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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달성의 장애물과 전제조건
    저자
    이성우 (제주평화연구원 분쟁해결연구부장)
    발간호
    2018-22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4월 17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가진 자리에서 남북한을 지칭하여 "그들은 종전 문제를 논의하고 있으며, 나는 이 논의를 축복한다"고 언급한 것은 정전체제를 종식할 종전선언 문제가 남북정상회담에서 주요 의제로 논의될 가능성을 어느 정도 미리 공개함으로써 정상회담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해석된다. 한반도의 관계진전으로,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거쳐 남북미 정상회담 등에서 종전을 선언하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체제로 안착되는 방안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검토되고 있다. 한반도에서 평화의 공식화와 제도화를 위한 대안으로 언급되어 오던 한반도 평화체제는 전쟁의 법적인 종결과 전쟁의 재발 방지, 그리고 평화유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을 위한 군사적 긴장상태 해소, 상호적대를 종결하고 궁극적으로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정착을 남북한 당사자와 국제사회가 확인하는 두 가지의 단계로 규정할 수 있다. 1단계는 국제법적으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며 2단계는 군사적 적대관계의 실질적 해소와 미·북관계정상화를 포함하는 평화의 현실화를 의미한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추진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주한미군이었고 남한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무기였다. 현실적으로 한국과 미국은 가장 위협적으로 생각하는 북한 핵의 폐기를 평화협정의 전제조건으로, 북한은 동일한 논리적 연장선에서 주한미군의 철수를 평화협정의 전제조건으로 각각 주장하고 있다. 냉전시기 공산권의 붕괴로 고립무원의 상태에 몰렸던 북한은 주한미군이 가장 중요한 위협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의 철수가 한반도평화체제를 위한 출발점이며 평화협정의 당사자도 미국으로 특정하였다. 이에 반해서 한국과 미국의 입장에서는 분단의 휴전상태이지만 남북한이 무력충돌 없이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자체가 평화라고 인식하고 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한반도의 비핵화를 최우선 과제로 주장해왔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완성하는 방법론에서도 큰 인식차이를 보여주었다. 한국은 비핵화를 우선 완성하고 마지막 단계에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한 반면에 북한은 체제보장이 우선되고 나서, 모든 상황이 체제의 생존에 안전하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마지막 단계에 핵 폐기를 현실화하겠다는 것이다. 남·북 및 미·북 정상회담을 앞둔 현 시점에 남북한 간의 인식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긍정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첫째,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에 대한 언급이 가지는 긍정적 의미와 함께 종전선언의 당사자는 남북한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휴전협정의 당사자 문제로 대한민국을 배제하려고 했던 북한의 통미봉남정책의 중단을 의미하며, 이는 남북관계의 진전에 중요한 출발이다. 현실적으로 남북한에 추가하여 미국 또는 중국이 포함되는 3자 또는 4자 간 합의의 필요성을 인식하지만 대한민국이 직접 당사자라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용어에 있어서도 “종전선언”이 최종적으로 선택될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한반도에 평화를 제도화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둘째,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을 회담의 걸림돌로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언급이 있었다는 점이다. 북한은 과거 주한미군 철수를 미국이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비핵화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협상의 의지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과거와 달라진 북한의 주한미군에 대한 인식전환과 태도변화는 평화적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보여주는 표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 여전히 남아있는 의견 차이는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완전 포기와 국교정상화 등을 일괄 합의하는 방안을 원하고 있으나, 북한은 대가를 얻으면서 이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길 바라고 있다. 이는 남북한 또는 미북 사이에 신뢰의 문제에 기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구축은 불필요한 전술적 고려가 본질을 대치하는 오류를 반복하여 왔다. 현재 전개되는 정상회담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한미군 철수나 남한의 배제와 같은 전술적 차원의 장애물이 제거되었기 때문에, 미국이 북한의 체제안전을 보장하고 북한은 비핵화를 담보하겠다는 의지가 교환될 수 있는 긍정적 조건이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분쟁해결연구부장. 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2004년 미국 University of North Texas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음. 단국대학교 분쟁해결연구센터에서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한국의 공공분쟁 사례연구”를 주제로 대한민국 학술진흥재단 중점연구소 연구과제를 수행하였음. 학술활동으로는 미국국제정치학회가 주관하는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의 Referee로 활동한 바 있음. 저서로는 『2011 한국인의 평화관: 통일정책과 여론 』 및 『2010 한국인의 평화관: 외교정책과 여론』 등이 있음.
  • 협상분석 틀을 통해 본 한반도 대화국면
    저자
    이동휘 (한국외교협회 부회장)
    발간호
    2018-21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ㆍ북 간 그리고 북ㆍ미 간 정상회담 개최가 합의됨에 따라, 그간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고조되어 왔던 한반도 위기국면은 일단 대화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 열린 북ㆍ중 정상회담과 향후 개최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북ㆍ러 및 북ㆍ일 정상회담들도 성사될 경우, 북핵문제의 해결 모색 과정이 중ㆍ장기적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전략지형의 변화도 가져올 수 있음을 예견케 하고 있다. 최근의 상황 전개에 대해 수많은 분석과 예측이 나오고 있는데 대부분이 정치적 해석에 치중되어 있다. 그러나 향후 일련의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점차 대화와 협상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게 될 것임을 고려해 본다면 최근의 상황전개를 협상론을 통해 조망해 볼 필요성도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견지에서 이 글은 다양한 협상분석 틀 중에서, (1) 협상국면으로의 전환 배경, (2) 한국의 협상 당사자로서의 입장 및 (3) 한국의 역할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방안 모색 등에 적용할 수 있는 세 가지의 관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대화국면이 전개 되고 일련의 정상회담이 계획되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으로써 ‘협상 밖 선택지(alternative)’의 균형도달 문제를 살펴볼 수 있다. 하버드 협상프로그램(Program on Negotiation)에서는 협상을 하지 않고 추구할 수 있는 결과를 ‘협상 밖 선택지(alternative: 代案)’, 협상에 임하여 취할 수 있는 카드를 ‘협상 안 선택지(option: 對案)’로 구분하고, 협상에서 당사자에게 유리한 결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협상 밖 선택지’는 강화하는 한편, 상대방의 선택지는 약화시킬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 때 본인에게 있어 최고의 ‘협상 밖 선택지’를 BATNA(Best Alternative Toward Negotiated Agreement)라고 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주장에서 합리적으로 도출할 수 있는 추론은 양측이 협상을 앞두고 유리한 결과를 쟁취하기 위하여 각자의 BATNA를 상대방의 그것보다 강한 수준으로 올리는 경쟁적 노력을 하게 되나, 이러한 노력이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는 수준, 즉 균형상태에 도달하게 되면 자연히 협상에 임하고 ‘협상 안의 선택지(option)’를 둘러싼 흥정, 즉 본격적인 협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북핵 문제에 대입해 보면, 북한은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탄의 개발완성을 BATNA로써 주장해 왔으나, 국제제재의 강화와 점증되는 미국의 군사적 조치의 현실화 가능성 증대로 한계를 인식하게 된 한편, 미국도 코피작전을 포함한 선제적 군사공격을 BATNA로 활용하였으나 실질적으로 이를 실천하기에는 확전의 위험, 대중국 관계 악화 우려 등의 부담이 커지는 어려움을 인지하게 되어 ‘협상 밖 선택지’를 둘러싼 경쟁은 일단락되고 실질협상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남ㆍ북 정상회담의 개최를 이끌어내고 이를 북ㆍ미 정상회담으로 연결시킴으로써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한국정부의 입지를 평가해 보기 위해서는 양면게임(Two Level Game)을 원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양면게임에서 협상 당사자는 통상적 의미의 상대방과 협상(레벨1 협상)을 하는 한편, 이 협상에 이해관계를 가지는 내부관계자와도 동시에 협상(레벨2 협상)을 해야 하는데, 양 상대방의 특성과 주장의 강도 등에 따라 협상 당사자의 협상수행능력(win-set)이 확장될 수도 있고, 반대로 위축될 수도 있다는 논지이다. 비록 내외의 구분이라는 점에서 적확한 응용은 아니겠으나, 작금의 미ㆍ북 사이의 ‘중재자’로서의 한국의 입장에 이 논지를 대입시켜 보면,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해체)’ 원칙의 관철로 북핵 문제를 ‘일시’에 해결하고자 하는 미국과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진행을 의도하는 북한이라는 양 이해 당사자 사이에서, 건설적 역할을 해야 하는 한국의 win-set은 확장될 수도 있고 반대로 위축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찰은 한국이 미국의 비핵화 의지를 기본토대로 북한을 설득하되, 북ㆍ중의 요구 사항도 동시에 미국에 전달하고 이를 협상안으로 담아낼 수 있는 해법을 가지고 있다면 한국의 win-set이 양방향으로 확충될 수 있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입장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는 창의적 선택지(creative option)의 창안 문제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창의적 선택지란 양측의 ‘협상 밖 선택지’가 균형 상태에 도달함으로써 실질협상에 돌입하였을 때 협상에 임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의 이익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협상 안 선택지(option)’를 고안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앞서 언급한 유사 양면게임의 상황에 처한 한국으로서 win-set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할 것이다. 현재 알려지고 있는 바로는 북한과 중국은 암묵리에 중국이 주장하여 온 소위 ‘쌍궤병행’인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단계적이고 동시적’으로 진행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반면, 미국은 CVID에 입각하여 ‘일시적’으로 비핵화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기에서 창조적 선택지의 하나로, 북ㆍ중의 소위 ‘쌍궤병행’의 대강을 원칙목표로 하여 협상구조를 형성하되, 미국의 ‘완전한 핵폐기’ 요구를 실천계획으로 하는 협상과정을 고안하여 이들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실천계획으로는 미국이 그간 각국에 적용하여 왔던 ‘협력적위협감축조치(Cooperative Threat Reduction)’를 활용할 수 있는데, CTR은 완전한 폐기를 대전제로 하되, 각국에 신축적으로 적용되어 왔으므로 현재의 한반도 상황에 맞추어 최단시한을 설정하고 단계를 최소화하는 한편, 보상조치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등의 필요한 요소들을 포괄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에 최적화 된 한반도형 협력적위협감축조치(KCTR)를 창안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원칙으로서의 비핵화’와 ‘과정으로서의 CTR’이 하나의 조합으로 이루어지게 됨으로써 시간 지연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감소시키고 비핵화 실천의 가능성을 높여주게 될 것으로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틀어 ‘한반도모델(Korean Model)’이라 명명해도 무방할 것이다. 협상에서의 최종승자는 힘의 우열과 협상과정의 주도력 등을 넘어서서, 결국 당사자에게 유리하면서도 상대방이 수용할 수 있는 ‘협상 안 선택지(option)’를 창의적으로 만들어 제공할 수 있는 협상자라는 사실을 상기해 볼 때, 한반도 대화국면이 전개되는 지금은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 최상의 지혜를 모아 나가야 할 때임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現 한국외교협회 부회장, 국립외교원 명예교수. 국립외교원 교수/연구실장, 한국협상학회 회장을 역임.
