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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I PeaceNet] 아프간 철군과 미국 정치 변화, 그리고 한반도 이슈: 역사, 리더십, 선거 관점에서
등록일
2021-09-1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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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 註]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었던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군의 철수로 공식적으로 종전이 되었다. 이번 아프간 철수의 원인과 결과, 그 교훈에 대한 논의들이 성행하지만, 이번 아프간 철군에 대해 철군의 결정 주체인 미국 국내정치의 역사적인 맥락과 미국의 내부의 정책 결정 과정, 그리고 철군 결정으로 인한 미국 국내정치 전망에 대한 논의가 적다. 이에 JPI PeaceNet은 경희대학교 서정건 교수의 기고문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의 아프간 철군 결정과 그 과정을 통해 드러난 미국의 대내 및 대외정치의 변화를 확인하고 한반도에 대한 함의를 찾아보고자 한다. [기획: 임해용 연구위원(haeyonglim@jpi.or.kr)]
  1. 들어가며 바이든 대통령 이전에 외교 정책 경력을 보유하고 당선된 미국 대통령을 꼽자면 1988년 아버지 부시(George H. W. Bush)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지난 28년간의 미국 대통령들, 즉 클린턴, 아들 부시, 오바마, 트럼프는 모두 국제 정치 경험이 일천한 주지사 아니면 초선 상원 의원, 혹은 부동산 개발업자였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도중에 하차했던 1988년과 2008년의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를 포함하여 선거 때마다 자신의 외교 안보 분야 배경을 전면에 내세운 바 있다. 44년간 이어진 워싱턴 정치 역정을 통해 전 세계 상당수 지도자들과 개인적 인연을 맺어 온 바이든에게 국제무대는 상대적으로 익숙한 영역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아버지 부시와 바이든 대통령 모두 임기 첫해 대외 이슈로 인해 발목이 잡혔다. 1989년 6월 4일 중국 청년들이 주도했던 민주화 운동을 중국 공산당이 무력으로 탄압하였고 이는 곧 부시 대통령의 대응 능력을 둘러싼 비판과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베이징 연락사무소장과 CIA 국장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민주화 운동은 평화적으로 끝날 것이라고 오판한 점과 천안문 사태 이후에도 중국에 유화적 입장을 취한데 대해 민주당과 언론, 그리고 여론이 들끓었다. 특히 1980년 이후 세 차례나 연속으로 대선 패배를 당해 위기의식이 팽배하였던 민주당에 천안문 사태는 부시 공화당을 공격할 기회였다. 당장 다음 해인 1990년부터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소장파 펠로시(Pelosi) 하원 의원을 필두로 의회 민주당은 중국에 대한 최혜국대우(MFN) 자격을 놓고 공방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역사는 돌고 돌아 한 세대 만에 새로 등장한 외교 경험자 미국 대통령이 국제 이슈로 또 한 번 정치적 위기에 빠졌다. 이 글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의 아프간 철군 결정과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정치 및 외교의 변화를 분석하고 향후 한반도에 미칠 파급력과 시사점을 전망해 본다. 2. 아프간 철군 사태와 미국 정치    1) 미국 외교 역사와 사이공 순간(Saigon Moment) 미국 외교사의 특징 중 하나는 유사한 위기와 도전이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1949년 중국 공산화로 인해 국내적 비판에 직면한 트루먼 대통령을 지켜본 존슨은 자신의 임기 동안 베트남이 공산화될 가능성을 우려하였다. 민주당 외교 중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964년 대선 압승 이후 베트남 전쟁을 확대했던 주된 이유다. 하지만 1968년 초 북베트남의 구정 대공세(Tet Offensive) 장면을 TV로 시청한 미국 국민은 미국이 동남아시아 전쟁에서 고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결국 알게 된다.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급격히 추락하였고 존슨은 1968년 재선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트루먼이 1952년 대선에 나서지 않았던 사실과 유사하다. 