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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복합외교 구현을 위한 과제
등록일
2011-04-12
조회수
8
21세기 안보환경과 복합외교의 필요성

21세기 외교환경은 국가총체적 접근을 요한다. 21세기에는 비정부 행위자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환경, 문화, 기술, 인권 등 새로운 이슈영역이 등장하면서, 국가이익을 둘러싼 정부간 교섭에서 타국의 국민은 물론 지구적 시민사회와 국제기구, 기업 등을 대상으로 한 외교활동의 다변화와 같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또한 21세기 국제질서는 정보혁명과 세계화의 심화 결과 네트워크에 기반한 새로운 복합적 국제질서 출현이 특징이다. 그 결과 국제체제는 더 이상 단일국가들의 체제로 간주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제 전통적인 주권의 관념은 세계정치의 복잡성을 담아내기에 부적절하다. 또한 21세기 국제관계에서 국력의 새로운 척도는 바로 ‘연결성(connectedness),’ 즉, 국가를 포함한 국제관계의 다른 행위자들과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 혹은 얼마나 좋은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활용하는지가 국력의 바탕이다. 20세기의 국제질서는 각국이 군사·경제적 수단으로 서로 부딪히는 이른 바 ‘당구공 모델’로 이해되었다. 이에 비해 21세기의 네트워크 국제질서는 ‘국가 위에, 국가 안에, 그리고 국가를 관통해(above the state, below the state, and through the state)’ 존재하는 질서로서, 가장 많은 연결을 갖는 국가가 중심적 행위자가 되고 글로벌 어젠다를 설정하는 힘을 갖게 된다.

이러한 변화의 결과 외교가 정부를 대표하는 외교관이 전권을 가지고 국익을 보호하기 위해 주요 국제 문제의 정보수집, 협상, 결정, 실행을 담당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따라서 새로운 국제정치 환경 속에서 외교관의 역할은 국가를 대표하여 교섭을 행하는 과거의 역할보다 더 많은 역할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외교도 변화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김성환 외교통상부장관은 취임사에서 한국외교가 나아갈 방향으로 ‘총력·복합외교’를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총력외교, 지식외교, 복합외교, 디지털 네트워크외교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외교통상부 업무보고에서 “외교란 업무가 과거 시대와 완전히 달라졌다”며 “전통적인 직업 외교관만 가지고는 될 수 없으며, 많은 경험을 가진 민간인도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정보수집과 파트너 관리에 집중해온 외교관들의 기존 업무방식으로는 ‘글로벌 대한민국’ 외교를 감당할 수 없는 만큼 한국외교의 역량과 지평을 넓혀야 한다는 주문으로 풀이된다.

복합외교는 특정한 외교정책사안에 대해 군사외교, 통상외교, 개발협력외교, 공공외교, 민간외교 등 수단을 종합적으로 활용하여 정책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간과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하드파워, 소프트파워(지식, 이념, 문화 등)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파워 자원을 함께 동원할 수 있어야 한다. 복합외교가 필요한 이유는 21세기 국제정치에서 행위자의 복합과 더불어 이들 행위자들의 활동무대가 복합되는 현상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국무부 QDDR의 교훈

