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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PI PeaceNet] 경제안보 관점에서 본 바이든의 방한과 미국의 대외정책
    저자
    임해용(제주평화연구원)
    발간호
    2022-06
    미중전략경쟁의 시기에 경제와 안보가 연계되는 현상은 탈냉전 이후 워싱턴 컨센서스 하에서 정치와 경제문제가 분리되었던 시기와 대조된다. 경제안보의 부상은 포스트 워싱턴 컨센서스의 안보적 전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바이든 미국대통령의 방한은 글로벌 포괄적 동맹으로서 한미동맹이 양자수준에서 그 제도화의 폭과 깊이를 넓히는 분기점이기도 하며 또한 미국의 글로벌 경제안보전략이 대서양지역에서는 미국과 EU 간 ‘무역기술협의회(Trade and Technology Council: TTC)’로, 인태지역에서는‘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IPEF)’를 통해 다자적으로 제도화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에 제주평화연구원 임해용 연구위원의 글을 통해 경제안보 관점에서 본 바이든의 방한과 미국의 대외정책의 변환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파악해보고자 한다.[기획자: 임해용 연구실장(haeyonglim@jpi.or.kr)] 1. 서론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5월 20일에서 22일까지 한국을 방문하였고 22일 오후부터 24일까지 일본을 방문한다. 이번 정상회담은 대한민국의 역대 정부 출범 이후 최단기간인 11일 만의 개최이며,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먼저 찾아온 것도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방한 이후 29년 만이기도 하다.1)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기존의 안보동맹을 확대 핵우산을 통해 강화하고 경제안보와 기술동맹까지 포함하는 지구적 차원의 포괄적인 동맹으로의 변환을 담고 있다. 통상 한국을 방문한 역대 미국 정상은 DMZ, 도라산 전망대, 전방 미군기지 등 안보적으로 중요한 곳들을 방문하였다. 이번에 바이든 대통령은 안보와 관련된 장소보다는 첫 행선지로 삼성의 평택 반도체 공장을 방문하고 정의선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과 개별 면담하며 삼성과 현대의 미국 투자에 대한 감사를 표함으로써 경제안보가 이번 방문 목적의 일 순위였음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한국이 참여하는 인도-태평양 경제협의체(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IPEF)가 바이든의 일본 방문에서 공식적으로 출범함으로써 경제안보이슈는 이제 인도-태평양지역에서 제도화가 시작되고 구체화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 바이든의 한국 방문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경제안보차원에서 IPEF을 구축하고 안보동맹의 주제를 경제문제로 확대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2. 바이든의 방한 성과: 인도·태평양지역에서 경제안보의 제도화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지난 2021년 5월 한미정상회담과 비교하여 경제안보면에서 제도적 변환이 중요한 부분이었다고 평가될 수 있다. 양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경제안보와 공급망 관련한 제도적 협력을 합의하였다. 핵심 신흥기술과 사이버 안보 협력, 그리고 경제·에너지·안보 협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국가안보실에 양 정부간 행정적·정책적 접근 방식을 조율하기 위한 경제안보대화 출범을 약속하였다. 더 나아가 반도체, 배터리, 핵심 광물 등 주요 품목의 회복력 있는 공급망 촉진 논의를 위해 국장급이었던 산업협력대화를 장관급인 공급망·산업대화로 격상해 정례적으로 관련 논의를 하기로 합의하였다. 또한 에너지 안보와 관련해서도 원자력 관련 에너지 공급망 확보를 위한 공동의 협력 강화를 위해 기존의 원자력 고위급 위원회 활용을 약속하였다. 한미 간 경제안보를 위한 이러한 제도적 발전을 통해 경제와 안보의 연계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측되고 새 정부가 국가안보실에 신설한 경제안보비석관석은 양국 간 경제안보협의의 실무 중심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바이든의 방한은 한국을 인도·태평양 지역의 경제안보 관련 제도적 진전이라고 할 수 있는 IPEF의 일원으로 참여시키는 데에도 있다. 이번 정상회담으로 한국도 개별국가 차원에서 ‘인도-태평양 전략 프레임워크’를 수립하게 되었고, 이를 위해 디지털 경제, 회복력 있는 공급망, 청정 에너지,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우선순위로 하는 포괄적‘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참여하여 발전시켜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IPEF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지역 경제안보전략의 핵심이며, 이 경제안보전략 드라이브는 향후 미국의 인도-태평양 지역 경제협력의 핵심으로 부상할 수 있다. 3. 포스트워싱턴 컨센서스 시대 미국의 대외경제정책과 경제안보의 부상 탈냉전 이후 미국은 워싱턴 컨센서스를 통해 정경분리의 원칙을 바탕으로 자본과 금융의 세계화를 추구하였고 이의 가장 큰 수혜자는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이었다. 중국에 대한 경제적 관여정책은 오바마 행정부까지 지속되었고, 미국의 쇠퇴한 산업지역의 지지를 바탕으로 당선된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 이 관여정책은 대전환을 맞기 시작하였다. 2018년 7월,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산 수입품목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으로의 기술이전에 대한 행정 통제를 시작하면서 미중전략경쟁이 새로운 전기에 접어들었다. 미국의 대중공세는 세간의 예상과는 달리 바이든 행정부의 취임 이후로도 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 공세적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민주주의정상회의를 주관하면서 가치와 이념을 국제협력의 이슈로 부각시켰다. 유럽과 아시아의 전통적인 동맹국들에게 화해의 손을 다시 내밂으로써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을 기반으로 하는 다자주의 전략으로 선회하였다. 오바마 정부 시기 추진하던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는 트럼프 정부 시기에 포기되었고, TPP는 현재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he 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CPTPP)로 전환되어 지속되고 있다. 미국은 CPTPP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명확히 한 상태이고, 중국은 CPTPP에 가입을 요청하였다. 또한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경제협력체인 역내포괄적 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nership: RCEP)을 주도하고 있다. 이에 미국은 IPEF을 통해 다자적 차원에서 경제안보이슈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협력체를 운용하려고 한다. 지금 미국에게 주요한 것은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라 전략적 기술분야, 에너지, 공급망 등에 대한 미국의 주도권을 다시 확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워싱턴 컨센서스가 국제경제협력의 담론을 주도하던 시기와 달리 현재는 경제문제가 안보문제가 분리되어 다루어질 수 없고, 국가 간의 능력 배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전략적 기술, 에너지 분야, 공급망 관리는 경제안보 연계의 핵심 분야가 되었다. 2021년 바이든은 대통령 취임과 더불어 공급망 점검에 대한 긴급행정명령을 내리고 대중전략경쟁의 전략적 경쟁 분야의 확인과 동맹 중심의 경제적 개입을 시도하면서 대중 경제적 탈관여를 지속하면서 탈동조화(decoupling)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TPP를 탈퇴하여 인도-태평양 지역의 경제적 연계 강화를 시도하지 않은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은 인도-태평양 경제협력체인 IPEF를 통해 경제적 주도권 회복을 시도하려고 한다. IPEF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경제안보전략이지만, 미국의 글로벌 경제전략의 변화 측면에서도 파악될 필요가 있다. IPEF는 미국·유럽연합이 2021년 9월 말에 출범시키고  진행하고 있는 무역기술협의회(Trade and Technology Council: TTC)의 인도-태평양 버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TTC는 2021년 9월 29일 첫 회의를 실시하였는데, 불공정 무역, 반도체 공급 사슬, 투자 스크리닝, 수출 통제, 인공 지능 등이 주요 의제였다. 또한 지난 5월 15일과 16일에 제2차회의를 개최하여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 대책, 러시아에 대한 수출 공제 확대 등에 대해 합의하였고, 10개의 세부분야 워킹그룹으로 협상을 진행하였다.2) 현재 미국의 대외 경제안보정책은 무역과 기술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그 핵심은 안보관점에서 미국 영향력 하의 공급망 재편과 기술이전에 대한 관리이다. 또한 유럽에서의 경제안보전략도 중국을 대상으로 시작되었지만, 이번 TTC 제2차 회의 결과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러시아 제재 성격도 포함하고 있다. 미국이 이미 유럽연합과 TTC를 진행해 온 과정과 내용을 보면 경제안보는 인도·태평양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며, 경제안보는 미국의 글로벌 전략으로서 가장 주요하게 부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대외경제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경제안보의 부상은 탈냉전 이후 미국의 대외경제정책의 가장 중요한 패러다임이었던 워싱턴 컨센서스가 공식적으로 종료되고 포스트 워싱턴 컨센서스의 안보적 전회를 의미한다. 현재 미국의 경제안보전략은 안보와 정치문제가 경제협력과 분리되어 다루어졌던 워싱턴 컨센서스 시절과는 반대로 경제이슈가 궁극적으로는 안보적 목적으로 동원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4. 중국의 경제추격과 미국의 글로벌 경제안보체제 구축 미국의 글로벌 전략의 전환은 경제와 안보의 연계를 바탕으로 하고 포괄적인 의미에서 미국의 안보적 우위의 확보를 위해 공급망의 재편과 미국의 기술동맹 협력 강화를 목적으로 한다. 이는 미국이 미중전략경쟁의 핵심을 경제와 기술분야로 파악하고 이 분야에서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압도적 격차를 유지하여 이 경쟁에서 승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러한 목적과 의도는 1980년대에서 90년대 초 일본과의 경제 경쟁에서 일본의 경제추격을 따돌린 경험에 기초한다. 강대국들의 갈등의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미국에게 미중전략경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구소련을 군사적·경제적으로 봉쇄 및 견제하여 냉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냉전 시기 독일과 일본의 경제적 부상도 효과적으로 견제하였다. 특히, 미중전략경쟁을 경제적인 관여와 탈동조화(decoupling) 측면에서 보자면 1980년대에 격화되었던 일본 때리기(Japan Bashing), 지금의 버전으로 하면 ‘미일전략경쟁’의 새로운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2차세계대전 이후 일본을 경제적으로 관여하여 일본의 전후 경제부흥을 도운 미국이 일본의 경제가 미국을 추격하자 1980년대에 들어서서는 일본이 스스로 미국에 대한 수출을 규제하게 하고 1985년 플라자 협정에서는 엔화의 평가절상이 강제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가져온 역사적 경험은 경제적 관점에서 미중전략경쟁을 상기시킨다. 미국의 일본 때리기는 1990년대 실리콘 밸리의 기술적 패권이 일본을 압도해 가면서 약화되기 시작하였는데, 미국은 이 시기의 경험을 되살려 중국의 추격을 떨치고자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트럼프의 등장 이후 지속되는 미국 국내정치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미국 대외경제정책에 있어 기존의 관여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은 기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2차세계대전 이후, 특히 탈냉전 이후 지속해왔던 경제적 관여정책을 바탕으로 정치와 경제를 분리시켰던 정책 기조를 뒤집고 미중 디커플링으로 대외경제정책을 전환하는 데는 정치적 이단아가 필요했던 측면이 있다. 만약 평생 리버럴리즘을 정치철학으로 하며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하면서 중국에 대한 관여 대열의 선두에 서 있던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최소한 미국의 대중국 정책의 탈관여로의 전면적 전환은 다음 대통령을 기다렸어야 했을 것이고 중국의 추격은 더욱 거세었을 것이다. 트럼프 덕분에 바이든 행정부는 그간의 국제적 리더쉽 행사의 근간이 되는 미국의 약속을 자신이 명시적으로 철회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그로 인해 정치적 부담을 덜게 되었다. 다만, 트럼프 시기 인도·태평양 전략은 구체화되지 못하고 그 정교성이 없는 상태에서 미국 일방주의의 정치적 수사로 인해 동맹국들의 적극적 지지 하에 실천되지는 못하였지만,3) 바이든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동맹국들의 지지를 확보해 나가는 가운데 경제안보 측면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5. 결론: 중국의 대응과 한국의 과제 이번 바이든의 방한은 경제안보 이슈의 부각과 제도화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미국의 대외정책에 가장 크게 걸려 있고, 양국 간 직접적 충돌이 없다면 향후 장기간 지속될 미중전략경쟁에서 최종적인 승리는 첨단기술분야의 압도적 우위를 바탕으로 경제분야와 공급망, 에너지 분야가 미국 중심의 생태계에 있을 때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이든의 일본 방문 중에 출범하게 될 IPEF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TTC는 유럽지역에서 진행되는 미국의 글로벌 경제안보정책을 중국을 포위한다는 위협으로 인식하게 된다면 중국은 이에 대해 대응하며 주변국에도 압력을 행사할 것이다. 중국의 대응은 향후 미중전략경쟁 성격의 규정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미중 양국 사이에 걸려 있는 전략경쟁이 대결로 치닫게 될지(confrontation), 현재의 경쟁적 성격을 유지하게 될지(competition), 협력적 분위기로 전환하게 될지(cooperation)는 중국의 대응이 사후적으로 결정하게 될 것이다. 한국은 글로벌 차원에서 포괄적 한미동맹을 추구하면서도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을 격화시키지 않고 일정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모든 외교적 수단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   1) https://www.yna.co.kr/view/AKR20220428091500001 (검색일: 2022년 5월 22일) 2) 10개 워킹그룹은 △기술 표준 협력 △기후 및 청정 기술 △공급망 안정화 △정보통신기술 및 서비스 △데이터 거버넌스 및 기술 플랫폼 △안보 및 인권 위협 기술 오용 △수출 통제 협력 △투자심사 협력 △중소기업의 디지털 기술 접근 및 사용 촉진 △글로벌 무역 도전과제 등이다. 한국무역협회 웹사이트. https://www.kita.net/cmmrcInfo/cmercInfo/areaAcctoCmercInfo/euCmercInfo/euCmercInfoDetail.do?pageIndex=1&no=1822917&searchReqType=DETAIL (검색일: 2022년 5월 23일) 3) 한인택, 인도태평양 전략의 불투명한 미래, JPI PeaceNet, 2020년 정세전망-5호, 2020년 1월 30일.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편집 : 김수연 연구원 임해용 (제주평화연구원) 저자 임해용 박사는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실장으로 애리조나주립대 박사후연구원과 통일연구원의 부연구위원을 지냈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정치학사, 경제학사)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휴스턴대학에서 투명성의 정치경제에 관한 연구를 하여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분야는 투명성의 정치경제, 경제와 안보의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를 중심으로 한 분쟁과 평화의 정치경제, 동북아 국제정치 등이다. 주요 논문으로는“Does the WTO Exacerbate International Conflict”(Journal of Peace Research, 2020),“평화경제론과 한반도: 분쟁 후 국가의 평화구축 관점”(국제정치논총, 2021) 등이 있다.
