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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I PeaceNet]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중동 정책과 한국에 주는 함의
등록일
2025-03-04
조회수
9

[기획자 註]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당선됨에 따라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앞세운 대외 정책을 1기 행정부보다 더 강력하게 추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이는 이미 복합 위기를 겪고 있는 글로벌 정세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고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중동 지역 정책을 살펴봄으로써 향후 중동 지역에서 예상되는 변화가 한국 외교에 미치는 함의를 살펴보고 이에 대응하는 방안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기획: 강영훈 원장(yhkang@jpi.or.kr)]


2025년 트럼프의 귀환과 중동의 불확실성 증폭

2025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2기 행정부가 출범했다. 분쟁이 끊이지 않는 중동에서 불확실성과 혼란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의 기조 아래 지불 능력을 우선시하는 동맹관, 폭탄선언에 가까운 충동적 결정, 후속 대안 없이 기존 정책을 폐기하는 방식 등으로 중동에는 바람 잘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 다자 합의(JCPOA) 전격 파기, 이란 혁명수비대 최고 사령관 암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242호 위반, 시리아 골란고원을 이스라엘의 영토로 인정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497호 위반, 워싱턴 주재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 대표부 및 팔레스타인 주재 미 영사관 폐쇄, 우방인 쿠르드계 시리아 민병대를 향한 튀르키예군의 공격 방조, 우방인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배제한 채 탈레반과 단독 평화 협정 체결, 중동 권위주의 리더들과 기이한 친분 과시 등 좌충우돌 외교 안보 기행을 선보였다.

그런 트럼프 후보가 2024년 대선 캠페인에서는 중동 이슈를 별로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면 중동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전화 한 통으로 전쟁을 당장 끝낼 수도 있다고는 호언장담했다. 공화당의 공식 공약집도 ‘이스라엘과 함께 중동 평화를 추구할 것’이라는 간단한 내용만 담았다.1) 트럼프 후보는 대중에게 피로도가 높은 이스라엘·하마스·헤즈볼라 전쟁 대신 인플레이션, 불법 이민 등 조 바이든 행정부의 실패를 부각할 수 있는 국내 문제에 집중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임기 동안 치솟는 물가를 잡지 못하고 사회 분열을 봉합하지도 못해 우유부단한 이미지였다.

사실 미국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후보들이 내세운 중동 관련 공약은 당선 이후 크게 바뀌고는 하여 사전에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지역의 불안정한 특성상 취임 이후 역내 정세가 급변하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역설하며 사우디아라비아를 수준 이하의 ‘왕따’ 국가로 불렀으나 정작 재임 기간에는 호의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원유 증산과 대러 제재 동참을 부탁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돌변에 차갑게 반응했고 바이든 행정부는 탈중동 정책 선언마저 뒤집으며 역내 안정에 대한 헌신을 강조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애썼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08년 대선 캠페인에서 이라크에 주둔 중인 ‘우리 아들과 딸’ 미군을 즉각 데려오겠다고 공약했고, 2011년 이를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2014년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조직 ISIS가 갑작스럽게 등장하며 세력을 확장하자, 이에 맞서기 위해 다시 이라크에 미군을 파병할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중동 정책은 앞으로 역내 변화에 맞춰 모양을 갖춰갈 것이다. 대선 캠페인에서는 구체적인 중동 공약이 제시되지 않았으며, 취임 연설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하마스에 억류되었던 이스라엘 인질 석방을 환영하며 ‘모든 전쟁을 끝내겠다’라는 원론적인 견해를 밝혔다. 가자지구에 대해서는 ‘해안가에 있는 최고의 날씨를 가진 놀라운 장소’라고 표현하며, 재건의 잠재력을 암시하는 언급만 했다. 취임식 2주 후 트럼프 대통령은 느닷없이 가자지구를 인수하고 팔레스타인 주민을 이웃 아랍 국가로 이주시키겠다는 구상을 밝혔으나, 곧 서두를 필요가 없다며 입장을 번복하기도 했다.2)