한편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 당시 극적인 반전을 통해 위기관리 능력을 인정받게 된 케네디 대통령은 중간 선거에서 선전하게 된다. 2002년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결집 효과를 이끌어 낸 아들 부시 역시 중간 선거 승리를 거머쥐었다. 실제로 대통령 소속 정당이 중간 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일은 미국 정치에서 예외적이다. 1972년에는 강경 반공주의자였던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전격 방문하여 마오(Mao)와 회담을 가졌다. 냉전 시대였음에도 당시 미국 국내에서는 별다른 우려의 목소리가 거의 없었다. 공산주의 배척 경력이 워낙 탄탄했던 닉슨 대통령이라 별 문제 없을 거라는 인식이 컸기 때문이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 회담을 했을 때도 미국 내에서는 비슷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국제무대에서 북한 독재자를 인정하며 공식적으로 만났다는 점을 당연히 거세게 비판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공화당 매파 의원들이 대부분 침묵하였다. 트럼프가 같은 소속인 공화당 대통령이었기 때문이었다. 많이 회자되었듯이 이번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철수는 1975년 4월 포드 대통령 당시 미국의 베트남 철수를 떠올리게 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닉슨을 승계하여 대통령직에 오른 포드 역시 자신이 시작하지 않았던 베트남 전쟁을 끝내야 하는 숙명을 맞았다. 떠나려는 미군 헬리콥터에 올라타려던 미국 국민과 베트남 난민들의 이미지가 카불 공항과 군 수송기 등 장소와 종류만 바뀌어 재연되었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점령할 가능성은 극히 낮을 뿐만 아니라 건물 옥상에서 허둥지둥 미국민들을 아프가니스탄에서 탈출시키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 장담하던 바이든 대통령 발언은 바로 한 달 전이었다. 물론 차이점도 적지 않다. 포드의 베트남 철수 직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다소 올라간 반면 바이든은 약 20퍼센트 넘는 지지율 급락을 경험하였다. 또한,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은 공화당 대통령의 베트남 철수를 적극 지지하였다. 반면 현재 의회 소수당인 공화당은 민주당 대통령의 아프간 철군에 대해 재앙에 가깝다며 비판 공세를 퍼붓는 중이다. 트럼프와 바이든을 싸잡아 비판한 체니 의원의 지적은 일회성으로 끝났고 대신 공화당 상원 의원 두 명이 바이든의 사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공화당 소속인 하원 외교위원회 부위원장은 향후 탈레반 정권이 아직 탈출하지 못한 미국 민간인을 인질로 잡는다면 대책이 무엇인지도 추궁 중이다.    2) 미국 정치 현실과 미국 우선주의 순간(America-First Moment) 이번 철군을 계기로 재확인된 단순 사실 하나는 바이든이 예전의 상원 외교위원장 바이든이 아니라 트럼프 이후에 등장한 대통령 바이든이라는 점이다. 마치 트럼프가 온갖 비판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선거 공약을 당선 후에 철저히 지킨 근래 보기 드문 대통령이었다는 평가가 있는 것처럼 바이든 역시 미국 국민의 달라진 대외 관계 인식을 충실히 따르는 지도자로 자리 잡고 있다. 백신 접종이나, 기후 위기, 그리고 낙태 문제 등 전통적 정당 양극화 이슈는 별개로 치더라도 중국에 대한 강경한 태도, 군사적 개입에 대한 반대 등과 관련해서는 트럼프가 남겨 놓은 미국 우선주의를 순화시킨 버전으로 그대로 유지 중이다. 30세라는 젊은 나이에 상원 의원이 된 이래 바이든은 주로 남부 출신 보수파 중진 의원들에게 정치 훈련을 받으며 미국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입장을 옹호해 온 상원 외교위원장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아프간 철군 관련해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2002년 이라크 전쟁 찬성이라는 상원 표결 이후 한 동안 정치적 곤경을 치렀던 바이든이므로 군사적 개입 문제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민주당의 최대 국제 협력 관심사인 기후 위기 분야, 혹은 역대 정권이 해결 못 해온 북한 비핵화 분야 등에 있어서는 외교위원장 바이든의 사고와 레토릭이 복원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중간 선거 이전이나 이후, 혹은 다음 대선 국면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내치 성과 못지않게 외교 업적에 욕심을 낼 법하다. 