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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러 관계의 새로운 조망
등록일
2010-08-03
조회수
8
  1990년 9월 30일 유엔총회가 열리고 있던 뉴욕으로부터 한국과 소련이 국교 수립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우리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린 것을 알린 것이었다. 1980년대 말 세계는 냉전구조의 해체 및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1990년 독일 통일이라는 대변혁 가운데 있었으며 한반도 정세 또한 급변하고 있었다. 1991년 남북한의 유엔 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및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합의, 그리고 1992년의 한·중 수교를 가능하게 했던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바로 한·소 수교였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1945년 북한 지역을 점령한 데 이어 1948년의 북한 정권 수립과 1950년 한국전쟁을 일으킨 과정에서 소련이 한반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재확인시켜 주었다. 앞으로 북한문제 해결과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도 러시아가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예측을 가능케 한다.

금년은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이자 소련군의 참전 60주년이기도 하다. 1950년 가을 중공군의 참전을 가능케 했던 것이 소련 공군의 지원이었고 그 역할을 담당했던 제64독립항공군단의 전투일지가 서울에 들어와 있다. 필자의 관심 주제였기 때문에 여러 편의 논문과 <소련군의 한국전 참전>이 단행본으로 나왔으나 정부 차원에서 한국전쟁사와 한·러 관계사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아직 부족하다. 60주년을 맞아 소련이 한국전에 직접 참전했었다는 사실을 참전했던 조종사들의 증언을 통해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제안한다. 나아가 그들을 우리나라로 초청하여 한국의 발전상을 보여주면 어떨까 한다. 그들이 한·러 관계의 발전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인지는 지켜볼 일이기 때문에 소련공군의 한국전 참전 60주년 기념을 통하여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2차 대전 말기 북한 지역을 점령했던 소련군의 역할과 북한 정권 수립과 경제적 지원에 관한 러시아 측의 역사를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은 한·러 관계는 물론 남북한 관계 정립의 기초가 될 것이다.

새로운 20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지난 20년간 잘한 것은 더욱 잘하도록 하고, 잘못한 것은 고치는 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러시아가 한국과 얼마나 가까운가를 인식해야 한다. 한반도와 육지로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단 두 나라가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바로 그들인데 러시아는 두만강 끝부분에서 아주 짧게 만나지만 동해를 통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과 러시아가 얼마나 가까운 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한·러 관계의 변화 과정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한 다섯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러시아 전문가의 양적 증대가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러시아가 세계 최대의 국토에 석유와 천연가스를 비롯한 방대한 자원의 보고라고 말하면서 일을 맡아서 할 사람은 태부족한 현실이다. 더구나 어문학 전공자와 비교할 때 지역학 전공자가 너무 적기 때문에 실제 러시아 관련 업무를 담당할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는 말을 현장으로부터 듣고 있다. 러시아어가 다른 외국어에 비해 어렵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많은 학생들이 러시아의 중소 도시들에 있는 학교에 가서 2년 정도 집중적으로 러시아어를 배우고 돌아오면 좋을 것이다.

둘째, 양적 증대와 함께 질적 수준을 높여야 한다. 1990년 한·소 수교 이후 한국의 러시아 유학생이 급증하였고 이제 우리 주변에서는 러시아에서 박사 학위를 따 온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러시아의 입장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자기의 전공 주제에 대해 러시아어로 논문을 발표하고 러시아 학자 및 전문가들과 러시아어로 토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 많지 않다. 더구나 러시아 측 인사들과 공식 혹은 비공식 교류를 계속하며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일 등은 시작단계에 있다. 러시아에 관심이 있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현지에 체류하면서 연구하고 체험하면서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도록 한국연구재단을 비롯한 기관들의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다.