  • 미러 외교관 추방의 정책적 함의와 국제관계 전망
    저자
    고상두 (연세대학교 교수)
    발간호
    2018-20
      러시아와 서방의 외교 전쟁 영국에 기밀을 넘긴 혐의로 체포되어 복역을 마친 러시아 출신 첩보원이 영국 영토에서 독살시도를 당했다. 이러한 암살의혹 사건에 대응하여 영국정부는 러시아 외교관 23명을 추방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독살사건에 사용된 신경작용제 ‘노비촉’이 러시아 군사당국이 개발하는 화학무기 물질이라는 점에서 러시아의 소행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영국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러시아 외교관 60명을 추방하였다. 자국이 아닌 동맹국을 위해 미국이 타국의 외교관을 대규모로 추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조치로 해석된다. 영국과 미국의 주도적 행동에 약 30개 서방국가가 동참하였고, 도합 150여 명의 러시아 외교관이 추방되었다. 주로 나토 회원국인 이들 국가들은 독살사건을 동맹국에 대한 노골적인 화학무기 공격으로 간주하고 단합하여 대응하였다. 이러한 공동대응은 나토조약에 명시된 자동개입 조항의 정신을 충실히 이행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정부는 자국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서방 외교관에 대한 동수추방의 조치를 취하였다. 그동안 러시아와 서방국가 간에 서로 외교관을 추방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이처럼 대규모적으로 벌어진 적은 없다. 따라서 냉전 이후 가장 심각한 외교 전쟁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신냉전이 도래했는가? 국내외 언론에서는 미러 간에 신냉전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재 상황이 신냉전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신냉전의 조건은 러시아의 강대화, 러시아 진영의 결속, 대안적 체제모델의 제시 등 3가지인데, 러시아의 현실은 이러한 조건과 거리가 있다. 첫째, 러시아 경제가 약화되고 있다. 서방제재와 유가하락의 이중영향으로 3년간 마이너스 성장을 하였고, 작년에 겨우 1.7%로 회복하였다. 그리고 과도한 에너지 의존 경제에서 탈피하겠다며 내세운 경제 현대화 정책은 실패하였다. 2000년 푸틴 집권 당시 러시아 경제의 자원의존도는 80%였고 현재는 83%이다. 둘째, 친러 성향의 구소련 공화국을 결집시키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는 유라시아경제연합(EEU)을 출범시킴으로써 경제적으로 진영을 구축하는 데에는 성공하였지만, 정치안보적 진영화에는 실패하였다. 원래 러시아는 유라시아연합을 출범시키려고 했지만, 카자흐스탄의 반대로 유라시아경제연합의 출범에 만족해야 했다. 또한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벨라루스는 크림합병 사태 이후 자국이 유사한 전철을 밟게 될 것을 우려하고 경계하는 실정이다. 셋째, 러시아의 체제가 국제사회에서 주요 발전모델이 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는 발전모델의 경쟁에서 중국에게 뒤지고 있으며, 서구의 패권을 비판하면서 탈서구적 비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필요성을 함께 주창하였던 브릭스마저 크게 약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신냉전이 본격적으로 발발하였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서방과의 대결 분위기는 푸틴에게 정치적인 이득을 주고 있다. 푸틴의 국내정치적 기반은 서방과의 갈등이 심해질수록 공고해지고 있다. 금년 3월 18일에 치러진 러시아 대선 직전에 일어난 외교관 맞추방 사건은 러시아 국민의 애국주의 정서를 자극하였고, 푸틴은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압박을 국내정치에 활용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푸틴은 76.7%라는 역대 최다득표로 압승하면서, 자신의 최고 기록의 갱신하였고, 향후 2024년까지 장기 집권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푸틴은 선거기간 동안 미국의 MD를 뚫는 첨단무기의 개발을 공언하는 등 러시아의 군사력을 과시하고, 옛 소련에 대한 강한 향수로 국민을 결집함으로써, 러시아의 수호자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하지만, 그의 강한 러시아 건설 정책은 서방의 지속적인 제재로 인하여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따라서 대선에 승리한 푸틴으로서는 이제 서방과의 화해와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 개선 전망 일련의 외교관 맞추방 사건에도 불구하고 서방국가들은 러시아와의 대화와 교류의 여지를 열어두고 있다. 금년 6월에 열리는 월드컵에 영국이 참가할 예정이고, 5월에는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하여 푸틴 대통령이 연례적으로 참석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경제포럼에 함께 동참할 예정이다. 하지만 서방의 가장 큰 관심사는 미러 관계의 개선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러 관계의 개선을 시도할 가능성은 있지만, 성공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구소련 붕괴 이후 미국과 러시아는 관계 개선에 번번이 실패하였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관계 개선을 시도하였지만, 임기 후반에는 관계가 악화되는 경험을 되풀이하였다. 클린턴 대통령은 러시아의 체제개혁을 지원하고, 옐친 대통령은 친 서방 외교로 화답하였지만 나토의 코소보 공습으로 양국관계는 악화되었다. 부시 대통령은 당선 직후 가장 먼저 러시아를 방문하였고, 푸틴 대통령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적극 지원하였지만 미국이 구소련 지역의 색깔혁명을 지원하면서 다시 악화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직후 러시아와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의미에서 리셋정책을 추진하였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로 최악의 관계가 되었다. 이처럼 그동안 3차례에 걸쳐 관계 개선에 실패하였다는 것은 양국 간에 근본적인 장애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트럼프의 대러 관계 개선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의회의 반러 정서이다. 미 의회는 러시아 정부의 언론통제, 인권탄압, 부정부패 등 권위주의적 통치 거버넌스를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미 상원에서는 러시아의 미 대선개입을 징벌하기 위해 야당인 민주당과 여당인 공화당이 함께 대러 제재를 확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트럼프 행정부는 역대 행정부와 달리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시도조차하기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하겠다.   한반도에 대한 시사점 비록 미국과 러시아는 가치와 이익의 차이로 인하여 갈등을 빚고 있지만, 주요 국제문제의 타결을 위해 협력할 수밖에 없는 이해관계자이다. 러시아는 미국에게 공동협력의 이득이 큰 나라이며, 테러와의 전쟁, 전략핵 감축, 핵확산금지, 사이버 해킹방지 등에서 중요한 협력국이다. 특히 우리에게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미러 관계의 개선이 필요하고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푸틴 대통령의 북핵에 대한 인식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반도 위기 이슈가 서방의 관심을 러시아로부터 동방으로 돌리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둘째, 러시아는 평화적인 중재자로 나서기를 원한다. 셋째, 북한의 비핵화 방안으로 대화와 제재를 함께 강조하되 대화에 방점을 둔다. 넷째, 과도한 비핵화 시도로 북한정권이 붕괴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러시아가 북한, 시리아, 이란 등과 같은 독재국가를 지원하는 이유는 자국의 안보유지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러시아 연방보안국장 출신인 파트루세프 국가안보실장은 “서방이 권위주의 국가를 붕괴시키는 노력의 최종 목표는 러시아이다. 서방은 러시아의 자연자원을 탐내고 체제의 약화를 원한다”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러시아의 한반도 인식을 토대로 우리는 첫째, 중재자를 자임하는 러시아의 역할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둘째, 북한은 비핵화의 전제조건으로 체제보장을 원하는데, 미국 단독의 약속으로는 미흡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체제보장을 위한 한반도 주변 4강의 국제협약 체결을 선도하는 역할을 러시아에게 맡길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가 북핵문제에서 성공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보여준다면,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서도 진일보하게 될 것이다. 금년은 한국과 러시아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된 지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양국정부가 북한의 비핵화라는 전략적 목표를 위해 동반자적 협력을 성공적으로 이룩한다면 올해를 계기로 한러 관계는 질적으로 재도약하게 될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서 운전석에 앉아 있는 한국에게는 적극적인 조력국이 필요한 실정이고, 서방의 압박을 받고 있는 러시아가 우리와 협력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現 연세대학교 지역학협동과정 교수, 연세대 미래사회통합연구센터 소장,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한국슬라브학회장, 세계정치학회 연구분과위원장, 프랑스 르아부르 대학교 초빙교수, 외교부 한독통일외교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하였음.
  • 동북아에서 지역 원자력 협력의 필요성과 한국의 역할
    저자
    조은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연구위원)
    발간호
    2018-19
      1. 동아시아 원자력 협력의 필요성과 현황 2. 왜 동아시아에서는 원자력에서 지역 협력이 활성화되지 못했는가? 3. 동아시아에서 지역 협력이 시급한 원자력 부문은 무엇인가? 4. 결론: 탈원전 시대 원자력 협력의 중요성과 한국의 역할   1. 동아시아 원자력 협력의 필요성과 현황 동아시아는 어느 지역보다도 핵 감수성이 높은 지역이다.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원폭 피해 지역(region)일 뿐만 아니라,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여전히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방사능 난민이 2017년 1월 기준, 8만여 명에 이를 만큼 핵의 두려움과 방사능 오염의 폐해가 일상화된 지역이다 (김선엽 2017).2) 다른 한편으로 동아시아는 탈원전의 길을 걷고 있는 세계 원자력 동향에 역행해 제2의 원자력 부흥기를 맞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중국, 베트남, 일본 등 이 지역에서만 향후 100기 가량의 새로운 원자력 발전소가 지어질 예정에 있을 정도로 원자력 산업이 부흥하고 있다 (윤병세 2015). 특히 동북아시아에는 몽골을 제외한 모든 국가들이 원전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원자력에 대한 국가적 관심과 지원은 지대하다 (중국, 러시아, 일본, 한국, 북한, 대만). 그러나 정작 안전한 원자력 사용을 위한 논의가 동아시아 지역 차원에서 개진되고 있지 못하다 (조은정 2005, 2014; 김종선, 서지영, 호사 2012). 원자력 안전을 위한 지역 협력의 플랫폼이 전무한 것은 아니다. 2008년에 시작된 원자력안전고위규제자회의(TRM, Top Regulators Meeting)가 2011년부터는 차관급으로 격상되고 2013년부터는 역내 참여국들을 확대하여 TRM+ 회의로 발전되었다 (윤병세 20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안전강화 정책은 여전히 개별 국가 차원 이상으로 논의가 발전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었다. 그 결과, 원자력의 수혜는 국경 안에서 폐쇄적으로 이루어지는 반면, 국경을 넘는 폐해는 아무도 온전히 책임지지 않는 형국이 되었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에서 지역 원자력 협력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부문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2. 왜 동아시아에서는 원자력에서 지역 협력이 활성화되지 못했는가? (1) 일국 중심의 핵/원자력 민족주의 서유럽에서는 냉전 초기 미국 중심의 핵·원자력 거버넌스 질서가 형성되자 지역 차원에서 원자력 협력기구가 발족되었다 (예: EURATOM (European Atomic Energy Community), 1958~ ; ENEA (European Nuclear Energy Agency), 1958~ ). 이는 미국 중심의 핵·원자력 질서에 대항하기 보다는 일정 정도 서유럽의 지역적 자율성을 담보하면서 미국의 글로벌 핵 거버넌스를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Cho 2012). 민감한 부문에서 이러한 초국적 협력이 약 70년 전에 이미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서유럽에서는 근대국민국가 모델에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국가 주권이라는 것은 배타적 소유권의 문제가 아니라 공유될 수도 있다는 유연한 주권개념이 서유럽에서 민·군수 양용의 원자력과 핵물질에 대해서 공동생산, 공동소비, 공동관리가 가능하도록 기여하였다 (Cho 2012). 이에 반해, 동북아 어느 국가도 근대국민국가 모델에 부합하는 완전 주권국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재성 2017), 베스트팔렌 모델에 입각해 상상하는 “완전한” 주권국가가 되기 위해 헌법과 역사, 국경선 변경과 같은 급진적인 현상변경을 꿈꾸거나 체제 우위를 강조하기 위해 과학기술 경쟁처럼 불필요한 국가 간 신경전으로 말미암아 지역 협력의 동력이 소진되고 있다 (조은정 2017). 즉, 동북아에서 번성하고 있는 과학기술 민족주의는 불완전 주권국가로서 갖는 존재불안(ontological insecurity)의 보상 기제로서 작동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이처럼 과학기술의 정치화로 핵은 전장(戰場)에서 보다 언설(言說)에서 실질적으로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계속해서 핵 주권주의에 집착하여 ‘경쟁’을 계속한다면 갈등에 봉착할 것이지만, ‘협력’을 계속하면 해결 방법 모색이 가능해질 것이다. (2) 원자력 협력에 대한 회의적 시각 흔한 질문 중 하나는 ‘탈냉전, 탈핵에도 불구하고 왜 원자력에 대한 연구 및 투자, 국제 협력이 계속 이루어져야 하는가?’하는 것이다. 2000년대 후반 미국에서 재등장한 회의주의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선의의) 원자력 협력이 (악의적) 핵기술 개발의 기초를 제공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예: Fuhrmann 2008, 2009a, 2009b; Kroenig 2009a, 2009b, 2010, 2013). 워싱턴의 이 같은 우려는 탈냉전과 9.11을 거치면서 미국의 핵(비)확산에 대한 통제력 방패는 무디어진 반면, 소위 ‘불량국가’라고 하는 미국에 비우호적 국가들의 핵보유를 위한 칼날은 더욱 날카로워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우선, 냉전시대(양극체제)에는 소련과 나누어 각 진영별 핵 통제력을 높일 수 있었지만, 탈냉전시대(단극체제)에는 미국이 단독으로 핵확산 저지를 위한 선봉에 서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조은정 2016). 