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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급변사태를 통일의 기회로
    저자
    황병무(국방대학교 명예교수)
    발간호
    2015-36
      지난 6월 말 북경 칭화 대학에서 제 4차 세계평화포럼이 열렸다. 전 외교 담당 국무위원 탕자쉬안 회장이 주재하는 연례 국제회의로 세계 각국의 총리와 외교부 장관, 대사를 역임한 관료와 정부의 싱크탱크 역할을 담당하는 전문가들이 모인 회의였다. 필자는 동북아 갈등과 안보협력 분과에 참석했었다. 이 분과에 참석한 미국 부시 정부 때 안보보좌관을 지낸 스티븐 해들리 박사는 ‘북한 급변사태와 안보적 고려’라는 주제로 장차 북한의 내부 문제가 동북아 안정과 평화에 큰 이슈가 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해들리 박사는 북한 엘리트의 분열로 인한 무력 분쟁 가능성, 내정의 안정화, 난민 문제와 인도적 지원 문제, 핵무기 통제 문제 등으로 주변국 간의 갈등과 대립이 야기될 수 있기 때문에 주변국들은 북한 위기관리에 전향적 태도로 협력해야 함을 강조했다. 어느 한 곳에도 우리가 바라는 통일의 기회를 언급하지 않았다.   북 핵 폐기와 안정화 문제 분리 대응해야   북한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주변국의 최대 관심은 북한 내부 혼란의 조기 안정과 대량살상무기의 통제와 폐기에 모아질 수 있다. 내부 혼란이 주변국으로 확대돼 주변국들 간에 관계가 악화 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위기의 국제적 확산을 막기 위한 난민의 봉쇄와 인도적 지원, 특정 국가의 개입을 막기 위해서라도 국제협의체 구성을 서두를 수 있다. 북한 문제가 국제 관리로 되면 될수록 핵무기 제거를 제외한 한반도 문제에 우리의 발언권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북한 위기 관리를 남북한 내부 문제와 국제 관리 분야로 구분해 주변국 및 북한의 신생 정부와 협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북 핵 통제와 폐기는 국제 관리로, 북한 위기의 안정화 문제는 남북한 내부 문제로 분리해 대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선 북한 내정 안정, 후 핵 폐기 순이 돼야 한다. 핵 폐기를 앞세울 때 외세 개입으로 북한 안정화 문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만일 개혁, 개방 노선을 택하는 북한의 신생 정부가 들어선다면 핵 문제는 평화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신생정부는 미, 중을 비롯한 주변국들로부터 주권과 영토 보전의 보장을 받은 후 핵을 포기했던 1994년의 우크라이나 모델을 선호할 수 있다.   북중 국경으로의 대량난민 이탈이 중국의 군사개입의 빌미가 된다고 미리 겁을 먹어서는 안 된다. 2009년 미얀마 코캉(한족)난민들의 운남성으로 대거 탈출한 사건은 중국군의 개입을 촉발하지 않았다. 중국 정부는 운남성 국경지대에 난민 캠프를 설치해 월경한 군대와 난민 3만 여명을 수용하고 미얀마 사태가 진정된 후 돌려보냈다. 미얀마 정부도 이를 사전 약속했었다.   문제는 우리 정부의 의지와 능력   우리 외교의 첫 과제는 주변국으로부터 북한 관할권을 인정받는 문제이다. 정부의 태생이 한반도 남쪽에서만 합법 정부였고 현재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해 북한은 국가성을 국제법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 5월 말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에서 우리 국방장관이 일본 국방상에게 만약 일본이 미국 지원을 위해 북한을 무력 공격 시 우리와 사전 협의할 것을 요구했으나 일 국방상은 답변을 회피했다. 이 문제는 외세의 개입을 저지하는 방향에서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나 난민대책을 우리가 주도하면 주변국 간 발생할 수 있는 긴장이나 부담을 덜어주어 주변국 이익이 된다고 설득해야 한다. 중국이 갖는 우려는 한미중 협의체를 통해 통일 후 한미 동맹과 주한 미군의 주둔 및 역할 변화를 논의, 해소해야 한다. 통일 한국이 동북아 평화와 안정 및 경제 번영에 기여한다는 구상을 구체화 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가 북한 위기관리의 주도권을 가진다 하여도 북한에 구세력이 참여하는 신정부 수립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은 더욱 큰 문제이다. 북한에 대한 정보 역량이 풍부하지 못하다. 당이 군을 통제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당내의 ‘누가’ 군을 통제하는가? 대북 공작은 ‘선 당심 확보, 후 군심 해체’의 방향으로 나가야 희생과 비용을 줄이고 위기를 조기에 마무리 할 수 있다. 실시간 변동이 심한 북 엘리트의 권력투쟁 내부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북한 내부 정세에 대한 귀와 눈이 많이 필요한 이유이다.   최악의 사태는 북한의 위기가 장기화되면서 안정화 전망이 불확실할 때이다. 북 엘리트의 분열로 어느 종파가 중국이나 남한 정부에 개입을 요청할 수 있다. 중국이 바라는 정치세력의 집권을 위해 군사개입 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주변국과 공조로 막아야 한다. 우리는 단독 군사 개입의 명분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정화 작전의 목표와 방향을 잘 세우고 이를 실수 없이 실행해야 한다. 저항집단의 진압과 북한 주민에 대한 선무공작을 동시에 펼쳐야 한다. 북 신생 정부와 사회·경제 통합과 평화통일 문제의 협상 시 북한 주민들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안정화 작전의 70은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얻는 사회, 심리면의 선무공작의 문제로, 나머지 30은 군사작전의 문제로 볼 수 있다. 북한에도 돈벌이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300만 명 이상의 장마당 세대가 존재한다. 남한에는 탈북자 3만 명에 이르고 있다. 이 중 선발된 인원을 선무공작대로 앞세울 수 있다. 탈북자 관리에 보다 신경을 써야한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사실은 북한 주민들이 남한 주민들의 삶을 부러워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이 때문이라도 남북 주민 간 인적·물적 교류 및 협력은 끊임없이 실시, 확대되어야 한다. 이는 평화통일 기반 조성의 핵심이다. 現 국방대학교 명예교수. 연구 분야는 국제정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받은 후, 미국 캘리포니아대 리버사이드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함. 노무현 정부 시 국방발전자문위원회 위원장, 국제정치학회 회장(1995년)을 역임함. 주요 저서로는 ‘신 중국군사론’, ‘한국 안보의 영역, 쟁점, 정책’ 등이 있음.
  • 환경 문제의 국제정치: 중국발 대기오염에 대한 한국의 대응
    저자
    강택구&심창섭(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
    발간호
    2015-29
    우리나라에 미치는 중국발 대기오염의 영향이 증대하면서 “중국발 미세먼지” 또는 황사를 일컫는 “황색 테러”와 같은 용어는 일상적인 대화의 소재가 된 지 오래이다. 중국발 대기오염의 주범으로는 일반적으로 황사와 미세먼지가 있다. 이들은 발생 원인은 다르지만 대기의 가시거리를 악화시키고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미친다는 공통점이 있다. 황사는 중국과 몽골의 사막지대 등지에서 발생하는 흙먼지가 강한 바람을 타고 이동하는 자연적 현상이지만, 이로 인해 중국 공업지대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이 바람과 함께 한반도로 유입된다. 반면, 미세먼지는 자동차 배기가스, 산업 활동, 가정 난방 등을 위해 사용하는 화석연료의 연소로부터 배출되는 인위적 오염물질이 배출되거나 전구물질을 통해 대기 중으로 생성되어 바람을 타고 국내에 유입된다. 일반적으로 미세먼지는 입자상 물질의 크기에 따라 1㎜의 100분의 1 크기 먼지인 PM 10과 1㎜의 1,000분의 2.5 크기의 먼지인 PM 2.5로 구분된다. 특히 초미세먼지로 불리는 PM 2.5는 호흡기를 통해 폐포까지 직접 침투하여 폐질환과 심혈관계 질환 등을 유발하여 조기사망의 위험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정부 자료에 따르면, 2000년대 수도권 지역에서 발생한 황사 일수는 9.8일로 1980년대 2.9일과 비교하여 약 3배 이상 증가하였다.1) 그리고 수도권의 미세먼지(PM 10) 경우 2002년 76㎍/㎥에서 2012년 41㎍/㎥로 개선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으나 주요 OECD 국가와 비교하면 2배가량 높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전국 주요 도시의 초미세먼지(PM 2.5) 수준은 전반적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환경기준인 25㎍/㎥을 초과하고 있다.2) 이에 따라 대기오염이 호흡기 질환으로 인한 조기 사망 등 대기오염의 위해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3) 중국 내 대기오염 상황과 피해는 더욱 심각한 실정이다. 대기오염을 개선하기 위해 법적·제도적 정책을 강화하기 위한 중국 정부의 일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4) 2013년 1월 중국 베이징의 PM 2.5 농도는 세계보건기구의 기준치인 25㎍/㎥를 40배나 초과한 1,000㎍/㎥에 육박하기도 했다. 이처럼 심각한 대기오염은 중국 국민의 건강보건뿐 아니라 산업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13년 1월, 대기오염으로 교통과 건강에 직접적으로 미친 경제손실은 최소 약 230억 위안(한화 약 4조원)에 달하였다.5) 또한 2014년 2월 21일부터 6일간 베이징, 톈진, 허베이를 일컫는 징진지(京津冀) 지역의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2천여 개 업체들의 운영과 전력을 한시적으로 제한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모든 채석장의 운영이 중지되면서 60억 3천만 위안(한화 약 1조원)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였다.6) 대기오염은 지역 및 국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월경(越境)의 특징을 갖고 있다. 따라서 국제적 측면에서 볼 때 발생원인뿐만 아니라, 해결과 관리의 국가 간 책임 소재를 판별하는데서 어려움이 따른다. 중국발 대기오염이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예로 들면, 중국 등 국외영향은 평상시에는 30∼40% 수준이며, 서풍 또는 북서풍의 영향으로 인한 고농도 오염이 발생할 경우에는 60∼80%까지 높아지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7) 이러한 점에서 대기오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변 국가들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일반적으로 국가들 간의 이해관계가 상이한 상황에서 효율적인 국가 간 환경협력 체계 구축은 용이하지 않다. 그러나 다행히 중국의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악화되고 있는 동북아 대기오염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한·중·일 국가들 간의 협력기제가 운용되고 있다. 역내 대표적인 대기오염 협력기제로는 ‘한·중·일 환경장관회의(TEMM)’, ‘동북아환경협력계획(NEASPEC)’, 한·중·일 환경과학원 간 ‘장거리이동 대기오염물질 공동연구 사업(LTP)’, ‘동아시아 산성 침전물 모니터링 네트워크(EANET)’ 등이 있다. 한편, 이와 같은 기존 협력기제가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 여전히 한계점이 존재한다. 기존 협력을 보완하고 대기오염 저감협력에서 한국의 주도권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층 높은 수준의 협력채널, 예를 들면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대기오염 협력을 아젠다로 제안하는 방안을 고려해야한다. 물론 2012년 제5차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에 “역내 월경성 대기오염 대처의 중요성을 인식”하였다는 문구를 삽입하여 대기오염 협력의 필요성을 밝혔으며, 2015년 6월에는 한-중 환경 공동 연구단을 중국 환경과학원내에 개소 및 운영하는 등 구체적인 공동 노력이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더 나아가, 향후 대기오염 저감의 효과성 제고를 위해 3국간 정상회의에서 대기오염 협력과 관련한 별도의 공동성명서 등 부속문서 마련을 추진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성이 있다. 둘째, 기존 협력체 간의 효율적인 조정을 도모하기 위해 중견국으로서 물적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선의의 양보를 제공할 수 있는 우리나라가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대기오염 저감을 위해 동북아에 존재하고 있는 협력체들 간의 유기적인 협력과 조정이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중국뿐 아니라 일본과의 협력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오랜 기간 축적해 온 높은 수준의 대기오염 분야 연구결과를 함께 활용하면서 한-중-일 차원의 대기오염 전문가 네트워크를 장기적으로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장거리이동 대기오염물질 공동연구 사업(LTP)을 통해 대기질을 분석하고, 산성침전물 모니터링 네트워크(EANET)를 통해 동남아시아에 걸친 대기오염 측정망과 관측 자료를 활용하는 등 기존의 전문가 네트워크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대기오염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전문가들의 과학적 합의를 마련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셋째, 북한과의 협력 역시 중요하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중국발 대기오염은 바람을 타고 한반도로 유입되기 때문에 북한 역시 이에 대한 피해가 심각할 것으로 추정된다.8) 동북아 대기오염의 발생 및 이동 경로 상에 북한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지역의 대기오염 측정자료 및 대기오염 배출량 자료는 중요하다. 