바이든이 이어받은 미국 우선주의 순간에 트럼프와 공화당은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을까? 동맹을 폄하하고 방위비 분담을 요구하며 무역 재협상을 촉구했던 트럼프였지만 트럼프를 단순히 고립주의자 혹은 축소 주의자로 규정하기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임기 중 대규모로 국방 예산을 증액했다는 점이다. 사실 아들 부시 공화당 대통령의 이라크 전쟁 실패와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의 빈 라덴 사살은 기존의 공화당과 민주당 간에 존재했던 소위 ‘안보 격차’를 크게 줄여 놓았다. 안보는 공화당, 복지는 민주당이라는 오래된 공식이 상당 부분 허물어졌던 것이다. 강한 지도자 면모를 과시하려던 트럼프와 기존의 군산복합체 관계를 강화하려는 공화당의 합의된 전략이 바로 국방비 증대였다. 현재 공화당이 하원, 상원 할 것 없이 바이든 대통령의 아프간 철군 참사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쉽게 이해되는 대목이다. 사실 백신 접종이나 재난 지원금, 혹은 사회간접자본 법안 등 바이든이 집권 첫 해 추진하였던 대부분의 국내 정책은 공화당 입장에서도 대놓고 반대하기 어려운 주제들이었다. 다만 남부 국경 관리에 허점이 노출되었던 이민 이슈가 그나마 바이든을 공격할 수 있는 공화당의 소재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셜 미디어 중심으로 만천하에 공개된 아프간 철군 과정의 혼란과 테러야말로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 운영 능력과 리더십, 그리고 미국의 자존심 등을 근거로 공화당의 반격 거리가 되기에 충분하였다. 3. 아프간 철군 이후 미국 정치와 외교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다는 소식이 날아든 8월 16일 이후에야 미국 국민과 아프간 조력자들을 허둥지둥 철수시켰던 바이든 대통령은 현재 정치적 위기에 빠져있다. 물론 전임 트럼프 대통령이 탈레반과 합의하였던 올해 5월 1일 철수 날짜로 인해 지난 20년간 미국이 훈련시켰던 아프간 정부군이 이미 저항 태세와 능력을 거의 상실해 버렸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도 바이든 대통령이 미군 철수 이후 탈레반에 의한 아프가니스탄 전역 지배는 가능성이 지극히 낮을 것이라 자신했던 점은 패착이었다. 게다가 영국과 프랑스 등 동맹국들과 긴밀히 철수와 관련된 상의를 했다고 주장했지만, 당사국들은 이를 부인하며 심지어 배신감까지 느끼는 중이다. 왜 민간인 철수를 먼저 완료하고 난 후 마지막으로 군대가 빠져나오는 방식으로 진행하지 않았느냐는 바이든 친화적 매체 CNN의 앵커 질문에 블링컨 국무장관은 반복적으로 답변을 회피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미국 정보 당국의 예측 착오, 대통령의 부실한 철군 계획과 결정, 미디어를 통한 국민 설득 부족 등 아프간 철군 과정에서 드러난 바이든 행정부의 리더십 실패는 그야말로 총체적 양상이었다. 아직 아프간을 탈출하지 못하고 남아 있는 미국 국민이 만일 알케이다 테러에 희생된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아프간 악몽에서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내 델타 변이 상황은 악화일로인 데다가 8월 중 일자리 창출은 단지 25만 개에 그침으로써 70만 개 이상일 거라던 전문가들의 예측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바이든 지지율은 43퍼센트까지 추락하였고 중도층 지지율은 7월보다 10퍼센트나 줄어든 36퍼센트에 머물렀다. 전방위적 위기에 빠진 대통령을 미국 국민이 외면했던 역사적 사례는 적지 않다. 소련의 아프간 침공, 석유 파동과 경제 침체, 이란 인질 사태를 동시에 겪었던 카터 대통령이 대표적 사례다. 젊은 상원 의원 시절 이를 가까이 지켜보았던 바이든 대통령이다. 이번엔 자신에게 닥친 위기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최근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먼저 9월 9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거의 1억 명에 가까운 연방 정부 공무원들, 대기업 직원들과 보건 의료진들의 백신 의무화 계획을 천명하였다. 보수 정치인들과 일부 연방 정부 노조가 개인 권리와 자유 침해라며 즉각적으로 반발하였고 공화당 주지사들 중심의 거대한 법적 분쟁이 예상된다. 하지만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팬데믹 극복에 자신의 대통령직이 걸려 있다는 바이든의 확신을 잘 보여주는 결정이기도 하다. 다음 날인 9월 10일 바이든은 7개월 만에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전화 통화도 재개하였다. 해외 지도자와의 개인적 유대감을 유독 강조하는 바이든 스타일을 상기해 본다면 의미 있는 시점의 행보다. 또한, 이미 공화당과 합의하여 성사시킨 1조 달러 규모의 초당파적 사회간접자본 법안과 더불어 3조 5천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법안을 적정 수준으로 조정하는 선에서 통과시킬 것으로 관측된다. 