또한 탈냉전 이후 ‘적의 적은 나의 우방’이라는 전략적 계산 하에 미국이 협력국의 국내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원자력협력관계를 맺은 결과, 미국의 양자 원자력 협력체제의 불안정성이 증가하였다. 냉전시대 공산권과 체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자유진영 국가들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수호 목적으로 원자력 기술 수출을 지원했다면, 탈냉전 시대, 핵 통제력이 약화되고 전략적 카드로서 원자력 협력의 효용성 및 명분이 줄어들었으므로 국제 원자력 협력은 지양되어야 한다는 것이 원자력 협력 회의주의자들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과연 회의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원자력 협력이 핵확산의 지름길이 되었는가? 첫째, 회의주의자들의 주장과 달리 핵확산이 이전시대 보다 오늘날이 더 우려할만한 수준이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 9개의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들 중 7개국들이 냉전시기에 핵실험에 성공한 반면 (미국, 소련/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이스라엘, 인도), 탈 냉전기에는 2개국(파키스탄, 북한)만이 성공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핵무기 개발 성공에 이른 경로를 살펴보면, 모두 처음부터 원자력 개발과는 별도의 트랙으로 핵무기 개발을 정부에서 추진한 공통점이 있다. 둘째, 원자력 협력회의주의자들은 연구에서 핵 비확산에서 규범의 역할에 대해 일관된 결론 도출에 실패하였다 (조은정 2016). 만일 원자력 협력 회의론의 주장처럼 오늘날 핵 확산이 원자력 협력 때문이라면, 핵연료 공급과 원자력 산업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어느 국가보다도 수많은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 온 미국은 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과 원자력 협력을 지속하고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조은정 2016). 오히려 미국과 양자 원자력 협정을 맺은 동맹국들이 핵 비확산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원자력 협력이 핵 비확산에 기여할 것이라는 회의주의자들의 주장은 현재로서는 신빙성이 낮아 보인다. (3) 원자력 지역 협력 논의의 편협성 국제정치학의 이론적 편협성도 동북아에서 원자력 지역 협력의 걸림돌로 거론될 수 있다. 동북아 지역질서 조직 원리의 하나로 힘의 균형 원리가 자주 회자되지만, 정작 핵과 원자력 질서의 구체적 성격에 대한 논의는 빈약하다. 가령, 핵·원자력 질서가 단일한 결로 조직되어 있다고 흔히 가정되지만 다양한 층위로 구성되어질 수 있으며, 핵·원자력 질서를 이루는 요소들이 서로 배타적 경쟁관계에 있다고 이해되지만 일견 모순적인 질서들이 포괄적이고 복합적으로 구성될 수도 있다는 점은 주류 국제정치학에서 흔히 간과되는 지점들이다. 즉, 동아시아에서 핵질서는 복합적이다. “무정부적(anarchical)”이면서, “위계적(hierarchical)”이고, “패권적(forced)”이면서, “규범적(normative, voluntary)”이며, “경쟁적(competitive)이면서 협력적인(cooperative)” 관계가 “수직적(vertical)”인 동시에 “수평적(horizontal)”으로 나타날 수 있다 (Cho 2017). 따라서 단순히 냉전적 관습을 답습한다면, 여전히 동아시아는 한·미, 미·일, 한·일 양자 관계에 매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은 아시아가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이다. 이점에서 국제정치학 주류 이론에 내재된 지역협력의 소극적 속성을 인식하고 동아시아 지역 협력 논의를 활발히 개진할 수 있는 이론적 프레임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3. 동아시아에서 지역 협력이 시급한 원자력 부문은 무엇인가? (1) 안전한 원전 운전을 위한 효율적 자원 운용 사고 시 지역 공동의 대응 프로토콜 개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평소의 안전한 원전 운영일 것이다. 원전의 안전하고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원전 운전 경험의 공유가 필요하다. 한국과 일본처럼 원전 선진국들은 신흥 원전국들에 검증된 원전 운전 노하우를 전수하고, 신흥 원전국들은 안전한 원전 운영을 위해 원전 연료의 확보와 제작, 운반, 장진, 제거, 냉각, 처분, 그리고 원전폐로 관리에 이르는 전 과정을 투명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 하드웨어 관리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측면에서의 협력도 중요하다. 시뮬레이터 도입을 통해 운전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가장 효율적인 운전원의 복지 및 배치 방식(가령, 5조 3교대: 교육 1, 운전 3, 휴식 1)을 안착시키는 것과 같은 인적 개발에 대한 투자 역시 지역에서 공동으로 이루어져야 할 부분이다. (2) 원전사고에 대비한 손해배상제도 수립 원전사고의 대응방법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TRM+와 같은 한중일 삼국 원자력안전규제기관 간 협력 체제를 통해 논의되고 있으나 원전사고 후 처리 비용에 대한 논의는 공론화되고 있지 못하다. 국제적으로는 중대 사고에 대비한 배상협약과 기금이 운용되고 있다. 유럽 OECD 회원국들의 경우는 파리협약(1960)과 손해배상기금 조성을 위한 브뤼셀보충기금협약(1963)을 통해 일찍이 피해 보상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 두고 있다. 반면, 전 세계적으로는 IAEA의 주도로 피해보상 협력조약(비엔나 협약 1963)이 체결되었으나 1997년에서야 비로소 손해배상기금조성을 위한 국제보충기금협약(CSC: Convention on Supplementary Compensation for Nuclear Damage)이 마련되었다. 이 같은 기금 조성은 사업자의 책임한도를 초과하는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미 국제적으로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이 다자 협약체에 의해 다각적으로 논의되고 제도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에서는 일본만 CSC에 가입되어 있고, 중국과 한국은 CSC에 미가입 상태이다 (2016년 기준). 중국 동부 해안가에 예정된 신규원전의 규모로 봤을 때나 주변국과의 지리적 인접성과 인구 밀도 등을 고려했을 때, 비엔나 협약에서 보장하는 총 배상 조치액의 규모를 훨씬 상회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CSC에 가입하지 않는 한 나머지 손실에 대해서는 한국, 일본 등의 피해당사자가 중국의 원전사업자에 별도의 소송을 통하여 피해보상을 요구하여야 하며, 법적으로 중국 정부에 비엔나협약 보장 초과분의 보상책임을 묻기 어렵다 (정동욱 2016, 55). 만일 한중일 삼국이 모두 CSC에 가입한다면, 원전사고 시 CSC 기금의 50%까지 피해 인접국에 우선적으로 피해 배상금이 지불될 수 있으므로 동북아 삼국은 약 297억 원을 분담하는 대신 약 1100억 원의 배상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정동욱 2016, 55). 그러나 한국만 가입하고 중국은 여전히 미가입시, 260억 원을 기금조성에 지불하지만, 사고 시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중국과는 별도의 소송을 통하여 피해보상을 요구해야하므로 한국의 단독 가입은 실효성이 의문시된다 (정동욱 2016, 55-56). 따라서 현재로서는 중국의 대규모 신규 원전이 가동되기 전에 조속히 한국이 중국과 CSC 동반가입을 성사시키는 방안이 최선책으로 판단된다(박기갑 2010). 향후 TRM+회의에서는 한국 정부가 일본과의 공조 아래 한국과 중국의 CSC 공동 협약 체결안에 대해 더욱 적극적으로 논의를 개진할 필요가 있다. (3) 포괄적인 지역협력협의체의 제도적 보완: 에너지 소비와 수요의 공동 조절 원전 건설과 원자력 사용으로 발생하는 환경 비용을 최소화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초국가적 논의가 필요하다.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와 수요 예상의 실패로 인한 초과 생산 방지가 우선인데, 이를 위해서는 역내 에너지 수요와 공급의 균형 조절을 위한 지역적 차원에서의 협의가 시급하다. 현재 이러한 협의가 이루어질만한 플랫폼으로는 아시아지역포럼(ARF: Asian Regional Forum)과 국제에너지기구(IEA: International Energy Agency)가 있으나 에너지 전문기구인 IEA에는 중국이 미가입 상태이고, 지역체제인 ARF는 협상력이나 구속력 모두 중국을 포섭할만한 힘이 있는지 또한 강대국들이 과연 에너지 수급조절에 있어 자발적으로 리더쉽을 발휘할 것인지도 의문이다.3) 현존하는 협의체들의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첫째, 한국이 역외세력인 미국과의 양자관계에 지나치게 의존 혹은 편승하려고 하기 보다는 역내 다수 국가들과 보다 촘촘한 협력의 그물망 짜기를 다각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둘째, ARF가 외무 장관들 간의 회의체라고는 하지만, 유라톰의 예에서도 봤듯이 실제 그 협력 프로젝트를 구체화한 것은 장·차관급 정부 실무자들과 민간 전문가들이었다. 동시에 6개국의 상이한 이해관계에도 협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유럽통합의 이상을 공유한 국가 정상들의 정치적 결단 덕분이었다. 이 점에서 정부 실무자급회의(Track I)와 민간 전문가들 회의(Track 1.5)뿐만 아니라 ASEAN+3 과 같은 국가정상들 간의 회의를 정례화하려는 노력 역시 대단히 중요하다. 원자력안전을 위한 정상회의 조직에 핵안보정상회의(NSS: Nuclear Security Summit)가 유용한 참고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4) 이 경우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핵안보정상회의를 개최한 한국의 경험이 지역협력체 조직에 유용한 자원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4. 결론: 탈원전 시대 원자력 협력의 중요성과 한국의 역할 왜 탈원전 시대에 원자력 협력을 논의해야 하는가? 첫째, 안전한 해체를 위해서 지역 협력은 필수적이다. 원자력 발전을 상대적으로 일찍부터 시작한 한국과 일본에서는 노후화된 원전의 폐기를 앞두고 있지만 이 지역에서 아직 해체 경험은 전무한 실정이다. 노후화된 원전의 해체는 당장 한일 두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신규 원전을 건설 중인 역내 후발 국가들에게도 닥칠 문제이기도 하다. 안전한 원전 해체를 위해서라도 공동의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둘째, 원자력에서 지역 협력의 경험은 중요한 동아시아 지역 협력의 자산이 될 것이다. 특히 구성원 모두의 생명과 직결된 원자력 안전 문제는 향후 지역 협력의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원자력 협력을 동아시아 지역의 전략적 자산으로 발전시키는 데 있어 어느 국가보다도 한국의 역할이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원자력 기술자립국이면서, 또한 역내에서는 최초로 탈원전을 공포할 정도로 기술과 의식 모두에서 선도국이다. 내부적으로 원자력 사용의 명암을 직시하고 시민사회와 정부가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적절히 수행하고 있다. 국제정치적으로도 미중, 미일, 중일 관계에서 균형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한국이 원자력 협력에서 이니셔티브를 쥔다면 미국 주도의 주류 핵질서의 저항도 최소화하면서 동아시아 지역의 자율성을 논의할 장을 마련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향후 지역 원자력 협력회의에서 한국이 다음의 사안을 염두에 두고 논의를 개진한다면 동아시아 지역의 공진과 한국의 중요한 외교적 자산 마련에 기여할 것이다. 첫째, 지역 공공재로서 원자력 사용을 원전보유국과 비원전보유국이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를 통해 와이파이와 방송수신위성처럼 사회 구성원 전체가 (원전사고의 폐해뿐만 아니라) 원자력 기술 개발의 혜택을 향유할 수 있도록 에너지 국경을 허물어야 한다. 둘째, 지역 원자력 협력의 범위는 원전 운영뿐만 아니라 원전 사고 시 원활한 손해배상과 복구를 위한 기금의 가입과 조성, 그리고 원전 해체 및 관리 부문으로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셋째, 원자력 지역 협력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각국의 원자력/핵 기술의 지나친 정치적 도구화는 지양되어야한다. 동시에 주변국의 원자력 개발에 대해서도 불필요한 외교 갈등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신뢰 구축노력, 협력의 제도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종래의 미국을 중심으로 한 양자 원자력협력관계의 프레임뿐만 아니라 다자 협력관계에서 한국의 역할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민을 시작해야한다. 한국은 핵안보정상회의와 TRM+ 등을 통해 축적된 핵안보와 원자력 안전 부문에서의 외교 경험으로부터 중일과 함께 아세안국가들, 핵개발야심국인 인도, 파키스탄, 러시아 그리고 역내 에너지 부족국들을 포함하는 원자력안전 및 지역 에너지 수요·공급을 포괄적으로 그리고 상시적으로 논의할 지역 협력회의체 조직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본 글의 논지는 본인이 몸담고 있는 기관과는 무관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2)1945년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피해와 2011년의 원전사고로 인한 피해가 단순히 해당 지방이나 일본이라는 일국에 국한되지 않고 아시아 지역 전체의 문제라고 보는 것은 단지 방사능 오염의 광역성과 주변국의 지리적 근접성 때문만은 아니다. 피폭당한 일본의 식민지인들은 전쟁의 참화를 입은 채 아시아에 흩어졌고 그들의 고통은 전쟁이 끝난 지 70여 년이나 지난 후에도 2세와 3세들에게 대물림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형률 2008). 따라서 원자력안전의 문제는 일국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 지역 전체의 문제이며, 동아시아에서는 과거나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현재의 문제이다. 3)현재 운영 중인 지역 에너지 수요와 공급 협의체와 관련하여 도움말을 주신 한양대학교 에너지거버넌스센터 전임연구원 김성진 박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4)총 4회에 걸친 핵안보정상회의의 핵심 의제와 논의 결과에 대해서는 다음의 연구 참조 (Cho 2016).   ▣ 참고문헌 김선엽. 2015. ““옆에 오지마 방사능 나와”...설움당하는 후쿠시마 난민”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21/2017032100300.html?Dep0=twitter&d=2017032100300 (검색일 2018. 3. 22.). 김종선, 서지영, 호사. 2012. 『동북아 원자력 안전을 위한 과학기술 국제협력 방안 모색』 세종: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김형률. 2008.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원폭 2세 환우 김형률 평전』 서울: 휴머니스트. 박기갑. 2010. 『국제보충기금협약(Convention on Supplementary Compensation for Nuclear Damage, CSC) 가입에 따른 법적 문제점 검토』 외교부 정책연구과제. http://www.prism.go.kr/homepage/entire/retrieveEntireDetail.do;jsessionid=1D41651DA25EF4FEFD5E9F9020573613.node02?cond_research_name=&cond_research_start_date=&cond_research_end_date=&research_id=1260000-201000027&pageIndex=1196&leftMenuLevel=160 (검색일: 2018. 3. 26.). 윤병세. 2015. “동북아원자력안전협력회의 (제3차 TRM+) 개회사” (2015. 10. 22). 외교부 http://www.mofa.go.kr/www/brd/m_20140/view.do?seq=302388&srchFr=&srchTo=&srchWord=&srchTp=&multi_itm_seq=0&itm_seq_1=0&itm_seq_2=0&company_cd=&company_nm= (검색일 2018. 3. 22.). 전재성. 2017. “동북아의 불완전한 주권국가들과 복합적 무정부상태.”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편. 전재성 책임편집.『세계정치 26-복잡성과 복합성의 세계정치』서울: 사회평론. pp. 83-126. 정동욱. 2016. “원전 중대사고와 동북아 안전 협력 정책 방향.” 『제 5차 원자력 정책통합과정 자료집: 동북아시아 원자력의 미래/안전 및 한국의 역할』 (2016. 8. 16-17, 중앙대학교), pp.45-58. 조은정. 2005. 『핵을 둘러싼 유럽-미국 관계에서 유라톰의 역할: 대항규범의 형성 1945-1957』.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석사논문. 조은정. 2014. “유라톰 사례를 통해 본 ‘동북아의 원자력협력 필요와 가능성.” 국제정치학회하계학술대회 자료집 (2014. 8. 22, 속초). 조은정. 2016. “원자력 협력은 핵 확산을 부추기는가?: 미국양자원자력협정의 국제 핵 통제적 성격.” 『국제정치논총』 56:2. pp. 117-161. 조은정. 2017. “국제안보 개념의 21세기적 변용: 안보 ’과잉‘으로부터 안보불안과 일본의 안보국가화.”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편, 전재성 책임편집.『세계정치 26-복잡성과 복합성의 세계정치』서울: 사회평론. pp. 179-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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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공적 핵무기 폐기 협상의 사례와 함의: 1987년 워싱턴 정상회담