또한 북한은 낡은 수준의 산업시설과 이물질 함유율이 높은 저급 에너지원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에너지 사용량에 비해 대기오염 배출이 높아 한국과 인근 국가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이유로 국제사회에서도 ‘국제 대기오염 모델링 비교 프로젝트(MICS-Asia)’ 등을 통해 북한 배출량의 정확도 제고를 위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북한의 폐쇄적인 보도행태와 북한과의 협력 채널 부재 등으로 협력이 제대로 추진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남북 간 대화가 단절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산림 및 보건 협력을 활용하자는 목소리가 높은 현재, 남북의 공통 관심 분야인 대기오염 저감을 위한 협력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 1) 관계부처 합동, “황사피해방지 종합대책(2013~2017)”, p.5. 2) 관계부처 합동, “미세먼지 종합대책,” 2013.12, p.4. 3) “30세 이상 10명 중 1~2명은 미세먼지로 조기사망,” 『연합뉴스』, 2014.4.20. 4) 중국의 최근 대기오염 저감을 위한 관련 법규와 제도는 다음을 참조. 강택구 외, 『한?중 대기오염 저감 관리 비교와 협력방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13). 5) “灰霾迷城,我们付出多少健康代价,” 『中国青年报』, 2013.12.11. 6) “中央??直?拿下????能降??点,” 『中?行??究?』, 2014.3.14. 7) “윤성규 환경부장관, 미세먼지·황사 해결, 한중일 공동대응 필요,” 『뉴시스』, 2015.5.4. 8) “중국발 미세먼지 북한에도 유입...대비책 진단,” 『VOA』홈페이지, 2013.12.3. 강택구 : 現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동 대학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중국 청화대학교 국제관계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음.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과 인하대 국제관계연구소에서 연구교수를 역임함. 중국 외교정책, 동북아 지역협력, 환경협력이 주요 연구분야임. 최근 연구로는 "Assessing China's approach to regional multilateral security cooperation", "동아시아 지역 내 강대국간 경쟁과 세력전이", "중국과 중앙아시아 관계" 등이 있음. 심창섭: 現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 고려대학교 화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조지아 공대에서 대기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음. 미국 NASA의 제트추진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함. 대기 중 오존 및 미세먼지 문제, 온실가스 감시, 동아시아 대기 환경협력 등이 주요 연구분야임. 최근 연구로는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른 미래 대기질 영향과 대응을 위한 국제공동연구" 등이 있음.
  • Towards a New Asia of Trust and Harmony
    저자
    Susilo Bambang YUDHOYONO(Former President of Indonesia)
    발간호
    2015-26
      I am very pleased to return to Jeju to be part of this important Jeju Forum. I especially appreciate reading the themes that permeate throughout the conference: peace, prosperity, diversity, and sustainability. I used all these slogans during my Presidential campaign. Now, I continue to promote these same themes in my new capacity as President of the Global Green Growth Institute, an initiative of the Korean Government which has become an international champion of green growth.  I must admit that when I left the Presidential office last year, I too was very concerned to see the unravelling of stable relations among the major powers, after two decades of relatively cooperative relationships.  There is possibility that this geopolitical down-turn will complicate the already tricky flash points in our region. Hence, it is very important for us to maintain strategic stability: if permanent resolution to the disputes still cannot be found, then we need to press on with self-restraint and de-escalation, and try to manage the conflict by preventing the situation from getting worse.  This is true in the case of the growing tension between the North and the South in the Korean Peninsula. This is also true for the disputes in the South China Sea.  All of us in this room are keen to build a strong future for Asia. But Asia's amazing future will be harmed so long as there is a mismatch between its geo-politics and geo-economics.  In our region, geopolitics and regional security are issues that often divide us. As such, we still do not have a comprehensive region-wide security architecture binding all the countries in this region.  Geo-economics, on the other hand, tend to bring countries together, through interdependence and connectedness. Geo-economics bring more trade, investment, infrastructure, tourism, exchanges and others.  We need to make sure that the economic cooperation can help soften the rough geopolitical edges. There are some good examples where the economic imperative has helped to reduce the appetite for confrontation. We can see this in the case with US - China relations, or with Japan - China relations.  The key theme of this year's Jeju Forum is peace and prosperity. As President of the Global Green Growth Institute, I must also say that the future of Asia also entails "green growth" and "sustainable development". Indeed, I would say that without green growth and sustainable development, Asia has no future.  2015 promises to be an incredibly important year for the global community. The GGGI will offer our utmost support for the coming world conferences to shape global consensus in Addis Ababa, New York, and in Paris in December this year.  In this Forum, we are back to asking the same question that prevailed during the Cold War and after: how do overcome the trust deficit, and how do we build or rebuild confidence?  Certainly not an easy question. I do not pretend to have the answer for Northeast Asia, but I would like to share some of my personal experiences in Indonesia, reflecting on the example of Southeast Asia.  I must say that there is no magic wand. Trust and confidence evolve differently in different circumstances. They are things that have to be earned, and once achieved, they have to be preserved.  There are too many cases, including in my own country, where communities that had lived peacefully for generations suddenly turned into sworn enemies. When that happens, it would take a long time -sometimes generations- for the wounds to heal.  How do you promote trust in a society where there is none? I would begin with a forward-looking approach. I know that this is not always easy, especially if the trauma from the past is unbearable.  This is what Indonesia and Timor Leste faced after the painful separation in 1999. Both sides had little interest in one another.  But after sometime, the leaderships in Jakarta and Dili decided that we had no other choice but to move on with a forward-looking attitude. We renewed our relationship, promoted reconciliation, and pushed hard for bilateral cooperation. Today, Indonesia and Timor Leste are as close and harmonious as any neighbors can be.  Another way to build trust is through a win-win approach. I know that sometimes it can be difficult to do away with a zero-sum game. Long-standing mistrust and stereotypes have the tendency to barriers that contain progressive thinking.  But it is quite remarkable what can be achieved by changing the approach to peace. This is what we did with the conflict in the Indonesian province of Aceh, which had been beset by separatist armed rebellion by GAM for 30 years - and peace was nowhere in sight.  In 2005, a few months into my Presidency in the first term, and not long after the tsunami tragedy, I decided to pursue a new approach: an attempt at win-win peaceful negotiations. After much difficulty, we began negotiations with the GAM leadership, and we engaged them in a tough but serious give and take compromise. In the end, we secured permanent political settlement through special autonomy.  The GAM rebels were disarmed, separatism ended, the conflict stopped, and Indonesia remains united. Moreover, the guns are silent and former combatants have become peaceful brothers and sisters in a democratic environment. In short, it was a case of a good win-win approach where everybody wins and no one loses.  Which leads to this important point: no trust can develop without leadership. Reaching out in difficult relationships is often a politically risky business. It requires courage. It is an essentially political decision, one that necessitates political will.  I am glad that my good friend John Howard is sitting here on this panel. Together, we changed our countries' relationship which benefitted our peoples, and made the region more stable.  When I assumed the Presidency in 2004, the bilateral relationship between Indonesia and Australia was not in an ideal place, due to a number of reasons,. I knew this was not healthy for both sides so I immediately established diplomatic relations with Canberra as a foreign policy priority. I was fortunate to find a strong partner in PM John Howard. Before long, we established a historic Comprehensive Partnership and signed a bold security cooperation known as the Lombok Treaty.  Indeed, Indonesia and Australia later worked together on many regional issues: regional architecture, terrorism, G20, and many more. Once you have that trust, more opportunities would come knocking and the relationship that you invest in would take you a long way.  So, these are my quick three on how we in Indonesia promoted trust internally and externally: forward-looking mindset, creative win-win approach, and leadership. Many of the problems around us would benefit from any or a combination of these three elements.  Yet, where trust and harmony are not readily forthcoming, I believe it is important to encourage the present and next generation to keep an open mind. I say this because there is always a risk that the young generation could become closed-minded and resistant to change.  We must therefore continue to inculcate the culture of peace among the youth of today, because it will be in their minds that the ingredients of mistrust will gradually chip away. Susilo Bambang YUDHOYONO(Former President of Indonesia)
