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PI PeaceNet] 한국의 다자안보협의체 추진전략: 제32차 NEACD와 제21차 샹그리라대화에 다녀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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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 註]
제32차 동북아안보협력회의(NEACD): 5월8일-10일, 일본 도쿄 NEACD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이고 분교의 세계분쟁 및 협력연구소(Institute on Global Conflict and Cooperation, IGCC)가 1993년부터 미 국무부의 지원을 받아 남북한 및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외교와 국방 당국자, 그리고 민간 연구자를 초빙하여 주로 북한 핵문제 등 동북아의 안보현안을 논의해온 트랙 1.5 레벨의 다자간 안보협의체이다. 매년 개최 장소를 달리해온 NEACD는 올해의 경우 주최측인 캘리포니아 대학의 스테픈 해거드(Stephan Haggard) 교수 등이 일본 게이오대학의 진보 켄(Jimbo Ken) 교수 등과 협력하여 도쿄 롯본기의 국제문화회관을 회의장으로 삼아 개최되었다. 1.5 트랙의 안보대화답게 올해에도 미국에서는 국무부의 동아태 부차관보와 한반도 담당 국장, 인도-태평양 사령부의 부사령관 등이 참석하였고, 중국에서는 외교부의 한반도 담당 특별대표, 칭화대학 국제안보전략연구소 소장 등이, 일본에서는 외무성의 아태지역 담당 심의관과 방위성의 국제정책국장이, 한국에서도 외교부의 담당 국장 등이 각국 민간 연구자들과 함께 회의 기간 내내 발표와 토론에 적극 참가하였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루고 있는 러시아에서도 정부 관료들은 불참하였으나 민간 연구자들이 현장에 참석하거나 모스크바와 연결된 화상을 통해 참가하기도 하였다. 다만, 2002년의 제13차 회의 때부터 김계관 외무성 부상 등이 줄곧 참석했다고 하는 북한은 언제부터인가 대표단을 보내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런 때문인지 회의 기간 내내 각국 참가자들은 지금은 북한 외상이 된 최선희 당시 외무성 국장에 관한 기억들을 소환하기도 하였다. NEACD는 본회의(Plenary Meeting)와 국방정보공유회의(Defense Information Sharing Meeting)로 구성된다. 첫날 오전에 개최된 국방정보공유회의에는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로 각국 정부 인사들이 참가하여, 각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국방정책에 관한 중요 현안들에 대해 설명하고 논의하였다고 전해진다. 우리 국방부는 별도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았으나, 외교부의 담당 국장이나 국방연구원 출신 연구자들이 한국 국방정책의 개요를 설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 일행은 첫날 오후에 개최된 본회의부터 참석하였다. 첫날 본회의는 2개의 세션으로 나뉘어 각각 미일동맹 및 한미일 협력, 중국의 국방정책 등에 대한 패널리스트들의 발표와 그에 대한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둘째 날인 5월 9일 오전과 오후에 걸쳐 진행된 본회의에서도 주최국 일본의 안보정책, 글로벌 안보질서 변화와 동북아 안보질서에의 영향, 경제안보 이슈 등의 주제로 세션별 패널리스트들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셋째 날인 5월 10일 오전에도 미중 관계와 한반도 문제 등에 대한 본회의 세션들이 진행되었다. 채텀하우스 규칙(Chatham House Rule)에 따라 발표자들의 구체적인 성명은 밝힐 수 없으나, 미국측 참가자들은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의 안보확보를 위해 쿼드를 결성하였고, 아세안 국가들의 안보를 지원하고, 인도-태평양 지역과 유럽을 연결하는 안보체제를 구축하고 있음을 설명하였다. 주일미군 사령부 관계자도 참석하여 미일동맹의 지휘구조와 주일미군의 일본내 역할을 부연 설명하기도 하였다. 일본 참가자들은 2022년에 책정된 일본의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서 내용들을 소개하면서, 이같은 전략기조에 따라 자위대 통합사령부 신설이 추진되고 있고, 미일동맹 간에도 새로운 지휘구조가 논의되고 있음을 소개하였다. 