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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인도지원의 해법
등록일
2010-09-27
조회수
8
  금년 여름 한반도의 기상이 심상치 않다. 태풍 곤파스가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바람에 많은 국민들이 피해를 입더니 추석을 맞이하려는데 느닷없이 시간당 100mm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북한은 7월 중순부터 9월 초까지 다섯 차례 폭우가 발생하여 많은 이재민과 재산 피해가 발생하였다. 특히 신의주 지역의 피해는 심각한 상황이다. 이를 계기로 우리 정부는 북한에 100억 원 상당의 긴급구호지원을 제의하였고 북한은 우리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쌀을 포함하여 수해복구 물자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도 제의하였다.

북한 식량난의 원인

지금까지의 관례에 비추어 북한이 대한적십자사에 식량지원을 요청한 것이나 이산가족 상봉을 먼저 제의한 것은 뜻밖의 일이다. 우리가 북한에 먼저 긴급수해복구 지원을 제의하기는 하였으나 북한이 꼭 집어 쌀을 지원해 달라고 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남북한은 그 동안 너무 긴 시간 동안 대화가 단절되고 긴장이 축적되었기에 양측 모두 대화의 돌파구를 찾아야 할 시점에 북한에서 수해가 발생한 것이다. 수해는 자연스럽게 남북한 사이의 대화를 매개하는 촉매제가 된 듯싶다.

사실 북한이 겪고 있는 식량난은 자연재해보다는 인재가 근원적인 원인이다. 자연재해를 키운 것도 정책의 실패 때문이다. 그렇지만 북한은 절대수령인 통치자의 잘못을 인정하기 어려운 체제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해가 발생하여 현재 겪고 있는 식량난을 통치자의 잘못이 아니라 자연재해의 탓으로 돌려 통치자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을 무마하려는 것이다.

북한은 금년 여름 수해가 아니어도 식량난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가깝게는 지난해 가을 수확 이후 100만 톤 이상의 식량 부족이 예상되었다. 좀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2004년 북한이 더 이상 국제사회의 긴급식량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공언할 때부터 예상된 일이었다. 왜냐하면 북한은 자체적으로 식량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지원에 의존해야만 하는데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했으니 어느 누가 북한에 식량 지원을 하겠는가. 게다가 북한은 미사일 발사다, 핵실험이다 국제사회의 반발을 살만한 일은 죄다 저질렀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규범을 모르는 것일까 무시하는 것일까?

인도적 지원에도 규칙이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이 되었다. 그야말로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 동안 원조의 방법을 둘러싸고 국제사회는 많은 갈등이 있었다. 자칫 원조가 수원국 국민의 인도적 상황을 개선하기 보다는 독재 권력의 집권을 연장시키고 살찌우는 도구로 잘못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이 이러한 의심을 받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피하기 위하여 유엔은 1991년 12월 총회에서 인도지원 원칙을 결의하였다. 여러 가지 원칙이 있지만 식량지원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칙이 중요하다.

첫째, 지원을 받고자 하는 나라는 먼저 도움을 요청하고 지원에 동의해야 한다. 긴급재난을 당한 나라는 일차적으로 자국 국민의 인도적 문제를 책임져야 하며 필요한 경우 이차적으로 다른 나라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야만 긴급재난을 당한 나라가 주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

둘째, 인도지원의 수혜자가 누구인지 대상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수혜자가 긴급재난을 당한 국가의 모든 국민일 수도 있지만 특정 지역 또는 특정 계층에 한정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수혜자를 한정해야만 지원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

셋째, 수혜자가 당초 목표대로 인도지원을 받았는지, 지원의 효과가 있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을 통상 모니터링이라고 하는데, 분배의 투명성 확인이라는 목적도 있지만 좀 더 효과적인 지원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위의 원칙은 수해와 같은 긴급인도지원뿐만 아니라 복구지원이나 개발지원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개발지원의 경우 긴급인도지원에 비해 더욱 엄격한 원칙과 복잡한 절차가 충족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번의 대북 수해복구지원에 있어서도 우리가 지원하는 쌀과 복구지원 물자에 대해서는 수혜를 받는 북한과 사전에 위의 원칙에 대해 협의한 후 지원을 개시하는 것이 순서이다. 이산가족 상봉을 수해복구지원의 반대급부쯤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북한이 하필 이 시점에 이산가족 상봉을 먼저 제의했는지 궁금하다. 앞으로 더 큰 규모의 대북 식량지원을 논의할 때는 긴급인도지원 이상으로 원칙에 더욱 충실해야만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으며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다.

개발지원으로의 연계가 필요하다

긴급인도지원은 말 그대로 긴급히 인도적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취하는 조치이다. 그런데 북한의 인도적 상황은 단기간에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금년 여름의 나쁜 기상은 내년의 식량상황을 더욱 어렵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내년에 더 많은 국제사회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년을 넘긴다고 해서 식량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북한이 식량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북한 자체의 노력과 함께 국제사회의 개발지원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긴급인도지원과 개발지원이 병행되어야만 식량을 둘러싼 북한 주민의 인도적 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 그런데 개발지원이 추진되려면 단순히 북한 주민의 인도적 상황이 나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북한이 인도적 상황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모습을 국제사회에 보여줘야 하고 국제사회를 적극적으로 설득해야만 개발지원이 추진될 수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 있는 행동을 할 때 비로소 국제사회는 북한의 개발지원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남북한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할 필요는 있지만 이를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북한을 지원함에 있어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강조하여 국제규범에 어긋나게 행동하면 우리는 국제사회로부터 따돌림을 받게 될 것이다. 어려운 처지의 국민에게 도움을 주더라도 국격이 높아지기는커녕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 뻔하다. 국제사회가 애써 합의한 원칙과 규범이 무너지면 인류가 지향하는 평화와 번영을 달성하는데 커다란 장애물이 생기기 때문이다. 혹자는 인도적 지원이라 할지라도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지만 인도적 문제와 정치 문제와의 연계성을 줄여나가야만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이제 얼마 후면 G20 정상회담이 한국에서 개최된다. G20 의장국으로서 우리는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로 당당하게 행동해야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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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태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