  • Socio-Economic Implications of the Israeli Occupation of Palestinian Territories
    저자
    Vladimír Hlásny (Ewha Womans Univ / Jeju Peace Institute)
    발간호
    2017-40
      World history is replete with tales of colonizing forces inflicting suffering and economic disadvantages on subjugated populations, particularly when the latter sought self-determination. At the same time, history also offers immaculate examples of nation states being (re)united or separated peacefully when heads of state stood firmly by the doctrines of international law, interethnic tolerance, and fair treatment of all population groups affected. Since the beginning of the Israeli occupation of Palestine in 1967, Palestinian families, businesses, and institutions have endured a repressive regime of security and economic measures meant to thwart and punish opposition as well as induce cooperation. The stringent security and economic regime was tightened in 2000 when the second Palestinian uprising (Intifada) erupted. The uprising raged for over four years, and subsided only in the summer of 2005. The Israeli reaction was to tighten the security and economic regime further to prevent acts of defiance from Palestinians by disempowering local opposition and exemplarily punishing suspected attackers and their families. Israel started building a separation wall in the West Bank and implemented an economic blockade of the Gaza Strip, in both instances restricting locals’ access to resources. Palestinian people could not travel freely even between towns within the same province (governorate), much less so across governorate and state borders. Businesses could not rely on their workers arriving to work and could not import resources or export their products freely. A back-to-back security system forced Palestinian businesses to reload their cargo onto new trucks multiple times during transportation, making it a serious disadvantage compared to the conditions faced by their Israeli competitors. Palestinian workers were also restricted or periodically fully barred from engaging in employment in Israeli-held territories. The end of the Second Intifada brought the relaxation of some conditions, but many security and economic policies remained in place or were soon re-enacted, imposing tremendous costs on the Palestinian economy to this day without end in sight. The partial blockade of Gaza was extended into a full blockade in 2007, and in 2008 and 2009 Israel launched military offensives on Gaza in response to Hamas’ dominance in Palestine through electoral and military victory over the secular Fatah movement. Hamas and Fatah provisionally reconciled in 2012, but a flare-up of violence between Hamas and Israel in July led Israel to start another military offensive that summer, which was marked by the use of excessive force, leading to thousands of deaths among Gazans. Summer 2014 saw another bout of violence leading to the largest destruction of infrastructure and property and the largest loss of life in Gaza. Schools and medical centers were destroyed. In 2013, Israel cut off supply channels to Gaza through tunnels from Egypt, leading to grave deprivation and uncertainty among civilians and small businesses. These events have held back and destabilized the economy and social conditions in the West Bank and the Gaza Strip over the past fifteen years. Palestinian GDP contracted between 1999?2002 and only recovered to the 1998?1999 level in 2005. Then it contracted again during 2005?2008 and 2012?2014. Restrictions on the movement of labor and assets ? including donors’ money and remittances from abroad ? and political uncertainty have led to the depletion and flight of capital, “hollowing out of the productive sectors,” and crippling of the economy and public sector from being able to stand up on their own feet. The Palestinian economy has been reduced into low-value agriculture and sectors supplying Israeli industry, which are heavily dependent on the state of the Israeli economy and policy. Another consequence of the military assaults and economic blockade of Gaza, and the halt of the tunnel economy with Egypt, has been the polarization of the Palestinian society between the West Bank and Gaza. Since 2005, the West Bank’s economy has risen rapidly while the Gazan economy has been hemorrhaging, never recovering to its pre-Second-Intifada levels. Palestine today is an entirely divided society with the distribution of income and living conditions in West Bank entirely above the distribution in Gaza. The most destitute households in West Bank enjoy standards of living on par with the most privileged households in Gaza. On the heels of promising peace negotiations in Annapolis and the Paris Donors Conference between 2009-2012, inflow of donor aid helped prop up public investment and consumption in the West Bank and Gaza. However, reconstruction efforts produced only slow and transient economic recovery. As of today, the Israeli blockade of Gaza and the system of mobility restrictions throughout the Palestinian territories remain largely in place. Aid promises from foreign donors have exceeded actual disbursements, and Israel has been able to manipulate the Palestinian fiscal position by withholding or delaying the transmission of tax and customs duties (clearance revenues) owed to the Palestinian National Authority. The regime of armed operations, forced detentions, and closures and land grabs combined with the restrictions on movements of commodities, funds, and people have all left their toll on the Palestinian society. Many sectors of the Palestinian economy have become highly fragile and weakened by the interventionist occupation. The great concern is that these impacts may affect Palestine in the long term, as the lost investment, innovation, and experience ? as well as lost trade routes and lost position in global supply chains ? may take years to recover. Living and economic conditions across occupied Palestinian territories have been dreadful for long enough. Yet there is little prospect for assuagement of the conditions under the Netanyahu administration held hostage by radical nationalist and religious elements in its coalition. Pressure from the international community over the past two decades has also not helped. What is needed is a change coming from within the Israeli establishment. Grassroots awareness campaigns should bring Israeli voters to realize that true reconciliation, lasting peace, and prosperity for everyone necessitate that all social groups, including Palestinians, be granted the right to self-determination and full integration into the civic, political, and economic life without dependence on external handouts or on the generosity of the Israeli administration in power. Israeli voters should demand this in order to bring back the hope of a decent living and sustainable growth across Palestinian territories, which in turn would promote national unity and prosperity. Vladimir Hlasny is currently a visiting research fellow at the Jeju Peace Institute and an associate professor of economics at Ewha Womans University in Seoul. His research is in the areas of welfare economics, labor economics, and industrial organization. In 2015 he served as an economic affairs officer at United Nations Economic and Social Commission for Western Asia in Beirut. He holds a doctorate in economics from Michigan State University.