외교무대의 복합화에 대응해 주요국들은 외교의 개념을 발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서 미 국무부가 작년말에 발간한 첫『4개년 외교·개발검토(QDDR: Quadrennial Diplomacy and Development Review)』보고서는 한국의 복합외교를 구상하는데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국방부의 4개년 국방정책검토(QDR) 보고서가 미국의 국방전략, 군구조, 군현대화 계획, 국방예산 등에 대한 종합 평가보고서라면, 이번에 처음 선보인 QDDR 보고서는 미국의 외교에 대해 근본적 재검토를 시도한 것이다. QDDR은 오바마 행정부 출범과 더불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적극 추진해온 스마트외교의 청사진으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역설한 변환외교(Transformational Diplomacy)에 기원을 두고 있다. QDDR 보고서의 핵심은 미국 외교관들이 공공 영역과 민간 영역 사이의 벽을 허물고 외교에서 민간역량(civilian power) 활용을 극대화해야만 전 세계의 각종 현안에 대해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판단에 있다. QDDR은 미국의 국익과 가치를 구현하고 21세기 인류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외교관은 물론 민간역량을 앞세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인식은 최근 갑자기 나온 발상은 아니고 이미 조지 W. 부시 2기 행정부 시절 ‘외교의 군사화’를 지양하고자 하는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의 시각에서 단초가 보이기 시작했다. 게이츠 장관은 군사력 사용에 있어서 하드파워에서 소프트파워로 중점 이동과 아울러 적에 대한 군사공격보다 경제지원 등 소프트파워로 민심을 얻는데 중점을 두고, 미국 혼자 힘으로는 승리할 수 없기 때문에 동맹 및 우방과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또한 그는 21세기의 현실이 미국 정부 내 국무, 국방, 기타 부서의 분업체계와 딱 맞아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글로벌 차원에서 극단적 이데올로기와 싸우기 위해서는 국력의 모든 요소와 모든 기관들을 효과적으로 결합함은 물론 동맹국과 우방들의 역량까지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이러한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의 식견을 높이 평가한다. 클린턴 국무장관은 2009년 2월 아시아 순방에 앞서 가진 아시아소사이어티 연설에서 미국 외교안보의 중점을 ‘3D,’ 즉 국방(Defense), 외교(Diplomacy), 그리고 개발(Development)이라고 규정했다. 군사력과 함께 외교를 중시하고, 세계의 발전 어젠다에 대한 책임과 분담을 공유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 3D 중 2D가 국무부의 소관이다. 클린턴 국무장관은 외교와 개발을 국방과 같은 수준으로 격상시키는 것을 스마트파워 외교라고 부른다. 그래서 힐러리는 국무부와 더불어 미국국제개발처(USAID)의 역할을 중시한다. 스마트파워 외교가 가능하려면 미국의 민간역량이 크게 강화·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스마트파워 외교를 향한 첫 걸음은 부서별 구획을 벗어나 정부 모든 기관의 유능한 인재와 전문가들을 폭넓게 활용하는 것이다.

한국형 복합외교를 위한 시사점

비록 표현은 다르지만 우리 정부가 추진할 총력·복합외교의 내용은 QDDR에서 말하는 문민외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한국 정부도 이미 복합외교의 개념을 외교현장에서는 상당 부분 실행하고 있으나, 이를 이론과 개념, 전략과 수단을 복합적으로 엮어서 보는 체계화의 과제를 앞두고 있다.

첫째, 한국의 총력·복합외교 구상에서는 우선 복합외교의 비전, 즉 무엇을 위한, 어떤 외교를 할 것인가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총력, 복합, 디지털 네트워크, 소프트파워 외교 등의 개념을 원용할 경우 기존의 외교와 무엇이 다르고, 새롭게 봐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에는 새로운 외교의 임무를 규정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기존의 전통적 외교(양자, 다자), 통상(경제, 자원·에너지), 개발(지원, 국제기여), 매력(한류, 코리아브랜드) 등 복합적 분야들이 추가될 수 있다.

둘째, 새로운 외교 방식은 ‘국가총체적(whole-of-government)’ 인재 활용, 외교부와 정부 타 부서를 종·횡으로 엮는 TF 활성화, 디지털 네트워크의 활용(인터넷을 활용한 디지털 공공외교,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 활용), 민·관 협업체제, 지역별 맞춤형 외교 등을 요한다.

셋째, 외교 부서의 대외활동(outreach) 강화가 요망된다. 외교는 더 이상 외교 부서만의 임무는 아니다. 외교와 안보, 통상과 문화, 개발지원과 사이버공간에 이르기까지 외교의 영역은 확대되는 추세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려면 외교 부서와 정부 타 부서는 물론, 정부와 학계·전문가그룹과의 유기적 협력체제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장기적 과제로서 외교부 혁신 문제가 제기된다. 조직 재검토, 인재 선발 방식 다변화, 외교관의 임무 재정의, 외교부내 혁신담당부서 신설, 외교부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교육, 그리고 추진전략 및 액션플랜 기획능력의 강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세종연구소 안보연구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한국국제관계연구소와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원을 역임했다. 동아시아연구원(EAI) 국가안보패널(NSP) 연구위원, 매일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 통일부, 육군, 국방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제정치와 안보, 군사전략, 한미관계, 북한 문제를 주로 연구하며, 최근 논저로는 “The 2010 NPR and North Korean Nuclear Issue”(2010),『세계화시대 한국의 국가안보: 주요 내용과 특징』(공저, 2010), “이명박 정부 중반기 한미 안보협력 과제와 전망”(2010), “한국의 핵 비확산정책: 한미 원자력협력을 중심으로”(201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