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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과 미사일이 야기한 한반도 안보 환경 변화와 한·중 관계: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과 중국
등록일
2016-09-13
조회수
8

  근현대 미·중 협력관계는 1937년 시작된 중국의 항일전쟁 과정에서 국민당과 공산당이 1941년 하와이 피습으로 참전한 미국과 함께 일본을 향한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면서 형성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1945년 중국에서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이 발생하였고, 국민당의 미국과의 협력 및 (구)소련의 중국 공산당에 대한 지원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개의 이념적 대립 세력을 중국과 동북아에 형성시켰다. 1949년 타이완과 부속 도서로 패주한 국민당 장제스 국민당 정부와 1949년 10월 1일 건국된 공산당의 사회주의 국가의 대립, 중국과 인접한 동남아국가들의 사회주의 국가화와 분단된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중국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동아시아의 냉전 대립지역이었다. 현재 국력이 신장한 중국과 기존 강대국인 미국 그리고 러시아와 일본은 이 지역에서 각자 동맹과 협력을 통해 영향력을 강화하는 경쟁을 지속하고 있는데, 한반도의 남북한도 그 위기의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1950년부터 1953년까지의 한국전쟁은 바로 사회주의 진영인 북한의 적화통일이라는 목표 하에서 진행된 북한·중국·소련 세력과 한국·미국과 UN 연합군의 전쟁으로써 이는 진영 간 무력충돌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중국은 항미원조(抗美援朝)라는 구호로 사회주의 국가를 도우면서 이념과 체제경쟁에서 승리해 자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하여 참전한 것으로 포장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가설립 후 1년 24일 만에 북경정부의 국내정치 안정과 영토 안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참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참전한 인민지원군의 상당수가 항일전쟁과 국공내전에 참가한 군인들이며, 이들 중 상당수가 중국에 남아있던 국민당 군인이었다는 점, 그리고 포로가 된 많은 이들이 타이완(중화민국 국민당 정부)으로 향했던 것을 보면, 중국은 영토를 포함한 국내 정치안정을 위한 목적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부 학자는 마오쩌둥이 국제공산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높이려는 의도에서 참전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하지만, 마오쩌둥의 정치와 군사에 대한 전략을 보면 군사는 정치를 위한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마오쩌둥은 정치안정과 통일된 중국의 영토 안전에 더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1910년 일본의 한반도 강점은 당시 제국주의 국가들의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이권대립과 이익분할을 원인으로 볼 수 있다. 그 당시 조국을 상실한 한국인들은 당시 국제환경과 지정학적 이유로 중국을 포함한 구미의 해외 동포사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추진했다. 그리고 독립운동 과정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은 한국 애국지사들의 노력과 희생의 대가 및 중국에서 국민당 혹은 공산당과의 협력을 통해 항일투쟁을 통한 독립운동의 대열에 참여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중국군 지도자들의 요람이었던 황포(黃浦)군관학교 소속의 일부 한국인들은 국민당과 같이 중국 지방 토호세력을 토벌하기 위한 북벌(北伐) 및 미얀마에서 일본군을 제압하기 위한 원정군(遠征軍)대열에 참가했다. 또한, 일부 군인들은 공산당의 광주(廣州)봉기뿐만 아니라 홍군(紅軍)과 같이 항일전선에도 가담했다. 즉, 한국인들은 해외에서 독립이라는 염원 앞에 이념을 뛰어넘는 항일전쟁에 가담했던 것이다. 대한민국 수립 후, 한국 정부는 항일전선의 동맹이자 미국의 우방이었던 중화민국(現 타이완)과 수교를 맺어 여러 분야에서 각별한 협력을 유지해 왔다. 당시 냉전 시기의 동아시아는 시장경제의 자본주의체제와 공산주의체제의 사회주의 진영이 이념과 국가체제를 기반으로 적대적 관계를 유지했으며, 같은 진영 내 협력과 동맹 및 군사력 증강을 통해 적대세력에 상대적 우위를 유지하려는 전략을 고수해 왔다. 즉, 국가 간 대립에서 각국은 국가 기본요소인 국토(영토), 주권, 국민을 보존하기 위한 주권과 안보를 절대 우위로 보고, 군사력을 포함한 국가안보에 모든 수단을 마련해 오면서 경제발전을 추진했다. 