  • 신뢰와 화합의 새로운 아시아를 향하여
    저자
    후쿠다 야스오(전 일본 총리)
    발간호
    2015-24
    ‘작아진’ 세계와 문화 · 문명의 충돌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 국제사회의 글로벌화가 심화되면서 정보, 사물, 인적 왕래, 관계가 비약적으로 긴밀해져 어떤 의미에서는 세계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축소되어 ‘작아’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이 ‘작아진 세계’가 20세기나 19세기보다 더 평화롭고 안정되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국제적인 테러사건이 빈번히 발생하고 정치적·종교적 원리주의의 확산은 국제사회 전체에 커다란 불안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국가 간 다툼과 지역 분쟁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우선 20세기 말에 냉전이 종식된 까닭에 지금까지 ‘동서(東西)’ 양 진영의 이분법적인 대립으로 억눌렸던 전세계의 다양한 종교, 민족, 사회 등의 가치관이 국제사회에서 눈을 뜨면서 각자의 ‘레종 데트르(raison d’etre, 존재 이유)’를 강력히 주장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 작아진 ‘세계’ 속에서 이들이 서로 뒤섞이며 충돌과 마찰을 유발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현상은 문화, 문명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만, 국제사회 전체의 질서, 안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심각한 불안정 요인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스스로 믿는 가치관을 큰 목소리로 주장할 뿐만 아니라 ‘작아진 국제사회’ 속에서 종전보다 더 ‘문명 간의 대화’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해묵은, 그러나 새로운 과제 ‘성장’과 ‘평등’의 딜레마  둘째, 해묵은 과제인 동시에 새로운 과제로서 ‘성장’과 ‘평등’, 또는 ‘격차(양극화)’의 문제는 21세기 국제사회에서 앞으로도 계속 커다란 도전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국가를 단위로 하는 국제사회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서는 일정 부분 경제성장이 필요합니다. 성장전략 없는 ‘평등론’이나 ‘격차 해소’는 ‘그림의 떡’이 아닌가 합니다.  반면, 대책이 결여된 성장전략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각국의 사회와 국제사회의 미래에 불안정 요인이 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최근 우리는 ‘성장’의 중요성에만 집착한 나머지 평등이나 격차의 문제를 간과하는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닐까요?  이 경우 ‘격차’에는 3가지의 다른 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격차, 개도국 혹은 중진국 내 격차의 확대, 선진국 내 격차의 확대입니다.  성숙하고 안정된 사회를 유지해 나가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하면서, 또한 다수를 차지해야 할 중산층이 격차의 확대로 인해 피폐해지고, 세력이 약화되는 것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는 한일 양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현상입니다.  격차의 문제에 대응하려면 단순히 경제성장 정책뿐만이 아니라 경제분배 정책으로서의 사회보장정책 및 공공사업정책, 세제를 비롯해 다양한 정책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 문제가 절박한 과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에너지, 환경 등 글로벌한 과제  마지막으로 세계는 ‘작아지는’ 반면, 개도국 중심의 인구 증가, 에너지 및 식량 부족, 환경 오염 등 인류가 직면한 공통과제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 늦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주선 지구호’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표현입니다만, 우리는 새삼 하늘이 주신 유한한 자연과 자원을 얼마나 지속 가능한 형태로 유지해 나갈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은 늘 뒤늦게야 문제를 깨닫는 어리석은 동물일지도 모릅니다만, 환경, 에너지 등의 문제는 일단 임계치를 초월해 문제가 악화된 뒤에 다시 되돌이키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노력과 비용을 치러야 합니다. 아시안 폴라(Asian Polar)의 시대 ? 아시아에 의한 글로벌 이니셔티브의 필요성  이상으로 제가 말씀드린 3가지 논점은 다소 지나치게 개념적(philosophical)으로 들리실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각국이 안고 있는 눈앞의 과제뿐만 아니라 이러한 커다란 전략적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 구성원들이 제대로 논의하고,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대처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현실적인 문제로서 예컨대, 에너지 위기와 환경 파괴 등을 겪었던 1970~80년대 고도성장기, ‘문명 간의 대화’가 제기되었으며 UN을 중심으로 새천년개발목표를 열심히 논의하였던 2000년대의 밀레니엄 시기 전후 등과 비교해 보면 현재 국제사회는 글로벌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대응은 다소 부족해 보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역사적 배경으로서 미·소의 냉전 종식 및 미국의 단극체제, BRICs라는 신흥국들의 비약적인 경제발전 등 지난 수십 년 동안에 걸친 국제사회 전체의 지정학적, 구조적 변화가 간접적인 원인을 들고 싶습니다. 즉 20세기와 비교해 볼 때, 21세기 초반인 지금은 단극(unipolar), 양극(bipolar)보다 다극(multipolar)의 위상이 더욱 강력한 세계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슈퍼파워 혼자 혹은 몇몇 국가가 세계를 주도해 나가기보다 주도적 입장을 견지하는 복수의 강대국(major power) 및 여러 중견국(middle power)이 협력하여 이끌어나가는 시대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직 많은 나라에서 그러한 자각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과거처럼 슈퍼파워가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문제 해결을 위해 지도력을 발휘해 줄 것으로 막연히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무릇 인간의 사고방식은 과거의 유형에 사로잡히기 쉽기 때문에 주변 상황의 커다란 변화를 인식하고 스스로 짊어져야 할 새로운 역할을 자발적으로 의식하고 자각하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특히 21세기 들어 국제사회에서 경제적·지정학적으로 아시아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급격히 커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아시아의 주요 파워인 일본, 한국, 중국, 인도, 호주, ASEAN 등의 국가 및 조직이 협력하는 가운데 글로벌 이슈를 위한 이니셔티브의 발휘가 새로이 요구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다른 나라, 다른 지역에 맡길 것이 아니라 아시아 각국이 서로 협력하여 국제사회의 논의를 주도하기 위해 새로운 ‘아시안 폴라(Asian Polar)’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아시아 각국 간에 지역적이고 글로벌한 이슈를 위해 협력하여 대응해 나가는 모멘텀, 이니셔티브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신뢰외교 · 동북아평화협력구상  이런 관점에서 우선 역내에서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국가 간, 개인 간의 신뢰가 반드시 필요하기에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 중인 ‘신뢰외교’에 대해 공감하는 바가 큽니다.  특히 동북아지역 각국이 다양한 대화와 협력을 통해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평화와 협력관계의 확대를 지향하는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은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향후 동북아 국가 간에 구체적인 협력이 원활하게 추진되기를 기대합니다. 같은 관점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도 평가하는 바입니다. 비핵화를 추구함으로써 한반도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기를 기대합니다. 한일관계 50년  끝으로 올해는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해입니다.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한일 양국은 정치, 경제, 안보를 포함하여 다양한 측면에서 상호 의존관계를 심화시켜 왔습니다. 양국의 교류도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이제는 연간 500만 명 이상이 왕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도 폭넓은 분야에서 상호이해를 증진하고, 우호관계를 한층 돈독히 함으로써 더 멋진 50년을 열어나가기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얼마 전 일본의 경제인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대통령께서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양국의 차세대들이 밝은 미래관계를 계승해 나갈 수 있도록 양국이 함께 더욱 지속적인 노력을 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후쿠다 야스오(전 일본 총리), 2015 제주포럼 기조연설 발췌문
  • 흔들리는 범세계적 핵비확산 체제
    저자
    이서항(한국해양전략연구소장)
    발간호
    2015-25
      핵확산금지조약(NPT)을 근간으로 하는 범세계적 핵비확산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 4월 27일부터 5월 22일까지 4주간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열린 NPT 제9차 검토회의가 핵군축이나 핵확산 금지 등에 관한 아무런 합의문이나 조치의 채택 없이 끝났기 때문이다. NPT는 비핵 국가의 핵무기 보유 금지, 핵보유국의 핵무기 감축 추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확대 등을 3 기둥으로 하여 1970년 발효된 뒤 5년마다 검토회의 개최를 통해 조약의 주요 내용에 대한 이행상황을 점검하고 조약내용의 실천을 위한 합의문 또는 조치를 채택해 왔다. 그러나 이번 검토회의에서는 4주간 토의는 했으되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 버린 것이다.   사실 NPT 검토회의가 구체적 합의문이나 조치의 채택 없이 무위로 끝난 사례는 1980년(제2차), 1990년(제4차), 2005년(제7차)을 포함하여 이번이 4번째이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핵무기 소형화 추진을 포함한 핵개발 진전과 이란 핵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노력이 답보상태를 보이고 있는 상황 등을 감안해 볼 때 이번 검토회의에서의 합의문 채택 실패는 예사롭게 지나쳐 버릴 사안은 결코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검토회의에서 합의문 채택 실패의 주요 원인은 무엇일까? 회의 참가자들과 핵문제 전문가들이 우선적으로 꼽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중동지역 비핵지대(NWFZ) 설립에 대한 당사국 간의 합의 실패이다.   중동지역 비핵지대 설립은 1995년 제5차 검토회의 시 검토회의 절차 강화와 핵비확산을 위한 보편성 증대를 포함한 3개의 결정문과 함께 채택된 결의로서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의 핵비무장화를 겨냥하고 있다. 이 결의는 당시 중동지역 국가들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들이 추구하는 NPT의 무기한 연장을 동의해 주는 대신 얻어낸 성과였으나 그동안 아무런 진전이 없다가 2010년 제8차 회의에서 2012년 이내에 이의 구체적 이행을 위한 회의소집이 합의된 바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도 이후 별다른 진전이 없자 이집트 등 중동지역 국가들은 금번 회의에서 2016년 3월로 명기된 회의 소집의 구체적 일정 확정을 요구했으며 회의에 대한 이스라엘의 사전 동의 필요성을 강조한 미국 등 일부 국가들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자 합의문 채택을 아예 거부한 것이다(한편 NPT 비가입국인 이스라엘은 사상 처음 옵서버 자격으로 제9차 검토회의 참석).   정기적인 검토회의에서 NPT의 3대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비핵국에 대한 핵확산 금지, 기존 핵보유국의 핵무기 감축,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확대 등에 대한 합의문 또는 조치 채택의 실패는 엄격히 보면 NPT가 당분간 아무런 기능을 할 수 없음을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9차 검토회의에서의 합의문 채택 실패는 조약이 추구하는 핵확산 금지 등과 관련하여 국제사회의 ‘실망’(disappointment)을 넘어 ’재앙‘(disaster)이라고까지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 진전, 이란 핵문제 협상의 답보, 핵안전 사고의 빈번 등 핵문제와 관련한 숱한 의제가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문제의 해결에 도움될 수 있는 아무런 조치가 채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합의문 채택의 실패는 핵무기 및 다른 대량살상무기와 관련된 국제협약(예를 들면, 핵물질생산금지협상-FMCT)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어 파장은 더욱 커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핵확산금지와 핵군축 추진 등과 관련된 합의문과 조치의 채택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검토회의에서 부각된 가시적인 성과도 물론 존재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핵무기의 궁극적인 사용금지와 제거를 강조한 이른바 ‘인도주의적 호소’(Humanitarian Pledge)에 대한 공감이다. NPT의 거의 모든 당사국들은 이 호소를 통해 핵무기가 사용될 경우 인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초래할 것이라는 사실에 동의했으며 이 호소는 또한 핵무기 감축 추진의 새로운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성과 이외에 금번 NPT 검토회의는 아무런 합의문이나 조치의 채택에 실패함으로써 전반적으로 기회를 낭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5년 후에 다가올 제10차 검토회의에서 핵확산금지와 핵무기 감축 등과 관련된 새로운 획기적인 조치를 이끌어 낸다면 금번 회의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로 재평가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5년 후에도 아무런 합의를 하지 못한다면 핵확산과 관련한 더 큰 ‘재앙’과 ‘공포’가 우리 인류를 기다릴 것이다. 現 한국해양전략연구소장. 뭄바이 총영사, 한국해로연구회장,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등을 역임.
