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중국해 분쟁과 ASE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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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5년간의 정기적 회합에서 ASEAN의 외교장관들은 그들 간의 협의내용을 요약하는 성명서를 채택하는 데에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었다.
지난 달 프놈펜에서 끝난 ASEAN 외교장관 회의에서는 침묵만이 요란했다. 그 주된 이유는 외교장관들이 남중국해에 위치한 스카버러 암초(Scarborough Shoal)를 그들의 선언문에서 언급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합의도출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곳은 지난 4월에 그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국과 필리핀 사이에 팽팽한 대치가 있었던 곳이다. 필리핀은 선언문에서 이를 언급하기를 원했고, 캄보디아는 이를 거부하였다. 둘 다 양보하지 않았고, “ASEAN 방식”의 합의는 실패하였다.
외교장관들 간의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논의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고, 그에 따른 반향도 무엇인지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의 결과가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장기적으로는 취약할 수 있지만 현 시점에서는 승리라고 추정하는 것이 속단이 아닐 것이다.
캄보디아와 중국
회담결렬의 근본원인은, 남중국해 거의 전역에 대해 배타적 주권적 권리를 갖고자 하는 중국과 중국의 노력에 깊이 관련되어 있다. 중국의 권리주장은 동남아시아의 해양 심장부에 깊게 들어간 기묘한 남해 구단선(九段線: nine-dash line)에 나타나 있다. 이 선은 이 지역에 대한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 4개국의 중첩된 주권을 부인하고 있다. 이들 4개국은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미얀마, 싱가포르, 태국과 함께 ASEAN을 구성하고 있다.
캄보디아는 2012년 ASEAN 의장국으로서 프놈펜에서 외교장관회의를 주최했으며, 최종 성명이 나왔다면 이를 낭독했을 것이다. 캄보디아 훈센 총리는 중국의 남중국해 주장을 받아들인 적이 결코 없었지만, 다른 어느 ASEAN 지도자들보다도 중국의 입장과 요구에 민감하다. 스카버러 암초를 언급한 선언문의 낭독을 거부함으로써, 훈센 총리는 중국의 입장과 합치되는 태도를 취했다. 베이징의 관점에서 보면 ASEAN은 분쟁의 해결을 시도할 권리가 없으며, 이 분쟁은 중국과 당사국 4개국 사이에서 양자적으로만 해결될 수 있을 뿐이다.
중국은 캄보디아의 최대 투자국이다. 베이징은 ASEAN 장관회담이 열린 프놈펜의 평화궁전의 비용을 댄 것을 비롯해서 세간의 관심을 끄는 원조 프로젝트에 돈을 아끼지 않고 있다. 훈센 총리가 ASEAN 의장국의 지위를 이용하여 남중국해 문제를 회담의제에서 제외시키려고 한 것에 대하여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어떤 관찰자라도 중국이 실질적으로 캄보디아 정부를 고용하여 중국이 시키는 대로 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베이징과 프놈펜에게 공평하자면, 내분에 대한 책임이 필리핀에게 어느 정도 있는지를 알 수 없고, 앞으로도 알기 힘들지는 모른다. 필리핀은 성명에서 스카버러 암초에 대한 언급을 요구하였다. 왜 스카버러 암초가 간접적으로라도 언급되지 못했을까? 훈센 총리가 단지 화가 나서 타협대신에 성명을 무산시켰을까? 보다 중요한 불확실성은, 프놈펜에서의 균열이 남중국해에서 구속력 있는 행동수칙을 후원할 ASEAN의 능력을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시켰을까라는 점이다.
남중국해 행동수칙
2002년에 중국과 ASEAN 국가들은 구속력이 없는 “남중국해 당사국 행동선언”에 서명하였다. 일부 ASEAN 지도자들은 선언문의 10주년을 기념하여, 그들 사이에 구속력 있는 행동수칙을 만들어 프놈펜 회의에서 초안을 발표하기를 원했다. 좋은 소식은 그러한 행동수칙의 초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잘 다듬어진 문서는 분명히 아니다. 하지만 ASEAN의 집단적 판단으로 최종 문서가 지적해야 할 내용들을 분쟁해결 조항을 포함하여 나열하고 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ASEAN이 통상적인 생각들을 뛰어넘으려는 의지나 능력이 있을까 의심했던 분석가들을 기쁘게 할 것이다.
강제집행을 가능하게 하는 행동수칙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니라 국가들이 2002년 문서의 희망적 조항들을 반복적으로 위반하면서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ASEAN이 프놈펜에서 중국에게 검토할 행동수칙의 초안을 주었다는 점에 조심스럽게 고무될 수도 있다.
