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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거버넌스 시대의 인권과 주권
등록일
2010-11-02
조회수
8
중국의 반체제인사 류 샤오보가 노벨 평화상을 받고 논란이 일고 있다. 류 샤오보는 중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개선을 위해 오랜 기간 비폭력 투쟁을 벌여온 지식인으로 중국 천안문 사태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중국 정부는 류 샤오보를 반체제 선동자로 낙인, 수감했으며 수감 중 류 샤오보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이 되었다. 문제는 이 선정을 둘러싼 중국 내외 양측의 팽팽한 반응이다.

잇따른 서구 국가의 류 샤오보 노벨 평화상 수상에 대한 환영 메시지에 더해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수상 소식에 환영의 뜻을 밝힌 바 있다. 류 샤오보의 중국의 인권 향상을 위한 노고를 놓고 “보편적 가치의 진전을 설득력 있고 용감하게 대변해 온 인물”이라 높이 평가하면서 그의 즉각적인 석방을 중국 정부에 촉구했다. 미국의 발언을 중국 외교부는 이를 범죄를 격려하는 행위라 비판하고 있다. 류 샤오보의 노벨 평화상 수상 자체가 중국의 사법시스템을 무시하는 처사이며 그의 수상은 중국 체제에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 없을 것이라 확언했다. 또한 잇따른 서구 사회의 비판은 내정간섭으로 여기겠다 발표했다. 밀려들어오는 서구 사회의 비판에 심기가 불편해진 중국은 노르웨이와의 어업장관 회담을 취소하고 노르웨이 주재 중국대사를 소환하고 문화 교류를 끊어버렸다. 사태가 점점 복잡해져가고 있다.

첨예해져가는 양국의 공방에 에릭 홀더 미국 법무장관은 지난 21일 류 샤오보 문제와 관련, 미국과 중국 사이에 ‘근본적 견해차(fundamental disagreement)’가 있다고 말했다. 과연, 이 근본적 견해차는 어디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아니, 과연 이 논쟁이 근본적인 견해차 때문에 발생한 것일까?

양측의 견해차는 인권과 주권의 모순적 충돌, 인권보편주의와 문화상대주의의 논쟁으로 축약될 수 있다. 중국은 서구 국가들의 류 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주권의 침해로 간주하고 있으며 중국의 인권침해 상황도 문화적 상대주의란 명목으로 덮어두려고 하는 속셈이다. 하지만 중국의 이러한 태도가 인권의 보편성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21세기 현재 얼마나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인권과 주권은 근대사회에서 둘 다 매우 중요한 권리이지만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유엔헌장은 국가주권과 인권을 동시에 강조하는 어떻게 보면 모순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의 추세는 인권이 주권을 초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중대한 인권 침해의 경우 타 국가의 인도주의적 개입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인권 침해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을 내정간섭으로 치부하는 것은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이다. 중국정부의 인권침해가 주권 존중의 이유로 절대 정당화될 수는 없다.

문화상대주의란 원래 다양성을 인정하고 사회·문화적 특징과 역사의 흐름을 고려하여 그 나라의 문화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다양성의 존중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현대 국제사회에 있어서 이 매력적인 인권 친화적 논리가 서구와 비 서구를 갈라놓는 개념으로 변질 되었다. 서구사회는 종종 비 서구사회를 향하여 서구의 가치를 “보편”이라는 옷을 입혀 강요하고자 했고 협상에서 유리한 결과를 끌어내고자 인권을 압박카드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에 비 서구국가는 서구사회의 압박에 대하여 종종 문화상대주의의 우산을 쓰고 방어하는 경우가 있어 왔다.

중국은 그 동안 외부의 인권 증진 압력에 모르쇠 혹은 강경 외교정책을 고수해 왔으며 중국 내부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버렸다. 그러한 강경책의 뒤에는 문화상대주의의 논리가 있었고 날로 커가는 중국의 힘은 다른 국가들의 강도 높은 인권개선 목소리를 낮추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중국을 둘러싼 무역, 환율 등의 여러 이슈들에 인권이 더해져 쉽게 넘어가기 어려운 지경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중국은 문화상대주의를 앞세워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비판을 억압하는 태도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문화상대주의는 서구 대 비 서구의 대결 양상을 강화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편적 인권을 함께 모색하고 추구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반면, 중국의 이러한 인권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미국의 태도도 문제다. 세계언론은 중국과 미국의 대립구도가 환율전쟁에 더해 인권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라고 표현한다. 중국과 환율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의 입장으로는 이 사건이 호재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 공화당은 자기들의 원죄를 민주당 오바마 정권에게 돌리고 있고, 오바마 정권은 자기 문제를 중국 탓으로 돌려보려는 형국이다. 공화당의 우세가 점쳐지고 있는 중간 선거를 앞두고 터진 이 호재를 민주당 정권이 그냥 넘길 리 만무하다. 서방 세계를 향해 협박외교 자세를 고수하고 있는 중국은 오바마 정권에게는 좋은 공격의 대상이 되어 주고 있다.

인권의 규범은 국가들간의 협상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고 인권문제의 해결 또한 국가들간의 대립과 충돌의 결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권은 소위 글로벌 거버넌스 시대에 매우 핵심적인 이슈로 떠올랐고, 글로벌 거버넌스가 요구하는 다양성, 수평성, 자율성이 강조되는 분야이다. 즉, 인권은 국제기구, 비정부기구, 다국적기업 등의 다양한 행위자들이 수평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자율적인 참여를 통해 규범형성과 문제해결이 이루어지는 분야이다. 과거 몇몇 강대국들이 규범을 만들고 수직적으로 국제사회를 운영하던 때와는 전혀 다른 거버넌스의 양상인 것이다.

인권은 인권 자체로의 의미를 가지고 지켜지고 발전되어야 한다. 인권 문제를 놓고 한 국가가 한 국가를 공격하는 양상은 바람직하지 않고, 자신의 인권 문제를 주권이라는 명분으로 덮어 두려고만 하는 태도 또한 옳지 않다. 중국정부가 이러한 서구사회의 반응을 내정간섭이라고 간주하는 태도나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류 샤오보를 석방하라는 직접적인 발언 모두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현 지구의 초강대국 양대 산맥의 이러한 소비적인 대결은 그들간의 문제를 넘어 지구사회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글로벌 거버넌스 시대에 인권은 더 이상 국가들간의 투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며, 인권의 본질이 주권이나 문화상대주의의 논리로 더 이상 훼손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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