  • 지중해 보트피플 사태와 지역주의의 한계
    저자
    오정은(IOM이민정책연구원 연구교육실장)
    발간호
    2015-27
      요즘 유럽은 북아프리카로부터 밀려드는 보트피플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유럽 차원의 공동출입국관리체제를 발전시켜왔지만, 현재의 보트피플 사태에 대해 유럽의 지역주의는 뾰족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회원국 간 입장 차가 불거지면서 지역주의에 기초한 공동관리체제는 불편한 장치가 되었다.   유럽출입국 공동관리체제   유럽의 공동출입국관리체제 역사는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5년 6월 14일에 룩셈부르크의 작은 마을 솅겐에서 벨기에, 프랑스,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서독 등 서유럽 5개국이 회원국의 차량과 사람을 별도의 검색 없이 국경을 통과시키자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솅겐협정(Schengen Agreement)에 서명한 데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솅겐협정은 솅겐협약으로 발전하였고, 1995년 3월 26일부터 가입국 사이에 상호 국경통제가 생략되고 유럽 차원의 공동 비자가 통용되는 하나의 솅겐지역이 건설되었다. 솅겐지역 가입국은 유럽 차원에서 운영되는 솅겐정보시스템에 접속하고 이용하면서 유럽 차원의 출입국관리정책에 따른다. 2015년 5월 현재 솅겐지역 가입에 서명한 국가는 30개국이다.   2004년 설치된 프론텍스(Frontex)는 오늘날 유럽공동출입국관리체제의 핵심 장치이다. 프론텍스는 유럽 차원에서 EU회원국과 협력을 통한 EU영역 공동관리, 출입국업무 담당자 훈련, EU영역 외부경계지역 위험요인 분석, 출입국관리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 국경관리를 위한 신속대응팀 제공, 회원국의 불법입국자 귀환 업무 지원, 국경지역 정보시스템 운영과 정보의 공유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솅겐지역과 프론텍스는 지역 차원의 공동출입국관리가 국가단위 관리보다 효율적이라는 전제하에 고안되었다. 하지만 2011년 무렵부터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밀입국하려는 보트피플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유럽의 지역주의 체제는 오랫동안 보트피플을 사실상 방치하는 소극적인 역할만 했다.   최근의 지중해 보트피플이 급증한 원인은 2010년 말, 중동과 북아프리카지역에 이른바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민주화혁명이 연속적으로 발발한 데에 있다. 그 이전에도 지중해를 통해 유럽으로 밀입국하려는 보트피플이 있었지만, 이들은 주로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스페인 자치도시 세우타와 멜리야에서 스페인을 향해 떠났고, 스페인 정부가 모로코와 해안 경비를 강화하고 세우타와 멜리야에 방벽을 설치한 이후 그 수가 크게 감소했었다. 하지만 아랍의 봄 이후의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정세 불안을 이유로 다수의 사람들이 난민을 자처하고 보트피플이 되었고, 유럽을 향한 항해도 스페인을 향하던 서쪽길보다 훨씬 긴, 그리스를 향하는 동쪽길을 택했다. 최근에는 그리스 인근에 해상경비가 강화되면서 지중해 중앙의 이탈리아를 향하는 보다 더 긴 항해 길을 택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최근에 시리아 정세가 불안정한 틈을 타서 브로커들이 시리아에서 사람을 모아 유럽으로 보내면서, 시리아는 아프리카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 유럽을 향해 떠나는 송출항 역할을, 이탈리아 남부 섬들은 아프리카 난민을 받아들이는 수용항 역할을 한다. 이탈리아 남부의 섬 가운데 특히 람페두사(Lampedusa)는 보트피플이 많이 도착하는 장소다. 아랍의 봄 직전에 주민이 약 4,500명에 불과했던 이 섬마을에 2011년 1월부터 9월 사이에 55,000명이 넘는 북아프리카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지금도 계속해서 북아프리카 보트피플이 도착하고 있다.   망명자 처리와 외교 갈등   솅겐지역에는 제3세계 시민이 유럽회원국에서 망명 신청을 할 경우, 망명 신청자가 처음으로 입국한 국가에서 망명자를 책임진다는 더블린규정(Dublin II Regulation)이 적용되기 때문에, 람페두사에 상륙한 외국인이 난민신청을 할 경우, 이것은 이탈리아 정부의 업무가 된다. 그런데 보트피플 입국이 급증하자, 2011년에 이탈리아 정부는, 지중해를 통해 자국으로 몰려드는 외국인 행렬을 차단할 수도 없고, 무한정 수용하기도 부담스러운 상황에 처하면서, 입국자의 주요 출신국인 튀니지 정부와 협정을 체결하였다. 즉, 2011년 4월 5일 이전까지 입국한 25,000명의 튀니지인들에게 6개월의 임시거주증을 발급한 것이다. 임시거주증을 발급받은 이민자는 솅겐지역을 마음대로 여행할 수 있기 때문에 프랑스와 독일은 이탈리아를 무책임하다고 비난하였다. 프랑스는 이탈리아에서 기차를 타고 프랑스에 도착한 튀니지인들의 입국을 거부하면서 솅겐원칙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이 사건이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에 심각한 외교 갈등으로 비화되자 2011년 6월 24일 긴급 EU정상회담이 소집되었다. 석 달 후 EU집행위원회는 개별국가 차원의 국경검문은 원칙적으로 불허하되, 예외적인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EU 결정에 근거하여 국경검문은 허용하는 탄력적인 운영 방안을 도입하는 것으로 갈등을 일단락지었다. 하지만 여전히 지역주의의 산물인 더블린규정에 따라 밀려드는 지중해 보트피플 문제는 일부 지중해 국가에 과중한 부담을 안기고, 지리적으로 지중해와 거리가 있는 국가들은 문제를 회피하려는 상황이 관찰된다.   ‘마레 노스트룸’ 작전과 ‘트리톤’ 작전   최근 보트피플을 태우고 아프리카를 출발해 유럽을 향하던 배가 지중해 해상에서 조난을 당하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적게는 수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발생하는 보트피플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2013년 10월 3일 람페두사 섬 인근에서 선박사고로 368명 보트피플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이탈리아 정부가 지중해 일대 보트피플의 대대적인 수색과 구조를 담당하는 일명, ‘마레 노스트룸(Mare Nostrum: 우리들의 바다)’ 작전을 시작했지만, EU의 지원은 적었다. 마레 노스트룸 작전은 람페두사 섬으로부터 100해리까지 수색구조 활동을 벌여 보트피플의 참사를 예방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 작전을 펼치면서 이탈리아는 1년간 지중해에서 약 10만 명에 달하는 보트피플을 구조했고, 351명의 난민선 브로커도 검거하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이 작전 수행에는 매일 30만 유로, 연간 1억 1400만 유로의 예산이 소요되었고, 이 부담은 전적으로 이탈리아 정부의 몫이었다. 경제침체기에 지속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데 부담을 느낀 이탈리아 정부는 이 사업을 유럽 차원에서 진행할 것을 요구했지만, 독일을 비롯한 EU 주요 회원국들은 마레 노스트룸과 같은 적극적인 보트피플 구조 전략이 오히려 북아프리카인의 유럽 불법입국을 동기를 제공하고 브로커들의 밀입국 행위를 부추긴다는 이유를 들어 비용 부담에 반대했다. 결국 마레 노스트룸은 시행 1년 만에 종료되었다. 이후 2014년 11월부터 EU 기구인 프론텍스가 ‘트리톤(Triton)’ 작전명으로 지중해 해상 구조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지역주의 차원에서 고안된 트리톤 작전에는 마레 노스트룸의 1/3 수준의 예산만 배정되었고, 전용 구조선이 단 한 척도 배정되지 않았다. 해상 구조 활동 범위도 이탈리아 해역으로부터 30마일 이내로 대폭 축소되어 바다 한가운데서 조난을 당하곤 하는 대다수의 지중해 보트피플에게 소용이 없었다. 트리온이 보다 적극적인 해상 구조 프로젝트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반대했다.   이러한 가운데, 2015년 4월 13일 리비아 해안에서 400여 명의 보트피플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5일 후인 2015년 4월 18일에 약 800명으로 추산되는 보트피플이 수장되는 참사가 발생했는데, 세계 각국은 일주일 만에 1,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비극의 책임을 EU의 소극적인 구조 작전에서 찾고, 유럽의 소극적인 지역주의 체제를 비난했다.   결국 EU는 4월 20일 장관회담, 4월 23일 정상회담을 각각 개최하고, 보다 적극적인 보트피플 구제책을 발표했다. 즉, 프론텍스의 해상 순찰 예산을 세 배 늘리고, 난민 구조와 지중해 순찰을 위해 영국이 군항 3척과 헬기, 프랑스와 독일이 각각 군함 2척씩 제공하기로 했다. 또한 북아프리카에 난민센터를 설치하는 것과 같은 유럽 차원에서 난민신청 시스템을 개선 노력도 진행하고 있다.   난민 문제: 지역주의적 해법은?   지난 한 달 여 기간 동안 EU 회원국 대표들의 이끌어 낸 유럽 차원의 합의안은 얼마 전까지 보트피플 구조와 지원 확대에 대다수의 EU국가가 미온적이던 상황을 고려하면 매우 큰 발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여전히 EU 국가들은 보트피플 구조의 다음 단계, 즉, 구조한 사람들을 자신의 나라에 재정착난민으로 수용하는 문제에 대해서 망설이고 있다. 유럽 차원의 지역주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지중해 보트피플 사태 해결 노력은 보트피플 문제를 당면과제로 인식하는 특정 국가들의 노력보다 느리고, 수동적이고 비효율적인 실정이다.   세계 각지에서 지역협력을 모색할 때마다 유럽의 지역주의는 모범사례로 예시되곤 했다. 유럽 차원의 정책을 관할하는 EU의 운영 체계는 회원국들이 모여 있는 국제기구라기보다 하나의 독립적 정치 단위에 가까울 정도로 세련되었다고 칭송받았다. 하지만 최근의 지중해 보트피플 사태는 지역주의에 근거한 공동체제가 항상 효율적인 것은 아니며, 오히려 국가 간 이견 속에서 소극적인 정책의 원인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동북아지역에서는 지역협력체의 부재를 염려하고 유럽의 모델을 참고하면서 동북아 지역협력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담론이 퍼져 있다. 하지만, 참여국가의 이해관계가 서로 다를 때, 지역협력체는 오히려 비효율적인 장치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지역주의가 발전한 유럽에서, 국익을 초월하여 인도주의적 기여를 추구하리라 기대되는 난민 문제를 두고도 지역공동체가 국가기관보다 소극적일 수 있다는 사실은 지역협력 강화를 추구하는 동북아지역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現 IOM이민정책연구원 연구교육실장. 벨기에 가톨릭루뱅대학교(Universite Catholique de Louvain)에서 정치학 박사학위 취득. 연구분야는 EU의 이민망명정책. 고급인력정책, 유학생정책 등.