  • [JPI PeaceNet]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 특이성과 함의
    저자
    김소정(국가안보전략연구원)
    발간호
    2022-05
    단기간 내 패전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우크라이나가 의외로 선전하고 국제적 지원도 받게 된 데에는 SNS의 역할이 지대하다.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가 SNS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 주요한 원인은 에스토니아나 그루지아와의 전쟁에서와는 달리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사이버 공격을 통해 주요 핵심 기반시설을 파괴하지 못하였고 인터넷 통제권도 확보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 사이버 공격의 특이성을 분석하고, 국가정책 수립과 국제규범 논의에 주는 함의를 논의한다.  사이버공간을 평화롭게 만들려는 각국의 노력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보다 러시아가 그러한 노력에 더 적극적이어서, 일찍이 1980년대-1990년대에 러시아가 미국에게 인터넷과 사이버공간에서 정보전, 여론전, 심리전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규범을 제안한 적이 있다. 당시 러시아의 제안은 미국이 반대하여 무산되었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러시아의 행태는 과거 평화를 추구했던 러시아의 행태와 정반대이다.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그리고 그 이전의 에스토니아, 그루지아, 크림반도에 대한 공격과정에서 잘 보여주듯이, 러시아는 인터넷과 사이버공간을 통해 여론전, 심리전을 적극적으로 수행했으며, 물리적 공격 이전에 주요 정보통신 기반시설에 대해 선제적으로 사이버공격을 가해 기반시설에 치명상을 입혔다. 또한 피해국 국민들의 정보 접속을 통제 및 차단하기 위해 인터넷 차단, 우회시킴으로써 효과적인 프로파간다와 오정보(misinformation)/비정보(disinformation) 캠페인을 벌였다. 이는 결국 전쟁의 향방을 러시아에 유리하게 유도하여,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과정을 단계별로 단순화하면, 1) 러시아는 다양한 근거로 소련연방 해체 이후 독립된 국가들을 통합하여 소련연방을 복원하여야 하는 필요성을 주장하는 한편, 2) 독립된 국가들에 존재하는, 러시아에 심리적/정서적 유대감을 갖는 민족적 구성원들은 독립된 국가에서 분리독립을 요구하거나 정부에 대한 저항하는 등 반정부적으로 활동하며, 3) 러시아는 오정보(misinformation)/비정보(disinformation) 캠페인을 통해 이들 세력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거나 독립을 원한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4) 러시아에 우호적인 세력들이 받는 부당함을 해소하기 위해 러시아가 개입할 근거와 명분을 주는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만들어내고, 5) 이를 계기로 독립국가에 개입할 명분을 확보하고 갈등을 고조시킨 후, 6) 전면전 이전에 사이버공격을 통해 주요 기반시설 제어, 언론 통제, 인터넷 접속 통제 등을 선행하고, 7) 물리적 침공을 전개하고, 8) 진행 과정에서 독립국 국민들의 인터넷 접속, 언론 접속을 제한/오도하여 러시아에 유리한 내용만 공유되도록 하고, 9) 원하는 정치적 결과물을 얻어내는 과정을 거쳤다.  크림반도 침공을 예로 들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인터넷 접속 차단 이후 특정 부처 장관의 항복, 대통령의 망명 등의 허위사실을 고위층의 트위터로 전송하고 이것이 퍼지게 함으로써 국민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결과적으로 전쟁 의지를 약화시켜 쉽게 승리를 거머쥐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 그런데,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에서 행해진 사이버공격에서는 기존 공격과 다른 면이 발견된다. 다른 단계에서는 거의 유사하게 진행되었으나, 6)에서 행해진 사이버공격의 결과가 그리 치명적이거나 전면적이지 않았다는 점, 8)의 과정에서 러시아가 절대적인 통제권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상세히 살펴보자면 첫째로, 전면전 이전 러시아가 사이버공격을 감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핵심기반시설의 마비나 전산망 마비 등이 예전처럼 치명적인 수준으로 발생하지 않았다. 이점에 대해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여러가지로 추측하고 있다. 첫 번째 가설은 우크라이나의 주요핵심기반시설을 유효적절하게 공격할 수 있는 정보를 러시아가 확보하지 못했었다는 의견이다. 즉, 정보수집 실패로 인해 러시아가 사이버공격의 효과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적절한 전략을 수립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가설은 우크라이나의 주요핵심기반시설이 우크라이나를 되찾고자 했던 가장 강력한 이유였기 때문에 이를 무력화시켜 사용불능 상태가 되는 것은 전쟁을 일으킨 목적에 위배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다. 세 번째 가설은 러시아의 사이버공격 역량이 높지 않거나, 우크라이나의 사이버방어 역량이 예상보다 강력했기 때문에 실제 공격을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의견이다. 이는 실제 공격에는 성공했지만,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다른 기밀절취 등 사이버공격을 되돌림으로써 약점이 잡혔기 때문에 쉽게 다음 행위로 넘어가지 못했다는 주장이 힘을 실어주고 있다. 네 번째 가설은, 러시아가 예전에 에스토니아, 그루지아, 크림반도를 대상으로 시행했던 사이버공격 이후 NATO가입국들이 포함된 국가들로부터 보복 공격을 받았고, 그 보복공격으로 인한 러시아의 피해가 컸기 때문에 또다시 그러한 공격을 감행할 수 없었다는 의견이 있다. 현재로서는 어떤 것이 정확한 이유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핵심기반시설에 대한 공격이 국제적으로 지탄받는 행위가 될 수 있는 환경이 이미 조성되었다는 점이다. 실제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 핵심기반시설에 대한 공격이나 복구 방해 행위에 대해 국제적 제재를 가하자는 의견이 종종 제기되어 왔었고, 2016년 방글라데시 금융공격 이후 IMF와 G7 국가들은 국제금융시스템 안전성과 신뢰성에 위해를 가하는 악의적 행위에 대해 국제적으로 금지하고자 하는 국제전략을 발표하기도 했다. 주요핵심기반시설에 대한 중대한 사이버공격 발생 시 국제적인 대응 필요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합의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변화를 야기했을 가능성이 있다. 핵심기반시설에 대한 보호는 국제적십자사 활동이나 전쟁 시 의료진의 활동에 준하는 중요성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는 점은 앞으로 평화적인 사이버공간을 규율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던 피해측면에서 중간이상의 심각도를 가진 공격들이 대부분 기반시설에 대한 공격임을 생각하면, 앞으로 우리나라도 기반시설에 중대한 공격을 받게 되는 경우 국제적인 기준에 따라 대외적인 대응 수준과 방안을 정할 수 있기에 이러한 규율기준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 살펴보아야 하는 점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 전개 과정에서 인터넷 통제권 보호를 위해 보여준 “민간전문가”들의 기술적 접근과 "민간기업“의 역할이다. 러시아가 전쟁 중, 우크라이나의 인터넷서비스를 마비시켰을 때, 우크라이나는 바로 서방국가들에게 기술적 지원을 요청했고, 서방국가들로부터 즉각적인 반응과 지원을 얻어냈다. 일론 머스크는 위성을 통한 인터넷접속을 지원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도 유사한 역할을 했다. 이뿐만 아니라 도메인네임 만기에 이른 러시아 사이트들의 인증서 갱신을 거부함으로써 러시아 국민들의 인터넷 접속 제한, 사업체들의 영업 방해 등 러시아를 인터넷으로부터 차단시키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또한 각국의 사이버보안 전문가들이 일종의 "민병대"로 우크라이나의 사이버공격을 자발적으로 지원하고 도움을 주고 있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 모든 행위들의 주체가 국가가 아닌 "민간기업", "민간 전문가"들이라는 점이다. 물론 큰 틀에서 관할국가의 정치적 방향과 일치하기에 묵인되고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국가가 주체가 되어 판단하고 집행하는 정책이 아니라, 실제 정보통신 인프라를 설치ㆍ운영하고 활용하는 민간기업과 민간전문가들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국제관계적 측면에서는 새로운 양상으로 보여진다.  인터넷 연결로 인한 초국경성, 사이버공간 생성으로 인한 초연결성은 그 인프라를 제공하는 기업과 기술전문가들에 대한 의존도를 상당히 높였고, 이들이 실제 인터넷과 사이버공간의 미래 모습과 방향을 결정해 왔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를 넘어서서 이들 민간기업과 민간전문가들이 사이버공간에서 발생한 부적절한 행위(irresponsible behaviour in cyberspace)에 대해서 사이버공간에서 책임있는 행위(responsible behaviour in cyberspace)에 대한 국제규범 형성 노력과 별개로, 기술적으로 이에 대한 접근과 활용을 제한하는 것을 결정하고 시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초기 인터넷 개발자들 이후 기술전문가들이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기술적 진보와 코드가 결국 미래를 결정한다"라는 주장의 현실화이면서, 동시에 정책입안자들이 두려워한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기술이 정책 의지를 반영하지 않은 채 앞서서 발전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현실화된 것이다.  사이버 공간 국제규범 논의에의 함의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실제 일어난 현상이라고 한다면, 앞으로의 전망과 평화로운 사이버공간의 국제규범 논의를 위한 국가 정책 수립 방향은 어떠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네 가지에 대해 정부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첫째, 국가들은 인터넷을 구성하는 정보통신기술과 사이버공간을 “제대로” 이해해야 좋은, 제대로 된 정책 방향을 설정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아직까지는 스마트폰을 어느 정도 사용하는 사람들이 정보통신과 인터넷, 사이버공간의 미래의 방향을 기획하고 설계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앞으로는 상당한 수준의 전문성과 이해도가 없으면, 기술이 만들어내는 세상을 알 수 없는 시대가 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둘째, 국가별 ICT 기술수준과 격차, 인프라 구축과 운영의 성숙도의 차이는 기존 국방력과 과학기술력의 차이와 마찬가지로 국력의 주요 요소가 될 것이다. 정보통신기술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은 해당 국가의 경제력과 국력에 선순환적으로 영향을 받지만, 그 비중이 기존의 전략무기나 방산물자에 대한 의존도와 유사하거나 그 이상으로 해당기술의 전문성과 성숙도가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Cyber Index나 국제연합(UN)의 전자정부수준 평가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사이버공간의 방어ㆍ공격 측면 역량을 우리나라의 기준으로 평가·분석하기 위한 방법을 구비해야 한다. 현재 국가보안기술연구소에서 개발하여 방법론을 일부 공개하고 있는 국가사이버역량평가(K-GCCA) 결과와 IPA 방법론을 적용한 강약점 분석결과는 이러한 목적에 크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특정 국가의 정보통신기술, 사이버기술의 성숙도에 대한 정확한 평가, 해당 국가의 강약점에 대한 명확한 이해에 기반해 신기술 개발과 활용을 위한 인력과 예산의 집중과 선택이 뒤따라야 한다.  셋째, ICT 기술인프라 수준의 차이는 원천기술을 얼마나 자국이 확보하고 있는가, 그 기술을 구현하고 배치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민간 글로벌기업이 자국에 얼마나 있는가에 따라 해당국가의 역량을 판가름 나게 한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삼성, 네이버, 카카오 등 굴지의 IT 기업들을 보유하고 이들이 내놓는 훌륭한 서비스와 제품을 잘 구축된 인프라망을 통해 선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사용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한 단계 아래의 원천기술 혹은 기반기술은 타국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유효한 통제권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를 ICT 공급망 문제로 확대하면 우리가 최근 겪었던 화웨이 사태와 같은 일들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도 전략적 자율성 확보에는 한계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즉, 국가적 차원에서 전략적 원천기술과 사업추진이 가능한 민간기업 확보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넷째, 민간전문가와 민간기업이 주도하는 국제적 규범형성을 대비해야 한다. 여기에서 어려운 점은 국가가 주체가 아닌 규범형성 과정에 국가는 개입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국제적 규범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국가가 뒤로 빠져있으면서 민간에서 알아서 만들어놓는 규범은 기술과 시장에 의존한 결정일 확률이 높아지는데, 과연 국가들이 이를 수용할 수 있는가, 이는 국가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합치하는가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어떤 국가는 국제규범 형성과정에서 필요한 민간의 의견을 사전에 내부적으로 민간전문가들과 기업의 의견을 수렴ㆍ반영한 최종적인 국가의 입장을 제시하고 있으니 지속적으로 국가가 주도하는 플랫폼에서 해당 내용을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은 사이버공간 국제규범 형성을 위한 UN 정보안보 전문가그룹(GGE)에서 이와 같이 주장해왔다,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직접 참여하고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플랫폼이 확장될 수도 있다.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UN GGE 회의 이외의 논의 플랫폼에 시만텍, MS, 아마존 등 민간기업을 적극적으로 참여시켰으며, 이들은 자발적으로 그들이 생각하는 안전한 사이버공간에 대한 원칙을 제시하거나, 공격근원지 추적시 국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로 협의하는 등의 활동을 꾸준히 지속해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삼성과 같은 일부 기업들도 사이버상에서의 신뢰와 보안 제고를 위한 Paris Call 이니셔티브에 참여한 바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어떤 외교적 입장을 견지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대내적으로는 이와 관련한 협의, 판단 및 결정을 정부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지, 가능하다면 누가 리더십을 가지고 추진할 것인지, 현재 과기계와 외교계가 나누어져 대표성을 나누어 가진 것은 문제가 없는 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동시에, 대외적으로는 우리가 국제규범 형성과정에 참여하여 기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어쩔 수 없이 보여왔던 전략적 모호성은 동맹국들에게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 있었는지, 신규로 출범한 다양한 협의체에서 제외되거나 정보공유 대상이 되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닌지, 사이버공간의 국제규범 형성과정에서 우리 의견이 소극적으로 반영될 환경인 것은 아닌지 판단하고 앞으로의 대응방향과 노력의 정도를 결정하고 지속해야 할 것이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편집 : 김수연 연구원 김소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소정은 現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으로서 공공영역에서 프라이버시 영향평가에 관한 연구로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국가보안기술연구소 정책연구실장을 맡았다.
  • [JPI PeaceNet] The Main Theme of the 16th Jeju Forum: Sustainable Peace, Inclusive Prosperity
    저자
    Jeju Peace Institute
    발간호
    2021-06
    The main theme of the 16th Jeju Forum is “Sustainable Peace, Inclusive Prosperity.” This year’s Jeju Forum will be a platform to discuss various challenges and threats we face while also seeking joint responses for peace and prosperity for current and future generations. This year’s Jeju Forum will be a venue for discourse covering various topics such as each country’s response to COVID-19; the global economic recovery; the beginning of the Biden Administration era; conflicts between major powers; climate change;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and the emergence of new technologies; and ways to eventually achieve world peace and prosperity. This year marks the 30th anniversary of the end of the Cold War. During the Cold War, we believed that the era of peace would come if we reduced military and diplomatic conflicts between countries. However, we are now surrounded by more complex and diverse crises than ever before. The COVID-19 pandemic continues to threaten our survival, causing damage to our health and economy. Additionally, while governments try to prevent the spread of the disease by implementing anti-democratic policies, there are growing concerns that such measures will lead to the retreat of democracy in various countries. Moreover, crises that existed before the pandemic, such as climate change, resource depletion, environmental degradation, major power competition, local military clashes, and cyberattacks, still exist and are working in combination to threaten individuals’ lives on the Korean Peninsula, Northeast Asia, and around the world. Because we live in such an era, we need to actively seek ways to overcome these challenges before it’s too late. In this context, the Jeju Forum presents two concepts necessary to address the multiple crises: Sustainable Peace and Inclusive Prosperity. First, achieving sustainable peace means solving the crises we face and maintaining a state of peace while continuing that peace for tomorrow. These crises threaten humanity’s survival from multiple dimensions, making them difficult to overcome through short-term and superficial approaches. Thus, to solve the multiple crises more fundamentally, it is necessary to find their root causes in an effort to eradicate them. The process of coordinating the interests between countries and developing discussions in the political, military, economic, societal, and environmental fields will require great patience and effort. We should not avoid difficult tasks or choose the easy way. To build sustainable peace, it is essential to prevent and eradicate conflict, recover wounds, rebuild society, and ultimately achieve harmony and coexistence among groups. The sustainable peace created through such a process will strengthen the resilience of individuals, societies, and countries, thereby establishing a solid foundation for overcoming the current crisis and preparing for future challenges. After all, in a society where the continuation of peace is the shared goal, priority will be given to maintaining all members’ mental and material well-being, not individuals’ interests. Achieving sustainable peace also includes creating an environment in which we can maintain peace continuously. To preserve and sustain peace, it is essential to maintain friendly relations between individuals, societies, and countries. However, we must first establish conditions that allow humans to enjoy a stable life on this planet. For example, if climate change is allowed to go unchecked, human life will be devastated by the mental and material damage. Such results will also lead to local and international conflicts, eventually making world peace untenable. Therefore, to achieve sustainable peace, we must find countermeasures to climate change, resource depletion, and environmental degradation in an effort to protect the planet. Second, inclusive prosperity means that the benefits of economic growth must be shared with marginalized members of society. To this end, we must correct the inequality and unfair practices that prevent individuals from enjoying equal opportunities. In addition, we must emphasize values that cannot be measured materially, such as quality of life, environment, education level, and health, to not only increase wealth but also achieve true prosperity. People from low socioeconomic backgrounds and developing countries are the ones who have suffered the most significant physical and psychological damage from the pandemic over the past year. Therefore, we must embrace those who have been marginalized from the benefits of economic growth if we want to achieve a material and mental recovery in the post-COVID-19 era. The recovery should also focus on individuals, societies, and countries hit hard by the pandemic. Vulnerable populations and low-income countries are also the ones most affected by climate change. However, their voices are not reflected in international agreements that seek to combat climate change. Therefore, responding to the climate crisis should be done in a way that considers the needs of the vulnerable instead of sacrificing or alienating them. Recovery and prosperity that alienates the weak will only lead to situations in which income inequality and social instability increase, causing yet more crises. After all, growth and recovery without inclusion will hinder stability and order around the world, impeding us from realizing sustainable peace. In this era of multiple crises, individuals, societies, nongovernmental organizations, local governments, national governments, and international organizations must all work together to overcome our current challenges. These crises are not only a problem for actors exposed to threats but also threaten everyone, regardless of borders. Crises faced by one actor will soon affect others as well. We cannot overcome these challenges through competition, conflict, and “my country first” attitudes; turning a blind eye to others’ problems is not a solution. Instead, we must emphasize the importance of multilateral cooperation more than ever. The form of multilateral cooperation we must pursue should embody sustainable peace and inclusive prosperity. If we pursue prosperity that embraces the weak and vulnerable and builds sustainable peace by listening to their voices, we will be able to create an environment that embraces more people in the future. In other words, by achieving sustainable peace that embodies inclusion, we can create a virtuous cycle that endlessly reproduces inclusive prosperity. To do this, we must act now. If we seek short-term interests out of complacency, the path may be even more difficult in the future, or we may even lose the opportunity to take action altogether. The 16th Jeju Forum aims to set a stage where the world can focus on sustainable peace and inclusive prosperity as a countermeasure to the current crises. The Jeju Forum serves as a venue for discussions about ways to achieve peace and prosperity in Jeju, the Korean Peninsula, East Asia, and around the world. Renowned world leaders, Nobel Peace Prize winners, experts, and activists participate in the Forum every year. This year’s Jeju Forum is expected to serve as an opportunity for intellectuals to share their knowledge and experience regarding the definitions, examples of, and practices to ensure sustainable peace and inclusive prosperity. The 16th Jeju Forum is scheduled to be held in Jeju from June 24 to June 26, 2021.