트럼프 2기의 중동 정책 전망: 이란 강경파 최대 압박, 이스라엘 우파 전폭 지지, 걸프 산유국과 안보 협력 강화, 탈중동 전격 시행,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수교 적극 중재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2017~2021년 임기 동안 자신만의 뚜렷한 중동 정책을 펼친 경험이 있어 이를 바탕으로 2기 행정부의 정책 방향을 예상해 볼 수 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의 동맹 우방국과 국제사회가 아닌, 개인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국내 지지층 결집을 목표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만들겠다며 배타적 민족주의를 노골적으로 선동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입법·사법·행정부를 장악하고 대통령의 코드에 맞는 충성파로 내각을 채우고 있기에 더 강력해진 ‘트럼피즘’을 선보일 것이다. 이란의 핵 개발과 역내 친이란 무장 프록시 조직 재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아랍 걸프 산유국과의 안보 협력, 미국의 탈중동 정책 등을 둘러싸고 거래식 외교·신고립주의·보호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핵 개발과 팽창주의에 대해 최대 압박 접근법을 선호한다. 특히 미국 대통령 선거 캠페인 기간 이란 혁명수비대의 트럼프 후보 암살 모의가 발각되고, 이란 해커들이 트럼프 후보의 자료를 해킹해 민주당 선거 캠프 관계자에게 전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이란 압박 수위는 최고조에 이를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재임 시절 이란 핵 합의를 파기하고 고강도 제재를 단행했으며, 레바논·가자지구·시리아·이라크·예멘 등에서 프록시 육성에 매진해 온 이란 혁명수비대의 최고 실세인 가셈 솔레이 마니 사령관을 암살했다. 결국 이란 내 온건 개혁파의 입지는 극도로 위축되었고, 강경 보수파가 득세하면서 이란의 군사 모험주의는 더욱 강화되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2024년 5월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이란은 이론적으로 핵무기 3기를 제조할 수 있는 능력에 가까워졌다고 평가된다.3) 이에 따라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외교적 방법보다는 고강도 제재와 군사적 수단을 통해 이를 저지하려 들 것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캠페인에서 이란과 거래의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다며 즉흥적인 협상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전례 없는 압박 전략을 추구하면서도 필요에 따라 기습적인 외교적 돌파구를 모색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다음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둘러싸고 트럼프 대통령은 강경 우파 성향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그의 안보 포퓰리즘 정책을 적극 지지한다. 작년 미국 대선 TV 토론에서도 ‘해리스가 당선되면 이스라엘이 사라질 것’이라면서 네타냐후 총리와 극우 정치인의 사임을 압박하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또 2024년 7월 선거 캠페인 중 네타냐후 총리와의 통화에서 ‘자신의 취임식이 열릴 2025년 1월 20일 전까지 전쟁을 끝내라’라고 주문했다.4) 작년 11월 초 트럼프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와의 휴전 협정을 서둘렀고 결국 2025년 1월 15일, 15개월간의 전쟁 끝에 휴전 협정이 전격적으로 체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 재건과 관련해 이스라엘의 입장을 적극 옹호하는 한편 걸프 산유국에게 재정 지원을 요구할 것이다. 반면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역량 강화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걸프 산유국과의 군사 안보 협력에 매우 우호적이다. 이들 산유국도 미국산 무기 수입 및 방산 협력에서 지불 능력에 근거한 거래주의 방식에 큰 불편 없이 호응할 것이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 국가에 인권과 민주주의 원칙을 압박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지가 사우디아라비아였던 만큼, 양측의 관계는 이미 상당히 돈독하다. 2018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보국 요원들이 이스탄불 주재 자국 총영사관에서 반정부 언론인인 자말 카슈끄지를 잔혹하게 살해하자 국제사회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을 거세게 비난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사업 및 무기 거래가 매우 중요하다며 미 의회의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무기 금수와 제재 요구를 거부했다.