미일동맹이 우주 및 사이버 영역에까지 협력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고, 지역적으로도 미일동맹을 토대로 한미일, 미일호, 미일필 등 소다자 안보협력이 추진되고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한국측 발표자는 캠프 데이비드 협정 이후 한미일 안보협력이 추진되면서 미사일 방어나 정보공유, 우주 및 사이버 분야에서의 협력 뿐만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Global Supply Chain) 분야에서도 3국간 협력이 추진되고 있음을 소개하였다. 향후에는 한일간 군수지원협정의 체결이나 역사 및 영토문제에 대한 갈등 극복이 과제가 될 것이라는 견해도 추가되었다. 중국측 참가자들은 미국과는 다른 관점에서 아태지역 안보정세와 자국 안보정책에 대해 설명하였다. 중국측은 아태지역 안보정세가 유럽의 나토동맹과 같은 미국 중심의 안보체제 구축, 그리고 군사훈련 증대 등에 의해 블럭화가 대두하고 있고, 제2차 냉전적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럼에도 중국은 일관되게 평화주의적 정책을 견지하고 있으며, 미국과도 상호존중이나 평화공존의 원칙에 따라 관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중국측 발표에 대해 미국측 민간 참석자들로부터는 미중관계 경색이 미국의 국익 입장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며, 미중 상호 간에 위협론 불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러시아측 참석자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었다. 미국측 참가자는 우크라이나 전쟁 과정에서 러시아와 북한 간의 군사협력 증대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필자도 러시아측 참가자에게 우크라이나 전쟁 과정에서 러시아 측이 벨라루스에 대한 전술핵 재배치를 단행하거나 미국과 체결하였던 뉴스타트 조약을(New START Treaty) 탈퇴하는 등의 움직임이 국제 핵질서를 불안케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측 참석자는 자신들은 나토의 공격 가능성에 대응하여 전술핵을 재배치한 것 뿐이며, 공격적 핵전략의 논의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기본적으로 기존 핵전략의 변화는 없다는 설명을 해주었다. 북한 대표가 직접 참석하지 않았으나 중국과 러시아 참석자들은 나름대로 북한의 입장을 설명하려 하였다. 러시아측 참석자는 평양에 신도시가 건설되는 등 나름대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미국과 한국의 동맹 강화에 반응하여 북한이 공세적 대남정책과 군사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고 진단하였다. 중국측 참석자도 북한이 신냉전 인식 하에 현재 국제상황을 파악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대응으로 러시아와의 협력 강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이에 대해 미국측 참석자로부터 북한에 대한 관여 정책을 미 행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다는 부연 설명이 제시되기도 했다. 도쿄에서 개최된 NEACD 회의에 대해 일본 정부 차원에서도 깊은 관심을 갖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회의 기간 내내 일본 외무성과 방위성의 담당 국장들이 참석하여 발표와 토론에 임하였고, 둘째 날 전체회의 점심 시간에는 외무성의 후나코시 다케히로(Funakoshi Takehiro) 사무차관이 일본식 도시락으로 오찬을 제공하면서 일본 외교에 대한 기조연설을 행했다. 후나고시 사무차관은 자신도 국장 시절 NEACD에 몇 번인가 참가하여 발표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 회의의 중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개인적 소회를 밝히기도 하였다. 회의 종료 이후에는 외무성의 정무관으로 재임하고 있는 후카자와 요이치(Yoichi Fukazawa) 일본 중의원 의원이 참가자 전원을 외무성의 이이쿠라 공관으로 초대하여 만찬을 제공해 주었다. NEACD 회의의 각국별 정부측 참가자들은 직책 변화에 따라 매년 달라질 수 있으나, 민간 참가자들은 큰 변화없이 같은 멤버들이 지속적으로 참석한다고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국적을 떠나 상호 간에 우정이 생기게 되고, 발표와 토론에서도 격의 없는 의견 교환이 가능해진다고 하였다. 민간 주도의 NEACD가 30여 년간 지속되면서 각국 간의 솔직한 의견교환의 장으로 자리매김해 온 이유가 이런 점들에 있지 않았을까 한다. 