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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Gaza) 지구에서 '지속 가능한 외교'는 가능할 것인가?
등록일
2014-08-08
조회수
8
지난 8월 4일, 벨기에의 국경 도시 리에쥬(Liege)에는 벨기에 국왕을 비롯한 유럽 각국의 정상들이 모였다. 이날은 꼭 100년 전, 독일이 프랑스 침공에 앞서 벨기에에 선전 포고를 하고 본격적으로 전쟁을 일으킨 날이다(리에쥬는 독일이 벨기에를 침공하는 첫 관문이었다). 이날이 더욱 뜻깊었던 것은 승전국을 대신해 영국, 프랑스, 벨기에, 스페인 등의 대표단 뿐 아니라 전쟁 발발국이자 패전국인 독일 대표가 참석했다는 점이다.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은, “벨기에 침공은 전혀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 “우리는 이 같은 끔찍한 교훈을 진심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그는 전쟁의 주된 적이었던 프랑스의 프랑수와 올랑드 대통령과 다시 한번 화해의 포옹을 나눴다. 지속 가능한 외교(sustainable diplomacy) ‘지속 가능한 외교’는 호주의 정치학자 제임스 데어 데리안과 사이프러스의 정치학자 코스타 콘스탄티누(2010)가 제시한 개념이다. 이들에 따르면, 기존의 ‘외교’는 국가 간 일처리와 관련된 정책 수행이나 공무적 관계 또는 자국의 이익을 위한 주장의 설파 등에 그쳤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적대적 실체와의 공존을 모색하는 혁신적, 창의적, 실험적 활동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한때 상호 갈등과 투쟁으로 위기 속에서 보낸 경우라 할지라도 결국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선린 관계로 다시 회복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후세를 위해서라도 지금의 적대적 실체와 갈등과 대결을 극한까지 몰고 가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지속 가능한 외교’의 가능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언급되는 ‘지속 가능성’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외교의 내구성을 의미한다. ‘지속 가능한 외교’와 대비되는 것으로 ‘소모적 외교(exhausting diplomacy)’를 들 수 있다. 이는 국제무대에서 우리가 종종 접하게 되는 것으로, 타자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특별한 조건을 내걸거나 최후통첩 형식으로 접근할 때 다른 일방의 의지가 자꾸 꺾이면서 피로를 느끼는 경우를 일컫는다. 여기서 어느 일방이 이를 감내하지 못하고 외교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게 되면 분쟁으로 치닫게 되고 이는 다시 국가 안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치르는 효율적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곤 한다. 이와 달리 지속 가능한 외교에서는 장기간에 걸쳐 인내와 끈기로 접근하는 내구성 높은 외교력의 전개가 필요하다. 예컨대, 평화유지 활동은 최근 국제사회에서 목격되는 가장 대표적인 실례로 꼽힌다. 둘째, 장기적 관점에서 적대적 실체와의 화해와 공존 방식을 모색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타자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겠다는 전제 속에서 자신이 취하고 있는 삶의 방식을 성찰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 강조된다. 지속 가능한 외교는 기능주의 또는 신기능주의 관점의 외교적 접근법과는 다르다. (신)기능주의 외교는 경제, 사회, 문화 등 협력이 비교적 쉬운 분야부터 접근과 교류를 모색하면서 협력이 어려운 정치 분야까지 확산효과(spill over)를 도모하려는 시도이다. 이때 중요한 전제는 물질적 이익의 공유라는 점이다. 때문에 장·단기적으로 이익이 예상되지 않으면 (신)기능주의 접근법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설령 이익의 분점이 예상되더라도 그 이익이 누구에게 분배될 것인가, 누가 더 많이 분배받을 것인가에 따라 외교 주체 내부에서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어려움이 있다. 외교 주체의 의지(意志)에 많은 것이 귀속되는 ‘지속 가능한 외교’는, 자구(自救)를 추구하며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주의 정치학에서 비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현실에서는 ‘소모적 외교’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소모적 외교(exhausting diplomacy)와 가자(Gaza)지구 ‘소모적 외교’가 파국을 유도한 전형적인 사례는 최근 가자(Gaza) 지구에서 전개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하마스) 간의 분쟁이다. 지난 6월 말, 실종되었던 유대인 소년 3명이 숨진 채 발견된 후, 이에 대한 보복으로 팔레스타인 소년이 이스라엘인 6명에 의해 산채로 불타 숨졌다는 소식은 ‘소모적 외교’의 시작이었다. 