  • [JPI PeaceNet] 평화를 위한 통합적 접근: 인도주의-발전-평화 넥서스
    저자
    문경연(전북대학교)
    발간호
    2022-04
    러시아의 침공으로 삼백만 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난민이 발생하면서 인간안보의 위기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뜨거워지고 있다. 현재의 지구적 위기는 평화의 회복과 지속을 위해서 전쟁의 중단을 넘어선 다층적인 이해와 접근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무력충돌을 종식하고 새로운 분쟁을 방지하는 동시에, 취약층의 인권을 보호하고 빈곤을 개선하는 것이 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목표로 하는 우리나라에게도 이와 같은 접근법은 높은 함의를 지닌다. 이번 JPI PeaceNet에서는 문경연 교수의 글을 통해 인도주의-발전-평화 넥서스에 관한 국제사회의 논의를 고찰하고, 이것이 우리 정부의 국제 개발협력 및 북한 문제에 주는 함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기획: 유기은 박사후연구원(keryu@jpi.or.kr)] 1. 들어가며 국제사회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인도주의 위기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분쟁이 빈번하며, 이러한 상황이 발전과 평화 구축을 저해하는 악순환으로 지속되고 있다는 문제의식 하에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한 새로운 접근법으로‘인도적 지원-발전-평화 넥서스(Humanitarian-Development-Peace Nexus, 이하‘HDP Nexus’)’에 관한 논의를 본격화 하였다. 국내에서 HDP Nexus의 적용은 문재인 정부의 무상원조 분야 국제개발협력 정책에서 외교부와 KOICA(한국국제협력단)을 중심으로 활발히 이루어졌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 북한에 대한 새로운 관계 수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우리 정부의 정책에도 유의미한 함의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통일부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주제였으며, 대북지원 민간단체 역시 동 개념에 대한 학습에 열정을 보였다. 북한 역시도 노동당 8차 대회를 통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공표하는 등 경제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코로나19 사태 및 대북제재로 경제성장이 장기간 정체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북한의 인도주의 문제, 발전 문제, 평화 문제를 저해하는 요소로 코로나19와 대북제재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 역시 HDP Nexus 맥락에서 다루어질 수 있는 의제이다. 한편, 우리 정부는 북한의 경제 발전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인도주의 상황 해결과 인권증진, 한반도의 평화 구축을 함께 도모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이번 대선 이후 수립된 차기 정부는 북한에 대한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인도적 협력을 분기점으로 경제협력, 나아가 평화협력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대북 정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제사회의 HDP Nexus 논의는 차기 정부의 국제개발협력 분야와 한반도 문제를 풀어 나가는데 있어 중요한 어젠다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HDP Nexus의 구조를 이해하고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인도주의, 발전, 평화 간의 상관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본고는 국제사회의 HDP Nexus 논의를 분석하고, 우리 정부의 국제개발협력 및 북한 문제 영역에서 이 접근법이 어떻게 반영 및 논의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차기 정부가 이러한 국제적 논의를 어떻게 반영해야 할지에 대한 저자의 고민을 공유하고자 한다.   2. 국제사회의 HDP 논의1) HDP Nexus란 국제사회의 인도주의(Humanitarian)·발전(Development)·평화(Peace)의 통합적 접근법을 의미한다. HDP Nexus는 국제사회가 지난 10년 간 인도적 지원과 국제개발협력을 위한 비용을 늘려왔으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인도주의 위기가 발생했다는 반성에서 출발하였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UN의 SDGs 달성을 위한 전략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는 HDP Nexus는 인도주의, 발전, 평화 영역의 분야별 상이한 접근법, 정책, 사업 방식을 연계하여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인도주의, 발전, 평화에 대한 통합적 접근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HDP Nexus 용어는 2016년 5월 세계 인도주의 정상회의(World Humanitarian Summit)에서 UN사무총장이 제출한 ‘One Humanity, Shared Responsibility’ 보고서를 통해 처음 등장하였으며, 동 정상회의를 계기로 UN 시스템 내 인도주의·발전·평화 간 연계를 위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이후 2016년 12월 세계은행의 국제개발협회(International Development Association, 이하 ‘IDA’)는 HDP Nexus 이행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최빈개도국 지원을 위해 사상 최대 규모인 750억 달러 지원 계획을 발표하는 한편, UN과의 협업을 위한 ‘인도주의·발전·평화 이니셔티브(Humanitarian-Development-Peace Initiative)’를 출범시키며 개발현장에서 인도주의·개발·평화 분야 간 연계 활동을 본격화 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연장선에서 2019년 2월 OECD DAC 고위급회의에서 HDP Nexus에 관한 OECD DAC 권고안이 채택되었고, 이를 통해 DAC 회원국을 비롯해 국제사회가 분쟁 및 취약 상황에서 인도적 지원, 개발, 평화의 연계된 활동을 구현할 할 수 있는 포괄적인 틀이 마련되었다.2) 1) ‘2. 국제사회의 HDP 논의’ 파트는 문경연, 홍석훈, 조욱래, “발전이 인권과 평화에 미치는 상관관계에 대한 이론적 탐구” (평화학연구, 제 22권 1호, 2021) 를 바탕으로 재작성된 것임을 밝힘. 2) 한국국제협력단, 『한국 ODA 이행에 있어 인도적 지원-개발-평화간 연계(HDP Nexus) 실행 방안 연구』, (성남: 한국국제협력단, 2020), 1.   <그림 1> HDP Nexus 프레임워크 출처: Alfonso Medinilla, Lidet Tadesse Shiferw and Paulin Veron,“Think local. Governance, humanitarian aid, development and peacebuilding in Somalia,”ECDPM 246 (2019), 2.를 바탕으로 저자 작성.    HDP Nexus의 연계 방안을 살펴보면, HDP Nexus는 위기의 전 과정에서 주민들의 취약성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일관되게 추진하는데 방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인도적 지원, 개발, 평화구축 등 각 분야 간의 상이한 활동 및 재원조달 방식으로 인해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권리가 충족되기 어려운 기존 시스템을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구체적으로 HDP Nexus의 연계 구조를 살펴보면, HDP Nexus는 기본적으로 인도적 지원, 발전, 평화의 세 부분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통합적 목표를 위한 연계를 강조한다. 즉, 인도적 지원은 개발의 선행조건으로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여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함으로써 새로운 분쟁에 대처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반대로 발전을 위한 개발지원 및 협력은 지속 가능한 평화에 필수적인 기반으로 발전을 가능하게 함과 동시에, 평화는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한 평화적 환경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서, 인도적 지원은 평화구축을 위해 필요한 기초적 조건을 충족하는 활동을 지원하고, 평화구축 활동은 인도주의 위기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환경을 마련하는데 있다. 따라서 지속적인 발전과 문제 상황의 항구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발전을 위한 개발협력과 함께 평화구축 및 유지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HDP Nexus는 인도적 지원, 개발협력 및 평화유지 활동이 순차적인 과정이 아니라 동시에 설계되어 이행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3) 3) 한국국제협력단,『한국 ODA 이행에 있어 인도적 지원-개발-평화 간 연계(HDP Nexus) 실행 방안 연구』, p. 12.   3. 한국의 국제개별협력 분야 HDP Nexus 논의 내재화와 과제 북한의 핵개발 및 무력 도발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았던 시기에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평화 이슈를 국정 과제 중 하나로 선정하였고, 이에 무상원조 주무기관인 외교부와 KOICA도 국제개발협력의 비전에 3P, 즉 사람(People), 번영(Prosperity), 평화(Peace)를 핵심으로 하는 사업 방향을 수립하였다. 소위 평화 ODA 개념이 한국의 원조 사업에 포함되게 된 것인데, 여기서 구분되어야 할 것은 사실상 우리 정부는 평화유지군(PKO)을 개도국 분쟁지역에 파견하여 왔으며, 우리 PKO는 사실상 전투병 중심보다 재건활동에 초점을 맞춘 공병 및 의료지원단이 주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평화 ODA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ODA 개념 상 군사활동은 ODA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통상적으로 PKO는 국제개발협력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4) 따라서 사실상 평화 ODA라고 명명할 수 있는 국제개발협력 사업은 KOICA가 시초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첫 사업으로 KOICA가 베트남 지역주민들의 안전 보장과 생활환경 개선에 기여하기 위해 고안한 ‘지뢰 및 불발탄 통합대응 역량강화사업’(2016년부터 2020년까지 2,000만불 규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업은 이후 캄보디아 등 메콩강 일대 분쟁 국가들로 확대되었으며, 2022년 현재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중심으로 사업 대상 국가와 규모를 계속 확대하며 발전하고 있다. 실제로 KOICA는 2021년 3월 캄보디아 지뢰 제거청·UNDP(유엔개발계획)와 협력해 캄보디아에서 ‘캄보디아 북서부 3개주 지뢰 제거를 통한 평화마을 조성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는데, 동 사업은 1960년~1970년대 베트남 전쟁과 크메르 루즈 내전을 겪은 이후로 지뢰로 고통 받아온 캄보디아 북서부의 지뢰 오염지대를 평화마을로 조성하는 지뢰 제거 사업으로, KOICA는 메콩지역 국가에서 ‘지뢰제거-피해자지원-농촌개발’ 지원 내용을 연계하여 평화롭고 포용적인 농촌마을을 만들어가기 위해 추진 중인 ‘메콩 미래 평화공동체 조성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프레이밍 하였다. 무엇보다도 이 사업은 단순히 지뢰를 제거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업 지역 내 지뢰피해자들에 대한 재활 지원을 실시함으로써 인도주의 정신을 구현하며, 지뢰가 제거된 지역에 주민들의 소득창출을 위한 지역개발 활동을 겸함으로써 인도적 지원, 개발, 평화를 조화시키는 사업으로 프레임 되었고, 외교부와 KOICA는 동 사업을 대표적인 한국의 HDP Nexus 사업으로 소개하였다. 4) 하지만 2015년 SDGs의 채택과 함께 ODA 기준에 대한 재정의 작업이 이루어졌고, 군사적 목적의 무기 및 장비지원과 예산 지원은 여전히 ODA에 불포함되나, 인도적 지원 및 개발지원에 사용된 군사 활동도 ODA로 계상할 수 있게 되었다. 출처: OECD, “The ODA coefficient for UN peacekeeping operations shall increase to 15%,” June 2017.   4. 對 북한 HDP Nexus 논의 동향과 과제 국제개발협력 분야뿐만 아니라 북핵 문제와 관련한 한반도 상황에서 HDP Nexus 접근법에 대한 관심이 확대 되었다. 즉, 비핵화 논의와 연결된 평화구축 어젠다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및 개발 지원 연계를 동시에 추진하는 방안에 대한 통일부 및 대북지원 민간단체와 학계의 관심이 확대된 것이다. 특히 북한에 대한 개발협력을 연구해온 학자들을 중심으로 국제사회가 강조하고 있는 HDP Nexus 개념이 연구자들 사이에 소개되었고, 이 접근법이 한반도 상황에도 유용할 수 있다는 인식이 마련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통일부는 관련 연구를 2020년 시작하였으며, 통일연구원 역시 2021년 HDP Nexus를 응용한 ‘인권·발전·평화 트라이앵글’ 접근법을 고안하여 다년도 연구에 돌입하였다. 이들 연구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및 개발지원이 비핵화 문제로 대표되며, 선 비핵화 후 지원이라는 기존의 정책기조에 대한 대안적 접근법으로 한반도 평화정착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밝히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즉, 비핵화 협상의 타결로 인한 평화기반 조성이 북한의 인도적 문제 및 개발문제 해결을 위한 선제조건이 되기도 하지만,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개발지원이 비핵화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가능성도 있음을 강조하며, HDP Nexus 접근법은 ‘선 평화, 후 인도 및 개발지원’ 이라는 국제사회 및 우리 정부 입장의 한계를 지적하는 논리로 활용 되고 있다.   5. 마치며 본고는 인도적 지원, 개발지원, 평화구축을 분리 접근해온 기존 방식의 한계를 인식하며 국제사회가 제시한 HDP Nexus는 무엇이며, 이 접근법이 한국의 국제개발협력 정책 그리고 한반도 상황에 어떻게 소개되고, 논의되고 있으며, 정책화되어 왔는지 살펴보았다. 사람과 사회, 지구 등 전 영역을 아우르는 5P(People, Planet, Prosperity, Peace, Partnership)로 대표되는 SDGs의 성격을 고려할 때 HDP Nexus에 대한 논의와 동 접근법에 기반한 국제개발협력 사업 발굴 노력은 지속되고 더욱 가속화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의 무상원조 대표기관인 KOICA는 발 빠르게 동 HDP Nexus에 기반한 사업을 발굴하며 그 대상 국가와 규모, 협력기관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KOICA의 지뢰제거 및 통합개발 사업을 HDP Nexus 1세대형 사업이라고 평가한다면, 이제는 보다 발전된 형태의 2세대형, 3세대형 평화 ODA 사업 발굴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끝으로, 한반도 상황에서 HDP Nexus 접근법의 유용성에 대한 학계 및 연구자들의 논의는 활발하나 정책으로는 연결되지 못하였다. 인도적 지원이나 개발지원이 對 북한 제재의 효과를 약화 시킬 수 있다는 현실주의적 패러다임이 매우 공고하기 때문이다. HDP Nexus는 북한이 지난 해 문재인정부와 유지해온 대화 테이블을 박차고 나간 이유가 북한의 입장에서 주민들은 굶주리고 있는데 평화(비핵화)만 강조한 나머지 북한이 정작 필요했던 인도적 지원과 개발지원이라는 보상기제를 제시하지 못한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정책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 합리적 추정을 가능하게 하는 프레임워크라고 하겠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 : 유기은 박사후연구원 편집 : 김수연 연구원  문경연 (전북대학교) 문경연은 현재 전북대학교 글로벌융합대학 국제인문사회학부 부교수로,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과 영국 크랜필드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국제개발협력 및 북한개발협력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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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PI PeaceNet] 우주지정학과 뉴스페이스: 복합지정학의 시각
    저자
    김상배(서울대학교)
    발간호
    2022-03