제21차 샹그리라 대화(Shangri-La Dialogue): 6월1일-2일,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 약칭 샹그리라 대화는 2002년부터 매년 각국 국방장관급 인사들의 참석 하에 싱가포르에서 개최되고 있는 트랙 1 레벨의 다자간 안보협의체이다. 개최 장소인 샹그리라 호텔명을 따라 샹그리라 대화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샹그리라 대화는 영국의 대표적인 국제안보분야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 IISS)의 존 치프먼(John Chipman) 이사장의 착상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1994년부터 아시아 지역에서 최초로 태동한 아세안지역포럼(ASEAN Regional Forum, ARF)이 주로 각국 외교장관들의 참석하에 개최되고 있는 것을 관찰하면서, ARF 회원국들의 국방분야 각료들이 참석하는 다자간 협의체의 새로운 창설을 구상하였다. 이같은 구상을 당시 싱가포르 정부가 적극 수용하면서, 2002년부터 제1회 아시아안보회의가 샹그리라 호텔에서 개최되기 시작했다. 2007년부터는 중국 국방부도 대표단을 파견하기 시작하여,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에서도 샹그리라 대화는 매년 미국과 중국의 국방부 수장이 상호 협의를 나누는 무대가 되어 왔다. 국방장관급 인사 뿐만 아니라 2009년의 호주 케빈 러드(Kevin Rudd) 수상을 비롯하여, 2010년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 2014년 일본의 아베 신조(Shinzo Abe) 수상 등이 참석하여 기조연설을 하는 등 샹그리라 대화는 각국 정상들도 빈번하게 찾는 아태지역 대표적인 트랙 1의 다자안보협의체로서의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최근 중국 국방부장에 취임한 동준 해군 제독은 둘째 날 패널 발표를 통해 최근 국제정세가 패권경쟁 및 강대국간 권력정치의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중국은 패권을 추구하지 않고, 방어적 국방정책 하에 포괄적 협력안보 정책을 견지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런 기조에서 미국에 대해서도 교류와 협력을 추구하고 대립을 회피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대만은 중국의 핵심적 이익에 속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아태 지역 국가들의 전략적 자율성 추구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중국 국방부장의 발표에 대해서는 플로어에서 비판적 질문들이 제기되었다. 미국 카네기 연구소의 이정민 박사는 중국의 사이버 공격이나 인권침해 등의 행동은 국방부장이 표명한 말과 다르다고 지적하면서, 중국의 공식적 입장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론하였다. 한편 인도네시아 수비안토 국방장관은 차기 대통령 당선자이기도 해서 단독 패널에서의 프리젠테이션 기회가 부여되었다. 그는 대화와 협력은 중요한 안보의 수단이라고 전제하면서, 이러한 기조에서 인도네시아가 비동맹 정책을 견지하면서 주변국들과 양호한 관계를 구축할 것이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에 대해서도 외교적 대화 추진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말레이시아 국방장관도 미중간의 전략적 경쟁 국면에서 자신들은 특정 국가의 편을 들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싱가포르 국방장관도 대화가 중요한 안보정책임을 강조하면서, 싱가포르는 미국과 맺은 조약은 유지하지만, 중국을 적대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설명하였다. 마지막으로 연단에 오른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전쟁 과정에서 2만 여명의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이 납치되었음을 밝히면서 상대적 약소국의 입장에서 강대국과 전쟁을 치루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는 점을 호소하였다. 그러면서 스위스에서 개최예정인 국제평화회의에서 각국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플로어를 가득 채운 각국의 민간 전문가들이 뜨거운 박수로서 러시아의 침공에 대항하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성원의 뜻을 밝히는 가운데, 샹그리라 대화가 역사적인 막을 내렸다. ‘제2차 냉전시대’적 상황에서 다자간 안보협의체가 갖는 의의 국제안보문제 연구자들은 크게 현실주의 성향과 자유주의 성향, 혹은 전통적 성향과 비전통적 성향의 연구자들로 대별된다. 