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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테러리즘이 남긴 과제
등록일
2015-12-17
조회수
8

   지난 11월 13일, 현지시각 오후 9시 20분 경부터 새벽 1시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일련의 자살폭탄, 인질극, 총기난사로 130명이 사망(테러리스트 제외)하고 35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 테러리스트들은 최소 3개 팀으로 나뉘어 6곳에서 공격을 감행하였고 일부는 이웃국가로 도주하였다. 이 사건은 2004년 3월 11일 마드리드 열차 역에서 있었던 ‘테러리스들의 공격(attentat)’으로 191명이 사망한 기록을 넘는 대형 참사다.

   테러리즘은 무차별적인 인명 살상을 가져오며,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다. 또한 실행 주체와 객체가 구분되지 않아 어렴풋하며, 정치적 주장이 있지만 모호하다. 따라서, 국가, 주권, 무정부적 국제질서 등 전통 국제정치학이 중요시했던 접근법으로는 설명이 어렵다. 테러리즘은 국가를 단위로 행사하는 외교·군사적 설명보다 개인, 특히 민간인이 느끼는 공포와 심리적 충격에 보다 초점이 맞춰진다. 따라서 테러리즘은 전통적·근대적 의미의 안보 이슈를 넘어서는 ‘탈근대 안보 이슈(Post-modern security issue)’라고 할 만하다. 프랑스의 형사정책 전문가인 장-프랑소와 게이로(Jean-Francois Gayraud)는 2002년에 발간된 Le Terrorisme에서 현대적 의미의 테러리즘은 “폭력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심리전”이라고 말한다. 국가가 아닌 개인과 사회에 주는 심리적 타격에 방점이 놓여있다는 것이다. 이번 파리사건은 탈근대 안보 이슈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다음과 같은 성격을 띤다.

   첫째, 선거를 앞두고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유권자들로 하여금 기존 정부에 책임을 묻게 하고 정치권에 혼란을 주었다. 과거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총선 직전에 발생한 2004년 마드리드 열차 역 사건으로 스페인 민심은 우파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총리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좌파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에게 정권을 넘겼다. 정권이 바뀌면서 미국과 함께 이라크 전쟁에 뛰어들었던 스페인은 이라크에 주둔했던 자국 병력을 철수시켰다. 이번 파리 사건도 지방선거를 불과 한 달 앞두고 벌어져 극우파인 국민전선(FN)이 1차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는 등 프랑스 정치권에 변화를 주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가 12월 7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젊은 층(18-24세)일수록 FN을 선지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이는 프랑스 사회가 어떤 충격을 받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좌파인 사회당과 우파인 공화당이 연합하여 2차 선거에서 공동 전선을 구축하여 FN의 승리를 저지하기는 했지만, 집권당인 사회당은 극우파의 저지를 위해 우파에게 많은 것을 양보해야 했다. 민주주의 정치지형에 영향을 주는 것이 테러리즘의 목적 중 하나라면, 이번 테러리즘은 심리전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고전적 의미의 국가 간 전쟁 대신,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살상을 꾀하는 테러리즘은 인간에 대한 신뢰에 의문을 갖게 한다. 이제 전쟁은 국가만의 것이 아니고 정치는 정치인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인간에 대한 신뢰 손상은 특히 타문화, 이방인 등에 대한 경계와 적개심을 심어 준다. 프랑스 당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난민 심사를 강화하였고, 그들의 이동을 강력히 제한하기로 하였다. ‘솅겐협정’ 국가를 왕래할지라도, 향후 6개월간 관광객들은 항공은 물론 국제열차 등 육로 이동에서도 신분증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번 사건을 통해 무슬림은 물론, 난민들(refugees)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조성됨으로써 이민정책은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이제 인도주의적 도움의 범위가 어디까지여야 하는지 의구심이 나타나고 있다.

   셋째, 테러리즘은 사생활 침해와 사회적 안전이라는 두 가지 선택 사이에서 갈등을 조장하였다. 유럽은 반 테러리즘 법안 입안과 더불어 첩보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관련 기구의 설치를 서두르고 있다. 9.11 이후 유럽연합은 약 239개의 반 테러리즘 법률을 만들었으나 이중 88개 법령만 강제력이 있을 뿐이다. 파리 테러리즘 이후 프랑스는 여행객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데이터베이스의 범위와 폭을 넓히기 위한 입법을 유럽의회에 촉구하고 있다. 지난 1월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 공격 이후 고개를 들었던 EU차원의 통합첩보국 창설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한편, 향후 첩보국이 창설되면 담당하게 될 개인 데이터 수집 및 축적은 사생활 침해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테러리즘은 개인의 공포를 조장하고, 인간에 대한 신뢰에 손상을 주며, 제도의 선택에 혼동을 준다. 테러리즘은 특히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 원리에 도전한다. 고전적 의미의 안보가 타국과의 경쟁과 투쟁에서 살아남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면, 탈근대 안보 이슈인 현대의 테러리즘은 국가의 전복보다는 사회의 혼란과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고 민주주의의 약점을 공격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오늘날 테러리즘에 대한 대응책도 탈근대적일 필요가 있다.

   첫째,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진지한 테러리즘’과 그렇지 않은 ‘자폐적 테러리즘(외로운 늑대)’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진지한 테러리즘’에 대해서는 그들이 원하는 국제정치 질서와 배열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고민하고 이에 대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자폐적 테러리즘’의 경우, 정치적, 법률적 접근보다는 이들을 형성시킨 사회적, 문화적 불만을 찾아내고 그들과 화해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건전한 가족 관계의 형성, 학교 교육의 정상화, 빈부격차의 최소화, 따뜻한 사회적 분위기 등이 그러한 예이다.

   둘째, 인간 기저의 ‘생활세계’가 국가 또는 사회의 ‘체계’와 융합되지 못할 때 저항과 투쟁은 반드시 일어난다. 비폭력 저항과 투쟁이 민주주의의 성취를 위한 하나의 과정임을 받아들일 때 폭력은 사라진다. 저항과 투쟁이 민주주의의 긍정적 과정이 되도록 통로를 열어둘 필요가 있다. 표결보다 총의(總意), 언쟁보다 숙고(熟考)가 민주주의를 긍정적 과정으로 이끄는 방법이다.

   셋째, ‘테러리즘’을 ‘테러’로 남발하는 수사(rhetorique)를 경계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이들을 견제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테러리즘은 사건 이후 남은 잔상(殘像)과 이미지는 공포와 떨림의 스트레스를 남긴다. 테러리즘의 의미와 효과를 ‘테러’라는 단어로 남발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사람들을 자극하여 위축시키는 구호가 된다. 공포를 중화시키기 위해 고안된 보복과 응징은 탈근대 전략이 아니다. 희생된 이들을 애도하는 언어를 공유하고 일상의 침착성을 되찾으며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치유의 대화가 필요하다.

   테러리즘에 대한 대처는 단지 근대적 의미의 제도적, 법률적 처방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와 아울러 테러리스트들의 삶의 기저를 성찰하고, 정치과정으로서 대중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길을 찾으면서 치유와 안정의 언어를 공유하는 등 탈근대 전략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지역통합연구부장. 브뤼셀 자유대학교에서 정치사회학 박사 학위취득. 주요 논문으로 "국제정치학에서 주체물음(2013)", "유럽연합의 개발협력전략(2013)"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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