    [기획자 註] 우주 탐사와 개발을 통해 인류 활동의 공간은 지구를 넘어서 확대되고 인류의 사유의 공간은 더욱 확장된다. 특히 최근에는 기존에 국가가 독점하던 우주 개발과 탐사 활동에 민간기업들의 참여가 이루어지면서 민간 우주여행과 개발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새로운 우주시대가 제공하는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기대감이 생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주 경쟁은 지구의 지정학을 반영하며 무엇보다 미중전략경쟁의 시기에 우주도 예외가 아니다. 새로운 차원의 우주 시대가 열리고 있지만 우주 경쟁의 현실은 두 초강대국의 안보 경쟁과 맞물려 있다. 서울대학교 김상배 교수의 글을 통해 미중전략경쟁 하의 우주시대에 대해 고찰해보고 한국의 대응방안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기획: 임해용 연구위원(haeyonglim@jpi.or.kr)]   우주경쟁의 복합지정학 과거 관찰과 탐험의 대상으로 이해되었던 우주공간에 대한 관심이 최근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사이버 공간의 부상과 결합되면서 우주는 육·해·공에 이어 우주·사이버전(戰)이 벌어지는 ‘다영역 작전’(multi-domain operation)의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가히 ‘우주지정학’(宇宙地政學, Cosmo-geopolitics)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렇다고 냉전기 강대국들이 군비경쟁을 벌이던 공간과 같은 의미로 우주공간을 다시 소환하자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우주공간은 민군 겸용의 함의를 갖는 첨단 방위산업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그 상업적 활용을 통해서 민간산업과 서비스 영역으로 연결되고 있다. 좀 더 포괄적인 의미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술·정보·데이터 환경을 배경으로 일상생활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렇게 재조명되는 우주공간은 새롭게 구성되는 성격의 사회적 공간이며, ‘저 멀리 있는 공간’이 아니라 우리 삶의 여타 공간과 연동된 ‘복합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전략적·경제적·사회적 수요가 커지면서 우주공간을 둘러싼 이익갈등도 늘어나고 있다. 우주공간은 이제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공재가 아니라 제한된 희소재이며, 마냥 사용할 수 있는 무한 자원이 아니라 언젠가는 소실될 유한 자원이다. 정지궤도는 이미 꽉 차 있고 주파수도 제한된 자산이어서 우주 교통관리가 필요한 밀집공간이 되어 가고 있으며, 군사적 충돌도 우려되는 분쟁의 공간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더욱 주목할 것은 참여 주체의 다변화이다. 고도의 과학기술과 자본이 필요한 분야라는 우주개발의 특성상 과거 우주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국가들은 몇몇 강대국들에 제한되어 있었다. 최근에는 그 참여의 문턱이 낮아져서 여타 선진국들과 중견국들도 참여하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민간기업들도 우주산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른바 뉴스페이스(New Space)의 부상을 거론케 하는 대목이다. 이렇게 양적으로 확대되고 질적으로 변화하는 우주복합공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그것이 초래할 안보위협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우주공간을 통한 군사적 위협이 전통적으로 문제시되었던 안보위협이었다면, 민군 겸용의 성격을 강하게 지닌 우주공간에서의 상업적 활동의 확대도 사실상의 군사·정보활동을 의미하는 잠재적 위협요인으로 간주된다. 아울러 적극적인 개발과 경쟁의 대상이 된 우주공간 자체도 인류에 대한 새로운 안보위협으로 인식되고 있다. 우주의 난개발에 따른 우주환경의 훼손에 따른 위협도 만만치 않아서, 우주잔해물이나 폐위성 추락 등이 초래할 피해도 크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주는 새로운 국제규범의 마련을 필요로 하는 공간으로도 이해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 글은 복합지정학(Complex Geopolitics)의 시각에서 우주경쟁의 세계정치를 살펴보았다.   우주의 안보화와 지정학적 경쟁 최근 주요국들은 우주문제를 국가안보의 사안으로 안보화하고, 이에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주공간의 중요성이 높아질수록 우주를 선점하고, 우주력을 육성하려는 각국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우주시대의 초창기에는 미국과 구소련 간의 양자 경쟁이 진행되었다면, 최근에는 중국의 진입으로 경쟁구도가 확장되었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은 우주공간을 과학기술과 경제산업의 문제로 인식하는 차원을 넘어서 전략적이고 군사적인 시각에서 보고 있으며,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우주력을 배양하고, 더 나아가 우주공간에서의 전쟁 수행능력을 향상하기 위한 군비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 우주강국들은 우주력을 국가안보 전략 구현의 핵심으로 이해하여 위성, 발사체, 제어 등과 관련된 우주기술·자산의 확보는 물론이고 우주무기 개발과 우주군 창설을 추진하고 있다. 우주 분야의 미중경쟁이 제일 큰 쟁점인데, 2000년대 들어서 중국의 도전적 행보가 도화선이 되었다. 2000년대 중국은 최초 유인우주선 선저우5호 발사(2003), ASAT실험 성공(2007) 등을 미국을 자극하였다. 이후 중국은 우주개발 사업을 국가안보와 국가발전 전략의 핵심으로 인식하고, 우주강국 달성을 위한 혁신개발과 과학탐구 및 경제개발 능력 등을 자체적으로 구비하기 위한 노력을 벌여왔다. 2016년 『우주전략백서』 발표를 계기로 중국의 우주전략은 시진핑 정부의 ‘중국몽’ 구현의 일환으로 이해되어 광범위하고 포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2010년대에는 우주-사이버-전자 통합 ‘전략지원군’ 창설(2016), 양자통신위성 묵자 발사(2016), 우주정거장 텐궁2호(2016), 창어4호 달뒷면 탐사(2019) 등을 통해서 우주굴기의 행보를 강화했다. 특히 중국은 2020년 10월 55번째의 베이더우(北斗) 위성을 쏘아 올리면서, 1994년 이후 완성까지 26년 만에 미국의 전 지구적 위성항법장치에 상응하는 베이더우 자체 위성항법시스템의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군사적 차원에서 미 우주군과 유사한 ‘전략지원군’을 새로운 군종으로 창설해 위성 발사와 항법통신위성을 운영하고 있다. 2020년대에 들어서도 화성탐사선 텐원1호 화성 착륙(2021), 중국 로켓 창정5B호 추락 사건(2021) 등의 이벤트가 발생하면서 미중 우주경쟁의 불씨가 커지고 있다. 중국은 2025년까지 인류 최초의 달기지 건설(5년 내에 유인화)을 계획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우주 분야 선진국으로 도약하고 2045년에는 우주 장비와 기술 면에서 최고의 선진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은 우주 관련 기술의 연구개발에 집중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우주굴기로 알려진 중국의 행보에 대응하여 미국은 한동안 템포를 늦추었던 우주경쟁의 고삐를 다시 잡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6월 국가우주위원회(NSC)를 부활시키고, 『국가우주전략(National Space Strategy)』을 발표했으며, 대통령 문서(Presidential Documents)의 형태로 ‘우주정책지침(Space Policy Directive)’을 계속 발표하면서 우주정책을 구현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우주전략의 핵심은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의 취지에 따라 우주 군사력을 강화하고 상업적 규제개혁을 통해 미국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조에 따라 미국은 2019년 12월 24일 우주군을 창설했는데, 이는 육·해·공군과 해병대, 해안경비대에 이은 6번째 군종이다. 이외에도 우주상황인식(SSA) 발표, 우주교통관리(STM) 체계 정비, 2018년 수출통제개혁법(ECRA) 등 일련의 우주안보 정책을 추진하였다. 미국은 유인 달탐사와 달 연구기지 건설을 포함한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화성우주헬기(인저뉴어티) 비행에서도 나타났듯이 최근에는 화성 탐사 경쟁도 벌이고 있다. 2024년까지 인류 최초의 달궤도 우주정거장을 만들고, 2033년엔 화성에 사람을 보낸다는 구상이다. 이렇듯 미국의 우주전략이 가속화되는 배경에는 중국의 유인우주선 발사나 위성요격무기(ASAT) 개발 등에 대한 위협감이 존재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중국이 2019년 1월 인류 최초로 달의 뒷면에 탐사선 ‘창어(嫦娥) 4호’를 착륙시키자, 미국은 우주군 창설을 공표하는 반응을 보였다. 오늘날 우주공간이 그 군사적 활용 가능성을 염두에 둔 군비경쟁의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역사적으로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이 우주경쟁을 본격화하는 과정에서 우주전 수행을 위한 능력을 강화하는 경쟁을 벌여 왔다. 우주공간은 육·해·공에 이어 ‘제4의 전장’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사이버 공간의 전쟁과 더불어 ‘다영역 작전’이 수행되는 복합공간으로서 그 위상을 정립해 가고 있다. 최근 군사작전 수행과정에서 우주와 인공위성의 활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으며, 우주력을 활용하지 않고서는 효과적으로 전쟁을 수행하기 어려운 작전환경이 펼쳐지고 있다. 우주전의 수행과정에서 제기되는 우주의 군사적 활용 문제는 주로 우주의 ‘군사화’(militarization)와 우주의 ‘무기화’(weponization)라는 두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이해된다. 우주의 군사화는, 우주공간을 활용한 지상전 지원작전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위성자산을 활용한 정찰, GPS를 이용한 유도제어 등 민간 및 국방 분야에서 우주자산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주의 군사화가 통신, 조기경보, 감시항법, 기상관측, 정찰 등과 같이 우주에서 수행되는 안정적이고 소극적이며 비강제적인 군사 활동을 의미한다면, 우주의 무기화란 대(對) 위성무기 배치, 우주 기반 탄도미사일 방어 등과 같이 적극적, 강제적, 독립적이면서 불안정한 군사 활동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우주의 무기화는 주로 위성요격무기 등과 같은 실용적인 무기체계 그 자체를 우주공간에 도입하는 행위와 관련된다. 우주의 군사화와 무기화의 과정에서 출현하는 우주무기들은 단순한 군용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민군 겸용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최근 모든 국가의 군과 정부는 상업적 우주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통신, 지휘, 감시, 정찰 등과 같은 군사정보 서비스들은 민간기업들에 의해 제공되고 있다. 미국의 군과 정부의 투자로 개발된 다양한 민간기술들이 인공위성의 민군 겸용 임무 수행에 직·간접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민간주체들의 우주활동은 그것이 아무리 상업적 활동이라도 많은 경우 사실상 군사적 활동을 전제하거나 또는 수반하는 측면이 강하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우주개발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상업적 목적의 우주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주 산업경쟁과 뉴스페이스의 부상 글로벌 우주산업은 크게 성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성장을 추동하는 것은 정부 부문이 아니라 민간 부문일 것으로 예견된다. 이러한 변화는 과거 정부 주도의 ‘올드스페이스(Old Space) 모델’로부터 민간업체들이 신규시장을 개척하는 ‘뉴스페이스(NewSpace)’ 모델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바탕에 깔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일론 머스크나 제프 베조스 등과 같은 ICT 업계의 억만장자들이 우주산업에 진출한 이후, 2010년을 전후하여 상업 우주시대를 뜻하는 뉴스페이스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뉴스페이스는 혁신적인 우주상품이나 서비스를 통한 이익추구를 목표로 하는 민간 우주산업의 부상을 의미한다. 뉴스페이스의 부상은 우주개발의 상업화와 민간 참여의 확대와 함께 그 기저에서 작동하는 기술적 변화, 그리고 ‘정부-민간 관계’의 변화를 수반한 우주산업 생태계 전반의 변화를 뜻한다. 우주의 상업화와 함께 참여 주체의 다변화도 발생하고 있다. 뉴스페이스의 출현은 우주개발에서 정부의 역할이 점점 더 줄어들고 민간부문의 역할이 늘어나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스페이스X의 크루 드래건과 스타링크, 블루오리진의 뉴 셰퍼드, 아마존의 카이퍼(Kuiper) 프로젝트, 원웹(OneWeb) 등은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는 사례들이다. 뉴스페이스의 부상은 우주개발의 상업화와 민간 참여의 확대와 함께 그 기저에서 작동하는 기술적 변화를 수반한 우주산업 생태계 전반의 변화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뉴스페이스의 부상은 우주분야에서 민간 스타트업들의 참여가 늘어나고 이들에 의한 벤처투자가 확대되는 형태로 나타났으며, 이러한 뉴스페이스 부상의 기저에는 소형위성과 재사용 로켓 개발로 인해 비용이 감소하면서 우주 진입장벽이 낮아진 기술적 변화가 있다. 미국이나 유럽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뉴스페이스 분야에 도전하는 중국의 행보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중국 정부가 승인한 민간 우주기업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모습인데, 이들 중국 기업들은 독자적으로 로켓을 궤도에 발사하거나 재사용 가능한 로켓 실험에 성공하기도 하였다. 2020년 11월 중국의 민간 로켓 벤처기업 갤럭틱에너지는 설립한 지 3년도 되지 않아 세레스(CERES) 1호 발사시켜 주목을 끌었다. 세레스 1호는 길이가 약 19m밖에 안 되는 새로운 유형의 로켓이다. 중국의 민간 우주산업은 아직은 미국보다 규모나 기술력이 낮고 중국 정부의 규제가 여전히 심하지만, 최근 중국 정부가 민간 투자를 장려하면서 정부 시설과 발사 장소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고 있다. 이들 중국의 신생기업은 국가사업과는 경쟁을 피하면서 주로 초소형 위성, 재사용 가능한 로켓 및 저가 운송 서비스와 같은 저렴한 기술에 사업 중점을 두고 있다. 최근 뉴스페이스 모델은 우주발사 서비스, 위성제작, 통신·지구관측 이외에도 우주상황인식, 자원채굴, 우주관광 등 다양한 활용범위로 확장되고 있으며 이에 참여하는 기업의 숫자와 투자 규모도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우주 식민지 건설, 우주 자원채굴, 우주공장(Space Factory) 등과 같이 장기적으로나 실현 가능한 불확실한 분야에까지 우주개발 투자가 확대되는 양상이다. 최근에는 우주 공간에서의 제조업, 사물인터넷을 활용한 인터넷 서비스, 우주폐기물 처리와 우주태양광 에너지 활용 등도 시작 또는 기획하고 있다. 특히 지구 궤도를 도는 위성이 많아지면서 새로운 우주산업도 파생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 궤도를 돌고 있는 위성들에 대한 점검, 수리, 교체, 업그레이드, 궤도 및 자세 유지 등 궤도상 서비싱(OOS: On-Orbit Servicing)이 각광을 받고 있다. 폐기위성을 처리하는 우주쓰레기 처리 사업도 유망하다고 평가된다. 4차 산업혁명이 우주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스페이스4.0‘에 대한 논의에서 나타난다. 스페이스1.0은 고대의 우주 천문관측 시대이고, 스페이스2.0이 냉전기 미소 우주 군사경쟁 시대이며, 스페이스3.0이 우주정거장으로 대변되는 우주국제협력 시대였다면, 2010년 초중반부터 논의되기 시작한 스페이스4.0은 4차 산업혁명의 맥락에서 본 우주공간의 융복합화 시대를 의미한다. 특히 우주산업을 위성과 발사체를 생산하는 ’업스트림‘(upstream)과 위성 영상·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운스트림‘(downstream)으로 구분해서 볼 때, 스페이스4.0은 다운스트림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여 4차 산업혁명 분야의 기술을 융복합한 신산업과 서비스가 창출되는 시대를 의미한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스페이스4.0의 우주 서비스로는 위성항법시스템, 위성인터넷 서비스, 우주 영상 및 데이터 활용 서비스 등을 들 수 있다. 그중에서도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여 위성항법시스템이 특히 주목을 받는다. 위성항법시스템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사회기반시설을 구축하여 개인의 편익을 증진하는 국가의 주요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다. 또한, 위성항법시스템은 항법, 긴급구조 등 공공부문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등과 같은 국민 개개인의 생활 속까지 그 활용 영역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미래전이 인공위성의 위성항법장치를 이용한 우주전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 그 군사안보적 함의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부응하여 각국은 독자적 위성항법시스템 구축에 박차를 가하는 추세이다. 미국은 GPS, 러시아는 글로나스(GLONASS), 중국은 베이더우는 GNSS(Global Navigation Satellite System)를 이미 구축하였고, 유럽의 갈릴레오(Galileo)도 GNSS를 구축 중이다. 한편, 인도의 나빅(Navic), 일본의 큐즈(QZSS)는 RNSS(Regional Navigation Satellite System)을 구축 중이고, 한국도 독자 위성항법시스템인 KPS 구축에 대한 논의를 벌이고 있다. 이 중에서 최근 쟁점은 중국이다. 중국은 우주군사력 건설 차원에서 미국의 GPS와 같은 독자적인 위성항법시스템을 구축하려 시도해왔다. 중국은 미국이 제공하는 GPS에 위치정보에 의존할 경우 자국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초래할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라 국가안보 차원에서 베이더우를 구축해 왔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국은 2020년 10월 55번째의 베이더우 위성을 쏘아 올리면서, 미국의 전 지구적 위성항법시스템에 상응하는 자체적인 베이더우 시스템을 완성했다. 이와 더불어 중국은 일대일로 대상국들을 대상으로 하여 베이더우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우주 분야에서도 중국의 영향력을 높여가고 있다.   우주지정학과 뉴스페이스 시대의 한국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복합지정학의 공간으로 이해된 우주가 세계정치에 던지는 의미를 이해하고 이에 대응하는 미래 국가전략을 모색할 과제가 최근 시급히 제기되고 있다. 이전의 우주전략이 과학기술 전담부처를 중심으로 연구개발 역량의 획득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 이제는 좀 더 복합적인 우주전략을 모색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우주기술의 개발과 확보 이외에도 우주산업 육성, 우주자산의 관리·활용, 미사일·정찰위성 등 국방·안보, 우주탐사, 우주외교 등에 이르기까지 좀 더 포괄적인 대응전략의 마련이 필요하다. 우주의 복합적 특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현재 제기되고 있는 주요 현안에 대한 분석과 더 나아가 이에 걸맞은 국제협력과 거버넌스, 그리고 관련 국가 행위자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사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우주전략이 아니라,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사이버 안보나 인공지능 탑재 무기체계까지도 포함하는 신흥기술(emerging technology) 안보에 대응하는 복합적인 우주 미래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신흥기술로서 우주기술 분야에서 ‘상업화와 군사화의 동시 전개’라는 근본적인 지형 변화가 최근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시해야 한다. 우주의 상업화는 우주산업의 효율성 향상과 여타 산업과의 연계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이른바 뉴스페이스의 부상은 이러한 추세를 잘 반영한다. 한편 중국의 우주산업 경쟁력이 강화될 뿐만 아니라 우주굴기의 안보위협이 ‘안보화’되는 과정에서 미중 우주경쟁의 군사화 또는 무기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우주산업의 변화 추세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상업 및 군사 부문의 연계를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의 개발과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특히 주요국들의 우주 경쟁 과정에서 발견되는 틈새를 공략하는 전략 마인드도 필요하다. 최근 우주산업에 진입하려는 개도국의 우주 협력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전통적인 우주 강국뿐만 아니라 일본, 인도 등과 같이 우주산업에 일정한 역량을 갖춘 우주 신흥국들에 대한 국제협력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우주 국제협력의 구도를 감안하여, 기존 우주 강국들과 차별화된 틈새 전략을 추진하여 중견국 및 개도국들과의 우주 협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우주산업 육성의 경험을 활용하여, 개도국의 우주 역량육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운영이 틈새 전략의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군사적 함의를 갖는 우주기술 분야에서는 미국이 여전히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한 전략적 행보가 필요하다. 물론, 중국의 우주 능력이 빠르게 향상되고, 미국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미국과 중국의 우주 능력을 현시점에서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렵다. 미중 양국의 기술 역량의 차이와 우주공간에 대한 접근의 차별성을 감안할 때, 미국이 주도하는 우주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가운데 한미협력을 고도화함으로써 한국의 우주 역량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전략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은 우주의 상업화를 통해 우주산업의 패러다임을 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노력이 시급히 필요하다.   저자 김상배 교수는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외교학 전공) 교수로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책임연구원을 지냈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 대학에서 미국과 일본의 기술 패권경쟁에 관한 연구를 하여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 분야는 4차 산업혁명과 네트워크의 세계정치, 신흥안보의 복합지정학, 미중 디지털 패권경쟁 등이다. 단독저서로는 『미중 디지털 패권경쟁: 기술-안보-권력의 복합지정학』(2022), 『버추얼 창과 그물망 방패: 사이버 안보의 세계정치와 한국』(2018), 『아라크네의 국제정치학: 네트워크 세계정치이론의 도전』(2014), 『정보혁명과 권력변환: 네트워크 정치학의 시각』(2010), 『정보화시대의 표준경쟁: 윈텔리즘과 일본의 컴퓨터 산업』(2007)이 있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JPI PeaceNet] 2022년 남북관계, 어디에 있는가