현실주의 혹은 전통적 성향의 연구자들은 적대국들에 대응하여 자국의 군사력 증강이나 동맹 체결을 중요한 안보정책 수단으로 간주한다. 반면 자유주의적 혹은 비전통적 성향의 안보연구자들은 잠재적 적대국까지 포함한 다자적 제도의 형성과 규범 창출을 중요한 안보정책 수단으로 인식해 왔다.1) 이번에 필자가 참가한 NEACD와 샹그리라 대화 같은 다자간 안보협의체는 특히 자유주의 혹은 비전통적 성향의 국제안보 연구자들이 공동안보 또는 협력안보 개념을 제기하면서 중시해온 안보정책의 수단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다자적 안보협의체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형성된 것은 미소 간의 냉전적 대립이 해소된 1990년대 이후의 일이다. 미소 냉전체제가 해체된 이후 아시아의 정치가들과 연구자들은 냉전기의 미소 대립 완화에 큰 역할을 하였던 유럽안보협력회의(Conference on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 CSCE)와 같은 다자간 안보협의체가 동아시아 및 아태지역에는 부재한 현실에 주목하였다. 냉전기에 유럽의 나토(NATO) 조약 소속 국가들과 바르샤바 조약(Warsaw Pact) 가맹 국가들이 함께 참가하여 상호 군사정보를 공유하고 신뢰구축을 도모하였던 CSCE와 같은 다자간 안보협의체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도 설치되어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남북한 간의 상호 불신과 대립 가능성을 낮추고 신뢰와 협력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2)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1994년 아태지역 주요 국가들의 외교부처 장관들이 정례적으로 참가하는 아세안지역포럼(ARF)이 트랙 1의 다자간 안보협의체로 결성되었고, 같은 시기에 민간 전문가를 포함한 트랙 1.5 레벨의 다자간 안보협의체로서 NEACD가 태동한 것이다. 그리고 2002년부터는 각국 국방 관련 장차관급 다자간 협의체로서 ‘샹그리라대화’가 발족되었다. 이같은 다자간 안보협의체는 비슷한 시기에 가동되기 시작한 아세안+3 회의체, APEC, CSCAP 등과 더불어 탈냉전의 시대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각국들이 공동으로 참가하여 상호 정책방향과 인식을 공유하고, 신뢰를 구축하면서 상호협력을 도모하는 제도적 토대가 되어 왔다. 1990년대 초반, 미소 냉전체제의 와해와 더불어 전개된 탈냉전기의 시대에 영토와 역사, 지정학적 측면에서 대립의 잠재성을 내포하고 있던 역내 국가들이 그나마 상호 대립을 회피하고 안정된 질서를 형성하게 된 근저에는 이같은 다자간 안보협의체들의 존재와 역할이 어느 정도 작용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2010년대 중반부터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적 경쟁 국면이 전개되고, 특히 2014년의 크림 반도 침공과 2022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미국과 러시아 간에도 군사적 대립이 노정되면서, 국제질서가 제2차 냉전의 구도로 긴장 국면을 재조성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3) 이같은 제2차 냉전시대적 상황 하에서 개별 국가들은 잠재적 적대국들을 포함한 다자안보협의체에서의 대화보다는, 직접적 군사지원을 해 줄 수 있는 동맹국들과의 협력 강화나 유사입장국가(like-minded countries)들과의 네트워크 확대를 안보정책의 주요 수단으로 선택하게 된다. 이같은 안보정책 선택이 불가피한 점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자간 안보협의체가 제공할 수 있는 안보정책적 효과를 도외시해선 안될 것이다. 제2차 냉전시대적 상황에서의 다자간 안보협의체에서는 이번의 NEACD 회의나 샹그리라 대화에서 나타났던 것처럼 전략적 경쟁에 참여하는 국가들 사이에 전략적 상황에 대한 이견도 노출되고, 여타 국가들도 불가피하게 선택을 강요당하는 국면도 나타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재적 적대국들과도 상호 대화를 지속하고 협력의 채널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안보상황의 파국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하다. 