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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학의 논의를 통해 본 세계정부의 출현과 국제질서 전망
등록일
2015-10-22
조회수
7

 최근 『유엔 미래보고서』와 함께 미래학을 포함한 여러 학문 분야에서 주를 이루는 논의는 ‘세상의 빠른 변화’와 그로 인한 사회적 파장이다. 고대부터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시대가 급속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어 적응이 어렵다고 해 왔지만 현대로 올수록 과학기술뿐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도 가속도가 붙는 것은 사실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국내적 변화의 주요 주제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경제, 사회, 그리고 정치 전반에 급격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적 변화로는 패권적 미국에 도전하는 중국의 부상으로 형성되는 새로운 국제질서, 산업화에 따른 온난화 및 기후변화와 같은 초국경적인 문제의 등장, 그리고 이에 따른 세계정부의 출현도 논의되고 있다.

총론의 차원에서 이러한 미래에 대한 설명은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에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해서, 불안한 현재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더욱 필요하게 하는 한편, 그 절실한 만큼 미래에 대한 일관적이지 않은 진단을 촉발할 수 있다. 따라서 오진 및 잘못된 처방을 내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미래와 관련된 논의의 문제점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미래에 대한 전망이 엇갈린다. 다양한 미래예측은 기술의 발달로 사라지게 될, 그리고 새롭게 부상할 직업과 산업에 대한 설명과 함께 자원의 고갈로 경제체제가 붕괴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경제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과 달리 과학기술 분야는 인간의 생명이 연장되고 장애가 없는 세상이 가능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과학기술의 발달이 경제적인 풍요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또 다른 전망은 경제체제의 붕괴라는 어두운 미래예측과 비교해 볼 때 일관성이 없다. 둘째, 정치 분야에 대한 미래의 전망 역시 국내정치적으로도 국제정치적으로도 일관된 설명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우선, 국내정치적으로는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이 확대되어 의회와 정당제도가 기능을 못하면서 대의민주주의가 위축되고 소셜네트워크를 이용한 주민참여제도와 같은 직접민주주의가 확대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올바른 정책결정을 위해 국회의원에게 좀 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임기를 보장해 정치엘리트의 전문성에 기초한 집단지성을 활용하는 것이 미래의 정치제도로서 바람직할 것이라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셋째, 국제정치에 대한 예측도 현실주의와 자유주의가 충돌하고 있다. 미래에는 국내정치와 국제정치가 접점을 이루면서 세계 각국의 국민들 사이에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가 확대되어 세계정부의 출현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국제주의가 바람직한 대안으로 제시된다. 이 관점에서는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국제기구의 설립을 세계민주주의 실현의 구체적인 선결요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국제주의에 대한 신뢰는 국제정치에서 자유주의·제도주의의 점진적 진보를 전제로 한 설명이다. 이에 반해 중국의 미국 추월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세계적 차원의 국력 경쟁 과정에서 미국의 패권과 중국의 도전을 염두에 두고 있는 현실주의적 시각에서 전개되고 있다. 문제는 어떤 경로를 통해 세계정부가 출현하고 패권경쟁이 결정될지 등 과정에 대한 일관된 관점에서의 설명은 부족하고 최종 결과에 대한 예측만 나열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미래에 대한 논의가 일관성이 없으며 지나치게 다양하여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앞에서 제시한 대표적인 논의들을 정치학의 일관된 이론의 틀에 접목하여 국내정치의 변화에서부터 시작하여 미래의 국제질서를 논의하고자 한다. 첫째, 개인 삶의 질을 결정하는 기본 조건인 경제적 빈곤은 과학의 발달로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물론 자원의 고갈은 개인의 삶에 부정적인 요인이지만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생존과 삶의 질을 확보하는데 필요한 에너지, 재화, 그리고 용역 등의 공급을 용이하게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전통적인 자원이 고갈되더라도 과학기술이 이를 대체할 새로운 자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미래의 정부가 선거를 통해 결정된다면, 과학기술을 시민의 삶의 질을 위해 효과적·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국정의 책임자가 결정되어야 될 것이다. 낙관론일 수도 있겠지만 대중이 자신의 선호를 선거에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다면, 새로운 역량을 갖춘 정치체제가 출현하여 현재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와는 다른 제도를 만들 것이다. 즉, 정의로운 분배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정치권력이 경제권력과 협조하여 국가제도를 운영할 것이다. 한편, 이러한 개인의 삶에 필요한 희소한 자원이 시장이 아닌 다른 형태의 제도를 통해서 배분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역량을 갖춘 정치체제는 직접민주주의에서도 대의제민주주의에서도 가능하다. 셋째, 새로운 정치제제가 출현해도 국내정치에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 그리고 국제관계에서는 국가이기주의가 행동의 원칙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세계정부의 출현인데, 사실 이는 대안으로 보기 어렵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에 따라 자동적으로 세계정부가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이기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출현해야 단일통화와 세계경찰에 기초한 세계정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세계정부는 평화적 국제제도의 확보를 전제로 하는데 이는 한 국가가 경제적, 군사적, 환경적으로 다른 국가의 생존을 위협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얻는 방식으로 국가의 발전을 추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더 구체적으로, 세계정부는 국내정치적으로 시장에 기초한 경쟁적 분배에서 벗어나 과학과 기술의 힘으로 분배의 정의가 확보되는 정치경제제도가 현재의 국제질서에서 중요시되는 국가, 국경, 그리고 군사력과 관련된 안보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넷째, 국제체제와 관련하여 세계정부의 출현이라는 긍정적인 미래 시나리오도 가능한 측면이 있다. 국제사회에서 다른 국가를 능가하는 경성국력(hard power)을 가진 국가는 경제적으로 부강하고 과학기술을 확보한 선진국이다. 경성국력을 확보한 국가가 재화와 용역을 도덕적으로 분배하는 경제제도까지 확보하고 있다면, 그 국가는 연성국력(soft power)에서도 선진적인 지도국가이다. 이와 같이 경성국력과 연성국력 모두 선진적인 국가들이 국제질서를 평화적인 세계정부의 출현으로 인도하려는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세계정부의 출현은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선진국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국가이기주의를 바탕으로 세계평화를 교란하는 잠재적 위협국가들을 응징할 수 있는, 이를 테면 다국적 상비군과 같은 집단안전보장을 위한 제도를 갖추는 것이다. 현재의 국제제도에 기초해 볼 때, 미국과 중국이 세계정부 출현에 공정한 선의의 안내자의 역할을 수행한다면 세계정부를 위한 세계적 움직임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 미국과 중국이 국가이기주의를 포기하고 공동의 선을 위해 협력할 것이라는 현실적 근거는 없다.

