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PI PeaceNet] 미 대선 이후 한일 안보협력 방향 |
|
|
[기획자 註] 한일 관계 개선은 윤석열 정부의 대표적인 외교 목표이자 성과로 꼽힌다. 한일 정상간 셔틀외교 복원, 그리고 2023년 8월에 개최된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는 한일 협력을 크게 강화하는 데에 기여했다. 이러한 모멘텀을 미국 대통령 선거와 트럼프 대통령의 재당선 이후 유지시키는 것이 향후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주평화연구원은 국방대 국가안전보 장문제연구소(RINSA) 주최 <2024 한일안보대화>에서 조은일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이 발표한 내용을 JPI PeaceNet으로 아래와 같이 발간한다.1) [기획: 강영훈 제주평화연구원 원장(yhkang@jpi.or.kr)] I. 배경 한국 윤석열 정부가 임기를 시작하면서 이전 정부와는 대비되는 대외정책이 강조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대일정책, 즉 한일관계이다. 한일 양국의 갈등이 고조되는 사건은 역사, 경제,국방,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있었고, 그 기간도 지난 10년 이상을 거슬러가고 있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는 순환되며 어느 한쪽이 먼저 끊어낼 동인을 갖지 못했다. 다시 말해 관계를 개선하거나 정상화하는 정책을 제시하는 게 대외적으로는 외교적 비용, 대내적으로는 정치적 비용이 컸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한일관계는 한미관계와 함께 냉전기부터 한국의 대외정책 및 안보협력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해왔다. 탈냉전과 중국의 부상 그리고 미중 경쟁 시대를 거치면서 한일 간에는 북핵 위협을 해소하기 위한 협력의 필요성이 실질적으로 제기되었고, 중국의 공세적 부상이 지역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도 진행될 필요가 있었다. 이는 관계 악화에도 불구하고 전략적 차원에서 한일 간 안보협력의 필요성이 계속해서 존재해왔다고 이해할 수 있다.2) 한편 한국의 입장에서 한일관계는 다른 대외관계와 다른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역사는 한국이 일본을 관념과 국내정치를 고려하지 않고 바라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따라서 양국이 논의해야 하는 의제에 따라서는 비합리성이나 제한된 합리성이 작동해서협력을 어렵게 하는 경우도 존재했다.3) 이러한 한일관계의 양면적 특징은 한일 안보협력도다양한 안보협력 중 하나의 사례라기보다는 관계적 특수성이 강조되도록 하는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에서 보면 윤석열 정부의 대일정책은 한일 간 특수성을 완화하고 보편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윤 대통령은 2023년 3월 3.1절 기념식 축사에서 “3.1운동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협력 파트너로 변했습니다. 특히, 복합 위기와 심각한 북핵 위협 등 한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미일 3자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우리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하고 협력해서 우리와 세계시민의 자유 확대와 공동 번영에 책임있는 기여를 해야 합니다.”라고 언급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4) 윤 대통령은 일본을 ‘협력 파트너’로 규정하면서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변화했다고 강조했다. 군국주의 침략자는 한일 관계의 역사적 특수성이 반영된 일본에 대한 규정이라면, 협력 파트너는 국가이익과 전략에 따라 협력이 가능한 대상 중 하나로 일본을 재인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한일관계의 정체를 개선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지로도 읽히는데 실제로 3.1절 기념식 축사는 윤석열 정부의 대일관계가 이전 정부의 정책적 방향에서 전환하는 것을 보여주는 기점이 되었다.5) 3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고, 한일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한국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서 정상회담을 개최한 것은 2011년 이래 12년 만에 처음이었다. 한일 정상회의 이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은 자유, 인권, 법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 경제, 글로벌 어젠다에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협력해야 할 파트너입니다.”라고 발언했다.6) 3.1절 기념식 축사와 동일한 인식에 기반한 발언으로 일본에 대한 보편적 접근을 부각시키는 언급이었다. 