    저자
    서보혁(통일연구원)
    발간호
    2022-02
    [기획자 註]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관계는 경색되어 있다.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남북한 사이에 정부차원의 회담이 기대되기도 하였으나 북한의 불참으로 불가능해졌다. 2022년에 들어서자 북한은 극초음속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이에 대한 미국의 제재 발표에 대해 단거리 탄도 미사일 시험발사로 한반도 정세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북미 간 대결구도가 심화될수록 남북관계의 개선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한반도의 안보역학구도 속에서 북한의 핵개발 드라이브 지속으로 인해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이런 상황에서 2022년의 남북관계는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통일연구원의 서보혁 연구위원의 글을 통해 남북관계의 답보의 원인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상황, 현재 남북관계의 도전요인에 대해서 논의해보고자 한다. [기획: 임해용 연구위원(haeyonglim@jpi.or.kr)] 남북관계 답보의 이면: 하노이의 후폭풍2021년 남북관계는 간헐적인 대화를 제외하면 이전 해와 같이 협력 부재로 채워졌다. 대화 및 협력 부재는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결렬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핵화와 안전보장을 둘러싼 공동 이행방안에 대한 북미 양측의 합의 실패 말이다. 김정은 정권은 하노이 회담 실태와 남북 합의 이행 지연 등에 관해 한미 양국을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김정은은 그해 4월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 시정연설에서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지만 지난번처럼 좋은 기회를 다시 얻기는 분명 힘들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은 자신이 하노이 회담에서 거론한 “적대세력들의 제재해제 문제 따위에는 이제 더는 집착하지 않을 것이며 나는 우리의 힘으로 부흥의 앞길을 열 것”이라고 공언하였다. 문재인 정부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결렬과 그에 따른 북한의 태도를 보고 평화 프로세스를 이어가야 한다고 재삼 다짐하고, 6월 30일 최초의 남북미 세 정상 간 판문점 회담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평화 프로세스가 더 이상의 진전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인 곤경에 빠진 상태에서 미국은 대통령 선거 국면으로 진입해 들어갔고, 그에 따라 (그리고 대북 제재 하에서) 남한이 독자적으로 남북협력에 나서지도 못하는 형국이었다. 김정은 정권의 실망이 깊어지면서 “자력갱생”, “자력부강” 노선에 대한 집착은 높아갔다. 2020년 6월 9일 북한은 남한 민간단체가 접경지역 일대에서 살포한 대북 전단을 문제삼아 남북 통신연락선 단절을 통보하였다. 급기야 1주일 후(6.16) 북한측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였다. 연락사무소는 문재인 정부 들어 추구해온 남북교류협력의 제도화 및 상시화를 구현하려는 조치였다. 이 건물을 북한이 파괴한 것은 2018년 벽두부터 전개한 대남·대미관계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일종의 ‘전략적 고립’을 택했음을 말해준다. 물론 그 배후에 중국, 러시아라는 큰 뒷마당이 있었다. 파주 통일전망대에서는 지금도 폭파된 상태 그대로 있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관측할 수 있다. 이 폭파행위에 대한 북한의 유감 표명 없이 남북관계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볼 국민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2022년 새핵 벽두 북한 관영언론들이 내놓고 있는 선전용 기사들은 대남·대미관계에 대한 기대 표명 없이 고립주의 노선을 확인해주고 있다.한국, 미국과 대화의 창을 잠근 채 김정은 정권은 자력갱생노선을 본격화해갔다. 그런 가운데서도 2021년 남북은 물밑에서 대화 재개를 위한 소통을 벌여나갔다. 문재인 정부로서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남북대화가 필수적이고, 2018년 판문점 및 평양 공동선언의 이행이 우선 과제였다. 문 대통령은 제102주년 3·1절 기념사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위해서도 변함없이 노력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전쟁불용, 상호안전보장, 공동번영 등 3대 원칙에 입각한 남북관계 발전과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방역·보건협력체 제안 등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입장을 밝혔다. 상반기 다각도로 전개한 대화 복원 노력의 결과, 7월 27일 남북이 동시에 통신연락선 복원을 발표하였다. 남북통신연락선 복원은 남북정상 간 합의사항으로 알려졌고, 북한의 호응에는 북한이 문제 삼았던 대북전단의 살포를 제한하는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이 3월 30일부터 시행된 점과 코로나19의 지속 및 식량 부족 등 북한 대내적 요인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청와대에서 직접 통신선 복원을 발표한 것에 비해 북한은 통신사 보도라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북한이 이 조치를 남한만큼 중요하게 판단하지 않고 있음을 암시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8.1.)를 통해 “남북통신선은 물리적으로 다시 연결시켜 놓은 것으로 남북정상회담 문제까지 여론화하는 것은 경솔한 판단이라고 지적하고,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진행되면 북남관계의 앞길을 흐리게 하는 전주곡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실제 김여정은 8월 10일 한미연합훈련을 비난하며 남북 통신연락선을 다시 단절한다고 발표하였다. 그 다음날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장도 담화를 내 “북남관계 개선의 기회를 제손으로 날려보내고 우리의 선의에 적대행위로 대답한 대가에 대하여 똑바로 알게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후 10월 4일 남북 통신연락선은 재복원되었지만 연락선의 의미에 대한 남북의 상이한 태도와 재단절 및 복원과 같은 시행착오 등을 고려할 때 남북 통신연락선 가동을 안정적인 남북관계의 징표로 간주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통신연락선 재복원을 둘러싼 남북의 소통방식은 대면 접촉이 아닌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이것이 반드시 코로나19 상황 때문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문재인 정부의 평화 프로세스, 그 당위와 현실2021년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과 그에 대한 북한의 반응 역시 위와 같은 간접적인 소통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문 대통령은 제76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2021.9.22.)에서 남북 간, 북미 간 조속한 대화 재개를 촉구하며 ‘종전선언’을 다시 제안하였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의 주체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그 기대효과로 “비핵화의 불가역적 진전과 함께 완전한 평화(의) 시작”을 언급하였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은 한국정부의 일관된 평화 메시지를 발신함은 물론, 한반도 평화의 주요 당사자들(특히 북한과 미국)이 평화 프로세스에 호응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것이었다. 한국은 미국측에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한편 종전선언(안)의 문구에 대한 실무협의에 들어갔다. 그 결과 2021년 말에 가서는 한미 양국 간에 종전선언 문안에 대한 합의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한편 종전선언에 관한 북한의 입장은 전면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다. 2018년 6.12 싱가포르 공동선언 전후로 북한은 종전선언에 가장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하였는데, 향후 미국과의 평화협상을 촉진하려는 의도가 담겨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반응이 미온적이었고 북한도 ‘선언’보다는 제재 완화를 통한 실리를 추구하는 쪽으로 선회하였다. 이후 종전선언은 묻히는 것처럼 보였다가 한국정부가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병행 추진을 위한 촉매로 살려낸 것이다. 2021년 유엔 총회 연설에서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다시 제안하자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9월 24일 “남조선이 적대적이지 않다면 관계회복과 발전 전망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를 해볼 용의가 있다”고 관영언론 담화를 통해 밝혔다. 김 부부장은 “종전선언은 나쁘지 않다”며 “장기간 지속돼오고 있는 조선반도의 불안정한 정전 상태를 물리적으로 끝장내고 상대방에 대한 적대시를 철회한다는 의미에서의 종전선언은 흥미 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다만 “선결 조건이 마련돼야 서로 마주 앉아 의의 있는 종전도 선언할 수 있을 것이며 북남관계, 조선반도의 전도문제에 대해서도 의논을 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조건을 걸었다. 북한은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가 있던 날 오전에 리태성 외무성 부상 명의로 종전선언이 시기상조라는 담화를 내기도 하였다. 이런 다소 어긋난 현상이 의도된 것인지, 북한 내 관련 조직 간 조율되지 않은 결과인지는 알 수 없다.장기간의 정전체제 하에 있는 한반도 안보상황을 고려할 때 종전선언이 정전체제의 평화적 전환을 추진하는 촉진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한국, 미국 사이에 종전선언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북한은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의 전 단계로 보는 대신, 한국과 미국은 비핵화 촉진 수단으로서의 의미에 비중을 두고 있다. 이와 별개로 문재인 정부가 종전선언에 높은 비중을 두고 대통령 임기 말까지 일관된 종전 및 평화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은 인상적인데, 그것은 2022년 벽두 북한의 잇달은 미사일 시험발사로 강력한 도전에 부딪혔다.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 평가와 전망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그 전략으로 ‘남북 간 화해협력과 한반도 비핵화를 제시하였다. 그리고 그 전략을 달성할 실행 과제로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및 경제통일 구현과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및 평화체제 구축을 제시하였다. 여기서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실행‘은 동해권 에너지·자원벨트, 서해안 산업·물류·교통벨트, DMZ 환경·관광벨트를 3축으로 한 한반도 신성장동력 확보 및 북방경제 연계 추진을 말한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은 포괄적 비핵화를 목표로 제재국면을 반영한 남북 교류협력 등 단계적 접근과 비핵화 진전에 따라 평화체제 협상을 추진한다는 방침을 말한다.그러나 3년이 훨씬 지난 2021년 통일부 업무보고에서는 제일의 추진과제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하여 비핵화·평화체제 진전’을 제시하면서 발전된 남북연락·협의기구 구축과 남북회담 개최 남북합의 이행을 추진 방안으로 제시하였다. 2018년 1년간 개시된 평화 프로세스가 중단된 가운데 제시된 것이지만 2017년 출범때의 목표에서 진전된 내용은 아니었다. 이어 제시된 상생과 평화의 한반도 생명·안전공동체 구축 추진, 남북교류협력 활성화, DMZ 국제평화지대화 추진과 남북 접경지역 평화 증진 등과 같은 과제도 제재국면과 남북대화 중단 상황을 고려하면 현실성이 떨어진 희망사항에 불과해 보였다. 물론 2021년 가을 국정감사 기간 중 통일부가 보고한 사항 중 복원된 남북 통신연락선의 안정적 운영을 토대로 남북관계 복원 노력은 적절한 방침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함께 제시한 보건의료·재해재난·기후환경·민생 분야 등 인도적 협력을 정치·군사상황과 무관하게 일관되게 추진한다는 방침은 코로나19+대북제재 국면과 ‘비본질적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북한의 입장을 고려할 때 현실성이 떨어진 이야기였다.2022년 들어 통일부가 밝힌 업무보고는 “중단 없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로 평화를 지키고 만들어간다.”는 목표 하에 일관된 대북 통일정책의 추진, 한반도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인도적 문제 해결을 구체적인 과제로 제시하고, 그 실행방안으로 남북영상회담 등 방역안전 회담 체계 구축, 남북관계 차원의 비핵화 협상 진전 촉진, 코로나 19 방역협력 등 보건의료협력, 탄소중립 및 기후환경 협력 등 단계적 확대, 설 계기 등 대면 화상상봉 재개 등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반응은 호응과 협력이 아니라 무시와 도발이었다.핵개발 드라이브와 남북관계의 도전유엔에서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제안하고 거기에 김여정 등 북한의 반응이 오가는 시점에 북한에서는 또 다른 움직임이 진행되었다. 2021년 9월 25일 북한 국방과학원이 새로 개발한 극초음속미사일 화성-8형을 시험발사하였다. 북한 관영언론은 이것이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제시한 국방과학 발전 및 무기체계 개발 5개년계획의 전략무기부문 최우선 5대 과업에 속하며, 자립적인 첨단국방과학기술력을 높이고 자위적방위력을 강화하는 데 전략적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했다. 이 무기는 중국, 러시아만 완성해 실전 배치하였고 미국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 것으로서, 미사일요격을 피할 수 있는 일종의 게임체이저(game changer)로 평가된다. 위 실험이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지는 않았지만, 2022년 1월 5, 11일 북한은 연이어 극초음속미사일 실험을 해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1월 11일 시험발사에는 김정은이 참관하고 발사 후 관계자들을 치하했다고 한다. 김정은은 위 첫 극초음속미사일 시험발사 4일 후(9.29) 시정연설에서 경색된 남북관계의 회복과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10월 초부터 관계악화로 단절시켰던 남북통신연락선을 다시 복원하도록 할 의사를 표명하였다. 동시에 김정은은 미국 행정부가 주장하는 외교적 관여와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적대행위를 가리기 위한 허울에 지나지 않고 적대시 정책의 연장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그 대신 대미 전략구상을 집행하기 위해 전술적 대책을 만들고 국권과 발전 이익을 철저히 수호하기 위한 사업을 밝혔다고 한다. 이를 보면 북한이 협상을 통한 대외관계 개선보다는 핵억제력 강화를 통한 안보 우선 노선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대화 제의에 선을 긋는 대신 남한과 조건부 대화 의사를 보인 것은 한미 분열을 도모한 것이거나, 주어진 상황에서 남북대화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대화 의지 자체가 낮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북한은 2022년 들어 위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에 이어 그에 대한 미국의 제재 발표에 맞서 단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1.14, 1.17)로 응수했다. 이제 북한은 발사방식, 비행 거리 및 방식, 파괴력 등에서 다종다양한 미사일 능력을 확보해 보다 유연한 군사전략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금년 들어 네 차례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두고 언론은 주로 북한의 국내정치 혹은 대외교섭용이라고 평가하고 있으나, 김정은 정권의 확고한 핵미사일 개발 의지가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021년 12월 27~31일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북한정권은 “날로 불안정해지고 있는 조선반도의 군사적 환경과 국제정세의 흐름은 국가방위력 강화를 잠시도 늦춤 없이 더욱 힘있게 추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노동당 대회에서 결의한 국방력 강화를 위한 5대 무기 개발 시도가 지속될 것이다. 이는 한반도 정세와 비핵화의 전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김정은 정권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2019년 말까지 시한부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미국 신 행정부가 제재 레짐을 유지하면서 무조건 대화를 하자는데는 어떤 기대도 보이지 않았다. 남한에 대해서는 문재인 정부의 평화 프로세스 재개에 대한 집념을 알고 있었기에 통신연락선 복원 등 대화 재개 용의를 밝히기도 했으나, 대북 제재와 코로나19 사태의 지속 등으로 실질적인 관계개선은 힘들었다. 만약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고 남한의 입장이 지금과 같다면 남북관계는 개선될 것인가? 북한의 경제적 필요와 상호 긴장완화가 내치에 유익함을 고려할 때 관계개선이 모색될 것이다. 다만 그에 맞서 대북제재가 지속되는 가운데 북한이 노동당 결정기구에서 결의한 국방력 강화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면 실질적인 관계 진전은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이것을 지도력의 문제로 환원하기는 힘들 것이다.대통령 선거 국면에 들어선 국내에서는 북한 핵시설 선제타격과 통일부의 명칭 수정 등 대북정책과 관련해 서로 다른 입장들이 여과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2021~22 겨울 시즌 북한의 군사동향과 5년 간 문재인 정부가 전개한 평화 프로세스의 희망과 한계를 종합 고려할 때 향후 남북관계의 중심이 이동할 것이다. 향후 남북관계는 통일과 평화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기보다는 질을 달리하는 평화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을 것이다. 즉 핵평화와 비핵평화 사이에서 남북은 선택이냐 조화냐 하는 고난도의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이 문제는 한반도 미래는 물론 세계평화에도 중대한 의미로 다가갈 것이다.저자서보혁 박사는 한국외국어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하고 현재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북한·통일연구를 하며 20여년 간 정부/비정부기구의 대북정책을 자문해왔고 비교평화연구로 나아가고 있다. 근래 저작으로 『한국 평화학의 탐구』, 『평화개념 연구』(공편, 근간), 『12개 렌즈로 보는 남북관계』(공편), 『분쟁의 평화적 전환과 한반도』(공편), 『평화의 인권·발전 효과와 한반도』(공저) 등이 있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들의 개인적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JPI PeaceNet] 2022년 남북관계, 어디에 있는가
