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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경제협력의 현황과 전망
등록일
2011-08-30
조회수
8
  북한의 경제 골간은 전폭적인 구소련 지원하에 구축됐고 유지되어 왔다. 때문에 1991년 소련의 붕괴는 북한 경제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최근 20여 년간 북러 간 경제협력은 답보상태에서 매우 완만한 속도로 복원되고 있다. 양국간 경협의 장애요인은 무엇인가. 지난 8월 24일 북러정상회담이 향후 경협 활성화를 위해 어떤 함의를 갖는가.


북러 경제협력의 현황

구소련 당시에 양국간 경제협력은 기술이전, 협동생산, 위탁가공생산, 인력 교육 및 훈련, 과학기술 교류 등의 광범위한 분야에서 이루어졌다. 1988년에 무역규모는 15억 6,570만 루불(약 25억 달러)로 역사상 최고수준에 이르렀고 북한 무역 총액의 49%를 차지했다. 그러나 소연방이 붕괴되면서 대북 원조성 구상무역은 중단되고, 우호가격을 적용하던 방식에서 국제시세에 기초한 경화결제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무역체계하에서 양국간 경협은 급격히 퇴조했으며, 2000년에는 무역액 4천 6백만 달러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1988년과 비교할 때 무려 54배나 감소한 것이다. 그 후에 점진적으로 회복추세를 보였지만 여전히 소련 말기의 수준으로는 호전되지 못하고 있다.

북러 관계가 소원해 지면서 북한의 대(對)중국 의존도는 심화되었다. 그렇다고 북중 간 경협 확대가 북한 경제를 근본적으로 회생시키는데 기여한 것은 아니다. 생필품 위주의 대북지원은 단기처방에 불과한 측면이 있다. 그 이유는 심각하게 노후화된 기간산업이 전적으로 소련 기술과 설비 지원으로 건설되고 운영돼 왔기 때문이다. 이 분야에서의 현대화 없이 북한 경제는 소생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북러 양국은 김정일-푸틴 간 3차에 걸친 정상회담을 통해 상호 협력의지를 확인했지만 획기적인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대북 경제지원 배경이 동맹국과의 관계 강화, 소련의 국제적 지위 제고, 중소분쟁 과정에서의 친중화 견제 및 미국과의 경쟁 일부로 인식됐던 구소련 당시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북러 경제협력의 제약 요인

첫째로, 양국간 경협 활성화의 최대 장애요인은 북한의 대러 채무상환이다. 2006년 12월 제5차 채무조정회의에서 채무규모를 80억 달러로 확정했으나 전액 탕감을 요구하는 북측의 입장 때문에 진전이 없었다. 파리클럽 회원국인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채무 전액을 탕감하게 되면 회원국 간 동등성의 원칙에 위배된다. 게다가 북한의 경우는 아직 IMF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파리클럽 차원에서 채무를 재조정할 수 없다. 이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택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 기업에 대한 지분권과 채무를 교환하는 채무스왑(dept swap) 등의 절충안을 모색해 볼 수 있다.

아직 러시아가 이 방안을 현실화하지 않는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구소련은 이념적 연대와 군사안보를 목적으로 북한에 대해 ‘출혈지원’을 했다. 북한은 아직도 일방적 원조를 요구하는 대러 기생적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 입장에서는 한국에 대한 채무 상환문제도 고려대상이다. 만약 대북 채권과 대남 채무를 상계시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2009년 5월 제5차 경제공동위에서 채무상환 문제가 집중 논의될 예정이었으나 북한의 핵실험 단행으로 회의 자체가 무산되었다. 2011년 8월 김정일의 방러를 계기로 개최되는 북러 경제공동위에서 가시적인 진전이 있는 것으로 기대해 본다.

둘째로, 북한 경제의 내부적 한계요인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 중앙통제식 계획경제의 가장 완벽하고 극단적인 모델이었다. 소련 와해 후 중공업 위주의 스탈린식 통제경제가 붕괴됨으로써 북한의 1997년 공장 가동율은 1990년의 46% 수준에 머물렀다. 지방의 경우, 배급제가 중단되고 급기야 대아사가 시작됐다. 현재도 중앙통제로 인해 유연성이 별무하고 ‘자립경제정책’ 노선하에서 국제경제와의 거래도 한산하다. 특히 북한 핵실험 강행으로 인해 국제사회로부터 더욱 고립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자구책으로 지하 경제에 의존하고 정부는 기존의 중소 등거리 외교 관성에 따라 중국에 의지해 왔다. 그러나 중국조차도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에너지 소비량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비단 경제적 이유뿐만 아니라 북한의 카멜레온적 속성도 식상하다. 대미 접근에 올인하는 북한 지도부를 신뢰할 수 없다.

2001년 여름 김정일은 러시아 옴스크의 베이컨사를 방문했을 때 개인소유의 장점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유제도를 ‘북한에 도입할 수는 없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작은 영토에 약 2,50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통치체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북한 지도자의 인식이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북러 경제협력의 전망

2001년 8월 김정일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했을 때 ‘북한의 경제방향을 서구식이 아닌 러시아식으로 선회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러시아식이 비록 질적으로는 열악할지 모르지만 비용이 덜 들고 북한의 조건에 접목시키는데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푸틴과의 비공식 오찬자리에서도 ‘개혁은 북한의 실정에 맞아야 하고, 전쟁이나 유혈없이 모든 것이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합리적이어야 한다’며 러시아의 발전 방향을 주시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 후 북러 정상 간 합의된 사항들은 비록 작은 규모이지만 나진-핫산 철도 개보수 사업 착수 등 대부분 이행돼 왔다.

한편 러시아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남북한 통일 후 서방이 북한 시장을 선점함으로써 러시아가 인구 7천 3백만 명의 소비시장을 상실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또한 동북아 국가와의 통합관계 확대를 위해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경제적 지렛대를 구축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러시아는 저렴한 북한 노동력을 시베리아·극동지역의 건설·임업·임가공 및 여타 제조업에서 활용할 수 있다. 나아가 TKR-TSR 연결, 석유·가스관 북한 영토 통과, 잉여전력의 대북 공급 등 남북한-러 3각 협력 프로젝트가 지정학·지경학적 측면에서 매우 긴요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북 경협의 장애요소인 채무상환 문제를 무한정 방치해 둘 수는 없는 입장이다. 북러 양국은 8월 24일 김정일-메드베데프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사항을 바탕으로 향후 경협의 내실화를 도모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반도에서는 주변 강국과의 세력균형이 요구된다. 최근 남북관계가 소원해 지면서 북한의 각종 이권이 중국인에게 넘어가고 있다. 북한의 과도한 대(對)중국 의존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 카드를 활용해야 한다. 남북한-러 3각 협력 사업은 경제적 실익뿐만 아니라 외교안보적 부수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필자소개] 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학교 초빙교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영국 런던대에서 수학하였음.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학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정치경제)를 취득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