    저자
    한인택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발간호
    2018-18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동북아에서 ‘정상회담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당초에는 4월 말 남북 정상회담, 5월 초 한중일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 5월 중 한미 정상회담, 5월 말 북미 정상회담의 순서로 정상회담이 개최될 것이라고 기대되었으나, 예상치 못하게 북중 정상회담이 먼저 개최되었고 북일 정상회담, 남북미 정상회담의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앞으로 상황의 전개에 따라서는 양자, 다자 정상회담이 더 많이 개최될 수 있을 것이다. 연이어 개최될 정상회담에 대비하고 최선의 결과를 낳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워싱턴 정상회담: 성과 없던 정상회담과 실패한 정상회담이 만들어낸 성공작 역사적으로 정상회담은 위기에 대처하고 평화를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대표적인 예가 1987년 12월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워싱턴 정상회담이다. 이 회담에서 미소 정상은 그다음 해에 있을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한반도 긴장완화를 포함한 다양한 의제를 논의하였다. 워싱턴 정상회담의 가장 큰 직접적 성과는 중거리 핵무기를 폐기하는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 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Treaty)의 조인이었다. 이 조약을 통해서 미소는 퍼싱-2나 SS-20와 같은 중거리 핵미사일을 폐기하기로 합의하였다. 퍼싱-2나 SS-20는 고체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신속발사가 가능해서 상대방을 선제타격하는 데 이상적이었다. 따라서 중거리 핵전력 조약은 바로 미소 양국이 보유하고 있는 핵선제타격용 미사일을 폐기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러한 합의는 지금의 시점에서도 쉽지 않겠지만 미소 간의 핵경쟁과 냉전이 한창이던 당시의 시점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나아가 워싱턴 정상회담은 1991년에 미소가,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크고 복합적인 군비통제조약인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y)을 체결하는 데 기여하였다. START의 결과로 2001년 기준 미국과 러시아가 보유한 전략핵무기의 80%가 폐기되었다. 이러한 결과를 보고 역사가들은 워싱턴 정상회담이 냉전의 종식을 낳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냉전의 종식을 과제로 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워싱턴 정상회담의 성공요인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1991년 전략무기감축협정의 체결이 1987년 중거리 핵전력 조약의 체결을 바탕으로 한 것처럼, 워싱턴 정상회담의 성공은 그 이전에 열렸던 2회의 레이건-고르바초프 정상회담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레이건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1985년 11월 제네바에서 첫 정상회담을 가졌고, 1986년 10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두 번째 정상회담을 가졌다. 흥미로운 사실은 제네바 정상회담과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이 각기 성과가 없었던 회담(제네바 정상회담의 경우)이나 실패한 회담(레이캬비크 정상회담)으로 당시에 평가 받았다는 점이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취임하고 채 1년도 되기 전에 개최된 제네바 정상회담에서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미국이 소련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비난하였고 레이건은 이에 대응해 소련이 공격적으로 행동한다고 비난하였다. 레이건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또한 인권문제, 특히 전략방위구상(SDI: 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을 놓고 팽팽히 대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네바 정상회담이 끝나고 공동성명은 발표되었지만 구체적인 성과가 있었던 회담은 아니었다. 1986년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의 결과는 더 암울하였다.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은 회담이 끝나고 공동선언문조차 발표할 수 없었던 실패한 회담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미소 양국은 서로에게 회담 결렬의 책임을 떠넘기려고 했으며, 회담 결렬로 인해 촉발된 것은 아니었지만 레이캬비크 회담이 끝나고 며칠 뒤부터는 미소 양국이 자국에 주재 중인 상대국의 외교관들을 추방하는 등 관계가 악화되었다. 워싱턴 정상회담의 성공요인 성과가 없었던 제네바 정상회담과 결렬되었던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워싱턴 정상회담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우선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집권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중거리 미사일뿐만 아니라 모든 핵무기를 폐기할 용의가 있었다. 고르바초프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에는 핵으로 인한 인류공멸의 위험성을 깊이 인식하였다는 점도 있지만, 그가 추구했던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자원과 평화가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서는 국방비를 축소할 필요가 있었고 평화, 특히 미국과의 원만한 관계가 필요하였다. 하지만 고르바초프의 집권은 이미 1985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집권 후 레이건과 가진 3번의 정상회담 중에서 처음 2번의 회담은 성과가 없었고 왜 마지막 회담만 성공하였는지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마지막 정상회담의 성공은 고르바초프의 인식과 진심을 레이건이 직접 확인하고 신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제네바 정상회담과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은 표면적으로는 성과가 없고 실패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두 차례의 만남을 통해서 레이건은 고르바초프의 인식과 진심을 개인적 차원에서 확인하였고 신뢰할 수 있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해 유명해진 밥 우드워드가 저술한 Shadow: Five Presidents and the Legacy of Watergate에 따르면 레이건은 치매로 인해서 그의 대통령 재임기에 대한 거의 모든 기억이 지워졌으나 유일하게 어느 아늑한 방에서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한 세계적인 지도자와 함께 화롯가 옆에서 대화를 하였던 것을 기억하였다고 한다. 레이건이 말하는 이 대화는 제네바 정상회담 때 고르바초프와 가졌던 대화이다. 치매로 인해 대부분의 기억이 지워진 후에도 생각이 날 정도라면 제네바 정상회담이 고르바초프에 대한 레이건의 인식을 얼마나 변화시켰는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변화한 것은 레이건만이 아니었다. 제네바 정상회담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이 결렬된 데에는 미국의 전략방위구상(SDI) 에 대한 미소 간의 이견이 중요한 원인이었다. 고르바초프는 어떠한 경우에도 SDI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던 고르바초프가 나중에는 SDI에 대한 입장을 바꾸었다. SDI에 대한 고르바초프의 인식이 바뀌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SDI의 현실적 무용성에 대한 과학자들의 견해를 접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르바초프의 이러한 인식변화는 엄격히 말하면 정상회담을 통하여 발생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고르바초프가 정상회담을 통해서 레이건과 미국도 평화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지 못하고 미국을 계속 위협으로만 인식하였다면 과학자들의 객관적인 견해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레이건에 대해 갖게 된 이해와 신뢰가 고르바초프가 갖고 있던 SDI에 대한 불필요한 공포를 잠재웠던 것이다. 인식을 변화시키고 신뢰를 구축하는 정상회담을 위하여 정상회담을 통해서 각국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입장만을 되풀이 한다면 굳이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의의가 없을 것이다. 레이건-고르바초프 정상회담이 우리에게 주는 함의가 있다면, 성공적인 정상회담이란 인식의 변화와 신뢰구축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는 고르바초프 같은 전향적 지도자의 존재라는 커다란 전제조건이 있다.) 비핵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북한은 진정한 평화가 핵무기를 개발하여 상대방을 핵전쟁의 공포에 떨게 할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함께 협력할 때 찾아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한편 다른 나라들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게 된 동기를 이해하고 북한의 우려를 완화하기 위해서 노력하여야 한다. 유럽이나 동남아에서는 일찍이 협력적 안보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졌으나 동북아에서는 그 단계까지 인식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인식의 변화는 단시간 내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공동합의문 등을 통하여 문서화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너무 조급한 마음으로 정상회담에 임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표면적인 성과가 없더라도 심지어 결렬이 되더라도 정상회담을 통해서 상대방의 인식과 의사를 확인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서 커다란 성과이다. 정상회담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식변화와 신뢰구축이 가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여건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한 단초는 다른 이 아닌 고르바초프에게서 찾을 수 있어 보인다. 고르바초프는 2번째 미소 정상회담을 앞두고 레이건 대통령에게 “런던 혹은 아이슬란드 정도의 중간 지역에서 만나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비공개로 군비 통제 문제를 솔직하게 논의하자”는 제안을 하였다(김연철 저, 『협상의 전략』 281 페이지에서 재인용). 그 결과 제2차 레이건-고르바초프 정상회담은 인구 10만 명 남짓한 조용한 도시인 레이캬비크에서, 그것도 작고 외진 2층 건물에서 개최되었다. 고르바초프의 제안은 그가 젊었을 때 흑해 연안의 휴양지에서 근무했던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와 달리 휴양지가 주는 자유로움과 여유는 인식의 전환을 촉진하고 신뢰의 구축을 돕는다는 사실을 고르바초프는 경험을 통해서 알았던 것이다. 한국은 그동안 G20 정상회의, 핵안보 정상회의 등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국제사회에 기여하고, 국가적으로도 위상을 제고하고 영향력도 강화한 바 있다. 이러한 경험을 살려서, 앞으로 개최될 정상회담 중의 일부는 한국에서 개최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한국이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냉전 종식의 물꼬를 튼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 간 한소 정상회담은 북한을 의식한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제안으로 한반도 남단의 섬인 제주도에서 개최되었다. 만약 다시 제주도에서 정상회담이 개최된다면, 한소 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시작된 한반도 냉전 종식의 모멘텀이 바로 그 발상지인 제주도에서 결실을 보는 의의가 있을 것이며, 각국의 정상들이 제주도에서 고르바초프가 제안한 것처럼 형식에 치우치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한다면 한반도의 비핵화에도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연구실장).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와 同 대학원 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UC, Berkeley 정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 UC, Davis, University of Washington, 이화여자대학교, 제주대학교 등에서 강의. 핵전략, 안보협력, 공공외교가 주요 관심분야이며, “한국형 공공외교 모델의 모색: 정책네트워크를 활용한 맞춤형, 과학적 공공 외교”와 “핵폐기 사례연구: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례의 함의와 한계” 등의 저술이 있음.