이후 5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의 방한이 성사되면서 셔틀외교가 복원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로써 한일 양국은 갈등이 상시화된 국면을 전환해서 고위급 인사가 상호 교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 II. 한일 안보관계의 변화 거시적 관점에서 한일관계의 전반을 살펴보면 앞서 언급한대로 상당한 부침을 겪다가 전환점을 마련했다고 이해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앵글을 바꿔서 , 안보 분야에 특정해서 한일관계를 살펴본다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한일 안보관계는 탈냉전 이후 본격화되었다. 냉전기 공식적인 한일 안보관계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에 따른 국교정상화 이후 시작되었다. 그러나 비공식적인 한일 안보관계는 한국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일본에 위치해 있던 미 극동군사령부의 군사활동을 일본이 지원하면서부터 간접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후 일본에 유엔군 사령부가 창설되고, 한국전쟁 이후 정전상태를 관리하기 위해 한국으로 본부를 옮기고 일본에는 유엔군 사령부 후방기지를 설치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미국을 매개로 방공협력을 추구하는 안보관계가 형성되었다. 1970년을 전후해 미국이 오키나와 시정권을 일본에 반환하고 아시아 전략을 변화시키며 미일간 한반도 유사에 대한 일정 합의(‘한국조항’)가 이루어지고,7) 1980년대 일본의 대한 경제원조가 실현되면서 경제협력으로 한일관계가 강화되었다.8) 냉전기 반공논리를 매개로 협력을 강조한 한일 안보관계는 탈냉전에 들어 민주화의 물결을 거치며 새로운 전개를 맞이했다. 민주화와 세계화는 한일 간 정치경제체제의 유사성을 돋보이게 했으며, 양국이 보다 보편적 가치관을 공유하게 되는 시대적 배경이 되었다.9) 이러한 변화는 최근 윤석열-기시다 시기 한일관계의 협력적 측면이 강조된 것과 유사하다. 한국은『1992-93 국방백서』에서, 일본은 『1991 방위백서』에서 한일 안보협력을 발전시켜나가는 정책방향을 설명했고, 1994년 4월 한국 이병태 국방장관과 일본 아이치 가즈오 방위청 장관이 첫 국방장관회담을 개최하고 국방교류를 공식화했다. 그리고 1998년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서 한국 김대중 대통령과 일본 오부치 게이조 총리는 “양국 간 안보정책협의회 및 각급차원의 방위교류를 환영하고 이를 더욱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고 확인했다. 이를 통해 한일안보협력의 기본원칙을 정했는데 첫째, 한일 안보협의체를 운영하고, 둘째, 국방교류를 증진하며, 셋째, 대북정책에서 한미일 공조를 강화한다는 것이다.10) 1998년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 이루어졌지만 이후 한일 안보관계의 전개를 돌이켜보면 선언의 내용이 실현되었다기 보다는 여전히 그러한 원칙을 실현하고자 하는 정책적 의지가 남아있을 뿐이었다. 2000년대에 한일 간 국방인사 . 교류, 부대교류, 정례적 정보교환, 공동훈련 실시 등 낮은 수준의 안보협력이 진행되었고, 2009년 한일국방장관 회담에서 「한일 국방 교류에 관한 의향서」가 서명되었다. 의향서 교환으로 제도화된 한일 안보협력을 논의하고자 했지만 2010년 이후 한일 안보관계는 상당한 부침을 겪게 되었다. 나아가 한일관계의 특수성인 역사 문제에 대한 양국 간 갈등이 외교적으로 해소되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분야로 영향을 미치며 전반적으로 한일관계가 침체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한일관계 침체에 있어 주목할 만한 사례가 한일 군사정보교류협정(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 GSOMIA) 체결부터 연장종료 결정까지의 과정이다. GSOMIA를 사례로 본 한일 안보관계는 크게 세 가지 시기로 나눌 수 있다.11) 첫 번째는 GSOMIA 체결 실패 시기이다. 한일 국방장관은 2011년 회담에서 GSOMIA를 체결할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2012년 6월 체결을 목표로 협의에 들어갔다.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이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상황에서 일본과의 안보협력에 부정적인 한국 여론이 강했다. 그러나 당시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군사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GSOMIA 체결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이를 국무회의에서 상정해서 추진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국회 내 협의를 건너뛰고 정부 간 협약으로 체결하고자 했던 초기의 시도는 밀실 추진이라는 반대에 부딪쳐 체결을 연기하고 결국 협정 자체가 무산되었다. 대신 이러한 정보 공유의 부재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미국이 한국과 일본의 정보 공유를 중간에서 연결하는 약정을 추진했다. 2014년 12월 한미일 국방부는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관한 삼자 정보 공유 약정(Trilateral Information Sharing Agreement, TISA)」를 체결했다. 