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코틀랜드 주민투표가 남긴 의미와 과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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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8일 스코틀랜드 독립 주민투표는 찬성 55%, 반대 45%로 부결되고 말았다. 정치적 운명이 걸렸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무사히 집무실로 돌아갈 수 있었다. 브뤼셀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투표 결과가 나온 직후 헤르만 반 롬푸이 유럽연합 상임의장은, “스코틀랜드인들의 선택을 환영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영국은 유럽연합 회원국의 하나로 중요한 나라”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요란했던 대결은 이제 겨우 스코틀랜드에서만 잠시 멈추었을 뿐이다. 유럽의 다른 나라, 다른 민족 그리고 전 세계 각국에서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도전에 나설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는 이제 다양한 문제를 고민해 볼 시점에 놓이게 되었다.
주민투표와 크림 반도의 분리·독립
유럽만 놓고 볼 때 현재 분리·독립 운동이 크고 작게 거론되는 곳은 대략 105개 지역에 달한다(러시아 제외). 우리에게도 낯익은 카탈루냐(스페인), 바스크(스페인, 프랑스), 플랑드르(벨기에), 코르시카(프랑스), 페로(덴마크) 등은 물론이고, 이스트리아(크로아티아), 모라비아(체크), 알자스, 사보이(이상 프랑스), 아프카지아(그루지야), 남티롤(이탈리아), 트란스니스트리아(몰도바) 등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주민들의 분리·독립 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곳들이다. 이들은, 전후 국경선 획정에 의해 원치 않게 소수 민족이 된 경우(구소련국가들), 역사적으로 정복에 의해 합병된 경우(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왕실령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지위를 얻고자 하는 경우(영국의 맨섬, 채널 제도) 등, 저마다 조금씩 다른 이유에서 분리·독립 운동의 근원을 가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스코틀랜드의 주민투표는 분리·독립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의 주민들에게 주민자치에 의해 분리·독립이 ‘선택’ 가능함을 보여준 사례가 되었다.
한편, 이번 주민투표는 지난 3월, 주민투표에 의한 크림반도의 분리·독립과 우크라이나 친러 세력들의 정당성 문제와도 연관된다. 유럽연합과 미국은 크림반도의 분리·독립과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일부 친러 세력의 분리·탈퇴 움직임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여전히 러시아의 개입 여부가 논란 중이지만, 적어도 형식 면에서 분리·독립이 주민투표에 의한 것일 경우 그 정당성에 대한 평가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설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올 봄, 주민투표에 의한 크림 반도의 분리·독립이 투표에 의한 코소보의 분리·독립과 다른 차원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분리·독립 운동을 펼치는 쪽의 입장은 여전히 확고하다. 우크라이나의 친러 분리·독립 운동 지도자인 미로슬라브 루덴코는 “영국 정부의 선거 결과 위조가 의심된다.”(워싱턴 포스트 2014년 9월 19일 자)며 이번 스코틀랜드의 ‘반대’ 결과를 불신하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살몬 총리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움직임을 지켜보며 2016년 이후 재투표를 시도하겠다.”는 입장을 내보인 바 있다. 이는 민족주의에 기반한 분리·독립 운동이 타협이나 양보가 아닌 절대성에 기반하고 있으며, 주민투표는 그러한 절대성을 정당성으로 보완해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과제로 남겨주었다.
‘민주주의의 결핍’: 대의제 대 직접민주주의
좀 더 거시적으로 보자면, 이번 투표는 ‘대의제 대 직접민주주의의 대결’이라는 측면에서 또 다른 숙제를 남겨 주었다. 지난 10여 년간 유럽연합의 확대에 따른 부작용 중 하나는 ‘민주주의 위기’였다. 유럽연합의 주요 기관 중 ‘유럽인들’의 손에 의해 선출된 정치인이 ‘유럽문제’를 다루는 기관은 유럽의회뿐이다. 통합 과정에서 드러난 유럽인들의 갈등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결단은 ‘유럽인’이 아닌 ‘각 회원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몫이었다. 따라서 유럽인들은 유럽연합의 민주적 거버넌스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대의제에 대한 새로운 발상(representative turn)’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의미에서 직접민주제에 기반한 새로운 접근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 리스본 조약은, 비록 주민투표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는 않지만, 회원국 시민 100만 명이 요청할 경우 집행위원회에 주요 사안에 대한 이니셔티브를 제안(주민발안)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TEU 11조 4항).
비단 민주주의 결핍 문제는 유럽연합 같은 특수한 조직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 대표자의 자질 부족, 부정부패, 비능률 등은 대의제가 가진 일반적 한계이자 민주주의 결핍을 가져오는 주요한 이유이다. 지난 5월 유럽의회 선거를 통해 드러난 회의론자들의 주장 중 하나는 바로 직접민주제의 도입이었다. 스코틀랜드를 비롯하여 분리·독립을 꿈꾸는 지역의 경우, 그들의 이익과 정서가 중앙 정부의 대의제를 통해 충분히 실현되지 않을 때, 반발의 임계점은 매우 빠르게 다가올 수 있다.
‘국민주권’의 한계
다른 맥락에서 보면 이번 주민 투표는 국민주권 개념의 서구식 전통에 도전한 계기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스코틀랜드는 1707년 영국의회와 스코틀랜드 의회가 조약에 의하여 영국과 합병한 경우였다. 따라서 이번 주민투표가 분리·독립 찬성으로 결론 났을 경우, 스코틀랜드는 역사상 드물게 합병과 분리가 국민 또는 그들의 대표자에 의해 결정되는 사례가 되었을 것이다. 즉 국가의 존립이 국민주권에 의해 결정되는 사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분리·독립 문제는 여전히 주권국가의 틀 안에서 불가능한 사안이거나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홉즈식 사회계약이 주민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철회될 수 있는 것인지, 더 나아가 그들이 별도의 주권 국가로 독립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국가, 주권, 민주주의의 등의 원리를 연계하여 보다 깊은 논의가 필요하게 되었다.
민주주의의 실천에 관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한 때
이번 스코틀랜드 주민 투표는 세 가지 갈림길에 대한 선택이었다. 즉, 독립 여부에 대한 ‘찬성’이냐, ‘현상태 유지’냐, 또는 ‘독립하지 않되 자치권 확대’냐에 대한 것이었다. 스코틀랜드 주민들은 마지막 것을 선택하였다. 여지껏 정치적 선택이란 항상 ‘찬성’이냐 ‘반대’냐의 흑백 논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었으나, 이번 투표는 그 사이에서 양보와 타협안이 제시되었다는 점에서 보다 나은 미래를 기대케 한다. 서구식 민주주의가 보통사람에게 권력을 돌려준 것은 바람직하나 그것이 오로지 ‘선거’와 ‘투표’에 의한 것일 경우 그에 따른 부작용은 더욱 클 수도 있다. 21세기의 새로운 민주주의의 관념은 ‘투표’라는 형식을 넘어, ‘관용(寬容)’, ‘총의(總意)’, ‘숙고(熟考)’와 같은 보다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서 긍정적인 변화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브뤼셀 자유대학교에서 정치사회학 박사 학위취득. 주요 논문으로 "국제정치학에서 주체물음(2013)", "유럽연합의 개발협력전략(2013)"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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