잠재적 적대국들이 이같은 다자간 안보협의체 참가 없이 상호 고립으로 치닫고 대립을 격화시키는 것이 안보적으로나, 외교적으로 더욱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4)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의 안보와 외교정책은 국제정세의 불안정화, 그리고 북한의 핵전략 증대와 공세적 전략 노골화 속에서도 다자간 안보협의체에 대한 적극적 관여를 지속할 필요가 있고, 북한 등의 참가를 인내심 있게 기다릴 필요가 있다. ‘글로벌 중추국가’가 추구해야 할 다자간 안보대화 전략 한국도 다자간 안보협의체가 갖는 안보적, 외교적 의의에 대해 인식하면서, 타국에서 개최되는 회의에 적극 참가해 왔을 뿐 아니라, 우리 나름의 다자간 안보협의체 플렛폼도 구축해 왔다. 2001년부터 제주평화연구원이 주관하고 있는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 그리고 2012년부터 국방부 주관으로 개최되고 있는 서울안보대화(SDD)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플랫폼들은 샹그리라 대화 등이 국제안정의 중재자로서 싱가포르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해 왔듯이, 한반도 및 인태지역 평화와 안정의 주도국가로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필자가 NEACD나 샹그리라 대화에 직접 참여한 소감을 바탕으로 볼 때, 이러한 플랫폼들이 지역 안보의 공공재로써 보다 많은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고려 사항들이 필요할 듯 하다. 첫째, 한국의 안보와 외교정책이 어떠한 철학과 원칙을 바탕으로 추진되고 있는가에 관한 일관되고 체계적인 논리의 틀이 필요하다. NEACD나 샹그리라대화에서 접한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의 발표는, 타국의 공감을 얻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비교적 일관된 논리체계에 입각해 있었다. 중국의 경우에는 자신들이 패권을 추구하고 있지 않고, 대외적으로 평화공존의 원칙을 지향하지만, 핵심 이익은 견지할 것이라고 하는 메시지가 도쿄에서나 싱가포르에서나 일관되게 발신되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에도 수년 전 자카르타를 방문했을 때 현지 당국자들로부터 들었던 설명이나, 이번 샹그리라 대화에서 인도네시아 국방장관이 행한 프리젠테이션이 비교적 일관된 메시지를 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미중 전략적 경쟁 국면에서 자신들은 어느 한편에 가담하지 않으면서, 대화를 통해 주변국들과 협력적 관계를 구축한다고 하는 외교정책적 입장이 수미일관되게 표명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우리의 경우에는 정권의 변화에 따라 국제무대에서 우리의 안보나 외교정책에 대한 설명이 일관성을 갖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어 왔다. 예컨대 올해 샹그리라대화에서 신원식 국방장관의 프리젠테이션은 미국이나 일본의 그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으나, 이전 정부의 시기에는 동맹국 미국과의 차이점도 적지 않게 드러난 바가 있었다고 전해진다.5) 따라서 글로벌 중추국가 위상을 가진 한국의 외교와 안보정책이 정권의 변화에 무관하게 대외적으로 일관성 있는 원칙 하에 추진되고 있음을 설득력있게 설명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노력이 경주될 필요가 있다. 둘째, 다자간 안보협의체에의 적극 참가가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일 뿐 아니라, 우리의 대외정책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좋은 방책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외교와 국방당국, 나아가 대통령실이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올해 NEACD 회의의 경우 일본은 외무성과 방위성이 적극 참가했을 뿐 아니라, 오찬과 만찬을 준비해 주었다. 샹그리라대화의 경우에 싱가포르 국방장관 뿐 아니라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참가자들에 대한 배려를 보여주었다. 