다섯째, 세계정부가 실제로 구성되고, 적절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 해결되어야 하는 세부적·정책적인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이는 국제관계가 아니라 국내정치의 문제이다. 새로운 정치제도에서 정치적 권력을 가진 개인들이 합의를 효과적으로 유도하는 민주주의정부를 가진 국가가 국제정치에서도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가난한 국가와 부유한 국가의 경제적 격차가 가져오는 노동력의 이동, 개별국가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단일화폐의 출현, 환율 문제 등은 현재 유럽의 통합에서도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심각한 장애물들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도덕적이고 민주적인 정치제도가 확보된다고 하더라도 개인이 국제적 공공질서를 위해 국내적 개별이익을 희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집단행동의 문제(collective action problems)’는 여전히 남아있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이기주의에서 발생하는 집단행동의 문제는 과학기술의 발전이나 정치제도의 변화와 무관하게 사회적인 문제의 원인으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통칭하여 문화로 대변되는 언어, 종교, 인종, 관습, 제도, 그리고 신념의 차이와 같은 다양한 차이가 통합에 장애가 될 것이다. 결국 차이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차이를 이용하는 정치적 편가르기가 고용, 환경, 주택, 교육, 복지, 보건 등과 같이 일상생활에서 정책의 편익과 문화가 접점을 이루는 부분에서 통합을 저해할 것이다. 결국 인간의 이기심과 문화적 차이는 지방, 국가, 지역, 인종, 문화 등 다양한 차원의 편가르기로 나타나고 궁극적으로 세계정부의 통합에 있어서 제도나 법적인 측면의 발전을 상쇄하여 극복하기 어려운 부정적 요인으로 남을 것이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미국 University of North Texas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미국국제정치학회가 주관하는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의 Referee로 활동한 바 있음. 저서로는 『2011 한국인의 평화관: 통일정책과 여론』 및 『2010 한국인의 평화관: 외교정책과 여론』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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