이는 한미 정보공유협정과 미일 정보공유협정에 각각 기반해 정보를 교환하고 이를 미국을 중개로 상호 공유한다는 삼자 관계의 구축을 의미했다. 또한, 약정국에 어떠한 법적 의무도 부과하지 않는 느슨한 형태의 제도화였기 때문에 역사 문제로 인한 갈등을 일정 부분 단절할 수 있는 우회적 방안이기도 했다. 둘째, GSOMIA의 재등장 시기이다. 2016년 1월 북한이 네 번째 핵실험을 하면서 북한 핵 위협을 억제하기 위한 국제적 압박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북핵 위협대응을 위한 한미일 공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일 안보관계의 재설정을 유도했다. 2016년 3월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3자 협력이 강화돼야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할 수 있고 북한의 핵확산과 핵 위협을 억제할 수 있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입장이 제시되었다. 같은 해 9월 라오스에서 개최된 ASEAN 정상회의를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 간 정상회담이 개최되었고 GSOMIA 체결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그리고 실무회의를 거쳐 11월 한국 국방부에서 한일 간 GSOMIA 체결이 완료되었다. 2012년과 마찬가지로 국회 논의는 거치지 않았는데 2016년은 국정농단 문제로 국내 관심이 몰리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GSOMIA 체결에 국내 여론이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셋째 갈등 확대 시기이다 체결을 계기로 , GSOMIA . GSOMIA 한일 정보 공유는 제도화되었는데 이와는 별개로 한일관계는 상당한 부침을 겪었다. 2015년 12월 일본군 위안부 합의가 타결되었지만 잘못된 협상 과정이 문제가 되어 오히려 한일 간 외교적 갈등을 부추기게 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 합의 내용에 대한 재검토 및 회해치유재단 해산을 결정했다. 그리고 2018년 10월 한국 사법부가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확정 판결하면서 일본 정부가 반발함에 따라 한일관계는 교착에 빠졌다. 외교적 갈등은 군사 분야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같은 해 11월 제주 국제관함식에 초청되었던 해상자위대가 욱일기를 게양하고 입항하려고 하자 이는 곤란하다는 해군의 입장 전달에 따라 관함식에 불참하게 되었다. 그리고 12월부터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가 저공비행으로 한국 해군 군함을 위협하는 사건이 4차례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갈등이 복합적으로 얽히던 중 2019년 7월 일본 경제산업성은 특정 3개 품목에 대한 대한 수출규제를 조치하고 한국의 수출 관리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했다. 그 과정에서 신뢰 훼손을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응한 한국 정부는 신뢰 훼손과 GSOMIA 연장 여부를 연계시켜, 신뢰가 결여된 국가와의 정보 공유는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같은 해 8월 GSOMIA 연장 종료를 발표했다. 한국 정부의 발표에 일본은 크게 반발했고, 미국도 고위급 인사들이 인터뷰 등을 통해 직접적으로 우려를 드러냈다. 한일 GSOMIA 연장 종료가 갖는 의미는 한일관계에 머무르지 않고 한미 및 한미일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맥락이었다. 2019년 11월 당시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의 방한 및 ASEAN 확대국방장관회의 참석, 미 상원의 GSOMIA 연장 촉구 결의 채택 등이 이어지면서 미국의 관여를 통한 한일 갈등이 봉합되었다. 이와 같이 GSOMIA 사례는 한일 안보관계의 10년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인데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첫째,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의 내용을 실현하는게 실질적으로 쉽지 않은 과제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는 안보협의체를 운영하고 국방교류를 증진하며 한미일 간 대북정책 공조를 강화한다는 세 가지 원칙이 포함되었다. 