으로 볼 수는 없다. 만약 이 글의 주장처럼 확장억지를 제공하기 위해 전략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불필요하거나 불가능하다면 확장억지는 결국 재래식 무기, 특히 첨단 재래식 무기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확장억지는 더 이상 ‘핵’ 우산이 아니고 ‘재래식’ 우산이기 때문이다. 물론 재래식 무기를 통하여 어떻게 확장억지를 효과적으로 그리고 안전하게 제공할 수 있을 지는 앞으로 연구가 필요한 문제이다.

 

 

안보외교 강화의 필요성

  오바마 행정부의 새로운 핵 정책에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이상주의와 냉전의 종식 이후 변화한 안보상황에 대해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실용주의가 공존하고 있다. 전 세계적 핵 감축 노력의 동반자로서, 그리고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우리는 오바마 행정부의 핵 정책에 담겨있는 이상주의와 실용주의를 잘 이해하고, 미국 핵 정책의 변화와 연속성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선 우리나라는 미국의 핵 정책이 변화함에 따라 한국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지도 그 성격이 변화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우리도 한국의 안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미국에게 우리의 필요를 설명하고 설득시키는 노력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토마호크 미사일의 경우 지난 번 일본 자민당 정부는 토마호크 미사일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미 의회를 적극적으로 로비 하여 미 의회가 만든 초당파적 미국 전략태세 위원회(Congressional Commission on the Strategic Posture of the United States)에서 토마호크 미사일의 유지를 권고하는 결론을 내리게 하였다. 민주당이 집권하고 나서는 일본 정부가 입장을 바꿔서 오바마 행정부에게 토마호크 미사일을 유지해달라는 자민당 정권 때의 요청은 일본 정부의 공식적 입장이 아니라고 밝히고 토마호크 미사일의 퇴역에 찬성을 표명하였다. 물론 토마호크 미사일의 퇴역결정에 있어서 일본 민주당 정부의 선호가 얼마나 중요한 변수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판단하기에 토마호크 미사일이 일본의 안보에 필요하다면 미국 측에 토마호크 미사일의 유지를 요청하고, 일본 정부의 판단 하에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면 퇴역에 찬성하는 입장을 미국에 표명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오바마 행정부가 토마호크 미사일을 퇴역시키기로 결정하였을 때, 한국은 빼고 일본에게만 사전 통보를 해준 것은 아마도 일본의 그러한 적극적 안보외교의 성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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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인택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