  • 대선 이후 러시아 대외정책 전망: 대미, 대한반도 정책을 중심으로
    저자
    제성훈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
    발간호
    2018-17
      지난 3월 1일 크렘린궁 인근에 위치한 마네쥐(Manege)홀에서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열네 번째 연례교서를 발표했다. 오는 3월 18일에 치러질 대통령선거에서 푸틴 대통령의 4선이 확실시되기 때문에 이번에 발표된 연례교서는 사실상 차기 정부, 다시 말해 4기 푸틴 정부의 청사진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먼저 복지·삶의 질 제고, 도시·지역개발, 주택, 교통·통신 인프라, 의료·보건체계, 환경, 문화·교육, 과학기술 혁신, 재정 확보, 비즈니스 환경 개선 등 다양한 국내문제를 언급하고 나서, 러시아가 개발한 최신무기체계를 이례적으로 영상까지 활용하여 소개하는데 상당히 긴 시간(약 45분)을 할애했다. 이 과정에서 이러한 최신무기체계가 미국의 군사력에 맞서기 위해 개발되었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2002년 미국의 일방적인 탄도요격미사일제한조약(ABM 조약) 탈퇴 이후 지난 15년간 계속된 글로벌 MD 체계 구축으로 인해 이를 극복하는 첨단전략무기를 개발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3기 푸틴 정부 시기(2012~18)를 거치면서 미·러 관계는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현재 미·러 관계의 악화는 시리아 내전, 우크라이나 위기 등과 함께 국제안보질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으며,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진전과 맞물려 한반도 정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글에서는 3월 18일 대선 이후 러시아의 대외정책을 대미, 대한반도 정책에 한정하여 전망해보고자 한다. 미국과의 ‘제한적 협력관계’ 설정 2012년 3기 푸틴 정부 출범 이후 계속 심화되던 미·러 갈등은 지난해 미국의 대러 제재 확대와 ‘제재의 법제화’로 인해 사실상 ‘신냉전’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미국과 러시아는 이미 2012년 상대국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며 각각 ‘마그니츠키 법’과 ‘디마 야코블레프 법’을 제정하여 제재명단에 인사들을 추가해왔고, 2014년부터는 ‘우크라이나 위기’와 관련한 상호 경제제재를 계속해왔는데, 최근에는 외교, 군사 분야까지 갈등이 확대되고 있다. 2016년 말 미국이 자국 대선 개입을 이유로 러시아 외교관 35명을 추방하고 외교공관 2곳을 폐쇄하자, 2017년 7월 러시아도 자국 주재 미국 외교관 및 기술직 직원 수 감축을 요구하고, 8월에는 미국 대사관이 사용하던 창고와 별장 사용을 중단시켰다. 이에 맞서 다시 미국은 8월 23일부터 러시아 전역에서 비이민 비자 발급을 중단하고 9월 1일부터 대사관에서만 이를 재개했으며, 샌프란시스코 주재 러시아 총영사관과 워싱턴 및 뉴욕 소재 무역대표부 건물 2곳을 폐쇄했다. 또한, 2017년 3월 셀바 미국 합동참모차장이 러시아가 지상발사형 순항미사일을 배치하면서 중거리핵전력협정(INF)을 위반했다고 주장하자, 러시아는 이를 부인하고 오히려 미국이 루마니아와 폴란드에 토마호크 미사일 발사 시설을 배치하면서 해당 조약이 금지한 순항미사일 개발 착수 의지를 보인다며 비난했다. 더 나아가 11월에는 클린체비치 러시아 상원 국방안보위원회 제1부위원장은 MD 배치 등 미국과 NATO의 비우호적 조치들에 맞서기 위해 쿠바 군사기지를 부활하자고 주장했다. 양국의 갈등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은 미국 의회에 의한 ‘제재의 법제화’ 때문에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17년 7월 미국 의회가 러시아 석유·가스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제한, 사이버 공격, 부패, 인권 탄압 관련 인사에 대한 제재 등을 가능하게 하는 ‘제재를 통한 미국의 적 대응법(Countering America’s Adversaries Through Sanctions)’을 통과시키면서 약 40개 러시아 방위산업체와 정부기관이 제재대상으로 지정되었는데, 사실 이 법의 가장 큰 독소조항은 대통령이 의회의 허가 없이 대러 제재를 해제할 수 없게 만든 데에 있다. 따라서 이 법은 향후 양국 관계 개선을 가로막는 가장 큰 법적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이처럼 적어도 트럼프 정부 임기 내에 양국 관계 개선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지고, ‘신냉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신냉전’은 냉전 시절처럼 이념적 대립의 수준에서 전개되고 있지는 않지만, 서로 다른 지정학적 구상의 대립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냉전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러시아는, 얄타 체제의 산물이자 냉전 시절 형성된 글로벌 안보 레짐은 유지하고 싶어 하지만, 몰타 체제의 산물이자 탈냉전의 결과로 형성된 미국의 패권에 더는 순응하려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몰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모스크바의 전략가들과 얄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워싱턴의 전략가들 간 서로 다른 지정학적 구상의 대립이자 투쟁이 미·러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연례교서를 발표하면서 푸틴 대통령은 첨단전략무기 개발 성과를 과시하는 동시에, 미국과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 “혁신적이고 유망한 국제안보체계”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언급했다. 모스크바의 전략가들은 과거 냉전시절과 마찬가지로 주요 국제문제를 관리하고 국제안보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상호협조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푸틴 대통령이 계속 권좌에 앉아있는 한 트럼프 정부가 대러 관계를 전면적으로 개선할 명분을 찾기 어렵다는 데 있다. 따라서 대선 이후 러시아의 대미 정책은 국제안보와 관련하여 미국과 ‘제한적 협력관계’를 설정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 체제에 대한 안전보장 공약과 남·북·러 3자 경제협력 추진 지난해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으로 인한 한반도 위기상황에서 러시아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유지했다. 첫째, 핵보유국 지위를 획득하려는 북한의 열망은 글로벌 비확산 레짐을 침식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수용·승인될 수 없고, 따라서 이를 저지하려는 유엔의 대북제재에 찬성한다. 둘째, 대북 협상의 궁극적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이지만, 북한에 대한 ‘극심한 압력’은 인도적 재난을 야기할 것이기 때문에 반대한다. 셋째, 북한과 미국, 그리고 유관국들은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조치를 자제하면서 협상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면서 러시아는 한반도 위기 해결을 위한 중재자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UN 안보리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북한에 대한 ‘과도한 제재’를 막기 위해 노력했으며, 중국과 함께 한반도 위기의 단계적 해결방안을 담은 ‘중·러 로드맵’을 마련하여 북한과 미국 간 입장 조율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러한 배경에서 지난해 12월 페스코프 대통령 공보비서는 러시아는 기꺼이 미국과 북한 간 중재자로 나설 준비가 되어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양측의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러시아는 적어도 1990년대 중반부터 동북아, 특히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의 주도권을 인정했기 때문에, 한반도 위기와 관련하여 중국과 보조를 맞추면서도 한 발짝 뒤에서 따라가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러시아는 북한, 미국 측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고자 했다. 이는 첫째, 북한이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진전시켜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이 되면서 냉전 시절에 형성된 글로벌 안보 레짐이 침식되고 있고, 둘째, 한국 영토 내 사드 배치가 미국의 글로벌 MD 체계 구축 차원에서 확고해진다면 이는 냉전 시절처럼 미국의 대러 포위 전략이 본격화되는 것을 의미하며, 셋째, ‘신냉전’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한반도 위기가 시리아 내전과 함께 러시아가 미국과 협의 채널을 계속 가동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국제문제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 개선의 전기(轉機)가 마련되고, 이어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개최가 합의되면서 러시아의 한반도 정책에도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북미 간에 한반도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합의가 이루어질 경우,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 진전이 야기한 글로벌 비확산 레짐 침식이 중단되고, 한국 영토 내 사드 배치도 명분을 상실하게 될 것인데, 이는 러시아의 전략적 이익에 정확히 부합한다. 더불어 러시아는 극동·시베리아 개발에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한반도에서 자국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남·북·러 3자 경제협력 실현을 위한 기반도 확보하게 된다. 따라서 이 경우 러시아는 첫째, UN 안보리에서 대북제재 완화 또는 철회를 주도하면서 향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시 북한체제에 대한 안전보장 제공을 공약하고, 둘째, 한반도 위기 해소를 불가역적으로 만들려는 목적에서 남·북·러 3자 경제협력 추진을 가속화할 것이다. 반대로 북미 간에 합의 도출이 실패할 경우, 러시아는 중국, 한국과 긴밀히 협조하면서 북한과 미국의 입장 조율을 위한 중재자로 다시 나서게 될 것이다. ‘한반도의 봄’과 ‘신북방정책’ 2017년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된 3차 동방경제포럼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러시아를 비롯한 탈소비에트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의 ‘신북방정책’을 공식화했다. 하지만 미·러 갈등으로 인한 미국의 대러 경제제재와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진전으로 인한 한반도 위기는 ‘신북방정책’ 수행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었다. 물론 미·러 갈등은 조기에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지만,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개최 합의는 ‘신북방정책’의 실질적 성과와 한·러 경제협력 확대에 대한 기대를 고조시키고 있다.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에서 극적으로 찾아온 ‘한반도의 봄’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위기가 아닌 새로운 희망으로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現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전문위원. 2002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를 졸업하고, 2004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반대학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 2009년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철학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음. 이후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러시아·유라시아팀장을 역임했음.