우리의 경우에는 영어로 진행되는 회의에 대한 부담이 있어서인지, 정책당국에 따라 참가가 소극적인 경우가 있다. ‘글로벌 중추국가’를 표방한 만큼 부처를 가리지 않고 국제회의에서의 발신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2025년 샹그리라 대화에는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서 한국의 안보 및 국방정책을 각국 주요 각료들에게 설명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셋째, 북한이 최근 수년 동안 NEACD나 ARF 국방대 총장회의 등 역내의 다자간 안보협의체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 사실을 시정할 필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등의 사례에서 보듯, 개별 국가들이 국제무대에서 고립될 경우, 예측 곤란한 대외정책을 선택할 위험성이 적지 않다. 공세적 대외정책을 전개하는 북한에 대해 인내심을 갖고, 국제무대와 다자간 회의체제에 유도하려는 다각적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다. 넷째, 국내에서 개최되는 제주 포럼과 서울안보대화가 여타 다자안보협의체 이상으로 한국 외교안보정책 추진에 중요한 플랫폼이라는 점을 정부나 지자체가 공동으로 인식해야 한다. 체제나 이념을 달리하는 국가들에게도 폭넓게 문호를 개방하고, 상호 추진하는 정책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회의의 의제 설정이나 진행 방식 등에서 우리의 정책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고, 한국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려는 다각적인 접근이 강구될 필요가 있다. ---------------------------------------------------------------------------------------- 1) 이신화, “비전통안보와 동북아 지역협력,” 『한국정치학회보』 제42집 2호 (2008), pp. 411-434 참조. 山本吉宣,「地域統合理論と東アジア共同体」毛里和子 編『東アジア共同体の構築1:新たな地域形成』(岩波書店,2007)도 참조.2) 이에 관한 당시 한국 연구로는 홍규덕,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관련국들의 전략과 대응책”,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체제』 (한국전략문제연구소, 1994), 일본 연구로는 西原正「アジア․太平洋地域と多國間安全保障協力の椊組み:ASEAN地域フォーラムを中心に」 『國際問題』 415 (1994) 참조.3) 이에 대해서는 필자의 다음 논문들 참조. “미중간 전략적 경쟁과 한반도 주변지역 군사분쟁 전망,” 『국가전략』 제28권 1호 (2022), pp. 33-5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동아시아 안보질서에의 영향: 제2차 냉전시대의 서막,” 『원광 군사논단』 제17호 (2022).4) 그런 점에서 북한이 NEACD 등의 다자간 안보협의체에서 이탈하는 것은 우려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박영준, “남북 무합의 시대의 안보전략”. 『세계일보』 2024년 6월 9일, https://www.segye.com/newsView/20240609507476.5) 정은숙 박사는 2019년 샹그리라 대화에서 한국 국방장관이 북한 핵문제나 미사일 위협에 대해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아, 미국의 그것과 차이를 드러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정은숙, “제18차 샹그릴라대화: 미중 갈등과 아시아 안보,” 『정세와 정책』 2019년 제9호 (2019년 6월 18일).
편집 : 김수연 연구원 박영준 (국방대학교 국가안보문제연구소장) 현재 국방대학교 안보대학원 교수 겸 부설 국가안보문제연구소 소장. 일본 도쿄대학에서 박사 학위 취득 이후 국방대학교 교수에 임용되어 국가안보론, 일본군사론, 동북아 국제관계, 전쟁과 평화 등의 주제에 대한 연구와 강의를 해 왔고, 미국 하버드대학의 Progam on US-Japan Relations의 방문학자로서 미일동맹에 대해서도 연구를 수행했다. 박사논문을 번역한 『해군의 탄생과 근대 일본』 (2014)을 포함해 『제3의 일본』 (2008), 『한국 국가안보전략의 전개와 과제』 (2017), 『제국 일본의 전쟁, 1868-1945』 (2021) 등의 단독저서와 다수의 연구논문을 발표하였다. 매일경제, 중앙선데이, 한국일보, 헤럴드경제, 세계일보, 문화일보 등에 국제안보관련 칼럼을 집필해 왔으며, 대통령실 국가안보회의, 외교부, 국방부의 정책자문위원, 통일부의 통일미래기획위원, 육해공군 및 해병대의 정책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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