그러나 트럼프 패밀리와 사우디아라비아 왕실 간의 사적 친분에도 양국 사이가 늘 원만했던 것은 아니다. 2019년 이란의 프록시인 예멘 후티 반군이 미사일과 드론을 동원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시설을 대거 공격했을 때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강력한 대응을 기대했지만, 트럼프 1기 행정부는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당시 후티 반군의 공격은 1991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쿠웨이트의 정유 시설을 공격한 이래 국제 원유 시장을 마비시킨 가장 큰 도발이었다. 이 사건 이후 사우디아라비아뿐만 아니라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 걸프 산유국은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해 외교 안보 다변화 정책을 추진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와 걸프 산유국은 경제 실용주의에 기반한 협력을 이어갈 것이지만, 걸프 국가는 더는 미국에만 의존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역내 동맹 우방국이 직면한 군사 위협을 크게 고려하지 않은 채 미국의 탈중동 정책을 밀어붙일 것이다. 2025년에는 이라크에 주둔한 약 2,500명, 시리아에 주둔한 약 900명의 미군이 신속히 철수할 것으로 예상하며 철군 이후 이라크 내 이란 혁명수비대의 영향력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2019년 트럼프 대통령은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시리아 주둔 미군 병력을 대폭 감축했고 동시에 반ISIS 국제 연합 전선에서 핵심 지상군 역할을 했던 쿠르드계 시리아 민병대인 인민수비대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 철군과 지원 중단이 이루어진 지 불과 사흘 만에 튀르키예군이 시리아 국경을 넘어 미국의 우방이었던 인민수비대를 공격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사실상 방관했다. 반면 며칠 후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적정 수준의 비용 지급을 약속했다며 사우디아라비아에 추가 미군 파병과 첨단무기 배치 계획을 발표했다. 2020년에는 미국의 우방인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배제한 채 카타르에서 탈레반과 평화 협정을 체결하며 철군을 준비했는데 이는 결국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재집권하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더불어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기간 ‘21세기 술탄’으로 불리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을 자신의 ‘터프 가이’ 친구라며 치켜세웠고, G7 회의장에서 이집트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탄압한 압둘 팟타흐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독재자’로 부르며 친근감을 표했다.5) 2019년 에르도안 대통령의 가족이 연루된 튀르키예 국영 은행 할크방크에 대한 미 검찰의 이란 돈세탁 공모 혐의 기소를 보류했으며, 튀르키예의 러시아제 S-400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 도입에 대한 미 의회의 초당적인 제재 요구도 막아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이러한 기조가 계속되면 미 동맹 우방국의 안보 불안은 더욱 커질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중동 정책에도 중요한 업적은 있다. 바로 기념비적인 아랍·이스라엘 데탕트를 가져온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 체결 과정에서 성공적인 중재역할을 한 것이다. 2020년 수니파 아랍 국가 아랍에미리트와 유대 국가인 이스라엘이 국교 수립에 깜짝 합의했고, 곧 바레인까지 참여해 백악관에서 역사적인 협정식이 개최됐다. 아브라함 협정은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이자 백악관 선임 고문이던 재러드 쿠슈너가 설계했고, 구시대적인 민족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연대로 평가받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중동의 평화와 안보를 증진하는 구상이라며 환영했고 바이든 후임 행정부도 협정에 대한 강한 지지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브라함 협정을 자신의 자랑스러운 치적으로 여기고 있으며, 이번에도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간 관계 정상화를 성사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설 것이다. 수니파의 대표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산업 다각화, 사회 개방화, 외교 안보 다변화를 목표로 정권의 사활을 걸고 국가 개조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그러나 미국의 탈중동 선언과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팽창주의를 개혁 성공의 걸림돌이자 정권 생존을 위협 요소로 인식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의 수교를 고려하는 것은 미국의 공백을 대비하고 이란을 견제하기 위한 안보 자구책의 일환이다. 또한 이스라엘의 혁신 기술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첨단산업 육성과 청년 일자리 창출에 이바지할 수 있어 경제·안보 이익을 제공할 것이다.