  • The State of Regional Community in the Southeast Asian Region: Community Hemmed in between Politics of Nationalism, ASEAN Norms and Pragmatism
    저자
    Alan CHONG(S. Rajaratnam School of International Studies)
    발간호
    2015-28
      Much as most pundits would want to believe that the Southeast Asian region is progressing towards an integrated ASEAN social and economic community, the reality is far more complex. Most importantly, politics remains in command with economics trailing in second place. The romance with nationalism and the nation-state is not over. Moreover, it is a widely observable fact that unlike the more advanced form of supranational regionalism seen in Europe, there is little understanding or respect for international law in Southeast Asia. What keeps the peace are a series of overlapping normative regimes that have been accumulated since the founding of ASEAN in 1967. Political Ambitions of the Modernizing State: Taking the Cup of Nationalism Nationalism has not lost its appeal for Southeast Asian nation-states since the 1950s and 1960s. The joint appeal to advancing the national interest and progress in becoming a truly sovereign statehood continues to be a twin pronged magic wand in electoral and authoritarian politics. On 30 April 2015, Vietnam celebrated the 40th anniversary of reunification in tones that emphasised victory over the United States military effort in support of South Vietnam between 1964 and 1975. Nationalism appears also to be the ideal weapon at home to fend off criticism against nepotism and corruption, and simultaneously to direct anger against China over the South China Sea disputes. In Indonesia, the newly elected presidency of Joko Widodo has articulated a foreign and domestic policy vision of a strong, assertive and confident Republic. This is manifested in the articulation of the vision of Indonesia acting as a regional maritime fulcrum. In terms of asserting sovereignty, Jakarta persisted in executing drug traffickers from Australia and Brazil in April 2015 despite pleas for clemency from their governments. Thailand’s internal political renovation too has been dressed in nationalist rhetoric, even if the country has remained open to foreign investment. The twinned foreign and domestic policy announcements coming from the office of Prime Minister Prayuth Chan-ocha has emphasised the need to restore a much-needed sense of intra-Thai solidarity without following prescriptions from outsiders, however well-meaning they might be. Myanmar, despite the reforms since 2011, has always pursued a nationalist foreign policy emphasising that reforms and other policy changes cannot be made in reference to outside pressures. Across the rest of Southeast Asia too, open economies may openly pay lip service to neoliberal strictures of a global economy monitored by the IMF, World Bank and WTO, but the domestic elite interpretation for their citizens is almost always that these openings are undertaken for the logic of national interest rather than the stewardship of a global economy. Moreover, the conflation of rapacious foreign investors and territorial encroachments by rival Asian states remains a very potent rallying point for domestic political consultation regardless of whether democratic values are in operation or not. Absence of War rather than a Supranational Peace There is interstate peace in Southeast Asia, but it is one that emphasizes the absence of war instead of the thorough replacement of enmity with economic and political integration. Southeast Asian states define their national interests often in terms of seemingly contradictory goals, such as the recovery of historically alienated territories and populations, the assertion of the principle of sovereignty, and the welcoming of foreign direct investment. As most ASEAN documents specify between the lines, these goals can only be pursued if there is no explicit forward movement towards substantive economic integration amounting to supranationalism. Since the institution of the nation-state is upheld by most politicians and members of the various publics as unquestionably ethical and desirable, there is, in actual fact, no urgent political need to put the ASEAN Community vision, let alone the ASEAN Charter, into action. Whenever there are bilateral disputes between any two ASEAN members, say Thailand and Cambodia, or Indonesia and Malaysia, or Singapore and Malaysia, the lip service is paid by their leaders to international law while they are appealing equally to something variously called the ‘ASEAN spirit’ and ‘good neighbourliness’. It is this vagary that allows both parties in dispute to stand down gradually without losing political and social face. Nothing is substantially solved, except in the rare instances, where Jakarta, Kuala Lumpur and Singapore found the required political will to resort amicably to the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at The Hague to allow the other to gracefully ‘give and take’ according to the judgments of a third party. Bilateral island disputes, where deadlocked, appear to require the relatively more impartial intervention of the non-ASEAN outsider. Yet, for these international legal settlements to take place, the highly informal diplomatic and political grounds have to be prepared between the quarrelling ASEAN members. One might even go as far as to say that it is probably diplomatically healthy for the Code of Conduct on the South China Sea to remain as vague as possible in order that something of a lasting, albeit imperfect, peace can be obtained amongst the claimants. Nationalism shrouded in ambiguity makes for good domestic political fodder, in so far as all claimants can assert to their respective publics that the national interest has been achieved by foreclosing unsatisfactory outcomes. The sequel to the Code of Conduct should remain equally vague, especially in view of the likely calculations by most ASEAN claimants to the Spratly islands that there is little to be gained from antagonizing China across the board, given the warmth of existing economic ties between China and every ASEAN member. Getting by with International Law Lite: the Norms of ASEAN and East Asian Diplomatic Norms The overriding preference by Southeast Asian states for ‘Asian solutions to Asian problems’ is ostensibly an extremely laudable aspiration. But it implies that the region is still uncomfortable with complete embracing public international law. In spirit, the latter makes for stable, continuously peaceful international relations. In substance, international law does not always facilitate nationalism in foreign policy, let alone domestic political considerations. International law is feared to be antithetical to the nation-state and national self-determination, since it is ideologically borne of liberal visions of world order. Following the political philosophy of Hugo Grotius, Immanuel Kant, and Samuel Pufendorf, international law requires states to subscribe to a continuous philosophy of law at home and abroad. This is unhelpful to political cultures in ASEAN that still privilege demagoguery, revanchism, and continuity with principles of decolonization that espouse renovating the post-World War Two order. It is not surprising that ASEAN’s famed documents from Bangkok in 1967, plus the two Bali Concords from 1976 and 2003, consistently emphasise self-reliance and reify the need for sociological interpretations of national and regional resilience. The rule of law in both domestic and interstate relationships is relegated to third priority in the original Bangkok Declaration of 1967, or placed lower in subsequent ASEAN documents. In the text of the approved ASEAN Charter, sanctioned in 2008, paragraph 7 of Article 1 makes it clear that the purpose of ASEAN is ‘to strengthen democracy, enhance good governance and the rule of law, and to promote and protect human rights and fundamental human freedoms, with due regard to the rights and responsibilities of the Member States of ASEAN.’1  Instead, Southeast Asian states have honed a useful set of quasi-legal principles dubbed variously the ‘ASEAN Way’ or the ‘ASEAN Spirit’, or ‘Musyawarah Mufakat’ in Bahasa Indonesia. These codes refer to the art of avoiding a compulsory vote on contentious issues within ASEAN, the deliberate obfuscation of assigning blame, temporization on decision-making, and a circuitous method of naming a common adversary either within ASEAN or outside ASEAN. Even at times when ASEAN neighbours have had to admonish Myanmar, Malaysia, Thailand, Cambodia or Indonesia over various issues, ranging from egregious human rights abuses to attributing the source of environmental pollution, to tardiness in handling disaster relief, communiques from ASEAN meetings and national ministries concerned with foreign affairs have tended to rebuke their targets in the mildest of terms. Moreover, there is always peer pressure from the other ASEAN members to rein in direct criticism, in the hope that this will allow the target state to ‘save face’ and make policy rectifications quietly. In these indirect ways, a rule of peace endures in the ASEAN region. This condition can only at best be described as an embryonic stage of socializing a rule of law in the region. Conclusion The prospects for treating Southeast Asian regionalism as a progressive trajectory needs to undergo a reality check. Change is always wished for but continuities persist. Southeast Asian regionalism is hemmed in by the politics of nationalism, the persistence of ASEAN’s normative frameworks, and pragmatism as a diplomatic virtue. - Reference (1) ASEAN, ‘Charter of the Association of the Southeast Asian Nations’ available at http://agreement.asean.org/media/download/20141204151618.pdf, accessed 3 May 2015. ALAN CHONG is Associate Professor at the S. Rajaratnam School of International Studies in Singapore.