7월 7일, 이스라엘군이 하마스의 산하 알카삼 여단 대원들을 공습으로 사살하면서 양자는 본격적인 전쟁에 들어섰다. 2012년 11월의 8일간의 교전 이후, 양자는 다시 대결 국면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AP 통신은, 한 달 가까이 계속된 교전으로 민간인 포함 팔레스타인 측 사망자 1,800여 명, 이스라엘 측 사망자 67명에 달한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다. 팔레스타인 사망자의 1/3 이상이 여성과 어린이인 것으로 알려져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이 보다 컸지만 이스라엘의 공세는 멈추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맹폭은 온건 성향의 타파 세력과 과격파 하마스 간의 팔레스타인 연립 정부 구성과 주변 이슬람 국가들의 약진에 따른 위기감을 해소하려는 시도가 숨어있다는 분석이 있다. 하마스 역시 항전 의지를 내보이며 팔레스타인 연립 구성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려는 의중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민간인 희생은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 탓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하마스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외교를 위하여 이들이 서로를 향해 겨눈 총구는 공유할 수 없는 이익에 집중한 현실의 반영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같은 ‘소모적 외교’는 국제사회의 위기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 오히려 ‘지속 가능한 외교’가 빛을 발했을 때 안정과 협력의 길이 열렸다. ‘지속 가능한 외교’의 역사적 사례로는 서두에서 언급한 대로 1,2차 세계대전의 아픔을 넘어 하나의 공동체로 거듭난 독일과 프랑스·영국 관계를 들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유럽연합의 형성은 바로 이 같은 ‘지속 가능한 외교’를 바탕으로 가능했다. 이런 뜻에서 지속 가능한 외교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창의적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첫째, 외교는 승리가 아닌 총의(consensus)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점이 체화되어야(embodied) 한다. 현실정치에서 총의에 도달하기 위한 첫걸음은 외교의 당사자들이 두 귀를 활짝 열어두고 상대와 ‘대화의 바다’ 속에 빠지는 것이다. 이때 상대방의 ‘언어’를 문화적·사회적·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함께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또한 의식의 전환이 아닌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체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지속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제도(institution)’의 구성이다. 여기서 제도는 자유주의 시각에서 강조하는 ‘기관(organisation)’과는 구별된다. ‘기관’은 비용과 효율성의 견지에서 평가되므로 성과주의와 관료제 사이에서 방황하는 경우가 많다. 지속 가능한 외교를 위한 제도는 규칙이나 규범의 표준에 머물던 기존의 제도보다 더 근원적인 작동원리가 필요하다. 이는 ‘사람’, ‘자연’, ‘순리’ 등 원초적인 명상 속에서 비롯된다. ‘생명’, ‘일상의 삶’ 등이 제도에 내화되어야 한다. 셋째, 정책 결정자와 외교 당사자들이 ‘미덕(virtue)’을 회복하는 일이다. 정책 결정자들은 앞서 언급한 두 가지를 형성해갈 기회와 능력이 부여된 사람들이다. 이들이 성찰을 통해 국제사회의 존재들을 ‘삶’과 ‘공존’의 영역으로 수정해 나갈 때, 비로소 그들은 미덕이 겸비된 주체로 거듭난다. 미덕은 거룩한 성인이 되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나 마키아벨리가 언급한 대로 정책 결정자들이 지향해야 할 당연한 품성이다. 평화는... 결국, 전쟁보다 길다. 가자 지구의 불행이 계속되자, 이집트는 7월 15일을 기해 양측이 휴전할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였다. 미국도 8월 1일,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3일간 휴전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으나, 불과 2시간 만에 전투가 재개되면서 체면을 구겼다. 가지 지구 내 라파(Rafa)의 유엔학교 공격 후인 8월 5일, 비로소 72시간 시한부 휴전이 성립되었다. 더불어 이스라엘과 하마스 대표단이 이집트 중재로 장기 휴전 방안을 논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정치력은 힘으로 과시하는 한편, 상대는 국제규범으로 다스리려는 이중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양측은 그들이 마지막으로 존재하는 그날까지 운명적으로 이웃으로 살아야할 동반자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평화는 전쟁보다 길다. 짧은 전쟁기간 동안 긴 평화를 염두해야 한다. 그래서 더욱 ‘지속 가능한 외교’가 필요하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브뤼셀 자유대학교에서 정치사회학 박사 학위취득. 주요 논문으로 "국제정치학에서 주체물음(2013)", "유럽연합의 개발협력전략(2013)"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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