한국의 중동 정책에 주는 함의

현재 미국의 중동 정책은 여러 딜레마에 빠져있다. 최고 우방국이자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인 이스라엘을 군사적으로 지원하면서도 이스라엘·이란의 전면전 가능성은 차단해야 하고, 가자지구와 레바논 남부에서 민간인을 보호하면서도 거기에 뿌리내린 친이란 급진 프록시 조직을 소탕해야 하며, 중국을 직접 견제하기 위해 인도 태평양 지역에 역량을 집중하면서도 이 과정에서 실망한 중동의 동맹 우방국이 중국과 밀착하지 않도록 조율해야 한다. 이토록 복잡한 정책 과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과 2기 행정부의 핵심 인사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결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시기 중동은 또다시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크며 역내 질서는 한층 더 요동 칠 것이다.

중동의 불안정은 한국에도 타격이다. 중동, 특히 걸프 산유국은 한국의 최대 석유 공급처이자 구매력 높은 수출시장이다. 한국은 세계 7위 석유 소비국이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산 석유를 중동산으로 대체하면서 중동 의존도는 72%까지 늘어났다.6) 오일머니 덕에 부유한 걸프협력회의(GCC) 나라들과는 2023년 12월에 FTA를 맺어 경제협력의 절정기를 맞았다.

앞서 살펴봤듯이 걸프 산유국은 외교 안보 다변화에 맹렬히 나서고 있다. 최대 맞수인 이란이 핵 개발과 역내 무장 프록시 육성을 통해 군사 모험주의의 야심을 드러내는데 최대 우방국인 미국은 탈중동 정책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대대적인 탈석유·탈이슬람 개혁에 성공해 정권의 생존을 보장해야 하는 시기에 이란은 역내 혼란을 조장하고 미국은 인도 태평양에서 중국 견제에만 매달려 왔다. 물론 최근 헤즈볼라의 궤멸, 하마스의 와해,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독재정권의 몰락 등 친이란 프록시 ‘저항의 축’의 잇따른 붕괴 앞에서 이란은 당분간 팽창주의 행보를 자제하고 한발 물러서 전략적 인내를 감내할 것이다. 더불어 미국의 고강도 제재로 비롯된 경제난과 공포 철권통치가 가져온 민심 이반 때문에 이란의 강경파 지배층은 내부 체제 단속에 더 힘쓸 수밖에 없다. 지난해 이란은 최악의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및 환율폭등에 시달렸고7) 국민은 경제적 어려움에도 역내 프록시 조직에 막대한 자금을 제공하는 정권에 격렬히 항의해 왔다. 그러나 이란의 강경파 지배층이 이슬람공화국의 국시인 미국·이스라엘 타도와 이슬람 혁명 수출 및 역내 헤게모니 장악을 포기했을 리는 없다. 이란은 단기적으로 위험회피 전략을 취하면서 프록시 재건을 꾀하고 러시아·중국 반미연대와 더욱 밀착할 것이다. 동시에 핵개발에 집중해 대미 레버리지로 삼을 것이다. 현재 이란 당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투명성 검증 요구에 불응하고 있고 협력 관련 실무 논의도 중단된 상태다.

따라서 불안에 휩싸인 걸프국들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미국 무기체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찾아 나섰고 한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대중동 무기 수출은 지난 10년간 10배가량 늘었고 한-GCC FTA 덕에 이 추세는 강화될 것이다. 최근 세계 9위의 무기 수출국으로 급부상한 한국은 천궁 II, K9 자주포 등 K-방산의 수출을 대상국에 대한 기술 이전과 인적자원 개발로 연계해 추진하고 있다. 걸프 산유국이 바라는 자국 방산 역량 강화 전략과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다. 한국 무기체계가 공격적이거나 팽창주의적이지 않고 방어적 성격이 강하다는 평판 역시 긍정적인 역향을 미친다.