  • 아시아의 새로운 질서와 협력적 리더십
    저자
    고촉통 (前 싱가포르 총리)
    발간호
    2016-24
    아시아의 새로운 질서 우리는 이제 태평양의 세기라 불리는 21세기의 20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현재 전 세계 생산량의 40%, 세계 생산성 증가분의 2/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경제가 성장동력을 유지하고 세계 경제의 변화와 기술의 발전에 적응할 수 있다면, 2050년이면 아시아는 전 세계 인구에서 이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과 비슷한 수준으로 세계 총생산의 절반을 차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하루에 1.25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세계 절대빈곤계층에 속하는 아시아 인구는 1981년 16억에서 오늘날에는 7억으로 절반이 감소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잠재력을 충분히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부분적으로 역사적 유산에 뿌리를 두고 있는 난제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역사의 질곡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아시아의 새로운 질서라는 공통된 비전을 공유하고, 이 공동선을 위해 난제를 함께 극복하려는 정치적 의지를 지닌 현명하고 굳건하며, 선견지명을 가진 지도력을 필요로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에서의 리더십 협력적 리더십이란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리더십은 대부분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마다 발휘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유럽의 30년 전쟁 후 1648년에 체결된 베스트팔렌 조약은 오늘날의 외교정책과 국제관계의 기반이 되는 통치권, 그리고 영토 보전의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오늘날 역동적인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분열과 불안정한 상태 속에서 격동의 시기를 거쳐 왔습니다. 탈식민지화는 아시아에서 수많은 신생 독립국을 출현시켰습니다. 공산주의자는 동남아시아를 갈라놓았고, 이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간 대립의 시기로 이어졌습니다. 한반도는 휴전체제 하에서 여전히 분단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는 힘든 시기였지만 각국 정부는 차이를 극복하고 아시아 지역을 아우르는 평화를 이루어냈습니다. 미국의 안보우산은 아시아가 경제발전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이 지역을 안정시켰습니다. 이는 일본의 경제기적과 한국‧싱가포르‧홍콩‧대만이라는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가 등장하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했고, 10년 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 아시아의 지도자들은 국민들을 위한 발전과 번영을 지도의 원칙으로 삼았고, 일부 국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적 유산에서 기인하는 상호 신뢰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상생을 적극적으로 추구해왔습니다. 오늘날 국제질서는 압력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기술발전과 용이한 통신수단으로 빠른 변화를 보이는 국제흐름은 사회내부뿐 아니라 외부에서도 유례없는 혼란을 초래해 왔습니다. 지도자와 정부는 국민들의 요구를 충족하고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엄청난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담에 대한 반응으로, 때로는 관심을 분산시키려는 의도로 여러 문제를 표면화하거나 문제해결의 시간만을 벌고자 하는 유혹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문제해결을 미루는 것은 미래세대에 더 큰 문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는 미래세대에게 그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역사의 유산마저 처리해야 하는 짐을 지우게 됩니다. 아시아인들은 평화와 안정을 원합니다. 이들은 여전히 인생에서 더 높은 성취를 원합니다. 지도자들은 단순히 제로섬의 논리로 국가이익만을 수호하기보다는, 비전과 정치적 용기를 가지고 이들의 보편적 희망을 실현할 수 있는 지역 내 기반을 건설할 수 있도록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싱가포르의 시각 조그만 섬 제주도조차도 싱가포르 전체 면적의 2.6배입니다. 우리에게 필수적인 물과 식량안보는 국가지도자들을 밤낮없이 긴장하게 만드는 매일 매일의 관심사입니다. 조그만 도시국가로서 우리는 선택지가 거의 없으며, 실수를 용납할 만한 여지도 없습니다. 우리의 생존은 개방적이고 투명하고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제도와 호의적 외부환경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와 갈라설 수 없는 처지입니다. 지역 내 지정학적 긴장과 고조된 테러의 위협은 싱가포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1965년 독립 이후, 우리는 능동적 외교정책을 추구해왔습니다. 우리는 지역 내 협력 기구를 창조해왔습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의 창설국이자 UN의 작은 나라들의 포럼을 창설했고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와 동아시아라틴아메리카협력포럼(FEALAC)의 출범에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이 모든 포럼 및 국제기구들은 회원국들 간의 이해와 협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967년 ASEAN의 출범은 국가들을 응집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는 다자간기구의 좋은 예입니다. ASEAN을 통해 과거의 적대국들은 협력적 동반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ASEAN은 싱가포르 외교정책의 주춧돌입니다. 10개 회원국은 영토나 인구의 크기, 경제사회구조, 통치체제에서 서로 다르지만 빈곤 퇴치, 발전격차의 해소, 그리고 국민복지의 향상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ASEAN 조각그림 퍼즐’처럼 제각기 다른 회원국들을 결합시킵니다. 2015년 12월, 우리는 2조 6천억 달러 규모이자 6억 2천만 인구를 가진 거대한 시장인 아세안경제공동체(AEC)를 출범시켰습니다. 또한 아세안경제공동체의 2025년 청사진은 국가 간 연계를 증진하고 경쟁력 있고, 혁신적이면서도 역동적인 ASEAN을 창조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ASEAN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회원국들이 과거의 수렁에서 탈피하기로 결심함으로써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훌륭한 예입니다. ASEAN은 또한 동아시아정상회의(EAS)와 같은 기구를 통해 주요 강대국을 이 지역에 참여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주요 성과의 하나는 한·중·일 3자간 협력으로, 이는 1999년 마닐라에서 열린 ASEAN+3 회의에 부수된 한국, 중국, 일본 지도자들 간 역사적 조찬모임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는 한·중·일 3자간 협력구조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첫 단계였습니다. 2008년 이후로 이들 3국은 ASEAN+3 회의와 별도로 모임을 가졌고, 싱가포르는 지난 11월 서울에서 열린 최근의 3자간 정상회담과 같은 모임을 환영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동북아시아의 조각그림 퍼즐이 ASEAN과 마찬가지로 관련 당사국들에게도 들어맞아,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집단적 지혜 크기는 상대적인 것입니다. 한국과 싱가포르는 양국 모두 주변국가와 비교하면 매우 작은 나라입니다. 한국만이 갖는 독특한 지정학적 과제, 즉 북한의 적대적 정권, 중국의 전략적‧ 경제적 비중의 증대 및 한일관계에 미치는 역사적 앙금이 한국의 목전에 놓여 있습니다. 한반도나 미·중 간 긴장이 고조된다면, 한국은 당사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긴장관계에 휘말려들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은 어떻게 그러한 상황을 피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미국의 안보우산이 중요하긴 하지만, 오로지 그것에만 의지할 수 있을까요? 이는 현재와 미래의 한국의 지도자들이 생각해봐야 할 중요한 질문입니다. 역사는 집단적 지혜와 개방적 리더십이 훌륭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앞선 세대의 지도자들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역사의 짐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지도자들은 너무 과감한 조치를 취한다거나 자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지만, 그것이 올바른 행위였는지는 역사가 판단할 것입니다. 그러한 과감한 지도력을 보여주는 최근의 예는 지난 12월 한국과 일본 간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합의입니다. 이는 감정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었고, 어려울 수밖에 없는 문제이지만 양국은 역사의 페이지를 넘겨 신뢰와 화해를 구축하려는 훌륭한 결단과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한국과 일본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과 협력을 증진시킬 것입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아시아에 강력한 지도자들이 있지만 이들이 더 넓은 지역적 시야를 가지지 못하고 자국 내에서의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만으로는 미흡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힘 있는 국가 지도자만 있고 국가 간 협력적 리더십이 약화된다면 이는 더욱 안타까운 상황이 될 것입니다. ‘태평양의 세기’와 평화롭고 번영된 아시아의 새로운 질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팔을 벌리고 역사의 구속을 넘어서 미래세대가 조화롭고 번영된 삶을 누릴 수 있는 질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시아 지역이 이러한 비전을 함께 구현하는 것이 싱가포르가 희망하는 바입니다.​ 고촉통(前 싱가포르 총리), 2016 제주포럼 기조연설 발췌문
  • 유럽연합 반(反)테러리즘의 제도적 기초
    저자
    도종윤 (제주평화연구원 지역통합연구부장)
    발간호
    2016-25