결정적으로 텍사스 주지사가 서명한 초강수 낙태 금지 법안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1973년 연방 대법원의 낙태 허용 결정을 수호하려는 진보 지지층의 결집에 나설 것으로 짐작된다. 만일 현재의 국정 위기 상황을 조기에 수습하지 못한다면 중간 선거 경선이 시작되는 내년 초부터 거의 1년 내내 바이든의 지지율은 정체될 수도 있다. 역사적 경향, 선거구 재획정, 근소한 의석 수 차이라는 세 가지 불리한 상황을 동시에 극복해야 하는 민주당이 2022년 중간 선거에서 만일 하원을 공화당에 내준다면 바이든의 국내 정치는 거의 마침표를 찍게 될 공산이 크다. 물론 이를 계기로 2023년에 바이든이 대외 관계를 국정 운영의 전면에 내세우게 될 수도 있다. 미국 내부의 변화가 우리에게 미칠 다양한 유불리 가능성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4. 아프간 철군 이후와 한반도 이슈 철수 과정상의 시행착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시간이 흐르면서 다소 잊혀 진다면 아프간 철군으로 20년 전쟁을 끝낸 미국은 앞으로 어떤 국내 정치 정서 하에 어떤 대외 전략을 구축하게 될지 예측이 무성하다. 물론 대다수가 동의하는 전망은 바이든 대통령이 아프간 철군 완료 시점에서 행한 대국민 연설 내용 중 밝힌 대로 중국과 러시아를 한데 묶어 견제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강화다. 아프간이라는 밑 빠진 독에 쏟아붓던 재정과 군사력을 확보하게 된 현재 구겨진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힘의 우위를 과시하려는 동기는 충분하다. 동시에 미국 외교사의 주요 분기점인 베트남 증후군 및 이라크 증후군 그리고 이후 아프간 증후군까지 비교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베트남 증후군 경우 닉슨-포드-카터 당시의 화해(detente) 무드로 이어졌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결국 국민들의 자존심 회복과 군사력 증강에 호소한 레이건의 등장과 공화당 우위 시대가 펼쳐졌다. 이라크 증후군 역시 2008년에 발생한 최악의 금융 위기와 겹치며 이후 오바마의 “국내 건설 우선” 주장, 그리고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연결되었다. 앞으로 이라크 증후군이 아프간 증후군을 통해 더욱 강화된 결과 미국 축소주의(retrenchment)까지 끌어낼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적극적 국제주의로 방향을 다시 한 번 틀게 될 것인지 관찰해 볼 일이다. 한편 미국의 이번 아프간 철수와 한미 동맹을 관련지어 생각하는 것은 불가피할지 모르지만 실상 불필요하다. 미국은 국익에 따라 어디서든 언제든 군대를 철수하고 떠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와 주장이 사실 크게 틀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국익에 의해”라는 바로 그 조건에 비추어 볼 때 적어도 현재 한국은 아프가니스탄과 거의 정반대 경우라고 볼 수 있다. 2차 대전 이후 군사적 개입을 통한 국가 건설에 성공한 거의 유일한 사례가 바로 한국이라고 미국은 오랫동안 자부해 왔다. 작고한 맥케인(McCain) 공화당 대선 후보는 2008년 선거 캠페인 당시 미군의 이라크 주둔 필요성을 거론하며 한국을 성공 사례로 인용한 적도 있다. 다시 말해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이룬 무역 강국이자 동북아 지정학 질서 상 미국에 절대적인 우호 국가가 한국이다. 게다가 엄청난 규모의 무기 구매와 방위비 분담금을 통해 동맹으로서의 기여도 또한 크다. 미-중 갈등이 점점 기술 경쟁과 가치 규범으로 전환되어 간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도 여전히 미국에게 한국의 비중은 높다. 물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을 향한 미국의 국익이나 미국을 향한 한국의 국익이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적어도 현 시점에서 한국과 아프간을 비교하는 일은 우리에게도 미국에게도 실효성이 크지 않다. 향후 북미 관계가 이번 미국의 아프간 철군과 어떤 상관성을 가지게 될지 예측하는 일은 언제나 그렇듯 어렵다. 우선 당장은 바이든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미국 국내 현안에 집중할 가능성이 비교적 높아 보인다.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 어떤 외교 현안 경우에도 단기간에 괄목할 성과를 낼 수 있는 구도가 아니다. 더구나 현재 미국 국민들의 관심사는 온통 코로나와 경제, 그리고 백신 접종과 낙태 찬반에 쏠려 있다. 