만약 외교장관들의 성과를 언급하는 성명이 있었다면, 행동수칙 초안을 준비하는 데에 성공한 점을 언급했을 것이다. 이렇게 인정되지 않는다면, 초안은 잊혀지게 될 것이다. 외교장관 성명의 취소는 ASEAN이 공개적으로 그리고 명명백백하게 그 초안을 ASEAN의 공식적인 협상의 기반으로 확인하는 것을 막았다.
중국이 정말로 수칙에 의하여 구속되기를 피하려 한다면, 프놈펜에서 발생한 일은 중국의 특징을 가진 divide and rule 전략, 즉 ASEAN을 ‘분할’하여 해양을 ‘통치’하는 전략을 떠올린다. 그런데 베이징에게 공평하자면, 사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ASEAN 내부의 분열을 중국이 처음으로 만들어낸 것은 아니라는 점을 언급해야만 한다. 분쟁이 일어나는 4개국에게 자신들의 주장을 타협하도록 설득하거나 또는 그 중 일부의 도발적 행동들을 중단시키지 못한 ASEAN의 무능력에는 중국의 책임이 거의 없다. 4개국이 애초에 자신들의 갈등을 해결하였다면, ASEAN은 중국과의 협상에서 단합된 입장을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행동수칙 초안에 대한 ASEAN과 중국의 협의가 9월에 예정되어 있다. 초안이 ASEAN의 작품이므로, 이 회담은 성격상 다국적일 것이다. 중국이 참여한다면, 중국은 종래의 양자주의적 선호를 내버려야 할 것이다. ASEAN의 계획은 올 11월에 있을 ASEAN이 관련된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최종 문서에 서명할 때 ASEAN 국가들도 동참하는 것이다.
훈센 총리가 변덕스러운지라 상황은 다시 악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은 ASEAN이 공개적으로 당혹스러워 하는 일에 특히 동아시아 정상회담에 모일 외국 지도자들 앞에서 다시 중국이 연루되는 것을 주저할 것이다. 그보다는, 지금부터 동아시아 정상회담까지의 기간에 중국은 초안의 완성을 연기시키거나, 이에 실패한다면 그 내용이 진부하게 되도록 노력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일이 생긴다면 ASEAN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중국과 공동으로 문서를 작성하는 데 실패한 것을 인정하거나 아니면 이빨 빠진 문서를 발표해야 할 수도 있다. 향후 행동을 구상함에 있어서 중국은 2013년 1월 1일에는 분쟁 당사국이 아닌 캄보디아가 분쟁 당사국인 브루나이에게 ASEAN 의장국의 역할을 이양한다는 것을 알고 이를 고려할 것이다.
ASEAN의 초안은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지는 않을 것이다. 초안이 비밀로 남겨진다면, 중국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만들어진 타협을 포함한 모든 변경의 원인이 중국이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관련된 정부들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초안이 현재의 형태대로 회람되고 중국이 변경을 요청한다면, 달라진 점들은 결국 누구나 다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ASEAN의 외교관들은 중국에게 굴복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질 위험에 빠질 것이다.
중국이 행동수칙 제정을 방해하여 답보상태에 빠지게 한다면, ASEAN이 자체적으로 수칙을 만들고 그들 간에 체결할 수 있을까? 지금처럼 내부적인 비난의 분위기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지금의 상처는 치유되고, 동시에 ASEAN의 인내심이 줄어들면, 그런 일이 이론적으로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중국이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 중국은 ASEAN의 주도하에 남중국해 행동수칙을 마련하려는 다국적 노력을 수용하기로 결심할 수도 있다. 중국이 일종의 분쟁 해결 메카니즘에 동의하는 것도 가능하다. 2013년에, 예측대로 시진핑 대통령, 리커창 총리 콤비가 확실하게 베이징에서 자리를 잡는다면, 새 중국정부는 “눈살 찌푸리는 외교”를 미소 외교로 바꿀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반전에 큰 기대를 걸지는 말아야 한다.
대국의 저주
중국이 “나는 크고 너희들은 크지 않다”라는 식으로 중국의 지리적, 경제적, 지정학적 영향력을 노골적으로 행사한다면, 이는 동남아시아인들의 멸시와 함께 집단적 반발을 촉발할 것이다. 초고속 연계, 흐름, 혁신을 특징으로 하는 네트워크 세계에서 스마트파워란, 우월한 물리력을 사용하면 언제 역효과가 나는지를 아는 것이다. 크기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어떻게 사용되는가가 더 중요하다. 중국 외교를 보면, 이 교훈은 아직도 충분히 학습되지 않았다.