    유럽연합의 반테러리즘 입법 계기 2001년 발생한 9/11이 미국의 반테러리즘 전략에 일대 전환을 가져온 계기가 되었다면, 유럽에게 그와 같은 사건은 2004년 3월 11일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 역에서 발생한 폭발사건이다. 알카에다의 공격으로 발생한 이 폭탄 공격으로 191명이 사망하고 2,050명의 민간인이 부상을 당하는 대참사가 발생하였다. 2주일 후인 3월 25일, 유럽연합의 정상들(European Council)은 이른바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선언하였다. 이 선언에서는 유명무실했던 ‘유럽안보방위정책(ESDP)’이 구체적인 활동을 하도록 촉구하였고, 각 회원국에게는 그동안 지체되었던 유럽영장제도, 유럽합동수사팀 구성, 돈 세탁 방지, 유럽사법협력기구(Eurojust) 설립 등 반테러리즘 입법에 관한 실효성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였다. 또한 유럽경찰국(Europol)의 역할 강화를 위해 회원국이 범죄 관련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였고, 유럽경찰국은 이를 토대로 정보관리를 체계화하기로 하였다. 집행위원회에게는 개인의 DNA, 지문, 비자관련 정보 등을 공유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도록 하였고, 특히 여권과 비자에는 여행객의 생체 특성을 삽입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였다. 더 나아가 유럽의 국경 관리를 위하여 유럽국경감시청(European Borders Agency)의 설립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 선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반테러리즘 조치는 ‘대테러대책조정관(Counter-Terrorism Coordinator)’를 신설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대테러대책조정관에게 유럽정상회의(The European Council) 관할에 속하면서 유럽연합이 수립한 정책이 제대로 수행되는지를 감시·감독하는 역할을 맡도록 하였다. 리스본 조약에서 반테러리즘   2009년 12월 1일, 유럽연합은 통합의 새로운 제도적 기반인 ‘리스본조약’을 발효하게 되었다. 이 조약에서도 테러리즘은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데 특정 사안을 회의나 선언이 아닌 제도적 근간에서 직접 다룬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조약에서는 테러리즘을 크게 ‘공동 외교 및 안보 정책 차원(TEU 43조 1항)’과 ‘내부 및 사법 차원(TFEU 75, 83조 1항, 88조 1항)’에서 모두 언급하고 있다.   먼저 공동외교안보정책에서는 테러리즘에 대항하기 위하여 역내의 민군(民軍)을 막론하여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고(TEU 43조 1항), 아울러 제3국과의 공조도 명시하였다. 내무·사법 정책에서는 테러리즘과 관련된 자금동결 입법 절차를 명시하였고(TFEU 75조), 국경을 넘어서는 범죄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입법 조치에 인신매매, 여성 및 어린이 착취·유린, 자금 세탁, 부패, 지불수단의 위조, 컴퓨터 범죄, 조직범죄 등과 더불어 테러리즘을 포함시켰다(83조 1항). 또한 회원국 간 경찰 협력과 관련하여 유럽경찰국의 임무를 명시하였는데, 두 개 이상의 회원국에 심각한 해를 끼치는 범죄, 즉 테러리즘과 기타 공동의 이익에 반하는 범죄를 예방하고 대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88조 1항).   이처럼 리스본 조약은 테러리즘에 대하여 대외정책 측면에서 무력수단을 포함한 국제 공조를 지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역내의 자유와 안전, 정의를 위하여 테러리스트들의 자산 제한 조치도 취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조치들은 일반 법률 제정 절차를 따르도록 하여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었다.   유럽연합의 초국가적 정책은 사실 회원국 간 연대(solidarity)를 바탕에 두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유럽연합은 테러리즘과 자연재해(disaster)를 회원국 간 연대의식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위협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리스본 조약은 테러리즘 예방은 물론, 테러리스트에게 공격을 당한 회원국에 대한 타 회원국들의 구호 조치를 명시하고, 유럽이사회와 유럽의회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제도적 조치를 신속히 처리하도록 명문화하였다(TFEU 222조 1-4항).   반테러리즘 전략: 초국가적 원칙과 개별 회원국의 입법 유럽연합은 2004년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선언하였고, 이 선언에 의해 도입된 ‘대테러조정관’은 2005년 11월 30일, “유럽연합의 반테러리즘 전략(The European Counter-Terrorism Strategy)”을 내놓았다. 그리고 이는 유럽연합의 반테러리즘에 관한 실무적·기술적 토대가 되었다. 이 전략문서는 반테러리즘의 궁극적 목적을 “인권에 대한 존중과 (유럽의) 시민들(citizens)이 자유, 안전, 정의가 실현되는 지대(area)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는 인류 보편이 수긍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여 향후 전개될 구체적 조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반테러리즘 전략의 원칙은 크게 ‘예방’, ‘보호’, ‘추적’, ‘대응’ 등 네 가지 차원에서 전개된다. 테러리즘의 발생 요소를 차단하고(예방), 테러리즘의 취약지대를 찾아 시민과 사회적 기반시설을 안전하게 확보하며(보호), 초국경적 테러 지원 요인을 탐색 색출하여 사법처리하며(추적), 테러리즘이 발생하였을 경우 희생자와의 연대감을 고취함으로서 불법적인 폭력에 굴복하지 않겠다(대응)는 뜻이다. 그러나 반테러리즘 전략은 안보의 핵심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회원국의 주권이 존중되는 가운데 추구되어야 한다. 따라서 유럽연합이 오로지 초국가적인 전략만을 현실 속에서 일방적으로 실천할 수는 없다. 때문에 반테러리즘의 1차적인 대응은 회원국 차원에서 진행하되 유럽연합은 회원국의 책임을 가치(value) 측면에서 지원하는 것이다. 유럽연합은 정보와 지식의 수렴지로서 회원국의 반테러리즘 능력을 제고시키고, 각 회원국 간 또는 회원국과 유럽연합 기관 간 협력을 조율한다, 또한 유럽연합 고유의 자체기관을 개발하여 집단적 대응 능력을 향상시키며 밖으로는 유럽을 대표하여 UN 등 국제적인 주요 기관, 국가들과 안보협력을 이끌어내게 된다. 이러한 노력들은 이미 언급한 예방, 보호, 추적, 대응 등의 원칙에 교차 공헌하는 실천적 노력의 핵심이 된다.   실천적 측면에서 유럽연합의 반테러리즘 활동은 크게 관련 집행기관의 설치, 회원국의 개별 입법으로 나눌 수 있다. 이미 언급한 ‘대테러조정관’은 유럽연합의 집행기관인 집행위원회가 아닌 유럽이사회의 관할 아래에서 업무를 진행한다. 임명권자는 고등외교대표(High Representative)이며, 유럽정보국(EUINTCEN)과 유럽경찰국의 정보를 취합하여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를 이사회에 제출하며, 유럽연합 차원에서 추진되는 반테러리즘 활동을 모니터한다. 이런 가운데 구체적인 전략의 수립의 순간에는 이사회, 집행위원회, 고등외교대표 사이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 전략이 추진될 수 있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공동외교대표와의 업무 중복과 테러리즘의 범위를 특정할 수 없는 업무 영역의 모호함으로 인해 활동력이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주요 업무도 반테러리즘 전략의 모니터링에 주로 한정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편, 2005년 런던에서 발생한 테러리즘은 유럽연합으로 하여금 테러방지 활동이 매우 중요함을 인식하게 하였고 그 예방법의 하나로 첩보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유럽연합은 ‘EU 공동상황센터(SitCen)’를 모태로 2009년 이후부터는 유럽대외관계청(EEAS)에 ‘EU첩보분석센터(EUINTCEN)’을 두고 국제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의 정보를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첩보분석센터는 자체적인 정보 획득 메커니즘을 갖고 있지 못하고 오로지 소극적인 정보 분석에만 의존하고 있어서 업무 수행에 한계가 따른다. 때문에 2013년, 집행위원회는 2020년까지 해외첩보역량을 강화한 첩보국을 둘 것을 제안한 바 있으나, 책임 소재의 모호함, 국가 중심의 전통적인 첩보 개념 등으로 인해 반대에 부딪혀있다. 당분간은 인터폴이나 유럽경찰국, 유럽사법협력기구 등 다른 사법기관들과 공조하면서 정보 공유의 폭을 확대하고 분석역량을 높이는 데 더 중점을 기울일 것으로 판단된다. 회원국의 개별 입법 차원에서 보면, 최근 몇 년간 헝가리, 영국, 오스트리아, 벨기에 등에서 테러리즘 관련 입법을 새로 내놓거나 개정하였다. 예컨대, 오스트리아는 테러리스트들에 유입되는 자금을 차단하는 입법을 강화하였고, 벨기에는 테러리스트 양성을 위해 인력을 모집하거나 이들을 훈련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국내외에서 테러리스트 양성 훈련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심지어 테러리즘 관련 메시지나 선전물을 옮기거나 배포할 경우 처벌하도록 하였다. 이와 같은 범죄를 저지른 자는 최소 벌금 100유로에서 최대 10년까지 징역형을 선고 받을 수 있다. 헝가리는 2013년 테러리즘을 “무기를 이용하여 공공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범죄적 공격 및 개인에 대한 폭력적 범죄”로 규정하고 이러한 범죄를 저지른 테러리스트들은 짧게는 10년, 길게는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하였다. 반테러리즘 제도의 진행 방향: 정보공유와 인권보호의 양립 문제   유럽연합의 반테러리즘은 제도적 측면에서 어느 정도 완비가 된 것으로 판단된다. 앞서 언급된 원칙과 대응 전략 외에도, 유럽경찰국, 유럽사법협력기구, 국경감시청 등의 활동은 매우 활발하다. 그러나 테러리즘은 발생 후 대응보다 예방과 보호가 더욱 중요하다. 최근 벨기에 자벤텀 공항의 테러리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보공유가 제한적이고 이를 처리할 경찰 조직이 파편화되어 있다면, 테러리즘의 예방과 보호에는 많은 한계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유럽정보국의 강화 및 역할 개편은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으나, 주요 회원국들이 운용하고 있는 기존 정보국의 압력을 견디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정보의 접근과 공유가 인권문제와 양립할 수 있는 정치적 원리도 재발견되어야 첩보 활동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최근 유럽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인권으로서의 개인정보 보호와 안보의 양립 문제, 미국과 협상 중인 개인정보 공유·보유·파기 관련 논의가 가닥을 잡을 경우 첩보 활동을 포함하여 예방 차원의 반테러리즘 입법은 더욱 크게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지역통합연구부장. 브뤼셀 자유대학교에서 정치사회학 박사학위 취득. 주요 논문으로 "국제정치학에서 주체물음(2013)", "유럽연합의 개발협력전략(2013)"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