세 가지 원칙이 단순해 보이지만 정부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지속해서 실현할 수 있을 정도로 제도화를 통해 협의를 계속하는 게 현실정치에서 지도자들에게 부담과 비용으로 작용한 것을 알 수 있다. GSOMIA는 정례적인 안보협의를 위해서는 양국이 정보를 공유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으로서 기능하는데 이러한 기능적 접근도 한일관계가 갈등 국면에 있을 때는 유지하는 비용보다 철회하는 비용이 낮다고 판단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둘째, 한일 안보관계에 국내여론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에 대한 과제이다. GSOMIA 사례를 보면 2012년과 2016년 모두 체결에 반대하는 여론이 존재했는데 2012년에는 체결에 실패하고, 2016년에는 체결에 이르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청중비용이 중요한데, 청중비용에도 시기와 조건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동아시아 연구원 과 겐론 가 (EAI) NPO(言論NPO) 2013년부터 2023년까지 실시한 한일 국민상호인식 조사의 결과에서도 비슷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데, 추계적으로 보면 한일 안보관계에서 대립하는 이슈가 존재하더라도 안보협력은 추진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한일 간 외교적으로 대립하는 이슈에 대해 국내 여론의 관심은 높지만 정부의 정책방향에 어떤 식으로 의견을 표출할지에 대해서는 시기에 따라 혹은 다른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여론이 정책을 결정할 수는 없지만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정책은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12) 따라서 한일안보관계에 있어 여론의 지지를 얻는 대국민 소통이나 공공외교 등이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셋째, 한일 안보관계에서의 미국 요인이다.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한미일 간 대북 공조를 강화한다는 원칙이 담겼었다. 미국이 1990년대 초 북핵 1차 위기를 계기로 동아시아 동맹국 간 정책 공조를 강조했었고, 미국의 대북정책을 전반적으로 검토한 페리 보고서(Perry report)가 작성되었다. 미국은 1997년 일본과의 방위협력지침(Guidelines for the U.S.-Japan defense cooperation)을 개정했는데 개정된 지침에서 일본이 주변지역에서 미국을 군사적으로 지원한다는 후방지역 지원이 포함되었다. 또한 미국이 주도해서 한미일 3국 간 대북정책을 조율할 수 있는 대북정책조정기구(Trilateral Coordination and Oversight Group, TCOG)가 설치되고 1999년 4월 첫 협의가 하와이에서 개최되었다. 이러한 흐름과 병렬적으로 1998년 한일 양국 간 한미일 3자에 의한 정책협의가 논의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한일 안보협력은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는 조건으로도 기능해왔다고 볼 수 있다. 이는 2016년 GSOMIA 체결 및 2019년 GSOMIA 종료 결정에 대한 미국의 정책적 관여로도 드러난다. 따라서 한일 안보협력은 미국 요인이 어떻게 기능을 하는지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으며, 한일 양국 차원의 협력이 지역 안보에서 미국의 역할에도 영향을 미치는 사항임을 알 수 있다. III. 트럼프의 재당선과 한일 안보관계의 향방 이러한 배경에서 한일 안보관계에서 미국 요인이 미치는 영향은 학술적, 정책적 연구의 대상이었다. 대표적으로 빅터 차(Victor Cha)의 연구는 한일 안보관계는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에 구축해온 양자 동맹체제인 바큇살(hub-and-spoke) 모델을 구성하는 일부로 발전해왔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공통의 동맹국인 만큼 한일 간 동맹은 맺지 않았지만 안보적으로 연계된 유사 동맹(quasi-alliance)과 같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한일 안보관계가 미국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한미일 관계도 미국의 관여 여부에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한 점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 정책은 한일 양국에 우려 요인으로 작용한 바 있다. 일본 아베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아시아 관여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지역전략을 미일 간 공동비전으로 발전시켰다. 일본은 미국과의 양자관계를 중심으로 안보협력을 재구성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미일이 중심이 되어 미일 플러스 형태로 소다자 협력을 구성하고 여러 형태가 중첩되도록 했다. 한편, 한국 문재인 정부는 북한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의 협력을 이끌어내고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실현하는데 집중했다. 한국의 지역구상에서는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낮추는 형태로 한반도가 중심이 된 전략이 중요했다. 이러한 한일 간 지역 전략의 비동조화는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 정책과 맞물리면서 한일 및 한미일 안보협력의 지체로 이어졌다.13) 그리고 미국은 관여하기보다는 관망하는 태도를 취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등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정책의 재검토를 의미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제시한 ‘인도-태평양 전략’은 계승하면서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식으로 동맹협력을 강조한 것이다.14) 특히, 미국과 동맹국 간의 양자협력에 더해 둘 이상의 동맹국을 연계하는 격자형 안보협력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한 전략적 중요성이 재평가되었다. 