예컨대 중국은 올해 초에 중국인 5명, ASEAN인사 5명 도합 10명으로 구성된 비공식적인 EPEG(저명인사 및 전문가 그룹)를 구성하여 초안 수칙을 토론하자고 제안하였다. 이는 “우리는 대국이라 좌석의 반을 차지할 권리가 있다. 너희는 소국이므로 나머지 반을 나누어 가져야한다” 라는 식의 크기만을 근거로 한 제국주의적 태도를 노골적으로 보여주었다.
중국이 행동수칙을 연기하기 위해 EPEG라는 제안을 띄었을 수도 있다. EPEG가 작동된다면, 중국은 자문단이 보고서를 완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정을 늦출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대표가 절반이므로, 보고서는 수년간 지체될 수도 있다. 나중에 중국이 5석을 유지하고 ASEAN이 10석을 차지하는데 중국이 동의했다고 알려져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이 자문단을 이용해 행동수칙협상을 연기하는 것을 제한하기 위해서 협상이 시작된 연후에 EPEG가 소집될 것을 주장해왔다. 프놈펜에서 성명이 발표되었다면, EPEG를 언급하였을 수도 있다. 성명이 없으므로, 중국 제안의 운명에 관하여는 단지 추측만이 가능하다.
EPEG의 절반을 통제하려는 중국의 시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의 입장이 강화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ASEAN과 중국의 관계를 검토하고, 1국 1석의 원칙에 대한 개선점들을 제안하도록 2005년에 “ASEAN-중국 EPG(아세안중국 저명인사그룹)”이 구성되었다. 1국 1석의 원칙 하에서는 10명의 동남아국가 대표와 1명의 중국대표와 협상 테이블에 같이 앉는다. 만약 중국이 15석 중의 1/3을 차지하게 된다면, 특히 ASEAN 국가들 사이의 분열로 인해 ASEAN의 다수적 위치가 약화된다면, EPEG의 심의는 중국의 통제를 더 잘 따르게 될 것이다.
오일과 가스는 풍부하지만 국정운영이 부실한 나라들의 정치경제가 “자원의 저주”에 시달린다는 생각이 국가 행위에 관한 문헌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이 그 막대한 영향력을 남용하게 만드는 “대국(amplitude)의 저주”라는 것이 존재할까?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눈에 비춰진 중국의 “소프트파워 결핍”은 얼마만큼이나 중국의 권위주의적 정권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일까? 민주화가 발생한다면, 중국은 좀 더 협력적으로 될 것인가? 아니면, 민주화는 그 동안 민주주의적 압력으로부터 절연되어 있었던 중국의 지도자들이 앞으로 외교정책에 대한 민족주의의 영향을 제한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서 저주를 증폭시킬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무엇이든 두 가지는 분명하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대해 주권이 있다고 느끼며, 이러한 주권의식은 중국이 소프트파워를 투사하는 능력을 제한하고 있다. 중국의 권리에 대해 “분쟁의 소지가 없다”라고 하는 반복된 주장을 생각해보자. 이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말인가를 인식하는 사람이 외무성에 한 명도 없을까? 다른 나라들이 찬성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당장 ASEAN 4개국이 이를 반박하고 있다. 필리핀은 남중국해를 분쟁지역과 분쟁대상이 아닌 지역으로 분리하자는 제안을 해왔다. 아마도 중국은, 남중국해 대부분 지역에 대한 중국의 권리주장에 대해 분쟁의 소지가 없다고 말하면서 중국이 단순히 자신의 입장을 방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말”이 중요한 소프트파워의 영역에서 분쟁의 여지가 없다는 중국의 주장은 중국의 입장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프놈펜에서의 교착상태가 남중국해 행동수칙을 지체시킬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놈펜에서의 균열은 적어도 일부 ASEAN 국가들이 그들의 거대 이웃 중국에게 굴복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가속화시키고, 동시에 그들 자신의 국가적이고 지역적인 독립을 위해 미국을 포함한 외부 국가들과 신중하게 협력하려는 동기를 강화시킬 것이다. 한편 ASEAN의 당사국들은 그들 자신도 문제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며, 또한 해결의 한 부분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現 스탠포드대에서 동남아포럼을 담당. 프린스턴 대학에서 국제관계학 학사학위를 받고, 예일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 동남아, 이슬람, 민주주의, 미국 외교정책 등에 관련한 다수의 저작이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