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I PeaceNet

제목, 작성일, 조회수, 내용, 항목으로 구성된 표입니다.
북한의 3대 세습과 주민 민심의 변화
등록일
2011-09-27
조회수
8
 북한의 3대 권력세습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물어 성공 여부를 점치기가 쉽지 않다. 최근 북한 매체가 20대 후반의 후계자 김정은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바로 뒤를 이어 거명하는 등 현재까지 표면적으로는 권력세습 작업이 예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북한의 정권과 급속도로 유리돼 가는 주민의 민심이 후계체제의 정착과 남북관계의 앞날에 큰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후계세습과 민심의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몇 가지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후계세습과 민심의 상호작용 요인들

첫째, 북한 정권은 화폐개혁 실패를 분수령으로 크게 이반돼 온 민심을 되돌릴 수단을 여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물론 과거 같으면 북한의 체제 특성상 민심은 별다른 변수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후계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해 민심을 다독일 ‘당근’이 절대로 필요한 북한의 현실은 김정일 위원장부터 절감하고 있는 듯하다. 김 위원장이 작년 연초에 ‘이밥에 고깃국’이 아직도 달성치 못한 유훈임을 자인한 것도 이러한 민심을 민감하게 의식한 ‘제스처’로 읽힌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작년 5월 이래 1년 사이에 세 차례나 중국을 방문하는 전례 없는 행보에도 불구하고, 중국 측으로부터 굶주린 북한 주민의 환심을 살만한 ‘선물’은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둘째, 북한 정권은 중동에서 불붙은 ‘재스민 혁명’이 북한 내부에 불똥을 옮길까 봐 중동 파견 근로자들의 귀국을 막는가 하면, ‘생계형 저항’에 대비한 진압용 장비를 대량 구입하는 등 주민들에게 ‘채찍’을 들 태세를 노골화하고 있는 점이다.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지워 박남기 당 계획재정부장을 총살하더니 최근엔 쌀값을 남한에 알려준 주민을 공개처형하는 등 날로 강도를 더해 가는 강압 통치는 북한의 대내적 소프트파워 자원의 고갈을 함축한다. 이는 김일성을 빼닮았다는 김정은으로의 후계세습이 북한 주민에게 별다른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 주지 못한 채, 체제의 결속력이 날로 약화돼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셋째, 가중되는 각종 상납금 부담, 의무화된 외화벌이, 시장화와 단속의 숨바꼭질 속에 갈수록 심화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 부패의 만연 등으로 좌절한 주민들이 당과 정치지도자에 대해 극도의 불신과 불만을 품게 된 점이다. 이는 ‘생활총화’와 같은 북한 주민의 정치적 동의 창출 메커니즘의 형해화로 이어지면서 후계권력의 통치시스템 작동을 교란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넷째, 물질 추구의 사회지배 가치, 시장을 통한 정보의 빠른 유통 등으로 북한 주민의 의식이 크게 변화하고 있는 점이다. 특히 남한의 드라마와 음악, 영화 등이 북한에서 확산되고 있는 ‘한류’ 현상은 향후 북한 체제의 DNA 변화 가능성마저 시사한다. 최근 들어서는 남한의 TV영상물을 보고 삶의 질과 2세 교육을 고려해 탈북하는 경우까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북한 정권은 이러한 주민의 변화 욕구를 억누르고, 가장 폐쇄적인 북한의 국경마저 다공화(多孔化)시켜 점차 외부세계의 정보를 공기처럼 호흡하게 하는 정보화시대의 조류를 차단하는 데에만 급급하고 있다.


세습 정당성 호도 위한 극약처방

북한으로서는 김정은 우상화작업의 실효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게 하는 이러한 민심 이반의 구조적 환경 속에서 후계세습을 강행해야 하는 형편인 셈이다. 어떠한 권력도 주민의 민심을 완전히 등진 채 주민 속에 뿌리내리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북한의 후계세습은 일종의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고 하겠다.

이처럼 세습권력에 기대를 걸지 않는 싸늘한 민심이 지속되고 또 여러 민심 이반 요인들이 상승작용을 일으킬 경우, 북한 정권은 이 괴리와 딜레마를 단숨에 해결하기 위한 극약처방의 유혹을 견디기 어렵게 될 것이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은 갈수록 차오른 주민의 불만을 외부로 돌림으로써 내부적 단결을 도모하는 동시에, 이를 후계세습의 정당성으로 연결시키기 위한 무모한 처방전에 따른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또 북한군이 최근에 대규모 도서 점령 훈련을 실시한 것도 후속도발 그림을 새롭게 그리고 있는 징후일지도 모른다.


  더욱이 문제는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외치고 있는 북한에게 시간은 그들의 편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장마당에 나앉은 주민들에게까지 강성대국 건설 헌금을 강요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몰린 북한의 지도부가 ‘약속의 해’가 눈앞에 다가오면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더 큰 일’을 저지를 가능성도 있다. 한마디로 후계세습의 정당성을 주민들에게 강박적으로 심어 넣기 위한 ‘시한폭탄’과 같은 장치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고 하겠다. 이처럼 북한의 후계세습과 민심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불거져 나올 치명적인 위험 요소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엄중한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진 셈이다.


북한 주민의 마음 얻기

  우리 정부로서는 우선 기아에 허덕이는 난민이나 다름없는 북한 주민을 돕기 위해 국제적 수준의 모니터링을 조건으로 식량을 지원하는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는 차원에서도 이에 대해 엄격한 상호주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와 함께 남북간 민간 수준의 경제협력을 단계적으로 복원시키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 볼만하다. 3대 세습이라는 강압통치의 대물림 구조에도 불구하고 북한 주민사회에 일고 있는 변화의 물결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일에서부터 우리의 ‘과정으로서의 통일’ 정책은 시작돼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사과를 거부하는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해서 대처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남북관계의 극단적인 경색 속에 북한 경제가 중국에 예속화되는 것을 마냥 수수방관하거나 북한 주민의 고통을 더 이상 방치하는 것은 한반도 통일의 미래를 내다볼 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남북경협을 북중경협에 대한 견제용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남북경협은 북한에 대한 최소한의 ‘지렛대’ 확보 차원에서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또 남북관계의 경색을 뛰어넘어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본격화함으로써 그들의 마음속에 동포애와 희망이 싹틀 수 있도록 전략적 지혜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필자 소개] 현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경희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 학위 취득했음. 연구 분야는 동아시아 문화 네트워크, 남북관계, 동아시아 다자협력(제주프로세스), 한류와 문화공동체 등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