    저자
    서보혁(통일연구원)
    발간호
    2022-02
    [기획자 註]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관계는 경색되어 있다.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남북한 사이에 정부차원의 회담이 기대되기도 하였으나 북한의 불참으로 불가능해졌다. 2022년에 들어서자 북한은 극초음속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이에 대한 미국의 제재 발표에 대해 단거리 탄도 미사일 시험발사로 한반도 정세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북미 간 대결구도가 심화될수록 남북관계의 개선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한반도의 안보역학구도 속에서 북한의 핵개발 드라이브 지속으로 인해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이런 상황에서 2022년의 남북관계는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통일연구원의 서보혁 연구위원의 글을 통해 남북관계의 답보의 원인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상황, 현재 남북관계의 도전요인에 대해서 논의해보고자 한다. [기획: 임해용 연구위원(haeyonglim@jpi.or.kr)] 남북관계 답보의 이면: 하노이의 후폭풍2021년 남북관계는 간헐적인 대화를 제외하면 이전 해와 같이 협력 부재로 채워졌다. 대화 및 협력 부재는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결렬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핵화와 안전보장을 둘러싼 공동 이행방안에 대한 북미 양측의 합의 실패 말이다. 김정은 정권은 하노이 회담 실태와 남북 합의 이행 지연 등에 관해 한미 양국을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김정은은 그해 4월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 시정연설에서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지만 지난번처럼 좋은 기회를 다시 얻기는 분명 힘들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은 자신이 하노이 회담에서 거론한 “적대세력들의 제재해제 문제 따위에는 이제 더는 집착하지 않을 것이며 나는 우리의 힘으로 부흥의 앞길을 열 것”이라고 공언하였다. 문재인 정부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결렬과 그에 따른 북한의 태도를 보고 평화 프로세스를 이어가야 한다고 재삼 다짐하고, 6월 30일 최초의 남북미 세 정상 간 판문점 회담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평화 프로세스가 더 이상의 진전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인 곤경에 빠진 상태에서 미국은 대통령 선거 국면으로 진입해 들어갔고, 그에 따라 (그리고 대북 제재 하에서) 남한이 독자적으로 남북협력에 나서지도 못하는 형국이었다. 김정은 정권의 실망이 깊어지면서 “자력갱생”, “자력부강” 노선에 대한 집착은 높아갔다. 2020년 6월 9일 북한은 남한 민간단체가 접경지역 일대에서 살포한 대북 전단을 문제삼아 남북 통신연락선 단절을 통보하였다. 급기야 1주일 후(6.16) 북한측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였다. 연락사무소는 문재인 정부 들어 추구해온 남북교류협력의 제도화 및 상시화를 구현하려는 조치였다. 이 건물을 북한이 파괴한 것은 2018년 벽두부터 전개한 대남·대미관계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일종의 ‘전략적 고립’을 택했음을 말해준다. 물론 그 배후에 중국, 러시아라는 큰 뒷마당이 있었다. 파주 통일전망대에서는 지금도 폭파된 상태 그대로 있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관측할 수 있다. 이 폭파행위에 대한 북한의 유감 표명 없이 남북관계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볼 국민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2022년 새핵 벽두 북한 관영언론들이 내놓고 있는 선전용 기사들은 대남·대미관계에 대한 기대 표명 없이 고립주의 노선을 확인해주고 있다.한국, 미국과 대화의 창을 잠근 채 김정은 정권은 자력갱생노선을 본격화해갔다. 그런 가운데서도 2021년 남북은 물밑에서 대화 재개를 위한 소통을 벌여나갔다. 문재인 정부로서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남북대화가 필수적이고, 2018년 판문점 및 평양 공동선언의 이행이 우선 과제였다. 문 대통령은 제102주년 3·1절 기념사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위해서도 변함없이 노력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전쟁불용, 상호안전보장, 공동번영 등 3대 원칙에 입각한 남북관계 발전과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방역·보건협력체 제안 등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입장을 밝혔다. 상반기 다각도로 전개한 대화 복원 노력의 결과, 7월 27일 남북이 동시에 통신연락선 복원을 발표하였다. 남북통신연락선 복원은 남북정상 간 합의사항으로 알려졌고, 북한의 호응에는 북한이 문제 삼았던 대북전단의 살포를 제한하는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이 3월 30일부터 시행된 점과 코로나19의 지속 및 식량 부족 등 북한 대내적 요인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청와대에서 직접 통신선 복원을 발표한 것에 비해 북한은 통신사 보도라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북한이 이 조치를 남한만큼 중요하게 판단하지 않고 있음을 암시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8.1.)를 통해 “남북통신선은 물리적으로 다시 연결시켜 놓은 것으로 남북정상회담 문제까지 여론화하는 것은 경솔한 판단이라고 지적하고,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진행되면 북남관계의 앞길을 흐리게 하는 전주곡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실제 김여정은 8월 10일 한미연합훈련을 비난하며 남북 통신연락선을 다시 단절한다고 발표하였다. 그 다음날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장도 담화를 내 “북남관계 개선의 기회를 제손으로 날려보내고 우리의 선의에 적대행위로 대답한 대가에 대하여 똑바로 알게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후 10월 4일 남북 통신연락선은 재복원되었지만 연락선의 의미에 대한 남북의 상이한 태도와 재단절 및 복원과 같은 시행착오 등을 고려할 때 남북 통신연락선 가동을 안정적인 남북관계의 징표로 간주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통신연락선 재복원을 둘러싼 남북의 소통방식은 대면 접촉이 아닌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이것이 반드시 코로나19 상황 때문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문재인 정부의 평화 프로세스, 그 당위와 현실2021년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과 그에 대한 북한의 반응 역시 위와 같은 간접적인 소통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문 대통령은 제76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2021.9.22.)에서 남북 간, 북미 간 조속한 대화 재개를 촉구하며 ‘종전선언’을 다시 제안하였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의 주체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그 기대효과로 “비핵화의 불가역적 진전과 함께 완전한 평화(의) 시작”을 언급하였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은 한국정부의 일관된 평화 메시지를 발신함은 물론, 한반도 평화의 주요 당사자들(특히 북한과 미국)이 평화 프로세스에 호응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것이었다. 한국은 미국측에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한편 종전선언(안)의 문구에 대한 실무협의에 들어갔다. 그 결과 2021년 말에 가서는 한미 양국 간에 종전선언 문안에 대한 합의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한편 종전선언에 관한 북한의 입장은 전면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다. 2018년 6.12 싱가포르 공동선언 전후로 북한은 종전선언에 가장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하였는데, 향후 미국과의 평화협상을 촉진하려는 의도가 담겨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반응이 미온적이었고 북한도 ‘선언’보다는 제재 완화를 통한 실리를 추구하는 쪽으로 선회하였다. 이후 종전선언은 묻히는 것처럼 보였다가 한국정부가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병행 추진을 위한 촉매로 살려낸 것이다. 2021년 유엔 총회 연설에서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다시 제안하자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9월 24일 “남조선이 적대적이지 않다면 관계회복과 발전 전망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를 해볼 용의가 있다”고 관영언론 담화를 통해 밝혔다. 김 부부장은 “종전선언은 나쁘지 않다”며 “장기간 지속돼오고 있는 조선반도의 불안정한 정전 상태를 물리적으로 끝장내고 상대방에 대한 적대시를 철회한다는 의미에서의 종전선언은 흥미 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다만 “선결 조건이 마련돼야 서로 마주 앉아 의의 있는 종전도 선언할 수 있을 것이며 북남관계, 조선반도의 전도문제에 대해서도 의논을 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조건을 걸었다. 북한은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가 있던 날 오전에 리태성 외무성 부상 명의로 종전선언이 시기상조라는 담화를 내기도 하였다. 이런 다소 어긋난 현상이 의도된 것인지, 북한 내 관련 조직 간 조율되지 않은 결과인지는 알 수 없다.장기간의 정전체제 하에 있는 한반도 안보상황을 고려할 때 종전선언이 정전체제의 평화적 전환을 추진하는 촉진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한국, 미국 사이에 종전선언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북한은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의 전 단계로 보는 대신, 한국과 미국은 비핵화 촉진 수단으로서의 의미에 비중을 두고 있다. 이와 별개로 문재인 정부가 종전선언에 높은 비중을 두고 대통령 임기 말까지 일관된 종전 및 평화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은 인상적인데, 그것은 2022년 벽두 북한의 잇달은 미사일 시험발사로 강력한 도전에 부딪혔다.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 평가와 전망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그 전략으로 ‘남북 간 화해협력과 한반도 비핵화를 제시하였다. 그리고 그 전략을 달성할 실행 과제로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및 경제통일 구현과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및 평화체제 구축을 제시하였다. 여기서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실행‘은 동해권 에너지·자원벨트, 서해안 산업·물류·교통벨트, DMZ 환경·관광벨트를 3축으로 한 한반도 신성장동력 확보 및 북방경제 연계 추진을 말한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은 포괄적 비핵화를 목표로 제재국면을 반영한 남북 교류협력 등 단계적 접근과 비핵화 진전에 따라 평화체제 협상을 추진한다는 방침을 말한다.그러나 3년이 훨씬 지난 2021년 통일부 업무보고에서는 제일의 추진과제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하여 비핵화·평화체제 진전’을 제시하면서 발전된 남북연락·협의기구 구축과 남북회담 개최 남북합의 이행을 추진 방안으로 제시하였다. 2018년 1년간 개시된 평화 프로세스가 중단된 가운데 제시된 것이지만 2017년 출범때의 목표에서 진전된 내용은 아니었다. 이어 제시된 상생과 평화의 한반도 생명·안전공동체 구축 추진, 남북교류협력 활성화, DMZ 국제평화지대화 추진과 남북 접경지역 평화 증진 등과 같은 과제도 제재국면과 남북대화 중단 상황을 고려하면 현실성이 떨어진 희망사항에 불과해 보였다. 물론 2021년 가을 국정감사 기간 중 통일부가 보고한 사항 중 복원된 남북 통신연락선의 안정적 운영을 토대로 남북관계 복원 노력은 적절한 방침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함께 제시한 보건의료·재해재난·기후환경·민생 분야 등 인도적 협력을 정치·군사상황과 무관하게 일관되게 추진한다는 방침은 코로나19+대북제재 국면과 ‘비본질적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북한의 입장을 고려할 때 현실성이 떨어진 이야기였다.2022년 들어 통일부가 밝힌 업무보고는 “중단 없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로 평화를 지키고 만들어간다.”는 목표 하에 일관된 대북 통일정책의 추진, 한반도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인도적 문제 해결을 구체적인 과제로 제시하고, 그 실행방안으로 남북영상회담 등 방역안전 회담 체계 구축, 남북관계 차원의 비핵화 협상 진전 촉진, 코로나 19 방역협력 등 보건의료협력, 탄소중립 및 기후환경 협력 등 단계적 확대, 설 계기 등 대면 화상상봉 재개 등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반응은 호응과 협력이 아니라 무시와 도발이었다.핵개발 드라이브와 남북관계의 도전유엔에서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제안하고 거기에 김여정 등 북한의 반응이 오가는 시점에 북한에서는 또 다른 움직임이 진행되었다. 2021년 9월 25일 북한 국방과학원이 새로 개발한 극초음속미사일 화성-8형을 시험발사하였다. 북한 관영언론은 이것이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제시한 국방과학 발전 및 무기체계 개발 5개년계획의 전략무기부문 최우선 5대 과업에 속하며, 자립적인 첨단국방과학기술력을 높이고 자위적방위력을 강화하는 데 전략적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했다. 이 무기는 중국, 러시아만 완성해 실전 배치하였고 미국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 것으로서, 미사일요격을 피할 수 있는 일종의 게임체이저(game changer)로 평가된다. 위 실험이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지는 않았지만, 2022년 1월 5, 11일 북한은 연이어 극초음속미사일 실험을 해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1월 11일 시험발사에는 김정은이 참관하고 발사 후 관계자들을 치하했다고 한다. 김정은은 위 첫 극초음속미사일 시험발사 4일 후(9.29) 시정연설에서 경색된 남북관계의 회복과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10월 초부터 관계악화로 단절시켰던 남북통신연락선을 다시 복원하도록 할 의사를 표명하였다. 동시에 김정은은 미국 행정부가 주장하는 외교적 관여와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적대행위를 가리기 위한 허울에 지나지 않고 적대시 정책의 연장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그 대신 대미 전략구상을 집행하기 위해 전술적 대책을 만들고 국권과 발전 이익을 철저히 수호하기 위한 사업을 밝혔다고 한다. 이를 보면 북한이 협상을 통한 대외관계 개선보다는 핵억제력 강화를 통한 안보 우선 노선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대화 제의에 선을 긋는 대신 남한과 조건부 대화 의사를 보인 것은 한미 분열을 도모한 것이거나, 주어진 상황에서 남북대화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대화 의지 자체가 낮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북한은 2022년 들어 위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에 이어 그에 대한 미국의 제재 발표에 맞서 단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1.14, 1.17)로 응수했다. 이제 북한은 발사방식, 비행 거리 및 방식, 파괴력 등에서 다종다양한 미사일 능력을 확보해 보다 유연한 군사전략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금년 들어 네 차례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두고 언론은 주로 북한의 국내정치 혹은 대외교섭용이라고 평가하고 있으나, 김정은 정권의 확고한 핵미사일 개발 의지가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021년 12월 27~31일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북한정권은 “날로 불안정해지고 있는 조선반도의 군사적 환경과 국제정세의 흐름은 국가방위력 강화를 잠시도 늦춤 없이 더욱 힘있게 추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노동당 대회에서 결의한 국방력 강화를 위한 5대 무기 개발 시도가 지속될 것이다. 이는 한반도 정세와 비핵화의 전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김정은 정권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2019년 말까지 시한부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미국 신 행정부가 제재 레짐을 유지하면서 무조건 대화를 하자는데는 어떤 기대도 보이지 않았다. 남한에 대해서는 문재인 정부의 평화 프로세스 재개에 대한 집념을 알고 있었기에 통신연락선 복원 등 대화 재개 용의를 밝히기도 했으나, 대북 제재와 코로나19 사태의 지속 등으로 실질적인 관계개선은 힘들었다. 만약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고 남한의 입장이 지금과 같다면 남북관계는 개선될 것인가? 북한의 경제적 필요와 상호 긴장완화가 내치에 유익함을 고려할 때 관계개선이 모색될 것이다. 다만 그에 맞서 대북제재가 지속되는 가운데 북한이 노동당 결정기구에서 결의한 국방력 강화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면 실질적인 관계 진전은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이것을 지도력의 문제로 환원하기는 힘들 것이다.대통령 선거 국면에 들어선 국내에서는 북한 핵시설 선제타격과 통일부의 명칭 수정 등 대북정책과 관련해 서로 다른 입장들이 여과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2021~22 겨울 시즌 북한의 군사동향과 5년 간 문재인 정부가 전개한 평화 프로세스의 희망과 한계를 종합 고려할 때 향후 남북관계의 중심이 이동할 것이다. 향후 남북관계는 통일과 평화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기보다는 질을 달리하는 평화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을 것이다. 즉 핵평화와 비핵평화 사이에서 남북은 선택이냐 조화냐 하는 고난도의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이 문제는 한반도 미래는 물론 세계평화에도 중대한 의미로 다가갈 것이다.저자서보혁 박사는 한국외국어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하고 현재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북한·통일연구를 하며 20여년 간 정부/비정부기구의 대북정책을 자문해왔고 비교평화연구로 나아가고 있다. 근래 저작으로 『한국 평화학의 탐구』, 『평화개념 연구』(공편, 근간), 『12개 렌즈로 보는 남북관계』(공편), 『분쟁의 평화적 전환과 한반도』(공편), 『평화의 인권·발전 효과와 한반도』(공저) 등이 있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들의 개인적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JPI PeaceNet] 빅데이터를 통해 본 2021년 한국의 대외관계: 격동 속 안정