2022년 11월 캄보디아에서 개최된 ASEAN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일 정상회담이 개최되었고, 3자 안보협력을 재가동하기 위한 한미일 파트너십에 대한 프놈펜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15) 3국은 북한 문제에 대해 공조하고 억제 강화를 위해 안보협력을 발전시켜 나간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는데 이는 1990년대 대북 공조를 위한 한미일 협력의 원형을 복원하는 의미와 유사했다. 그리고 2023년 8월 한미일 3국은 처음으로 단독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캠프 데이비드 원칙 및 정신’을 발표했다.16) “한미동맹과 미일동맹 간 전략적 공조를 강화하고, 3국 안보협력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리고 2024년 7월 한미일 국방장관은 ‘안보협력 프레임워크(Trilateral Security Cooperation Framework, TSCF)’ 협력각서에 서명하고 국방장관회담을 포함한 고위급 회의를 정례적으로 개최하는데 합의했다.17) 이는 정례적인 안보협의를 제도화하는 것으로 한미일 안보협력의 지속성을 확보하는 제도적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다만, 조약 수준의 구속력은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지속성 확보가 어느 수준까지 가능할지는 단정짓기 어렵다. 2024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서 미 행정부는 민주당 정권에서 공화당 정권으로 변화할 것이다. 앞서 언급된 한미일 안보협력의 제도화는 주로 바이든 행정부 시기에 집중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의 재등장은 정책 계승보다는 정책 단절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가장 바람직한 전개는 정책이 계승되면서 일부 수정되는 것이겠지만, 가장 우려스러운 전개는 정책이 단절되어 제도화된 협력이 중단되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전개를 고려한 현 시점에서 우리 정부의 과제는 크게 두 가지 정도일 것이다. 첫째, 한일관계 개선과 한미일 협력의 제도화가 동시에 진행되었던 지난 2년여 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일 양국은 미국 대선의 결과와 관계없이 계속해서 안보협력을 이어갈 수 있을지 여부이다. 일본의 경우 이시바 정부가 기시다 정부의 대외정책을 계승한다면 대한 정책에서는 온건적 성향을 보이겠지만 미국의 아시아정책에 따라 변화할 가능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한국에도 유사하게 적용될 것이다. 즉, 국내정치를 우선해야 하는 상황에서 일본과 적극적 협력을 계속할 수 있을지 여부는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바이든 행정부에서 주도한 격자형 안보협력의 지속여부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구상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일정 부분 계승하면서 동맹협력을 강조하는 변화를 두었다. 바이든 행정부의 동맹협력은 미국의 안보공약을 강화하기 보다는 동맹의 부담분담을 추진하면서 동맹의 기여를 높이는 방향으로 실현되고 있었다. 즉, 트럼프 시기부터 미국은 대외개입을 축소하고 있었는데, 바이든 시기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그 기조는 유지되었다. 그렇게 보면 차기 행정부가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미국의 대외개입이 점진적으로 축소되는 경로의존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2025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이하는 해가 되는 만큼 한일 및 한미일 안보협력이 동력을 잃지 않고 지속성(policy sustainability)을 가질 수 있도록 한일 간 정책협의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1) 본고는 국방대 국가안전보장문제연구소(RINSA) 주최 <2024 한일안보대화> 발표를 위해 작성된 원고를 바탕으로 수정보완된 것임을 밝힙니다. 2) Eunil Cho. 2022. “Regional Security Order and South Korea-Japan Relations.” Korea Journal of Defense Analysis 34(4), 531-553; 박영준. 2024. “국제안보질서의 동요와 한미일 안보협력의 방향.” 『국가전략』 30(3), 5-33; 최희식. 2013. “동북아 국제질서의 변동과 한일관계의 새로운 전개.” 『일본연구논총』 37, 5-36. 3) 신욱희. 2018. “한일관계의 양면 안보딜레마: 이명박 정부의 사례.” 『아시아리뷰』 8(1), 155-154; 박명희. 2023. “한국과 일본의 여론과 외교정책: 국민의 역사 인식, 정치적 환경, 프레이밍을 중심으로.” 『일본공간』 34, 67-99. 