  • 강력한 지도자(strongman)를 바라는 강대국 국내정치의 위험성
    저자
    이성우 (제주평화연구원 분쟁해결연구부장)
    발간호
    2018-16
      우리나라의 경우,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에 따른 선거민주주의가 정착하고 30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선거가 끝나면 그 결과를 두고 예외 없이 언론에서는 “유권자들의 뜻은 현명했다” 또는 “민심은 지혜로운 선택을 했다”는 식의 평가를 내놓았다. 민주주의 자체가 다수유권자의 결정에 따라서 정부를 구성하는 정치원리인 만큼 여론의 결정에 승복하는 모습이 다음 선거에서 승리의 기대를 높이는 합리적 선택이다. 민주주의에서 선거의 결과가 국민의 선택이라고 해서 항상 최선이 아니고, 대부분의 경우 한 국가의 국민이라는 정체성에 근거한 집단적인 의사결정과정인 투표를 통해 위험한 선택으로 나아갈 수 있다. 위험한 선택은 위험한 결과로 이어지고 이러한 오류를 바로잡는 데는 많은 정치적, 경제적 비용이 따른다는 점에서 엘리트 민주주의의 비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통선거제도에 기초한 대중민주주의에서 여론의 정서적 비논리성, 비일관성, 비도덕성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무비판적인 동조와 같은 중우정치와 선동정치의 위험성이 있지만 이를 바로 잡는 것도 결국 유권자의 몫이다. 한국의 주변국관계에 긴밀한 영향을 미치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서 유권자들의 - 그들의 지도자에 대한 - 정치적 선택이 중우정치의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미국이 민주주의적 정치체제라는 점에는 의심이 없지만 국민의 자유로운 선거에서 선출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주류를 이루는 백인 중산층의 욕심을 반영하는 비도덕적이고 정서적인 선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당시 러시아의 선거개입과 관련된 스캔들에 대한 수사를 피하려는 사법방해 혐의를 받고 있다. 최근의 미국 발 무역전쟁은 올 11월에 예정된 중간선거와 2년 후의 재선을 염두에 두고 전통적 지지세력인 러스트 벨트지역의 블루칼라 중산층 유권자를 위한 국내정치용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국제정치학계의 관심전환이론이 주장하듯이 국내정치에서 여론의 비판을 회피하고 지지세력을 동원하려는 분쟁유발행위다. 군사적 분쟁이 부담이 큰 만큼 무역분쟁을 통해 국내 유권자를 단합시키고 정치적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공산당이 집권한 이래 공산당 일당독재체제를 유지해왔지만 1인 우상화나 세습이 아닌 지도부의 정치권력에 교체가 주기적으로 가능했다는 점에서 개혁개방 이후 장쩌민과 후진타오, 그리고 시진핑으로 이어지는 권력교체가 로마시대의 귀족정(aristocracy) 또는 과두정(oligarchy)의 형태였다. 새 지도자가 차기 지도부를 구성할 때 차차기 지도자까지 자동적으로 포함시킴으로써 차기 정권의 실세들이 독주할 수 없도록 견제장치를 갖추는 나름대로의 엘리트 민주주의가 작동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최근 중국의 국가권력은 19기 2중 전회에서 헌법 개정안 논의를 거쳐 2018년 3월 전인대에서 '국가주석 2연임 이상 제한' 조항을 삭제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장기 집권을 사실상 가능하게 하는 중국 헌법 개정안을 내놨다. 중국 주요 관영언론 매체들은 사회주의 현대화 대국이라는 중국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중앙 집중적이고 통합된 리더십이 필요하며 분권화된 리더십은 위대한 목표 실현에 부정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시진핑 장기집권의 제도화를 지지하고 나섰다. 중국의 정치 엘리트들은 강대국의 명분 아래 장기집권과 국가주의의 정당화를 위해 위험한 선택을 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의 사례는 강대국에 대한 러시아 국민들의 역사적 회한을 보여주는 노골적인 사례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부터 2008년까지 2대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후임으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을 4년간 수행하는 동안 총리직을 맡았다가 2012년 4대 대통령에 당선되고 이제 다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러시아 국영 여론조사기관 브치옴(VTSIOM)이 3월 1일 공개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69%는 3월 18일 대선에서 푸틴 대통령을 뽑겠다고 답했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푸틴 대통령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뒤집고 싶은 역사’로 소련 붕괴를 언급하면서 러시아 국민들 사이에 남아있는 세계 초강대국으로서 소련의 향수를 자극하는 애국심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외신들은 푸틴의 선거 전략이 제국주의적 야욕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그럴수록 러시아 내 여론의 지지는 확대되고 있다. 이와 때를 같이해 푸틴은 의회 국정연설을 통해 러시아는 차세대 대륙간 탄도탄인 ICBM RS28 사르마트, 핵추진 엔진을 장착한 순항 핵미사일, 무인 수중드론과 같은 첨단무기를 언급하면서 다시 미국에 필적하는 강대국의 면모를 갖춘 러시아를 언급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제 예전의 러시아가 아니며 “그동안 아무도 러시아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들어야 할 때입니다”라고 러시아의 복권을 선언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러한 신무기 개발 선언으로 시리아와 크림반도 등의 분쟁에서 러시아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적어도 러시아 유권자들 사이에는 장기집권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정치적 자산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의 아베 수상도 일본 유권자들의 애국심을 자극하는 우경화를 통해 장기집권을 위한 정치적 지지를 동원하고 있다. 일본의 집권 자민당은 2017년 3월 총재 임기를 현행 ‘2기 연속 6년’에서 ‘3기 연속 9년’으로 연장하는 당칙 개정을 결정하여 아베 총리의 9년 장기집권을 위한 기초를 마련했다. 아베 총리는 중의원과 참의원 내 헌법 개정을 위한 국회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 이상 의석을 확보한 현 시점을 헌법 개정의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고 있다. 전쟁 포기를 담고 있는 헌법 9조 개정엔 일본 국민 절반 이상이 반대하지만 높은 지지율과 의석수를 기반으로 국민을 설득해간다는 것이다. 아베 수상은 방위비를 국내총생산의 1% 이내로 억제할 생각이 없다며 2017년 방위예산도 사상최대인 5조 1251억 엔을 편성하여 군비확장을 통한 군사대국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아베의 군사대국화와 보통국가화라는 우경화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아베가 잘해서가 아니라 아베 총리 이외에 아무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아베가 총리가 계속 총리직을 수행하게 된다는, 일본의 유권자들의 설명에 잘 나타난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는 대중의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해서 대외적인 분쟁에 참여함으로써 국내정치적 지지를 동원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관심전환이론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같은 논리적 연장선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는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 전쟁을 수행할 가능성이 높지 않는다는 민주주의 평화이론에 중대한 수정이 필요하다. 현재 국제관계의 전개에 대한 이론적 해석은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는 정치권력의 연장을 위해서 국가주의에 기초한 정치적 지지를 동원하는 과정에 군비경쟁, 보호무역, 국수주의와 같은 폐쇄적 대외정책을 활용하려는 경향이 일반화 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4강의 국내정치는 국가주의(nationalism)를 앞세우는 강력한 지도자가 여론의 지지를 얻고 이를 통해 장기집권을 이어가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은 모두 강대국의 영광을 위해 강력한 군사력, 국부 유출을 방지하는 보호무역, 타민족과 국가에 대한 배타적 폐쇄주의와 대결과 갈등을 부추기면서 신뢰와 협력의 기반을 축소하고 있다. 미국의 압도적 우위의 국력으로 유지되던 기존의 국제질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경쟁국으로 간주되었던 중국과 러시아는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미국이 군비경쟁과 보호무역을 시작하면 중국과 러시아가 이에 대한 대응으로 군비현대화와 무역전쟁을 추진하고 일본은 다시 여기 대응하는 형식으로 동아시아의 위험한 군사화와 보호무역의 경주가 지속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에서 국내정치의 흐름을 전환할만한 동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러한 위기상황을 해결할 열쇠는 미국 유권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미국이 폐쇄주의, 민족주의, 보호무역주의라는 낡은 가치를 버리고 국제주의, 개방주의, 자유무역, 평화주의를 지지하는 정치적 선택을 통해 인류보편의 가치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치적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대량살상무기는 더 이상의 기술혁신 없이도 지구를 완전히 파괴하고도 남을 정도이고 보호무역은 결국 누구의 이익도 없는 무의미한 소모전이라는 사실은 쉽게 추론할 수 있다. 강대국의 정치적 결정과정에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 여론의 이기적 동기를 차단하고 인류보편의 가치로 돌아가는 노력에 미국의 유권자들이 앞장서야 한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분쟁해결연구부장. 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2004년 미국 University of North Texas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음. 단국대학교 분쟁해결연구센터에서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한국의 공공분쟁 사례연구”를 주제로 대한민국 학술진흥재단 중점연구소 연구과제를 수행하였음. 학술활동으로는 미국국제정치학회가 주관하는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의 Referee로 활동한 바 있음. 저서로는 『2011 한국인의 평화관: 통일정책과 여론 』 및 『2010 한국인의 평화관: 외교정책과 여론』 등이 있음.
  •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한 남북한 교류협력과 이후 전망
    저자
    정영태 (북한연구소 소장)
    발간호
    2018-15
      전쟁발발 우려에서 평화로 바뀐 평창 동계올림픽 2017년 평창 동계올림픽은 남북관계에서 많은 것을 변화시켜 주는 계기로 작용했다. 본래 올림픽은 세계평화의 제전으로 불리기도 한다. 스포츠로 세계평화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 바로 올림픽 정신이기 때문이다. 올림픽의 평화적 역할과 기능이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십분 발휘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동안 남과 북은 한차례의 전쟁도 겪었고 각종 심각한 군사적 충돌들을 경험하기도 했다. 지구상에서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가 바로 남북한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은 국제적 제재와 압박으로 인해 전쟁의 먹구름까지 몰아오고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북한이 비핵화로 나오게 하기 위해 미국이 군사적 옵션으로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는 추정들이 나왔고 한반도 전쟁 발발 위험성이 국제적으로 부각되면서 성공적인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는 듯했다. 실제로 일부국가에서는 노골적으로 불참을 시사하는 발언이 나오기도 하였다. 프랑스 스포츠 장관이 “한반도의 위기상황으로 선수단의 안전을 확신할 수 없게 된다면 우리 올림픽팀은 프랑스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 언급한 바 있어 우리를 놀라게 하였다. 프랑스에 이어 독일, 오스트리아에서도 평창올림픽 불참 가능성이 전해지기도 하였다. 이에 더해 작년 12월에 “우리 선수들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가는 미해결 사항”이라는 유엔주재 미국대사의 발언이 나오면서 평창 동계올림픽은 개최 자체도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과도한 추정이 나올 정도로 위기에 봉착하는 상황까지 치닫는 듯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결정으로 이러한 먹구름은 말끔히 걷혔다.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의사는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북한은 ‘민족, 자주,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하면서 평창올림픽 참여에도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이 바로 그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관계를 개선해 “사변적인 해로 빛내야"한다고 하는 등, 남북대화 재개에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과시하였다. ‘민족, 자주, 우리 민족끼리’를 내세우면서 정세를 격화시키는 일을 하지 않도록 하자고 촉구하였고 남북한이 시급히 만나야할 필요성도 강조하였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적 환경마련을 위해 공동 노력을 이행하자고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 표명은 거의 해마다 반복되는 것이지만 당장 우리의 관심을 끈 것은 평창올림픽에 대표단 파견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고 한 그의 언명이었다. 정부의 발 빠른 대응으로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이끌어 내다 이에 우리 정부가 매우 발 빠르게 대응한 것이 주효했음인지 남북대화가 재개되어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가 실현되기에 이르렀다.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발표 다음날 바로 대한민국 통일부는 장관 명의로 남북 고위급 회담을 제의하는 민첩성을 보였다. 이어 오랫동안 불통이었던 판문점 연락채널이 재가동(1월 3일)되었고 다음날 한미정상은 올림픽 기간 중 한미연합 훈련을 연기하는 데 합의함으로써 남북대화가 순조롭게 재개되어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수순을 용이하게 하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후 남북대화는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북측의 남북 고위급 회담 제의 수용(5일)에 이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 고위급 회담이 개최(9일)되었다. 동 회담에서 남북 양측은 첫째, 북측 선수단, 응원단, 고위급 대표단, 예술단, 태권도단, 참관단 파견, 둘째 고위급 및 군사당국 회담 개최, 셋째 한반도 문제 남북 당사자 해결에 합의하였다. 이어 북측 예술단 파견을 위한 남북실무접촉(15일)을 시작으로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절차가 본격적으로 이행되어 나갔다. 북측 예술단 사전점검단 7명 방남(21일)에 이어 마식령 스키장 남북선수 공동훈련 진행(31일), 북한 선수단 32명 방남(2월 1일), 북한예술단 선발대 23명 방남(5일) 및 북한 예술단 114명 방남(6일), 북한 대표단, 태권도 시범단, 응원단, 기자단 260명 방남 그리고 김영남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의장,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북측 고위급 대표단 22명의 방남 등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남북이 공동 입장하는 개회식도 진행되었고 북한 예술단 공연과 태권도 시범도 예정대로 성황리에 끝났다.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교류협력의 새 장을 열어주다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는 남북한의 교류협력 발전 측면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더한 것으로 판단된다. 먼저 지적될 수 있는 것은 평창 동계올림픽이 명실상부한 평화 올림픽으로 자리 잡아 가면서 향후 교류협력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의 청신호가 켜진 점이다. 최소한 올림픽 기간 동안에는 북한의 군사적 도발로 한반도의 평화가 위협받는 상황은 연출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 분위기는 올림픽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기도 하였다. KAL기 폭파나 서해해상에서의 군사충돌로 군사적 긴장이 심화되었던 88올림픽 때나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와는 판이한 상황이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은 남북교류협력 활성화를 위한 남북관계 복원과 평화정착을 논할 수 있는 북한의 고위급 대표단의 방남 기회를 제공해 주어서다.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인 김영남과 김정은의 친 여동생이자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인 김여정을 보내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그들의 진의를 전달하고자 노력한 것처럼 보인다. 특히 김여정은 오빠 김정은의 친서와 문재인 대통령 방북 초청 의사를 전하기까지 하여 남북한 관계 개선 가능성을 한층 높여 놓았다. 이에 더해 북한은 대남관계 관련 실무총책으로 알려진 통일전선부장 김영철을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 사절로 보낸 것이다. 김영철 부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하여 약 1시간 동안 깊은 대화의 시간을 가졌고 남측 고위급 인사들을 잇따라 만나 남북관계 개선 및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실무적 대화를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통일부 당국자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김영철 부장과 이들 남측 고위 당국자들 간에는 “지속 가능한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정착, 국제사회와의 협력, 이런 부분들을 어떻게 잘 조율해서 나갈지에 대해 전반적인 의견교환이 있었다”고 하였다. 북한 대표단의 방남으로 한반도에는 “상시적으로 (남북대화가)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자평도 있었다. 결국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동안 이뤄진 남북 고위 당국 간 밀접한 접촉은 우리 특별사절단의 평양 답방으로 이어지도록 하였고 이는 남북관계의 획기적 발전 가능성을 예고해 주고 있기도 한다. 나아가 평창 동계올림픽은 체육교류를 통한 비정치적 분야의 실질적인 남북 교류협력 활성화를 위한 창을 열어놓기도 하였다. 평창올림픽에 임박해 북한이 참가를 결정했고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성사되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북한 주요 종목 선수들에게 와일드카드를 부여하며 평창 동계올림픽이 평화 올림픽이 되도록 적극 지원하였다. 개회식에서 남북 선수단이 한반도기 아래 공동 입장하는 것을 관철하게 되어 ‘남북은 하나다’는 이미지를 만방에 과시했다. 북한 응원단의 응원은 평화올림픽의 의미를 더해 줬다. 북한 예술단의 한국 공연도 또 다른 남북 문화교류의 장을 열어 놓았다. 서울과 강릉에서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의 공연이 화려하게 펼쳐졌다. 2002년 8월 서울에서 열린 8.15 민족통일대회 이후 16년 만에 열린 북한 예술단 공연이다. 향후 전망은?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동안 우리 정부가 이루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미북 접촉의 불발이 그것이다. 만약 미국 고위급 대표단과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접촉이 성사되었다면 핵문제 해결을 위한 미북 대화의 실마리라도 마련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부는 미북 대화를 중재하는 데 실패했고 비핵화 관련 미국의 입장과 북한의 입장이 그만큼 간격이 크다는 사실만을 확인하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핵 관련 미북 대화를 이끌어 내는 우리의 노력은 지속되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참가에 대한 답방으로 우리의 특별사절단이 평양을 찾았다. 여기에서 미북 대화를 이끌어 내는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미북 대화를 통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없이 남북관계 개선 노력에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북 양측이 남북대화의 끈을 놓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정부는 미북 대화가 성사되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과정을 걸을 때까지 남북대화의 불씨를 살려가고자 할 것이다. 대북제재와 압박으로 남북한의 본격적인 경제교류와 협력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남북교류협력을 발전시켜 나가고자 할 것으로 예상된다.   現 북한연구소 소장. 파리1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과 동양대 통일군사연구소장 등을 역임.
