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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등록일
2013-06-07
조회수
8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박근혜 정부 한반도 정책의 뼈대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일련의 도발행위, 개성공단 근로자 철수 등으로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때도 우리 정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계속 추진될 것을 거듭 밝혔다. 올해 현충일 추념사에서도 북한에게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받아들이는 것이 북한이 선택해야할 변화의 길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4개월이 다 되어 가는 현 시점에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논란은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배경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라는 한반도 정책은 과거 정부들의 대북정책들이 북한의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 동안 다양한, 때로는 상반된 정책들이 추진되었지만 북한의 변화나 남북관계의 진정한 진전을 만들지는 못했다. 남북관계에서 북한의 약속 위반과 도발, 그에 대한 제재 그리고 타협 그리고 또 다른 약속 위반과 도발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반드시 끊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미 존재했지만 북한의 약속 위반을 비판하는 것이 근본적 해결이 될 수 는 없다. 이러한 악순환의 반복을 막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며 신뢰의 구축이 핵심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기본 인식이다. 또 하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보다 진전된 생각을 담고 있다. 즉 남북 간의 평화로운 관계는 단순히 힘의 우세로 얻어질 수는 없으며 힘의 우위를 유지하는 것은 평화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따라서 힘에 기초한 안보라는 현실주의적 접근과 함께 신뢰를 통해 보다 근본적인 남북관계의 변화를 이끌어 지속가능한 평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단순히 지키는 평화가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기본 인식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성격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 해보자.

  우선 신뢰프로세스는 유화정책이 아니다. 확고한 안보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전제 조건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평화 지키기” 부분과 “평화 만들기” 부분으로 구성되고 “평화 지키기” 부분은 평화만들기의 토대가 된다. 신뢰프로세스가 무조건적으로 상대방을 믿는 것이 아니며 안보에 대해서는 확고한 태세를 갖추고 평화를 깨는 행위에 대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약속을 지킬 경우에는 그에 상응해 관계를 진전시킴으로써 북한의 행동패턴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정책이다.

  둘째, 신뢰프로세스는 특정 상황이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 아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남북관계의 큰 방향과 원칙을 제시하는 정책 가이드라인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따라서 북한 핵 문제와 같은 구체적 문제라든지 통일정책, 급변사태관련 한 정책 등과는 차원이 다른 남북관계의 근본적 변화를 위한 정책 가이드라인이다.

  셋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남북관계가 좋을 때에만 가능한 정책이 아니다. 오히려 남북 관계가 나쁜 상황에서 더욱 필요한 정책이다. 현재의 남북 간의 긴장으로 인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추진하기 어렵다던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추진해보기도 전에 좌초했다 등의 평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 억지력을 강화하고 도발에 대해서는 강력한 응징을 분명히 하면서도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노력들을 계속 하는 현재의 상황은 바로 신뢰프로세스가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다만 현재는 안보상황이 엄중하기 때문에 “평화 지키기” 부분에 정책의 방점이 갈 수밖에 없고 “평화 만들기” 부분이 본격적으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조건을 걸고 하는 정책이 아니다. 이 부분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차별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비핵화와 같은 조건을 걸고 그것에 진전이 없으면 모든 교류를 중단하는 정책이 아니라 일단 실천 가능한 신뢰구축 노력을 선행하는 적극적인 정책이다. 또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유연한 전략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상황변화에 따라 억지와 대화, 안보와 교류협력간의 상대적 중요성을 조정해 나가는 전략이다. 따라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압박 일변도나 교류 일변도의 접근이 아니라 항상 두 가지를 병행 추진하는 전략이다.

  마지막으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한반도를 넘어서서 동북아 차원의 노력과 연결되어 있다. 신뢰프로세스가 가동될 수 있는 국제적 환경을 조성한다는 측면에서 동북아 차원의 신뢰구축 노력과 병행 되어야 한다. 또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동북아의 국제관계가 협력적일 때 지지를 확보할 수 있고 또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 동시에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함으로써 동북아의 평화 . 안정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은 상호추동하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가장 큰 비판은 과연 북한과 같은 상대와 어떻게 신뢰를 만들어 나갈수 있냐는 실현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현실에서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를 논의하기 위해 방법론과 수단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첫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추진을 위한 과정적 접근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신뢰구축 과정 속에서 남북 간 신뢰가 구축되고 그를 통해 더 높은 단계의 협력과 관계의 진전이 이루어지는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해야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구축된 신뢰 수준에 맞는 남북 간의 교류와 협력을 추진하고 이러한 교류·협력이 또 신뢰를 증진시키는 상호강화 과정이다. 여기서 명심할 점은 신뢰구축 수준에 맞지 않는 과도한 또는 높은 수준의 교류 협력은 결코 지속적일수 없으며 쉽게 역전될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구체적으로는 신뢰프로세스는 단계적 접근을 상정하고 있다. 신뢰가 완전히 구축되지 않았더라도 구축된 신뢰 수준에 맞는 지원, 교류. 협력 등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신뢰구축과 교류협력의 단계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초기 단계에서는 비핵화와 같은 조건을 걸지 않고 남북한의 기존 합의를 존중하고 실천 가능한 합의부터 이행 그리고 조건 없는 인도적 지원을 통해 상호간의 기초적 신뢰를 쌓는 단계이다. (약속에 기초한 신뢰 쌓기 단계). 두 번째 단계에서는 신뢰의 진전에 따라 서로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는 남북간의 호혜적 경제. 사회문화 교류를 추진하여 더 높은 단계의 신뢰를 구축하게 된다.(상호이익에 기초한 신뢰쌓기 단계). 남북한의 본격적인 교류·협력은 비핵화에 명확한 진전이 있는 경우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을 위한 ‘비전 코리아 프로젝트’ 추진(공동체 비전 공유를 통한 신뢰쌓기 단계)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방법론과 함께 구체적인 수단들에 대한 언급이 필요하다.

  신뢰구축의 첫 시작은 기존의 약속을 지키는 것을 통해 기초적인 신뢰를 쌓는 것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와 남한과 맺은 약속들 그리고 국제규범을 지키는 것이 신뢰를 쌓는 첫 걸음이다. 우리는 약속을 지키는 것과 같은 북한의 선한 행동에 대해서는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약속 이행의 동기를 제공해야 한다. 인도적 지원 역시 기초적 신뢰구축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둘째는 다각적 대화의 추진이다. 남북 간의 양자대화와 함께 다양한 양자회담, 3자 회담(한미중, 남북미, 남북중 등), 6자회담 등을 활용해 신뢰구축을 위한 노력을 지원해야 한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과 같은 다자대화체 역시 한반도에서 신뢰구축을 지원하는 메커니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의미있는 진전이 있지 않으면 신뢰프로세스는 평화지키기 단계와 기초적인 신뢰쌓기 단계(인도적 지원 유지, 대화의 문을 열어 놓는 것) 이상의 추진이 어렵다. 현재 남북관계에서 필요한 것은 억지력 강화를 포함한 안보를 확고히 하는 일과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의미 있는 행동을 취하도록 국제사회와 함께 노력을 계속하는 일이다. 그와 동시에 북한이 의미 있는 대화의 장에 나올수 있도록 하는 보다 창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現 국제교류재단 이사장.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 주요경력으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연구위원, 중앙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한국세계지역학회 부회장 등이 있으며, '국제정세의 이해'를 비롯하여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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