    저자
    정승철, 임해용, 유기은, 이재준(제주평화연구원)
    발간호
    2022-01
    [기획자 註] 지난 2021년 동북아 국제관계는 코로나 팬데믹의 지속과 미중전략경쟁의 심화의 한 가운데서 변화를 겪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의 엄중한 상황이 여전히 지속되고 확산되고 있으며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 변이인 오미크론이 2021년 후반부터 급속하게 전파되면서 펜데믹의 새로운 국면이 진행 중이다. 미중전략경쟁은 바이든행정부의 취임 이후로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따른 아시아재균형정책을 통해 새로운 질서가 구축 중이다. 이러한 보건, 경제, 안보 측면에서 발생하고 있는 복합위기에 대한 분석이 있어왔으나, 정량적으로 분석하고자 하는 시도가 부족했다. 이에 제주평화연구원의 연구진은 빅데이터를 사용하여 보건위기, 경제위기, 안보위기 등 복합위기를 겪은 2021년의 동북아의 국제관계를 회고해 보고자 한다. [기획: 임해용 연구위원(haeyonglim@jpi.or.kr)]  서론 2021년은 격변의 한 해였다. 코로나 확산, 글로벌 공급망의 위기, 미중 패권경쟁의 가속 속에서 각국은 각자의 국익에 따라 연합하고 반목하였다. 2020년 전 세계를 팬데믹으로 몰아 넣은 코로나19는 2021년에 백신접종으로 종식되거나 기세가 크게 꺾일 것이라는 일반의 기대와 달리 변이를 거듭하면서 확산을 멈추지 않고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였지만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은 더욱 심화되고 다층화되고 있다. 미국은 영국, 호주와 작년 9월 안보협력체인 오커스(AUKUS)를 만들어 안보협력을 확대하였고, 12월에는 ‘민주주의 정상회의(Summit for Democracy)’를 개최하여 중국에 대한 압박을 지속하였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기조로 민족주의를 앞세우며 대외 강경기조를 이어나간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을 강화하고, 동남아와 아프리카에서 세력을 강화하였다. 달리 말하면 2021년은 보건위기, 경제위기, 세력전이, 민주주의의 쇠퇴라는 복합위기 속에서 각국이 이합집산한 한 해라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이러한 2021년 동북아 국제관계의 다양성과 복합성을 평가 및 검토하는 시도가 있었다. 이 글은 기존의 정성적 접근과 달리 GDELT(Global Database of Events, Language, and Tone)라는 빅데이터[1]를 통해서 2021년 동북아 역내 국가 간 협력과 갈등을 정량적으로 평가하였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연구진은 2021년 한국의 역내 국제관계는 격동 속에서 일정한 안정을 유지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미중전략경쟁이 심화되는 상황 속에서도 한국은 미국, 중국과 각각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다만, 한일관계와 남북관계는 개선이 이루어지다가 다시 악화되는 추세를 나타냈는데, 한일관계의 경우는 12월에 다시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한러관계는 GDELT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최소한 현상유지 이상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   2. 한국의 동북아 역내 국제관계 1)한미관계          그림 1. 골드스타인 척도로 본 한미관계  2021년 한미 관계는 전 기간 골드스타인 척도 0이상을 유지해 협력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2] 특히 같은 해 7월 골드스타인 척도가 높았다. 미국 하원에서 6월 말 주한 미군 감축 제한법을 상정하고 미국과 호주의 연합작전인 '탤리스먼 세이버' 훈련에 한국이 참가를 발표하는 등 한미 사이의 협력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이다. 또 한미 정책대화를 통해 한일 관계 개선 논의가 이뤄진 점 역시 긍정적인 요인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2021년 출범한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관계를 중시하는 미국의 전통적인 외교정책을 복원하려고 노력하였다(America is back).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 견제를 위해 대중강경책을 지속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취했던 미국 일방주의와는 그 방식을 달리하면서 쿼드(QUAD: 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와 AUKUS 등 전통적인 동맹관계를 중심으로 인도태평양 전략의 심화와 확대를 추구하고 있다. 미국은 특히, 미중전략경쟁을 안보와 기술 경쟁만이 아니라 가치 부문으로 확대해 나갔는데, 12월에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하여 110개 민주주의 국가들을 초청하여 권위주의 진영에 대한 대결구도를 구축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2021년에 한미는 5월의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양국 간 의지와 공조를 재확인하였다. 9월 UN총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으로 한미 간 의견 조율이 진행중이며 북한의 태도와 입장의 변화가 종전선언 실현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은 한미동맹을 중국을 겨냥한 동아시아 전략 차원에서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전통적인 동맹국인 미국과 경제적 상호의존도가 높은 중국 사이에서 딜레마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한국은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미중 간 전략적 공간을 활용하는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올해는 한국과 미국에서 모두 중요한 선거가 예정된 시기이다. 한국은 오는 3월에 대통령 선거가, 미국은 11월에 중간선거가 각각 예정되어 있다. 미국 중간선거에서 야당인 공화당의 승리가 예상되기 때문에 안보와 경제관련 미국대외정책의 변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한중관계 그림 2. 골드스타인 척도로 본 한중관계  2021년 언론에 드러난 중국과 한국의 관계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11월 중국의 수출규제로 국내에 요소수 파동이 일어났던 기간 0에 가까운 낮은 점수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1이상의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국가관계를 유지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2021년은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면서, 시진핑 장기집권을 위해 국내적 기반을 조성한 해이다. 2021년 11월에 열린 제 19기 중앙위원회 제6차 전체회의에서는 ‘당의 100년 분투의 중대성취와 역사 경험에 관한 중공 중앙 결의 (中共中央关于党的百年奋斗重大成就和历史经验的决议)’가 발표되었다. 이번 역사결의는 1945년 (마오쩌둥 집권기) 제1차 역사결의, 1981년 (덩샤오핑 집권기) 제2차 역사결의에 이은 세번째 역사 결의로 시진핑을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반열의 올려놓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되었다. 특히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 사상’의 위대한 성취를 강조하며 시진핑의 장기집권을 정당화하였다. 중국은 미국과의 전략경쟁, 가치경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중국식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서구식 민주주의와 대립되는 경쟁관계로 설정하고, 권위주의 국가와의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2021년 8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과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 이후, 중동을 테러로부터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러시아, 중앙아시아 국가 및 중근동 국가들과 안보협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더불어,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대면행사는 없었지만 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 체결 60주년을 맞아 시진핑주석과 김정은 위원장이 친서를 교환하고 혈맹관계를 재확인하였다. 2022년 제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의 세번째 연임이 확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이는 중국 정부의 강경한 대외정책 기조가 유지될 것임을 의미한다. 특히,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해 미국, 호주, 뉴질랜드, 영국, 캐나다, 일본 등이 보이콧을 선언한 만큼 이를 둘러싸고 중국과 서구진영간 대립이 첨예화 될 수 있다. 한국과 중국관계에 있어서, 올해는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지만 미중간 경쟁의 심화가 동북아와 한반도 외교에 투사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2021년 한복과 김치 원조 논쟁 등 한, 중 국민 간 악화된 여론, 특히 한국 젊은 세대 사이에 팽배한 반중감정이 2022년에 지속될 수 있다. 3)한일관계 그림 3. 골드스타인 척도로 본 한일관계  2021년 한일관계는 골드스타인 척도가 0 이상으로 상반기에 다소 긍정적이었으나 , 하반기에는 부정적인 국면으로 들어섰다. 한국정부가 2015년 한일 양국 간에 체결된 ‘위안부’ 합의를 인정하지 않음으로 시작된 한일 갈등은 2019년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해 수출규제 조치를 취함에 따라 무역분쟁으로 번졌다. 이에 따라 한국은 일본과의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 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 연장을 거부하였고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한일관계는 급속하게 냉각되었다. 2021년에도 상반기에 한일관계는 회복세를 보이는듯 하였으나 그 기세는 하반기 들어 꺾였다. 2021년 문재인 정부는 역사 문제와 현안을 분리하는 투트랙 접근을 통해 일본과의 관계개선 의지를 표명하였다. 다만 일본은 2015년 ‘위안부’ 합의 준수를 요구하는 등 역사 문제에 대한 해결을 우선시하는 자세를 보였다. 나아가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종전선언’ 등 한국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일본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결국 2021년 11월 미국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한일 외교차관회담은 양국의 의견차에 따라 공동 기자회견이 무산되었고 12월 영국에서 있었던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여전히 의견차이만 확인하고 마무리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2022년 상반기에는 한일관계에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2022년 3월에는 한국 대통령 선거가, 7월에는 일본 참의원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이처럼 각 국가의 지도층에 변화가 있을 수 있는 상황에서 양국의 현 정부들은 현상 변화를 꾀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한일 관계의 변화 및 개선은 2022년 하반기가 되어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2021년 일본은 코로나19의 확산이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도쿄올림픽을 무난하게 개최하는 성과를 거두는듯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가 요시히테 총리는 2020년 9월 취임 당시 기록했던 높은 지지율이 급락함에 따라 2021년 10월 퇴임하였다. 스가 총리의 지지율이 하락한 주된 원인으로는 코로나19의 확산에 대한 미흡한 대응과 그로 인한 경기 침체가 꼽힌다. 결국 스가에 이어 기시다 후미오가 같은 달 일본총리로 취임하였다. 2022년 7월 참의원 선거 결과에 따라 기시다 총리의 장기집권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지만 한편으로 2022년 일본은 계속해서 코로나19 확산 방지와 국내경제 회복에 집중하는 한편 계속해서 미일동맹과 쿼드 체제 강화를 통한 중국 견제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4) 남북관계 그림 4. 골드스타인 척도로 본 남북관계  2021년 한해 남북관계를 회고해 볼 때, 2월에 관계가 가장 악화되어 있었고, 5월에 관계가 상승했으며 9월과 10월에는 다시 관계가 악화되었다. 남북관계의 골드스타인 척도는 5월에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남북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 개선에 따른 결과라고 하기는 어렵다. 당시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 관련 의제들을 두고 한미 정상이 합의한 데 따른 영향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9월에서 10월의 골드스타인 척도 하락은 9월 말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 화성-8형의 시험발사로 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골드스타인 척도가 관측되지 않는 달이 다수있는데, 이는 GDELT가 제공하는 언론기사에 남북한 관계에 대한 기사가 잡히지 않아서이다.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과 그 후 2020년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경색되었던 남북관계는 이후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현 정부는 종전선언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고취시키려고 미국과 의견을 조율하고 있으며 북한도 한때 긍정적 반응을 보이기도 하였지만 현재로서는 종전선언 여부는 불투명하다. 2021년 후반부에 남북통신연락선이 복원되기도 하면서 종전선언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지만 북미 간의 교착상태는 지속되고 있다. 2022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통해 고착된 관계를 타개해보려는 한국의 의도가 있었지만, 미국과 북한의 불참으로 인해 대화의 창을 여는 일이 어렵게 되었다. 베이징 올림픽에 미국과 북한이 불참하여 남한, 미국, 북한 간 공식정부 사절단의 만남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현 정부의 임기말까지 북미 간 및 남북 간 대화재개,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논의할 중요한 기회의 창이 사라지게 되었다. 2022년에는 3월에 한국 대선이 있고 5월에는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다. 2022년에도 한반도 평화의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남북관계가 경색되지 않도록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5)한러관계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미중 간 가치경쟁이 심화되었으며, 러시아는 미국식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중국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밀착을 강화하였다. 한 예로, 2021년 7월 러시아는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을 승인하였다. 새 국가안보전략은 서구 자유민주주의 모델이 자유방임, 부도덕, 이기성, 폭력과 소비, 쾌락에 대한 추종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비판과 함께 몇몇 국가들이 러시아 연방의 자주권과 통일성을 위협하고 있다는 우려를 담고 있다. 한편, 2020-2021년은 한러 상호교류의 해로 양국 외교수장 등 고위급 차원의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한국의 신북방정책과 연계하여 러시아와 에너지 경제 협력 분야에서 협력할 여지 또한 충분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와 서방 국가들 사이의 관계가 악화될수록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한국의 입지와 한러관계 또한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미중 가치경쟁의 심화로 동북아 내의 한-미-일과 북-중-러의 대립 구도가 가시화 될 수 있기 때문에 한러관계 또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결론: 격동 속에서도 안정 유지한 2021년 2021년 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국제관계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한미 간에는 협력 관계가 유지되었고 한중 간 협력관계도 갈등으로 악화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한일관계는 2021년 후반부에 악화되었으나 마지막에 회복의 기미를 보이는 측면이 있었으며, 남북관계는 협력과 갈등의 추세를 모두 나타내었다. 마지막으로, 한러관계는 언론기사에는 잘 잡히지 않았으나 신북방정책의 일환으로 상호교류가 있었으며 최소한의 관계가 현상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으며 글로벌 확진자 수로는 최고치를 매일 경신하고 있다. 코로나 상황이 국가 간 교류를 줄이면서 갈등을 줄여주는 측면도 있을 것이므로 현재의 팬데믹 상황이 사회적 차원에서 일상생활을 방해하지 않는 엔데믹(endemic) 상황으로 전환되었을 때, 동북아에서 가장 큰 국제정치 이슈인 미중 전략경쟁의 속도와 방향이 어떻게 변화될지에 대해서 주시할 필요가 있다. 