  • 지역간협의체 아셈(ASEM)의 유용성에 대하여
    저자
    박선희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EU센터 연구위원)
    발간호
    2018-14
    지역통합연구부: 동북아의 미래 전략과 ‘지역 간 주의(Inter-regionalism)’ 시리즈 3 (제도 및 사회·문화)   2017년 9월과 11월에 ASEM 교육장관회의와 경제장관회의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되었다. 2016년에는 제7차 아셈문화장관회의를 우리가 주최한 바도 있다. 일련의 아셈 장관급회담 개최를 계기로 2016년 출범 20주년을 기념한 지역간협의체인 아셈의 현주소를 점검하고자 한다. 1. 아셈의 새 틀? 새로운 운영방식? 지난 2016년 울란바토르(Ulaanbaatar) 아셈 정상회담은 출범 20주년을 기념했다. 아셈 정상회담은 1996년 출범 이래 매 2년마다 개최되어왔으며 20주년 회담은 「ASEM 20주년 : 연계성을 통한 미래 파트너십(20 years of ASEM: Partnership for the Future through Connectivity)」이란 주제로 열렸다. 지난 20여 년간 아셈은 아시아-유럽 간 대화와 협력을 위한 지역간협의체(inter-regional forum)로 성장해 왔다. 이는 1996년부터 2017년까지 총 11번의 아셈정상회담, 73번의 장관급회담, 107번의 고위급 회의(Senior Official’s Meeting), 135번의 국장급(DG Officials)회의, 301회의 아셈 관련회의 그리고 36회의 아셈포럼을 개최하였음을 의미한다.1) 연계가 취약했던 아시아와 유럽 간 협력을 도모하자는 취지에서 개최되기 시작한 본 지역협의체는 정치, 경제, 교육·문화 분야 등 이른바 3대 기둥(three pillars)이라 부르는 다양한 분야를 놓고 협력하는 아시아와 유럽 간 지역협의체로서 자리매김해왔다. 그뿐만 아니라 아셈 지역간협의체의 운영상 특성으로 아시아와 유럽 간의 상호협력뿐만 아니라 아시아 국가 간 상호협력 강화를 기대할 수도 있다. 아셈은 지역 대 지역(region to region)의 접근 방법으로 운영되며 EU라는 강력한 지역단위체가 유럽 파트너의 역할을 수행함으로 아셈 속의 아시아 파트너는 하나의 지역처럼 기능하도록 요청받고 있기 때문이다. 아셈의 운영방식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무국을 갖고 있지 않은 아셈은 정례화 된 정상회담, 외무장관회의 및 고위관리회의 준비를 위해 조정국(coordinator)체재로 운영되고 있다. 조정국은 2년 임기로 지역별로 의견을 수렴하는 연락관 역할을 수행하며, 아시아 지역에서는 동북아 및 아세안에서 각각 한 나라씩 그리고 유럽에서는 EU 의장국과 EU 대외관계청(EEAS)이 조정국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조정국을 통해서 먼저 지역별 사전의견 수렴 작업을 거치는 이 운영방식은 아셈의 주요 회의에 앞서 지역별 협력 및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게 하여 아셈 속에서 아시아 지역주의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설립 당시 25개국(+EU 집행위원회)이었던 아셈은 현재 EU 대외관계청과 ASEAN 사무국을 포함하여 총 53 회원(회원국과 사무국 포함)으로 확장되었다. 아펙(APEC)과 달리 아셈은 EU와 ASEAN지역기구의 확장된 회원국을 단계적으로 모두 받아들였다. 2008년 제7차 정상회의부터 ASEAN+3의 틀과 EU 회원국 이외의 국가까지도 가입을 승인하여서 인도, 몽고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위스, 노르웨이 그리고 아시아와 유럽 두 지역 어디로도 분류가 모호한 러시아, 호주, 뉴질랜드로 외연이 대폭 확대되었다(아래 표 1 참조). 1·2·5차의 확장이 EU나 ASEAN의 자체 회원국 확대에 의한 아셈 회원국 확대 성격이 있다면2) 3·4차 확장은 이와는 성격이 다르다. 특히 3차 확장은 아시아나 유럽으로의 분류가 사실상 어려운 국가들을 포함하고 있다(호주, 뉴질랜드, 러시아). 이 세 국가는 가입 당시 임시 제3 부류(Temporary Third Category)로 분류되었는데 이는 지금까지 지역 대 지역 접근방식으로 운영되어온 아셈의 운영방식(modus operandi)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하지만 2012년 EU 측 자체 분류법에 의해 EU가 대양주 및 유라시아 국가를 아시아로 묶는 북동남 아시아(North East and South Asia: NESA)3) 를 고안하였으며 여기에 임시 제3 부류에 속하는 국가들을 아시아 지역으로 분류하여 아시아 대 유럽의 지역 대 지역 접근법을 고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서 아셈의 조정국체제는 여전히 유효하여 2017년 12월 아시아 국가로 조정국을 담당하는 나라는 필리핀(ASEAN 국가)과 파키스탄(비ASEAN 국가)이며 EU 측은 대외관계청과 2017년 하반기 의장국인 에스토니아이다. 회원국이 53개국으로 확대된 이후 조정국의 역할은 회원국 간 사전 의사조율 필요성이 증대되어 그 중요성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다. 이를 위해 조정국 회의를 수시로 개최하여 협력사업 추진 상황에 대한 검토와 보고의 역할이 한층 더 요구되어지고 있다. 하지만 ASEM 초창기보다 회원국이 크게 늘어나면서 정체성과 결속감 저하가 훨씬 심해지고 있어 조정국체제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ASEM의 존재 의의와 다양한 회원국 간의 협력 의지를 확인하려면 최소한의 제도화가 필요하지만 현재 유럽 측은 EU가 조정국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사무국 설치 필요성을 공감하지 않으며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아시아 측에서만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2. 아셈의 연계성(connectivity) 강화 계획: ASEAN과 중국의 영향력 강화 2014년 밀라노에서 개최된 제10차 아셈정상회의는 아시아와 유럽 간의 연계성 강화를 강조하였으며 아셈 발족 20주년을 기념하는 제11차 정상회의(ASEM 20주년: 연계성을 통한 미래 파트너십)에서도 연계성을 강조한 바 있다. 여기서 연계성이란 인적교류를 포함하여, 무역 및 투자, 복합수송망과 같은 인프라 구축 등 다양한 차원에서의 연계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ASEAN이 강조하는 연계성 추진 전략과 맞닿아 있다. 2010년 제17차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아세안 연계성 종합계획(MPAC: Master Plan on ASEAN Connectivity) 2010' 채택을 계기로 연계성이 ASEAN 역내 통합의 주요 의제로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3대 부문별 사업으로 구성되는 MPAC 2010 연계성 사업은 인적연계성을 포함하여 아세안 고속도로네트워크 등과 같은 물리적 연계성과 무역장벽 해소를 통한 상품서비스 이동 자유화 등을 포함하는 제도적 연계성을 포함한다. 아셈 설립에 있어 중추적 역할을 한 ASEAN은 ASEAN 특유의 방식인 ‘아세안 방식(ASEAN Way)’을 아셈의 운영법칙으로 삼을 수 있게 할 만큼의 영향력이 있었다면 아세안적인 이니셔티브가 지금도 여전히 아셈회의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ASEAN의 MPAC 연계성 사업 이행은 아셈의 의제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APEC, ASEAN+3, 동아시아정상회의(EAS) 그리고 아시아협력대화(Asian Cooperation Dialogue: ACD)등과 같은 범아시아 차원의 회의로도 연계성 개념이 전파되어 활용되고 있어 이를 통해 아세안의 역량을 새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이처럼 ASEM 속에서 여전히 ASEAN적 방식이 유효하지만 중국의 영향력 강화도 동시에 관찰된다. 중국의 신국가전략으로 2013년 시진핑 주석이 발표한 일대일로 구상은 중국과 인접한 국가들을 해로와 육로로 연결하여 유라시아 지역에 대한 연계를 강화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 구상 추진을 위해 아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일대일로 구상이 중국이 유럽 및 중앙아시아 즉 유라시아의 연계 및 상호의존 강화를 통해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전략에 의한 중국 압박과 포위망을 우회하려는 시도라면 중국은 미국이 참여하지 않고 있는 아셈협의체를 중국의 영향력 확대 전략을 펼칠 수 있는 장으로 유용하려 하고 있다. 아셈의 설립 이후 20년 사이에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아셈 내에서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아셈 내의 중국의 역할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공존하고 있다. 3. 세 번째 기둥의 중요성 아셈은 3대 협력분야인 정치·경제·문화/교육에 걸친 포괄적인 영역을 다루는 지역협의체다. 아셈이 말잔치(talk shop)에 불과하다고 폄하되는 이유 중에는 아셈 설립의 직접적 이유가 되는 경제협력분야에 있어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아시아와 유럽 간 경제협력강화 필요성에 의해 출범한 아셈이 지난 12년 동안 경제장관회의를 개최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2005년 로테르담 경제장관회의가 고위급회의로 축소되어 개최된 이후 12년만인 2017년에 서울에서 재개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셈에 대한 평가가 균형 있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아셈이 세 가지 기둥으로 구성된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역간협의체로서 아셈의 틀이 공고해지기 위해서는 양 지역 간의 상호이해와 문화 차이에 대한 이해를 증진할 수 있는 세 번째 기둥(문화, 교육)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세 번째 기둥이 아셈 형성 초기에는 정치· 경제 영역의 협력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부차적 영역으로 인식되었다면, 세 번째 기둥은 아셈 사업의 가시성 제고와 아셈 틀의 유용성을 드러내는 중심 영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기둥의 구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으로는 아시아 유럽재단(ASEF)4)을 꼽을 수 있다. 이 재단은 양 지역 간의 학술교류, 문화교류 및 인적교류 촉진을 통해 상호이해를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프랑스와 싱가포르의 제안으로 1997년도에 만들어졌다. 사무국이 없는 아셈이 ASEF를 제도화한 것은 세 번째 기둥에서 다루는 영역이야말로 아시아와 유럽 간 협력 강화를 위해 필수적임을 의미한다. ASEF는 청년 기업가(Young Entrepreneur)지원사업, 아시아-유럽 젊은 지도자회의, 모의 ASEM정상회의 등을 통해 양 지역 청년의 인적 교류확대사업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셈의 유일한 지침서인 ‘아시아 유럽협력 기본 지침서(AECF)'는 ASEF의 중요성을 재확인 시켜주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앞으로도 ASEF의 활동을 주목해야 할 이유다. 아셈의 세 번째 기둥의 중요성이 한층 부각되기 시작한 데에는 2001년 9ㆍ11사태와도 관련이 있다. 종교적 가치를 표방한 테러리즘과 극단주의라는 현대 사회의 복합적인 위협에 맞서 아셈은 세 번째 기둥을 중심으로 상이한 문화 간의 이해를 증진하는데 필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2003년에 첫 문화장관회의가 개최된 것은 9ㆍ11사태가 가장 직접적인 동인이었다. 하지만 ‘다양성 속의 통일'이라는 제목으로 베이징에서 2003년도 12월에 개최된 첫 번째 문화장관회의는 아시아와 유럽의 상이한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하는 의도뿐만 아니라 더 구체적으로는 당시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추진중이였던 문화다양성 협약 채택에 직접적인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ASEM회담은 아시아와 유럽 파트너가 자신들의 문화가 미국의 거대자본이 생산하는 문화로 인해 획일화되어가는 압력에 저항하려는 공동의 관심사를 위해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장으로 유용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세 번째 기둥은 점차적으로 지역협력체로서의 아셈의 무게에 더 한층 힘을 실어줄 수 있게 되었다. 제7차 문화장관회의는 우리나라 광주에서 ‘문화와 창조경제’라는 주제로 2016년 6월에 개최되었다. 아시아와 유럽 국가들이 창조산업을 육성해 부가가치 창출과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위해 상호협력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아셈문화장관회의는 양 지역 간 협력을 모색하는 자리로만 기능한 것이 아니라 한·중(2017년 한중수교 25주년 기념하여 문화교류주간 운영 방안 의견 교환)과 한·일간의 문화협력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하는 자리로서 기능할 수 있었다. 한편 지난 2017년 11월에는 제6차 ASEM 교육장관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2008년 독일에서 처음 개최되어 올해 10주년을 맞이하는 본 장관회의에서는 10년 후의 양 지역 간 교육협력 비전을 제시하였다. 서울회의는 청년고용증진, 아시아-유럽 간 인적교류 확대, 온라인 교육(MOOC) 적극적 활용 등을 내용으로 하는 ‘서울 선언’을 채택하기도 했다. 서울선언 제6조에서 아셈 듀오(ASEM DUO)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에라스무스 플러스(Erasmus Plus)와 같은 학술 교류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아시아와 유럽 간 인적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고등교육 자격 및 학점 인정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미 유럽연합 회원국 간 학술교류 프로그램인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이 한·중·일 학술교류 프로그램인 캠퍼스 아시아 발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듯이 한·중·일을 넘어선 아시아 국가 간 교류 활성화 방안도 아셈을 통해 추진력을 얻을 수 있으리라 본다. 2012년 동아시아정상회담(EAS)에서 한-아세안 대학생 교류프로그램, 한-아세안 사이버 대학, 아세안 과학기술영재센터 운영 등 교육투자촉진 분야 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된 바 있는데, 동아시아정상회담뿐만 아니라 아셈을 통해서 이와 같은 학술 교류 사업이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처럼 우리는 지역간협의체인 아셈 속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두 가지 지역주의를 기대할 수 있다. 아셈을 통해서 한편으로 아시아와 유럽 간의 연계성 및 협력 강화를 기대하게 된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아세안 국가를 포함하는 아시아 파트너 국가 간의 협력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이는 아셈이 회원국의 확장으로 훨씬 더 다양한 국가들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아셈 내 아시아 국가 간 교류 강화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서 동북아를 넘어서는 남방, 북방 지역을 번영의 축으로 삼는 현 정부의 신남방정책 및 신북방정책 추진의 발판으로 아셈 가용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1) ASEMinfoBoard http://www.aseminfoboard.org/events/0/1?field_upcoming=All 2) 인도, 몽골, 파키스탄의 참여는 EU회원국에 비해 회원국 수의 규모가 작은 아시아 회원국의 확장 필요성에 의해 추진된 부분도 있다. 3) NESA는 EU 측 분류법으로 현재 한국, 중국, 일본, 인도, 몽골, 파키스탄, 호주, 뉴질랜드, 러시아 그리고 방글라데시가 포함되어 있다. 4) ASEF는 아셈 공식 페이지인 ASEM Infoboard의 운영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http://www.aseminforboard.org). 상설사무국이 없는 상황에서 ASEM 정보게시판은 가상의 사무국 기능을 담당한다.   1. 아셈의 새 틀? 새로운 운영방식? 2. 아셈의 연계성(connectivity) 강화 계획: ASEAN과 중국의 영향력 강화 3. 세 번째 기둥의 중요성 現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EU센터 연구위원.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 유럽학고등연구소(IHEE)의 유럽현대사 박사준비과정(D.E.A)을 마치고 Paris 8대학 유럽학 연구소(IEE)에서 정치학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HK연구교수 및 동대학원 국제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역임. 박사학위 연구주제는 아세안(ASEAN)을 중심으로 본 아셈(ASEM)으로 유럽연합의 지역간 협력, 이민 정책, 문화정책 등 유럽연합의 제반 정책에 대한 논문을 집필하였음.
  • What If There Is A False Alarm In North Korea?
    저자
    Han In-Taek (Jeju Peace Institute)
    발간호
    2018-13