또한 이들 국가는 원전 건설에도 높은 관심을 두고 있다. 전례 없이 파격적인 개혁으로 인한 전력 수요 증가에 대비하고 왕실의 품격과 위상을 위해 탄소중립에도 앞장서야 하기 때문이다. 우라늄 농축을 가속하는 이란을 겨냥해 핵심 원자력 기술을 확보하려는 계산 역시 존재한다. 한국은 2009년부터 UAE에서 최초의 사막형 발전소인 바라카 원전을 설계부터 가동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곧 대규모 원전 건설에 착수할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러한 한국 기술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왔다. 2025년 1월에 한국과 미국이 세계 원전 시장 공동 진출을 위한 약정에 서명하면서 한국의 원전 수출은 더 탄력을 받을 것이다.

단, 한국의 대중동 원조 정책은 취약한 편이다. 한국은 2010년대 중반 이래 평화유지군 활동과 대테러 작전에 참여했고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를 확대해 왔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위한 인도적 지원금을 두 차례에 걸쳐 제공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2023년도 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국민총소득 대비 ODA 비중은0.17%로 회원국의 평균인 0.37%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또한 우리의 ODA 규모는 일본의 약 1/6 수준에 불과하고 대중동 ODA 규모는 더 작다.8) 2024년에 이어 올해도 한국의 1인당 국내 총생산이 일본을 앞설 것이라는데 이러한 경제력과 국격에 걸맞은 기여가 모자란 것으로 보인다. 특히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은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 산유국이 아랍과 이슬람 세계에서 대표국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대단히 신경 쓰는 의제다. 나아가 이란과 이스라엘이 치열하게 벌이는 각축전에서도 역내 정당성 확보와 연관된 핵심 사안이다. 미국 역시 주요 동맹국의 더 큰 기여를 기대하는 분야다. 무엇보다 원조 수혜국에서 기부국으로 전환해 책임감 있고 신뢰받는 글로벌 강국으로 자리매김한 한국은 최악의 인도주의 재앙을 겪은 팔레스타인 주민을 위해 원조와 기부를 늘려야 할 것이다.


1) Kelsey Ables and Frances Vinall, “What to know about Trump’s history of support for Israel,” The Washington Post, November 9, 2024, https://www.washingtonpost.com/world/2024/11/09/trump-on-israel-hamas-war-gaza-netanyahu/. 2) “Trump says he’s in ‘no rush’ to implement plan to take over, redevelop Gaza,” The Times of Isreal, February 7, 2025, https://www.timesofisrael.com/trump-says-hes-in-no-rush-to-implement-plan-to-take-over-redevelop-gaza/. 3) Stephanie Liechtenstein, “Iran further increases its stockpile of uranium enriched to near weapons-grade levels, watchdog says,” AP, May 28, 2024, https://apnews.com/article/iaea-iran-nuclear-enrichment-stockpile-2190f0d7247a6160fb13f28304d4b6ad. 4) Kanishka Singh and Nathan Layne, “Trump says he told Netanyahu to end Gaza war but criticizes ceasefire call,” Reuters, August 16, 2024, https://www.reuters.com/world/netanyahu-denies-report-he-spoke-trump-about-gaza-talks-2024-08-15/. 5) “The strange love-in between Donald Trump and Recep Tayyip Erdogan,“ The Economist, November 14, 2019, https://www.economist.com/united-states/2019/11/14/the-strange-love-in-between-donald-trump-and-recep-tayyip-erdogan. 6) Adel Abdel Ghafar, “South Korea and GCC States: A Growing Partnership,” The Middle East Council on Global Affairs Issue Brief, August 2023, https://mecouncil.org/publication/south-korea-and-gcc-states-a-growing-partnership/. 7) Andreas Becker, “Iran and the cost of a war with Israel,” DW, October 2, 2024, https://www.dw.com/en/iran-and-the-cost-of-a-war-with-israel/a-70385852.

기획자: 강영훈 제주평화연구원 원장, 편집 : 제주평화연구원 이혜진 연구원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자 지역연구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아산서원 교수를 지냈고 현재 산업부, 법무부, 국방부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8년부터 <매일경제신문>에 중동 관련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주요 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주의와 독재’,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대표 연구로는 중동정치를 비교분석한 <최소한의 중동수업> (시공사, 2023),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아산정책연구원, 2018), 클레멘트 헨리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 (Palgrave Macmillan, 2013),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한국외국어 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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