남북으로 분단되고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라는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한반도에서 평화와 안보를 유지하는 일은 세계 어느 나라가 겪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이다. 2022년 5월에 새롭게 들어설 한국 정부 앞에 놓인 과제는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한국의 국익을 보호하는 방안을 모색함과 동시에 11월 중간선거 이후 미국의 외교정책 변화가능성 예측, 수교 30주년을 맞는 한중관계의 점검 및 재도약 모색, 악화되어 있는 한일관계의 회복, 북미 대화 재개, 신북방정책의 연장선상에서 긴밀한 한러관계 유지 등이라고 볼 수 있다. 복잡한 국제정치의 역학 구도 속에서도 국가역량을 키워 경제발전과 민주화 모든 면에서 남부럽지 않은 나라로 성장해 온 한국은 그 저력을 바탕으로 2022년에도 평화를 향해 계속 나아가야 한다. --------------------------------------------------------------------------------------------------------------------------- [1] GDELT(Global Database of Events, Language, and Tone)는 구글 뉴스에서 공개되는 전 세계 언론기사를 바탕으로 한 빅데이터이다. GDELT는 수십 억개의 뉴스기사를 사건데이터(event data)로 변환하여 제공해 줌으로써 국가 간 협력과 갈등의 관계를 양적으로 표현한다. GDELT는 많은 양의 데이터를 신속하게 수집, 저장하여 제공하는데, 1979년부터 현재까지 전세계뉴스기사데이터를 제공하며 최근에는 15분마다 업데이트된다. 특히 2015년 이후부터는 비영어권기사도 번역해서 제공한다. GDELT가 제공하는 사건데이터의 시계열자료를 통해 1979년 이후 국가 간 갈등과 협력의 장기적 추세와 단기적 변화에 대한 분석이 가능하게 되었다. GDELT는 구글에서 제공되는 뉴스를 TABARI(Textual Analysis by Augmented Replacement Instructions) 프로그램을 통해 개별 기사에서 행위자, 대상자, 사건유형, 사건 날짜, 사건 발생 지역, 사건의 어조 수준 등에 대한 정보를 자동으로 탐지하고, 각 항목의 사전방식의 분류체계인 CAMEO(Conflict and Mediation Event Observations)에 맞게 분류한다. GDELT는 머신코딩 방식을 통해 빅데이터를 신속하게 분류, 저장, 분석하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시계열자료로 제공한다. 이 글에서 사용한 골드스타인 척도는 GDELT에서 해당 기간의 데이터를 추출하여 국가 행위자 중심으로 산출되었다. 골드스타인 척도는 국가들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World Event/Interaction Survey (WEIS) Project, 1966-1978)에 기반하여 국가 간 협력과 갈등을 수량화한 지수이다. 골드스타인 척도가 0 이하이면 갈등을, 0 이상이면 협력을 의미하고 값이 클수록 협력의 정도가 높음을 의미한다. 그래프에서 해당 월에 골드스타인 척도가 표시되지 않는 것은 해당 월에 두 국가의 협력과 안보에 대한 기사가 구글뉴스에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GDELT는 일정한 시간이 흐른 후에 데이터가 보충되기도 하지만 그 비율은 크지 않다. (참조: Joshua S. Goldstein, "A Conflict-Cooperation Scale for WEIS Events Data," Journal of Conflict Resolution, 36, 2 (June 1992)) [2]골드스타인 척도는 최저 -10에서 최고 8.3까지 변한다. 그림 1은 2021년 1월에서 12월까지 한미 간의 관계를 월별 평균치로 보여주고 있다. 중간의 파란줄은 월평균이고 위아래의 회색줄은 각각 월별 골드스타인 척도의 상위 90%값과 하위 10%값을 나타낸다. 이하 그림도 같은 방식으로 작성되었다 ---------------------------------------------------------------------------------------------------------------------------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 및 편집: 임해용 연구위원 /빅데이터 산출: 유기은 박사후연구원    저자 정승철 박사는 제주평화연구원의 연구실장으로 플로리다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국제정치경제와 동아시아 국제정치를 연구하고 있다. 임해용 박사는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휴스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분쟁과 평화의 정치경제, 투명성의 정치경제를 연구하고 있다. 유기은 박사는 제주평화연구원 박사후연구원으로 아이오아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국제조약과 비교정치를 연구하고 있다. 이재준 박사는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중국정치와 북중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I am text block. Click edit button to change this 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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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PI PeaceNet] 남북한 유엔동시가입 의미의 재평가
    저자
    주재우 (경희대학교 중국어학과)
    발간호
    2021-28
    [초록] 2021년은 남북한이 유엔 동시 가입 30주년을 맞이한 해였다. 냉전 말미라는 특수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일궈낸 성과였던 것이다. 유엔 가입이라는 대한민국 외교의 역사적 성과를 올리는데 몰두한 나머지 당시 남북한에 주는 전략적 함의가 간과된 것도 사실이었다. 특히 북한에게 유엔이라는 국제무대가 제공되고, 미국에 유엔본부가 소재한 점이 북한 외교 전략은 물론 북한의 대남, 대미 관계 변화에 가져다준 전략적 의미 조망이 부족했다. 가령 한반도 분단의 고착과 북한의 ‘통미봉남’전략이 현실화될 수 있는 여건과 근거를 제공한 셈이 되었다. 서론 1991년 9월 17일은 우리나라 외교사에서 기념비적인 날이다. 이날, 우리와 북한이 함께 유엔에 가입했다. 그러나 가입 여정은 달랐다. 북한보다도 우리가 더 긴 여정 겪었기 때문에 그 의미는 더 고무적이었다. 30년이 지난 오늘날 가입당시에 우리가 기대했던 외교적 효과는 안 보인다. 당시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우리의 유엔 가입 시도가 북한이라는 장벽에 부딪히면서 남북한의 동시가입이라는 선택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북방정책의 목표와 취지에 부합했기에 동시가입은 정당화될 수 있었고 어느 정도 설득력도 있어 보였다. 당시의 기대감은 사라진지 오래다. 현실은 남북관계가 더욱 경색되고 한반도 통일은 더욱 멀어져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을 재평가해봄으로써 향후 우리의 대북전략은 물론 우리의 한반도 외교도 새로이 정립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북한이 유엔에 가입하기까지의 과정 우리나라의 유엔 진출은 건국 이후 즉각 이뤄졌다. 1948년 12월 유엔 결의안195호가 대한민국 정부를 합법적인 정부로 승인하면서 우리나라는 1949년에 유엔 옵서버국가로 대표부를 설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주미대사가 이를 겸직했다. 6.25전쟁 중이었던 1951년에 우리는 유엔에 옵서버국 상주대표부까지 설립할 수 있었다. 이후 우리의 유엔가입신청이 시작되었다. 1949년부터 1956년까지 5차례 가입 신청을 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했다. 이유인즉슨 유엔 상임이사국 5개국의 승인을 모두 받아야하는데 그 중 소련의 반대(veto)에 막혔다. 중국이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중국은 대만이 대표했기 때문이었다. 북한의 유엔 가입 신청도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우선, 유엔이 북한을 한반도의 합법적인 정부로 승인하지 않았다. 유엔은 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이 수립한 기관이었다. 따라서 소련과 몇 개의 위성국가 외에 모든 회원국이 친서방 또는 친미 국가로 주를 이뤘다. 북한이 유엔 가입 신청하기 위해서는 제3국만을 통할 수밖에 없었다. 즉, 이들이 대리인으로 북한 관련 의제를 유엔에 상정해야했다. 또한 북한이 6.25전쟁이후 제기한 한반도 관련 이슈 또한 같은 경로를 통해서만 제기될 수 있었다. 당시 북한의 대표적인 대리인들은 중국, 소련과 제3세계 국가 등이었다. 북한은 유엔 가입 신청을 차치하더라도 더 급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이것은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회(United Nations Commission for the Unification and Rehabilitation of Korea, UNCURK)와 유엔 사령부의 해체였다. 이런 의제가 북한에 시급했던 이유는 이들의 존재만으로도 이는 북한이 추구했던 한반도의 적화통일, 무력통일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회의 해산을 원했던 가장 큰 이유는 유엔이 한국정부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유엔사와 유엔군의 주둔을 정당화한 데 있었다. 주지하듯, 동 위원회는 6.25전쟁 중이었던 1950년 10월에 이와 관련된 결의안을 채택했다.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회의 사무처도 인천상륙작전 성공 직후 설립됐다. 미국은 당시 유엔군의 승리를 전망하면서 3·8선의 부당성을 주장했다. 이를 근거로 미국은 한반도 전체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그리고 전세가 통일로 이어질 가능성을 염두하고 통일 이후 민주한국정부가 대의제를 수립하고 파괴된 경제를 재건하는데 유엔의 도움이 따라야하는 것으로 동 위원회의 설립을 합리화했다. 북한이 이 같은 기구의 해산과 해체를 각각 원했던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그러나 북한이 유엔 회원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유엔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래서 북한에게 차선책은 중국, 소련과 제3세계 국가를 통해 해산 안(案)을 발의하는 것이었다. 이들의 도움으로 1953년부터 1975년까지 안건은 매년 유엔에 상정되었다. 1960년과 1964년을 제외하고 이들은 북한을 도왔다. 유엔에서 이런 노력이 여의치 않자 북한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국에게 직접 도움을 요청하는 전략으로 선회한다. 이의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미중관계 정상화 협의였다. 1971년 7월 헨리 키신저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중국을 비밀 방문한 이후부터 북중 양국의 합작 노력이 개진되었다. 중국이 관계정상화 논의과정에서 두 의제를 협의 대상으로 상정했다. 그 결과 북한은 ‘절반의 승리’를 일궈낼 수 있었다. 1973년 미중 양국은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의 해산에 합의했고 유엔은 이를 받아들였다. 미국이 이에 동의한 데는 유엔사의 존속과 미중관계 정상화를 위해 타협한 결과가 결정적이었다. 미국에게 유엔사의 해체는 미국이 최선을 다해 막아내야하는 최후의 ‘마지노선’과 같은 것이었다. 아니면 주한미군의 주둔을 정당하게, 적법하게 이어나갈 수 있는 근거가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중국과의 협상에서 미국은 이를 철저하게 방어했다. 키신저는 저우를 설득했다. 당시 불안한 한반도의 정세와 주변국의 한반도 전략으로 그의 합의를 도출했다. 키신저는 중국의 역린을 건드렸다. 그는 유엔사 해체가 한미동맹관계에 미칠 영향과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유발할 가능성을 점쳤다. 중국은 6.25 전쟁이후 북한과 같이 유엔사의 해체와 주한미군의 철수를 시종일관 요구했었다. 그러나 키시저는 미중관계 정상화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일본에 대한 대안이 없이는 모든 것이 시기상조임을 저우에게 상기시켰다. 주한미군의 철수가 한반도의 권력공백을 조장할 수 있어 일본의 군사적 야욕에 도화선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논리로 저우를 설득시켰다. 이런 전략적 의미에서 중국은 그 후부터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그리고 유엔사 해체에 관한 논의가 미중 간의 의제에서 사라지는 자연스러운 결과를 볼 수 있었다. 미중 간의 관계정상화 협상이 한 참이던 1973년에 우리나라는 “6.23 평화통일 외교정책 선언(6.23 선언)”을 발표한다. 핵심 내용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북한의 국제기구 참여를 반대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통일 이전까지 잠정적으로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을 반대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로써 남북한이 서로의 유엔 가입을 서로 반대하던 대결 국면을 해결할 수 있는 첫 실마리가 제공되었다. 그럼에도 북한과 사회주의진영의 나라들은 우리의 6.23선언을 모두 반대했다. 이 중 특히 중국의 반대가 심했다. 당시 중국이 견지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 때문이었다. 중국은 ‘두 개의 중국’을 부정한다. 때문에 북한과 관련해서도 ‘두 개의 조선(한국)’이 조장되는 그 어떠한 상황도 거부하는 입장을 견지했다. 냉전이 종결될 때까지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문제는 답보상태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냉전의 종결로 우리에게 유엔 가입의 기회가 다시 주어졌다. 우리나라 정부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북방정책의 결실로 우리나라는 1990년 9월 소련과 수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유엔 가입관련 소련의 지지를 자연스럽게 확보할 수 있었다. 문제는 중국이었다. 이규형 전 주중대사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우리의 가입 신청 계획을 중국에 알리자 중국 측에서 이의 유보를 당부한 것으로 회고했다. 당시 그는 이 메시지로 낙담하지 않았다. 대신 이듬해에 가능하다는 의미로 이를 받아들였다. 우리 외교 당국의 판단이 옳았다. 1991년 중국은 우리의 유엔가입신청을 더 이상 반대하기 어려운 입장을 북측에 전했다. 5월3일 방북한 리펑 총리는 연형묵 북한 총리에게 더 이상 반대 입장을 고수하기 어려운 실정을 직접 전했다. 그러면서 남한이 먼저 가입한 후 북한이 가입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최후통첩’과 같은 언지를 전했다고 태영호 전 북한공사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밝혔다. 그 결과 북한도 마지못해 우리와 유엔 동시 가입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만 했다.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의 의미 유엔은 우리의 안보 및 한반도 문제와 깊은 연관을 가진다. 때문에 우리의 성공적인 가입은 고무적인 사건이었고 우리 외교에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역사가 과거를 돌이켜보고 선택한 결정의 의미를 되새기며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유의미한 지침서라는 통념에서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을 평가하는 것도 유의미한 작업일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두 가지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하나는 한반도 분단의 고착화 문제와 관련 이 있다. 다른 하나는 주변국의 대북 영향력 감소와 연관된다. 우선 한반도 분단의 고착화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 회원국으로 인정받음으로써 국제사회에 이제 ‘두 개의 한국(조선)’이 공인된 것이다. 남북한 모두가 주권국가로 인정받은 셈이다. 따라서 통일의 해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특히 평화적인 통일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주권이 존중되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할 것이다. 이제 무력통일의 방식은 최소한 비(非)합법적이라는 인식을 남북한이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문제인 주변국의 대북 영향력 감소 문제는 북한이 국제사회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확보한 것과 연관이 깊다. 특히 북한의 적대진영의 국가와의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장이 열렸기 때문이다. 우선 북한에게 유엔 진출은 북한 외교관이 미국에 상주할 수 있고 미국에 사무실을 열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한다. 북한이 가장 대화하고 싶은 나라가 미국인 점을 감안하면 북한의 유엔진출은 북한에게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은 이미 1973년 5월 세계보건기구(WHO)에 가입하면서 7월에 뉴욕에 유엔대표부를 설립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반도문제 논의의 장에 옵서버국으로 초대되었다. 그러면서 북한은 6.25전쟁 이후 원하던 미국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 해 미국과 첫 관방회의를 할 수 있었던 외교적 쾌거도 올렸다. 그 이전까지 북한은 수없이 미국과의 대화를 시도했지만 접촉경로를 정확히 알지 못해 번번이 고배를 들어야했었다. 물론 북미 첫 관방회의는 뉴욕에 주재할 북한 외교관과 공관개설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것으로 한반도문제는 언급 조차되지 않았다. 북한이 잘못된 경로로 미국과의 대화를 모색하는 동시에 제3국을 통해 대화의사를 수없이 미국 측에 전하려했다. 때로는 동구권, 때로는 중동, 또 때로는 서남아시아의 지도자를 통해 대화 의지를 알렸다. 그러나 북한은 그 누구보다도 중국에 의존을 많이 했었다. 특히 미중관계 정상화 논의로 양국 고위급인사의 만남이 빈번해진 것을 이용한 것이다. 역으로 중국은 북한의 이런 갈망을 대북 영향력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북한이 유엔에 가입한 후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미국과의 대화를 위해 더 이상 다른 나라의 중재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고 이를 스스로 주도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고 역량도 갖추게 되었다. 모든 일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득이 있으면 실이 있고, 긍정적인 이면에는 부정적인 것도 존재한다.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은 무력통일방식을 최소한 불법화시켰기에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점에서 가치가 있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분단의 고착화와 북한의 외교적 입지를 넓혔다는 관점에서는 우리와 주변국의 대북 영향력 상실의 의미를 부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북한과의 대화에서 북한의 주권을 존중하는 태도로 임할 필요가 있다. 반면 북한도 역시 유엔회원국으로 국제제도, 규범과 법칙을 존중하고 성실하게 준수하는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겠다. 북한의 태도 전환만이 남북한 유엔가입으로 일어난 한반도의 실익부분을 보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 및 편집: 정승철 연구위원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미국 웨슬리언대 정치학 학사, 중국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석박사. 전(前)미국 브루킹스연구원 방문학자 역임. 현(現)한중사회과학회 회장. 현(現)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한국인을 위한 미중관계사」, 「팩트로 읽는 미중의 한반도 전략」, 「북중관계: 그 숙명의 역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