자칫하면 1차 걸프 전쟁 승리라는 대외 이슈에 집중한 나머지 급격한 경제 악화를 소홀히 했던 아버지 부시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더구나 아프간 철군 과정에서 리더십 이미지 손상을 입은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에 무언가 먼저 양보하기에는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의 협력 체제 구축, 러시아와의 갈등 관리, 이란과의 JCPOA 복원,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재개라는 굵직굵직한 외교 목표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 특히 북한 문제 경우 동맹 파트너인 한국의 내년 3월 대선 일정을 워싱턴에서는 주요 변수로 인식하는 중이다. 새로 들어선 한국 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내년 가을 쯤 북한과의 새로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전격 합의할 수만 있다면 내년 11월 8일 중간 선거를 앞둔 바이든과 민주당에게 결정적은 아닐지라도 긍정적인 성과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만일 중간 선거에서 참패한 이후 외교 문제로 돌파구를 열어 보려는 바이든 대통령이라면 국내적 이해 관계가 비교적 덜 복잡한 북한 이슈로 관심을 집중하게 될 수도 있다. 미국 역사상 1979년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 1995년 베트남과의 관계 정상화, 그리고 2015년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는 모두 중간 선거에 패배한 민주당 대통령의 업적이다. 물론 북한 경우 당장의 관계 정상화는 불가능하다. 다만 연락 사무소 상호 개설을 통한 구조적 관계 개선의 출발은 언제든 가능하다고 본다. 5. 마치며 1965년 존슨 대통령이 동남아 문제를 미국 문제(Americanization)로 만들며 확전을 결정한지 10년 후인 1975년 베트남 전쟁은 파리 조약을 통해 끝이 났다. 2003년에 시작된 이라크 전쟁은 미국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2005년을 기점으로 이라크 내부 종파 간 분쟁에 미군이 휩싸이며 악화되었고 결국 오바마 대통령이 2011년 공식 종전을 선언하였다. 2017년까지도 이라크 전쟁의 여파가 지속되기도 하였다. 이에 비해 2001년 9/11 테러 당시 알카에다를 숨겨준 혐의로 탈레반 통치 하의 아프가니스탄을 미국이 침공한 이래 정확히 20년 동안 아프간 전쟁은 이어졌다.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전쟁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그 철군 과정에서의 혼란상 역시 상상 이상이었다. 미국 대통령 바이든은 리더십에 상처를 입었고 아프간의 향후 행보에 중국은 긴장하고 있는 중이다. 국가 건설이나 정권 교체를 위한 미국의 군사력 사용은 앞으로 상당 기간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평화 건설(peace-building)을 위한 미국의 동기와 역할에 대한 평가 절하는 시기상조다. 오히려 임기 중 외교적 성과를 내야만 한다는 정치적 압박감이 그 동안 갇혀 있던 바이든 대통령의 정치적 상상력을 일깨울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 정치와 국제 정세가 크게 변화 중이다. 특히 미국 내부와 국제 사회가 서로 변화시키고 변화되는 상황에 대한 종합적 분석과 적극적 대응이 앞으로 더욱 필요하다.

기획: 임해용 연구위원 편집: 김소연 보조원

저자소개 서정건 교수는 현재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미국 정치와 외교 정책, 정치 제도 등을 강의 및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에서 미국 의회 정치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윌밍턴) 교수(2007-2012)와 우드로우 윌슨 센터 풀브라이트 펠로우(2019)를 지냈다. 대표 저서로 <미국 정치가 국제 이슈를 만날 때, 단독(2019)>와 <미국 정치와 동아시아 외교정책, 공저(2017)>이 있고 모두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도서로 선정된 바 있다. 이외에 “The China Card: Playing Politics with Sino-American Relations,” “Wedge Issue Dynamics and Party Position Shifts: Chinese Exclusion Debates in the post-Reconstruction U.S. Congress, 1879-1882,” “미국 국내 정치와 북한 비핵화 이슈,” “트럼프 행정부와 미국 외교의 잭슨주의 전환” 등 다수의 논문을 출간하였다. 현재 통일부와 민주평통 정책자문위원, 한국연구재단 책임전문위원, KBS 객원해설위원 등을 맡고 있으며 미국정치연구회장(2020년)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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