셋째, 러시아에 관하여 지난 20년간 수집한 지식과 정보를 종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전망에 관한 회의나 한반도 안보와 주변 4강에 관한 회의가 많이 열리는데 이들 회의에 직접 참석해 보면 한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단상에 앉아 있는 전문가들의 출신국적을 보면 대부분의 경우 러시아인 학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러시아의 입장을 분석하여 설명할 수 있는 한국인 러시아 전문가도 보이지 않으며 단상은 물론이고 청중석에서도 러시아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수교한 지  20년이나 되었음에도 러시아는 아직도 우리한테서 너무도 멀리에 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 전공자들의 모임도 다른 지역전문가들의 모임에 비해 양적으로도 부족한데다가 다양한 배경과 대립적인 견해를 갖는 전문가들 사이의 비판이나 토론도 매우 부족하다. 이러한 약점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러시아에 관한 연구비를 지원하는 한국연구재단 등에서 다양한 견해를 취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한·소 관계 발전을 위한 방안을 전국 규모의 전문가들로부터 듣는 것은 외교통상부가 해야 할 일인데, 1990년대 후반에는 그러한 노력들이 있었으며 평소에는 말이 적었던 다수의 러시아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새롭다.

넷째, 주한 러시아 대사관의 역할이다. 지난 2008년부터 주한 러시아대사관은 한국의 러시아전문가들을 대사관으로 초청하여 파티를 열기 시작했다. 이처럼 러시아대사관이 적극적으로 한국 국민들에게 다가온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1970년대 초반 미국문화원에서는 몇 개의 영어회화 클럽을 지원하였다.  당시 영어를 좀 한다는 대학생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은 후일 각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활동을 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 대부분이 친미성향의 엘리트들이 된 배경에는 미국문화원의 장기적인 포석이 있었다. 러시아대사관의 경우에도 러시아회화 동아리 활동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미 국내에는 러시아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모이는 동아리들이 있는 바 이들이 정기적으로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교재와 시청각 자료를 공급해 주는 일은 장차 한·러 관계를 직간접적으로 담당하게 될 자원들을 미리 확보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다섯째, 한·러 간의 교류와 접촉을 제도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무엇보다도 한국 대통령이 매년 최소 한 차례 이상 상호 방문하는 외국 원수의 명단에 러시아 대통령이 포함되어야 한다. 한반도 주변 4강 정상과의 정례적인 만남, 나아가 언젠가는 남북한 정상회담의 정례화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변 4강을 말할 때 <미·일·중·러> 혹은 <미·중·일·러>라고 하는데 어느 경우이던 간에 러시아는 항상 4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처럼 한·러 관계가 가장 부족하다는 것을 안다면 그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려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 일본과 중국,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는 1998년을 전후하여 모두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돌아가며 수립하였고 각 부문에서의 교류와 접촉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의 한 가운데 있는 한국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증대하는 것이 다른 세 나라의 국익에 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한·러 간의 교류와 접촉은 대폭 늘려야 한다. 학계의 경우에도 필자가 연구이사로 일하던  2003년, 한국슬라브학회는 2년마다 한 번씩 러시아의 지역 대학들을 방문하여 국제학술회의를 열기로 결정하여 그 첫 회의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개최한 바 있는데 각 분야별로 정례적인 학술대회를 상호 초청방문하면서 개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사례였다.

이제 새로운 20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러시아 친구들은 러시아를 “자원으로만 보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한다. 경제적인 측면 말고도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러시아는 우리와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고려인 혹은 고려 사람들이 있는 광대한 연해주는 한국은 물론 북한을 위해서도 훌륭한 식량 공급지가 될 것이다.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러시아를 구석구석 여행하는 것도 위험하기는커녕 꼭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스킨헤드족이 무서워서 러시아 어학연수나 유학을 망설이고 있는 사람은 스스로를 돌아보기 바란다. 그리하여 러시아와 친해지려는 노력을 하면 할수록 러시아는 우리에게 더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그것이 한반도 주변 4강 모두를 친구로 사귀어야 하는 우리 한국 국민들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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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덕중
경기대학교 국제대학 러시아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