중국은 항일전쟁 시기 한국 독립운동의 협력대상에서 남북한이 대치되는 냉전기에는 북한에게는 한국전쟁에서의 혈맹의 관계로, 한국에 우방인 미국·일본·타이완의 공동의 적으로 존재했었다. 이런 이유로 1992년 한중수교 후 한·중관계는 근원적 정치·안보적 모순은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서 경제·문화적 교류에 힘쓰며 북한에 대한 서로의 정치적 견해 차이를 줄이지 못했다. 현대 국제정치의 현실에서 과거 5,000년 동안의 한·중관계로 회복되는 것은 불가능하며, 양국관계의 긍정적 개선에도 아직 많은 걸림돌이 있다. 그러나 “물이 고이면 수로가 생긴다(水到渠成)”고 하듯이 양국의 꾸준한 교류와 노력은 지정학적으로 협력의 기회를 증대시킬 것이기에 한·중 양국은 서로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상호존중의 정신으로 양국의 관계를 유지·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에 북한 핵 문제와 미사일 문제의 해결은 양국의 목전의 문제이며, 국제정치관계의 틀에서 지역 안보환경을 고려하는 거시적 사고에서 양국 간의 전략적 협력이 필요할 것이다. 1978년부터 사회주의 중국이 추진한 개혁·개방정책과 시장경제제도는 중국경제의 발전과 국력신장에 큰 밑받침이 되었다. 그러나 일인독재체제인 북한은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는데 국내정치와 사회 환경의 문제로 그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북한 지도자는 선군정치 실천과 핵과 미사일 개발을 통한 국내정치적 안정을 도모하며, 한국과 국제사회에 대한 협상력 강화에 주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세습과 독재라는 북한 정권의 한계가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던 중국이 북한의 핵 개발을 적극적으로 제재하지 못한 것은 중국의 대북 억제력의 한계일 수는 있지만, 남북한과 동시에 수교한 상태에서 북한이 개혁·개방을 추진하게 하여 중국과 상호의존관계를 강화하려는 정책 아래 대화를 통해 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이상론에 집착한 점이 오히려 그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중국의 새 지도부는 국내정치 환경조성에 더 신경을 쓰며, 이를 미국과 신형대국관계 구성이라는 구도 속에 중국인들을 단합시키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는 인접한 여러 나라와의 1:1 우호 및 안보관계 형성에 실패하여 북핵문제를 포함한 중국과 인접 국가 간 모순을 드러내었다. 결국, 중국의 대북한 정책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제재할 기회를 상실했고, 한반도 사드 배치라는 이중의 고충을 떠안게 된 것이다. 중국의 대북한 억제력의 불투명함과 과도한 중화민족주의 정책은 바로 한국과 미국 등 핵 개발을 반대하는 국가들과 중국위협론을 주장하는 국가들이 중국책임론을 거론하며 중국의 부상을 걱정하는 이유가 된 것이다. 중국은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한 기본정책은 수립하였지만, 아직 그 실제적 전략과 추진방법에서는 전략적 모호성을 보인다. 사실 역으로 중국에 있어 북한에 대한 전략과 북핵과 미사일에 대한 정책의 관계는 중국이 내색하기 싫은 자신들의 정치적 모순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한반도 사드 배치를 중국의 전략적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즉, 중국 정부의 불만의 대상은 첫째가 경쟁국인 미국일 것이고, 둘째는 그동안 많은 공을 들였다고 생각하는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 셋째는 중국의 입장을 고려해주지 않는 않는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한 것이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중국의 꿈을 이뤄 중화민족 부흥을 실현하겠다는 정책에 호응하던 인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결과를 내놓아야 하는데, 지금의 동아시아 상황은 중국 정부를 더욱 힘들게 하는 상황이라 중국정부가 난처한 입장에 처해있다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공산당이 더 강한 중화민족주의를 고수하며 국내정치 환경을 고려한 국제정치 행위를 할 수도 있다는 우려 속에서 강대국 간 그리고 이해 상관국가 간의 이해와 협력은 동아시아 안보환경에 매우 중요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은 반봉건주의,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의 기치 하에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하였다. 이는 중국이 구시대 봉건사상을 반대하고 제국주의의 침략에 반대하며, 다시는 (반)식민지가 되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중국 인민들을 통치하기 위한 중국 공산당 국가건설의 정치이념이다. 