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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의 역기능적 외교
등록일
2015-11-25
조회수
8

  동북아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근래 초미의 관심사는 동북아 국제정치가 드디어 긍정적인 변화를 보여줄 것인지 여부일 것이다. 최근, 역내 주요국인 중국, 일본, 한국의 지도자가 마침내 회담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과 대만의 지도자도 직접 대화를 나누기에 이르렀다. 과연 이러한 변화가 이 지역 전체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최근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동북아평화협력 공동선언’으로 미루어 볼 때 동북아 정세에 대한 긍정적 전망도 일리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역 활성화 조약을 체결한 것 외에도 리커창(李克?) 중국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앞으로 3국이 서로 공존과 협력의 길을 걸어나가기를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역외 국가들에게는 동북아가 여기에 이르기까지 왜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인지 의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내 협력을 통한 잠재적 이익이 분명한데도 왜 동북아 역내 정치는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것일까? 유럽연합 협력의 역사와 현 동북아시아 정세는 종종 비교되고는 하며, 이것은 꽤 유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유럽을 파괴했던 갈등의 여파 후, 유럽 역내 협력은 합리적인 것이며, 필수불가결해 보이기까지 했다. 당시 미국은 유럽의 경제 부흥과 국제공조가 소련과의 대치 상황에서 필수라고 믿었다. 곤경에 처해 있던 유럽의 지도자들은 협력만이 살 길이라는, 새로운 패권국 미국의 믿음과 손을 잡았다. 그러나 아시아의 경우는 달랐다. 유럽의 각국이 지정학적으로 공조하도록 유도한 냉전이 동아시아에서는 서로의 분열을 더욱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당시 덩샤오핑(鄧小平)이 서구 자본주의를 수용하기 전까지 중국은 소련의 편이자, 전후 미국 패권 하의 경제 효과를 톡톡히 본 일본의 관념상 적이었다. 이러한 정세에서 포괄적 역내협력은 어떠한 형태로든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었다. 한반도의 분단과 국제사회에서 대만의 지위는 냉전이 동북아에 남긴 가장 큰 상흔이다. 물론 냉전이 동북아의 냉랭한 분위기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보다는 이 지역 내 국가 간 오랜 적대감, 긴장감 및 국민 간 깊이 패인 감정의 골이 더 심각한 문제라는, 게다가 사실은 냉전이 이러한 감정을 더욱 증폭시켰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한중 양국이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에 얼마나 분개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사실 그에 대한 직접적인 기억을 가진 사람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렇다면 왜 동북아 지도자들은 유럽연합 협력의 역사적 교훈을 따르지도, 과거를 청산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일본의 경우와는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독일 지도자와 국민들의 행동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과오를 절대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일본 국민들이 군국주의에 대해 감복할 만할 정도로, 또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싶은 거부감을 드러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일본의 대한(對韓)관계나 대중(對中)관계 개선에 거의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중일(中日) 양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이에 대한 책임이 크다. 우선,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은 그들의 군국주의가 20세기 전반에 미친 영향에 대해 명확히 인식하거나 과거를 청산하는 일을 마뜩잖아 해 왔는데, 아베 신조는 그러한 전통의 명맥을 잇는 지도자이다. 한편, 중국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일본의 무감각을 십분 활용하였고, 일본에 대한 중국 국민들의 국가주의적 적대감에는 따로 기름을 부을 필요도 없었다. 이러한 점들은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설명이 필요하다. 유럽에서는 마법처럼 통했던 경제적 상호의존성과 비교우위의 논리가 왜 아시아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중국과 대만의 경제협력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의 경제적 유대도 대중의 정서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국과의 경제협력이 중국의 장기적인 재통합 계획의 일부일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대만 대중들 사이의 일반적인 정서이다.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그것만으로 상황을 역전시킬 수는 없다. 유럽의 경우는 실패 시의 위험 부담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협력의 가치에 더 주목할 수 있었다. 냉전 당시 유럽의 것과 같은, 동북아 역내 지정학적 긴급 사안의 부재를 역내 국가들을 외교의 장으로 이끌지 못한 주된 요인으로 봐야 할 까? 중국과 미국의 지정학적 긴장감이 긴박할 정도로 증대된 상황에서 마침내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이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을 만나기로 결정한 것은 단지 우연일까? 최근 유럽의 정치경제적 문제를 접하면서, 몇몇 아시아 지도자들은 유럽연합의 공조로부터 배울 점이 많지 않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역내 협력은 그다지 쓸모 있는 카드로 여겨지지도, 성취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유럽연합은 의도치 않게 동북아에 또 하나의 교훈을 주고 있다. 그 교훈은 바로, 국제공조가 어려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협력 없이는 잠시 가라앉은 듯 하던 국가주의적 긴장감이 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동북아 역내 긴장감은 표면적으로 거의 드러나고 있다. 세계무대에서의 중국의 부상과 자주적 군사권을 가진, ‘평범’한 국가가 되고자 하는 일본의 열망은 역내 관계 향상에 실상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있다. 거기다 예측 불가능한 북한까지 더하면, 신뢰 구축을 위한 역내 대화가 이어져야 할 이유가 한 가지만은 아닐 것이다. 골이 깊은 역사적 굴레에도 불구하고, 역내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동북아시아가 역내 외교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들이 분명히 있다. 물론, 동북아의 현(現) 지도자들이 이에 대해 전 세대 지도자들보다 나을지는 아직 더 지켜보아야 할 문제다. 現 University of Western Australia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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