4) 대한민국 대통령실. 2023. “대통령의 말과 글: 기미독립선언의 정신을 계승하여 자유, 평화, 번영의 미래를 만들어 갑시다.”(3.1.) https://www.president.go.kr/president/speeches/u9KzF591(검색일: 2024.10.31.). 5) 윤석열 정부는 3월 6일, 2018년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에 제3자 변제방식으로 배상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판결에 승소한 원고 15명 중 일부는 제3자 변제 거부 등 정부 배상방식에 반대했는데, 2024년 10월 현재 13명이 제3자 변제방식을 수용하고, 고인 2명에 대한 유족들만 배상금 수령을 거부하고 있다. 이상현. 2024. “일 징용피해 이춘식 할아버지도 정부 제3자 변제 방안 수용.” 『연합뉴스』(10.30.). 6) 대한민국 대통령실. 2023. “대통령의 말과 글: 한일 간 협력의 새 시대를 여는 첫걸음이 되었습니다.”(3.16.) https://www.president.go.kr/president/speeches/qBjKQLZX(검색일: 2024.10.31.). 7) 1969년 1월 미국 닉슨 대통령과 일본 사토 총리 간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안전은 일본 자신의 안전에 있어 긴요한 것이다”라는 한국조항이 포함되었고, 1972년 11월 정상회담에서 “(사토) 총리대신은 한반도의 평화 유지를 위한 유엔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며, 한국의 안전이 일본 자신의 안전에 긴요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언급되었다. 츠치야마 지츠오. 2007. “미일동맹과 한미 안보 협력.” 문정인, 오하타 히데키 편. 『한일 국제정치학의 신지평: 안전보장과 국제협력』 서울: 아연출판부. 8) 조양현. 2017. “제5공화국 대일외교와 한·일안보경협: 안보경협안의 기원에 대한 실증분석.” 『국제정치논총』 57(2), 169-205. 9) 기미야 다다시. 2006. “한일관계의 역학과 전망: 냉전기의 다이너미즘과 탈냉전기에서의 구조변용.” 김영작, 이원덕 편. 『일본은 한국에게 무엇인가』 파주: 한울아카데미. 10) 조은일. 2021. “한일 안보전략의 비동조화와 한미일 협력의 재구축.” 최희식 편. 『한반도 평화에 대한 일본의 대한국 협력방안』 서울: 통일연구원. 11) GSOMIA 관련 내용은 다음 졸저를 참고로 한다. 조은일. 2021. “미중 전략 경쟁 시대의 한일 안보관계.” 『국제지역연구』 30(2). 12) 조은일. 2023. “여론조사로 읽은 한일 안보관계: 한일관계에서 안보는 중요할까?” EAI 워킹페이퍼(12.27.) https://www.eai.or.kr/new/ko/project/view.asp?intSeq=22284&board=kor_workingpaper(검색일: 2024.11.4.). 13) Eric Heginbtham and Richard J. Samuels. 2021. “Vulnerable US Alliances in Northeast Asia: The Nuclear Implications.” The Washington Quarterly 44, 157-175; Lee Seong-hyon. 2019. “Where is Washington? The Missing Mediator between Seoul and Tokyo.” The Washington Quarterly 42, 89-110. 14) Kurt M. Campbell and Rush Doshi. 2021. “How America Can Shore Up Asian Order: A Strategy for Restoring Balance and Legitimacy.” Foreign Affairs (January 12). 15) 공식명칭은 ‘인도태평양 한미일 3국 파트너십에 대한 프놈펜 성명(Phnom Penh Statement on US-Japan-Republic of Korea Trilateral Parnership for the Indo-Pacific)’이다. 외교부. 2022. “주요문서: 인도태평양 한미일 3국 파트너십에 대한 프놈펜 성명(2022.11.13.).” https://down.mofa.go.kr/www/brd/m_3973/view.do?seq=367946&page=2(검색일: 2024.11.4.). 16) 대한민국 대통령실. 2023. “보도자료: 캠프 데이비드 정신.” (8.18) https://www.president.go.kr/newsroom/press/yeE9qWlT(검색일: 2024.11.4.). 17) 김지헌. 2024. “한미일 국방장관, 안보협력 프레임워크 서명...훈련 정례화.” 『연합뉴스』(7.28.).기획자: 강영훈 제주평화연구원 원장, 편집 : 제주평화연구원 이혜진 연구원 조은일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 현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 정치학 학사학위를 취득하고, 연세대학교에서 국제학 석사학위 및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 국제안보 및 신흥군사기술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으며, 미일동맹 및 일본의 안보방위정책에 전문성을 갖고 다수 연구를 수행함. 주요 논문으로 "비전투원 철수작전과 일본 자위대의 역할 확대"(국제정치논총), "신기술은 어떻게 국제안보를 변화시키는가"(국제지역연구), "Regional Security Order and South Korea-Japan relations"(Korea Journal of Defense Analysis), "미중 전략 경쟁 시대의 한일 안보관계"(국제지역연구) 등이 있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