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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태평양 지역 다자간 공조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
등록일
2012-04-24
조회수
10
  러시아는 태평양 해안을 16,700마일이나 접하고 있으면서도 아시아-태평양 지역주의에 뒤늦게 동참했다. 특히, 소련(Soviet Union)은 냉전 때문에 지역적 공조에서 소외당했고, 양자 관계만 간신히 맺는 정도였다. 그러던 중 1990년대 초, 적대적 대립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러시아는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의 다자간 공조 체제에 필사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및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가입하고 나서도 혼란한 러시아의 정국으로 인해 아시아-태평양 공조 체제의 주요 일원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푸틴(Putin) 총리와 메드베데프(Medvedev)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러시아의 국내 상황이 호전되었고 2000년대에는 선제적으로 외교 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

  러시아가 해당 지역의 주요 안보 포럼에 참여한다는 것은 아시아-태평양 공조 체제에 회귀하였다는 방증이다. 2003년 러시아는 6자 회담의 공동 후원국이 되었다. 그리고 2010년 마침내 미국과 함께 동아시아 정상회담에 초대받았으며, 아세안 국방장관회담(ASEAN Defense Ministers Meeting)에 동참했다(ADMM+8). 이로써 러시아는 현재 모든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다자간 안보 및 정치 주체, 즉 SPT와 ARF, ADMM+8, EAS의 일원이 되었다.

  러시아는 아시아-태평양 안보 포럼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확실히 자국의 의견을 천명하고 다른 나라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정치적 질서에 대해 러시아가 제시한 이상적인 모델은 이른바 다극적 협력 체제(multi-polar concert system)로, 이 협력을 이끄는 리더는 러시아이며 중국과 미국, 일본, 인도, 그리고 아마도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함께 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정부는 6자 회담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측면에서 가교 역할을 해야 함은 물론 “동북아시아 지역의 안보를 정치적, 법적 측면에서 보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시에 러시아는 동아시아 정상회의를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정치적인 공조를 옹호하고자 한다.

  러시아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정치적으로는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반면에 경제적인 면에서는 그 입지가 그다지 탄탄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러시아의 교역량은 이 지역의 총 교역량의 대략 1%에 지나지 않으며, 러시아가 유일하게 참여하고 있는 지역 경제 협의체는 APEC 뿐이다. 더욱이 러시아는 아시아-태평양 국가의 다자간 공조국이면서도 이 지역에서 자유무역협정(FTA)을 한 건도 체결하지 않았다. 이에 러시아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경제적으로 영향력이 점점 줄어들게 되는 것이 아닌지 위기를 느끼고 개혁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2010년 러시아는 뉴질랜드와 FTA 협상에 돌입하였으며 베트남 및 싱가포르와도 FTA를 추진하기 위해 관련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러시아가 추진하고 있는 지역 통합은 크게 세 갈래 공조 전략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 한 갈래가 바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그리고 다른 두 갈래가 구소련연방 지역과 EU 지역이다. 러시아가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목표는 구소련연방 지역을 경제적으로 재통합하는 것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2011년 10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제안한 바와 같이 유라시아 연합(Eurasian Union)의 형태를 완성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EU와 경제적으로 통합하여 러시아의 해외 교역량을 상당한 수준으로 확보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푸틴 총리는 유라시아 연합이 “대유럽(Greater Europe)”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러시아는 유라시아 연합이 유럽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는 큰 꿈을 품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경제적으로 비교 우위에 있는 틈새시장 지역이라는 것을 규명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어야만 경쟁력 있는 아시아-태평양 시장을 공략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가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경제적으로 통합을 이루고자 하면서, 캐나다와 호주의 경제적 통합 사례를 이상적인 모델로 보고 있다. 캐나다와 호주는 천연 자원을 대규모로 수출하면서도 이와 함께 최첨단 기술 및 과학, 고등 교육 체제 등의 혁신적인 부문을 교역 대상으로 하고 있다. 물론 러시아가 캐나다와 호주만큼 이러한 부문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아직 알 수 없다.

  이는 실제로 기존의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패권국들이 얼마나 러시아를 지원해 주느냐에 달려있다. 그런 면에서 중국은 이 지역에서 러시아의 주요 “전략적 파트너”라고 할 수 있다. 2010년, 중국은 독일을 제치고 러시아의 최대 교역 대상국이 되었을 정도다. 하지만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 공조 체제에 러시아가 참여 자격을 갖출 수 있도록 과연 중국이 지원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중국은 러시아가 원자재 공급 국가로서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다른 아시아-태평양 시장과 러시아를 연계해 주기보다는 자국의 자원 조달 기지로 확보하고자 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주요 경제 대국인 일본도 러시아가 중국 의존도를 줄일 수 있도록 지원하면서도 정작 러시아가 이 지역에서 입지를 넓힐 수 있도록 지원하지는 않는 듯하다. 물론 이는 러시아와 일본이 쿠릴열도 주변 국경 지역에서 분쟁을 일으킨 것이 주요 원인이긴 하다.

  또한 이러한 정세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또 다른 패권국인 미국과도 관련이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지정학적으로 러시아와 미국이 모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 지역은 양국의 이해관계에 대한 상충이 가장 적은 지역이면서 양국의 이해가 양립할 수 있는 지역이다. 이에 반해, 동부 유럽과 코카서스(Caucasus) 지역과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러시아와 미국은 파트너라기보다는 경쟁관계에 놓여 있다. 이처럼 러시아와 미국은 태평양 지역에서는 화해와 협력이 가능하다. 최근에 러시아가 동북아시아 지역에 미치는 영향력이 다소 커지고는 있지만 미국이 현재 러시아의 영향력이 상당하다고 인식하거나 향후 그럴 가능성이 있다거나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인식할 만큼은 아니다. 러시아는 이 지역에서 지정학적으로 태평양 영역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고자 하는 것이지 경제적 지배권을 확대하려는 것이 아니다. 미국도 이를 잘 알고 있다. 또한 중국이 성장함에 따라 이 지역의 지정학적 불확실성을 러시아와 미국이 모두 막으려한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동북아시아와 동아시아 지역이 아시아 국가들끼리만 공조하고자 한다면, 문화적·역사적으로 아시아의 패권국이 될 수 없는 러시아와 미국으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게 된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러시아와 미국이 환태평양 차원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공조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런 면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공동으로 이해관계가 있는 러시아와 미국으로서는 환태평양 권역을 이끌고 있는 APEC이 매우 적절한 명분이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미국이 이끌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에 참여하는 것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공조 체제에 가입하고 미국과의 관계도 돈독히 하는 데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現 Far Eastern Federal University 교수. 동 대학 내 Research at the School of Regional and International Studies 부소장. 주요 연구 분야는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동북아시아 지역의 안보 및 국제 정치 경제. 러시아어와 영어로 40여 편 이상의 학술 저술을 출간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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