이러한 정치이념이 반영되고 있는 중국 국내정치 환경은 동북아에서 외부세력이 중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것을 묵시하지 않겠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론에 근거하여 중국은 북한을 완충지대로 보며 외부세력이 중국 영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하는 반접근 전략을 구사함과 동시에, 시진핑 정부시대부터 영토와 영해 그리고 영공에 대한 주권을 강화하는 태평양을 향한 강대국의 길을 준비하며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 14억 중국 인민들은 이러한 정치사상으로 직간접적으로 교육되고 있는데, 이는 중국에게는 큰 힘일 수 있지만 세계평화와 지역안보에는 장기적으로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 근거해 보면 중국 정부가 북한에 대해 강력한 제제를 못하고 한반도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이유는 공산당의 국내외적 정치판단에 따라 중국의 핵심전략이익이 손상을 입을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 정부의 현실정치 인식과 역사 인식은 맥락을 같이하는 부분이 많은데, 중국 지도부는 역사인식은 현실정치에 반영되기 때문에 중국 역대왕조의 전성기 영향력을 자손들이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중국인들이 역사적 흐름으로 현실정치를 분석하는 역사 중심의 정치철학관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한국과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합의점을 찾은 것은 항일전쟁의 반식민주의 투쟁의 한중공조라는 역사적 사실이 현실정치에서 상반된 현상으로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국 공산당의 정치 행태에 어긋나는 것으로, 바로 중국 정부가 역사를 현실정치에 활용하는 전략에서는 벗어난 국제정치현상이다. 또한, 중국 지도부의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대한 입장은 항미원조라는 이름으로 제국주의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중국 자체의 한국전쟁에 대한 평가가 무색할 정도로, 이는 강대국과 그 동맹국이 발전하는 중국에 대한 새로운 도전으로 중국 공산당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미·중 관계에서 중국 지도부는 미국의 동아시아 재균형전략으로 빚어지는 갈등의 하나로 한반도 사드 문제를 보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북핵과 미사일에 대항한 안보적 조치로 보는 사드 문제와 상반된 입장으로 한국과 중국의 한반도 문제에 대한 근본적 전략적 이해의 차이를 드러낸다. 최근 G20 회의를 전후하여 박근혜 대통령과 러시아·중국·미국·일본의 정상들의 4강 외교가 진행되었다. 이번 정상회담은 서로 문제에 대한 인식이 다른 상태에서 적어도 어느 정도 기본적 이해방안을 제시하여 국가 간 관계가 더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 좋은 예방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 한·중 관계에서의 역사적 모순과 현실 정치 상황의 대치는 서로 간의 충분한 이해를 통해 최악의 관계로 가는 것은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최근처럼 한·중 관계가 악화된 일은 한중수교 24년 동안 없었고, 내년은 한중수교 25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제 한·중 관계는 국제체제 아래 지역안보와 협력이라는 입장에서 긍정적인 협력이 더 필요해 졌다고 할 수 있다. “좋은 일에는 마가 많이 낀다(好事多魔)”는 말이 있듯이, 한중수교 25년에는 더 큰 양국관계의 발전이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의 평화와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양국 간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의 교류는 더 강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한국은 안보를 기초로 하되 중국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의견 교환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중국도 한국의 입장을 고려한 한반도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서로간의 신뢰를 쌓기 위한 전략대화는 꾸준히 진행되어야 할 것이며 어렵게 형성된 양국 국민들의 신뢰의 우정은 손상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現 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단국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소장. 북경대 국제관계학원에서 동북아 국제관계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대만 정치대학 국제관계연구중심 방문연구원, 중국 요동대학 조선반도연구소 객원교수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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