      Last year, on December 1st, Hawaii received attention both domestically and abroad for being the first and only one of the 50 states in the United States to conduct resident evacuation drills to prepare for North Korea's nuclear missile attacks. Last weekend, a false warning that a ballistic missile was approaching Hawaii left residents and tourists in fear and confusion, attracting worldwide media attention again. Meanwhile, this week Japanese public broadcaster NHK also issued a false report that North Korea fired a missile. The issuance of false alarms in Hawaii proved to be a mistake committed by a state employee during a duty shift, and the false alarms of NHK in Japan were promptly confirmed to have been caused by improper manipulation of the equipment. Military response measures were not followed because the U.S. military and the Self Defense Forces knew that the missile launches were not a real situation. Following these incidents, improvements in the system and procedures are expected to prevent false alarms in Hawaii and Japan. A false alarm is not a mistake that only the state government or the press make. Stanislav Petrov, who passed away recently, was the real life person of the documentary "The Man Who Saved the World". During the Cold War in 1983, Petrov was a lieutenant colonel of the Soviet Union Forces and worked at the nuclear war control center. On September 26, 1983, while Petrov was on duty, an alarm was issued warning that the United States had launched five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s to the Soviet Union. Petrov, however, judged that it was a false alarm caused by an error in the satellite alarm system and did not report to the head office. Had Petrov judged the false alarm to be a real situation and reported to the head office, nuclear war would have broken out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During the Cold War,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had adopted the strategy of "launch on warning", which required all ground-based nuclear missiles to be fired when the radar signaled an alarm. It is for this reason that the documentary based on his story was titled "The Man Who Saved the World". Petrov prevented the outbreak of an accidental nuclear war, but was discharged early after being held responsible for failing to record the daily log that day. Petrov later recalled that his judgment that day was based on intuition, and that he thought the probability of being right was 50 percent. This incident was not known until the end of the Cold War. Such information is classified, and so there is way to confirm whether there were more false alarms - and if so how many - in the Soviet Union and modern day Russia. False alarms are not limited to the Soviet Forces. In his autobiography, William Perry, the Secretary of Defense under the United States Clinton administration, told an anecdote from when he served as Deputy Secretary of Defense. On November 9, 1979, Perry woke up to a call from the North American Aerospace Defense Command. The duty officer reported that the computer showed two hundred Soviet ICBMs flying to the United States. He further reported that he determined that it was a false alarm. In the end, it turned out that the duty officer was right. It was later revealed that false alarms were caused by an accidental installment of a training tape on the computer. Recalling this incident, Perry questioned what would have happened if the duty officer had not make the right decision that day, and pointed out that there were serious deficiencies in the nuclear alert decision process in the past and even today. At the time, the United States, like the Soviet Union, was adopting a strategy of "launching on warning". Missile attacks can take as short as a few tens of minutes from launch to reaching the target, so there is no time to examine if the alarm is true or false. Whether the information is correct or faulty, a decision must be instantly made. In the aforementioned cases, the reason that nuclear war did not occur despite the false alarm was that both Lieutenant Petrov and the U.S. duty officer intuitively determined that the alarms were false and did not report to the head office. If they had immediately reported to the top, Soviet Union General Secretary Yuri Andropov and United States President Jimmy Carter would have had to decide whether to launch a counter-attack missile in less than 10 minutes. As seen from the case of the North American Aerospace Defense Command in 1979, the case of the Soviet nuclear war control center in 1983, and the recent cases of Hawaii and Japan, false alarms can occur in any country anytime. Therefore, it can be inferred that false alarms can also occur in North Korea. What would happen if a false alarm occurred in North Korea? If a false alarm shows that an attack is imminent, can North Korean duty officers discreetly judge and postpone reporting to the top, just as past U.S. and Soviet officers did? If a false alarm were immediately reported to the North Korean leadership without being verified, what decision would the North Korean leadership make? Unless North Korea's warning system is perfect, this is a perfectly possible scenario. Thus, it is necessary to ask these questions and contemplate. While personal factors such as an officer’s intuition were one of the reasons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did not immediately initiate a counterattack and observed carefully, there was also a structural factor: the “balance of terror”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Both countries had enough nuclear capacity (second strike capability) to destroy the other country even after a preemptive strike. Thus, even if a country succeeded in a preemptive strike, it could not avoid its own destruction. The same is still true for the United States and Russia. While the balance of terror implies the extinction of humankind if nuclear war breaks out, it also creates a situation in which a preemptive attack will inevitably result in the attacker’s own demise. Thus, the balance of terror is seen to have paradoxically reduced the incentive for preemptive attacks, preventing the outbreak of a nuclear war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This structure is not irrelevant to the aforementioned cases, where the officers’ judgments of a false alarm prevented the precarious situation of having Soviet General Secretary Andropov and U.S. President Carter from deciding a counter missile attack in 10 minutes. Under the balance of terror, there is virtually no or very little incentive for either the United States of the Soviet Union to launch a preemptive strike. Therefore if an alarm is issued, it is logical to determine that the alarm was more likely caused by a device malfunction than an actual preemptive attack. The current situ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is very different from that of United States-Soviet Union or United States-Russia North Korea has relatively fewer nuclear weapons, and SLBM technology and SLBM submarines have not yet reached the completion stage. Therefore, it is reasonable to assume that North Korea has a weak nuclear capability, or its ability to retaliate after a preemptive strike. On the other hand, while the Republic of Korea is under the U.S. nuclear umbrella, it does not independently deploy or possess nuclear weapons. Hence, if an attack from North Korean were imminent, rather than become helpless victims of nuclear weapons, the Republic of Korea’s strategy is to strike first to destroy North Korea’s nuclear weapons and neutralize leadership before the nuclear weapons are launched. While North Korea is vulnerable to preemptive attacks and the Republic of Korea is in a situation where it must strike first in the event of an emergency, U.S. hard-liners against North Korea and some Republic of Korea citizens have argued that the Republic of Korea must preemptively attack before North Korea perfects its nuclear weapons and capacity. These claims may not be limited to assertions. In 1994, the United States had as a matter of fact planned a surgical strike on North Korea's nuclear facilities. If President Carter had not resolved the first North Korean nuclear crisis by visiting North Korea, the plan to attack North Korea might have been carried out. Under these circumstances, North Korea may recognize that there is a high possibility of a preemptive attack on North Korea regardless of the actual intentions of the Republic of Korea or the United States. Therefore, in the case of a false alarm, it is likely that North Korea will not see the alarm as a human or device mistake but as a real attack and respond to a military manner. Especially as the development of stealth weapons makes it difficult to detect attacks, there may be more mistakes, such as radar misdiagnosing a bird or clouds for a stealth weapon. North Korea's leadership may have strategically adopted ‘launch on warning’ like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did in the past, rather than risk losing their nuclear weapons or becoming removed. Of course, it is not possible to accurately grasp North Korea's nuclear strategy from the outside. But the possibility that North Korea followed U.S. and Soviet precedent and adopted the same strategy cannot be dismissed. If such analysis is accurate, the North Korean leadership will order the total mobilization of nuclear weapons and counterattack upon receiving a report. The balance of terror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contributed to preventing accidental warfare. However, it is neither possible nor desirable to reproduce the balance of terror on the Korean peninsula in order to prevent an accidental war with North Korea. Therefore, new approaches and ideas are needed to prevent accidental warfare on the Korean peninsula by false alarms. Dialogue between the North Korea and the Republic of Korea has resumed this year. Although the discussion is currently focused on the success of the Pyeongchang Olympic Games, it is worth suggesting as future agenda a joint research on ways to prevent accidental warfare by false alarms. Unlike the incidents in Hawaii last week or that in Japan this week, if there is a false alarm in North Korea, there could be serious consequences. Preventing accidental warfare is a common interest to both Koreas. Therefore, dialogue between the two Koreas is necessary and may be feasible.   Han In-Taek is Director of Research at the Jeju Peace Institute. He has done research on nuclear strategy, security cooperation, and public diplomacy. He received his Ph.D. in political science from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and his M.A. in political science and B.A. in economics from Seoul National Uni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