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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 인민중시정책의 표리부동에 대한 대응방향
    저자
    방호엽(국방대학교 안보문제연구소)
    발간호
    2016-4
      유엔이 북한 인권문제를 압박하기 시작한 것은 유엔인권위원회(UNCHR: United Nations Commission on Human Rights)에 북한인권 특별 보고관을 임명하여 2008년부터 매년 북한 인권결의를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그리고 유엔은 2013년 3월, 서울에 유엔인권조사위원회(COI: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를 설치하여 1년간의 조사활동을 통해 북한이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침해를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 유엔인권이사회와 유엔총회는 2014년 3월 28일과 2014년 12월 18일에 각각 유엔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의 권고사항 대부분을 반영한 북한 인권결의를 채택하였고, 안전보장이사회차원에서도 논의의 장이 마련되었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북한은 2009년 유엔에서 제시한 “제1차 보편적 정례인권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보고서”의 권고를 상당수 수용한 이후 2014년 제2차 보고서의 건강, 교육, 식량권과 문화생활권리를 상당 부분 포함시켰다고 밝혔다. 그리고 여성·아동·장애인 그리고 노인 등 취약계층 보호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이례적으로 ‘취약계층(vulnerable groups)’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더불어 유엔의 인권협약을 존중하여 인민의 인권을 보전할 수 있도록 인권 관련법을 수정·보완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2014년 제69차 유엔총회에서는 리수용 외무상이 19년 만에 참석하여 연설을 통해 “유엔의 인권업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뜻을 이례적으로 밝히기도 하였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조치에 표면적으로는 외교적 변화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편, 유엔총회에서 북한 인권결의안이 통과된 직후 북한은 인권문제를 체제 내부의 결속수단으로 활용하는 또다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2014년 11월 25일, “反공화국 인권소동을 단호히 짓부셔버리자” 라는 구호 아래 평양시 군민대회를 개최한 이후 29일까지 지방의 각급 단위로 국제사회의 조치에 대해 비난하는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인권문제가 북한사회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 체제유지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에서 대중을 선동하여 단합을 유도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북한 인권정책은 “모두가 평등하고 똑같은 인권을 가져야 하지만 지구상의 모든 국가들이 서로 다른 전통과 민족성, 문화와 사회발전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기준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고 하는 강한 ‘상대주의 인권관’을 바탕으로 한다. 이것은 인권이 곧 ‘주권이고 국권’이라고 강조하는 인지적 논리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세 가지의 단계로 나타난다. 첫 번째 단계는 인권은 국권으로 이는 주민의 존엄, 이익을 가장 중시하며 그것을 최고의 높이에서 실현시켜 주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주의 조국을 수호하는 것이 곧 인권을 수호하는 것이라고 하는 논리이다. 두 번째 단계에서 북한은 인권이사회와 유엔총회의 북한 인권법결의와 같은 특정적 관여가 인권문제를 가지고 북한을 범죄자로 만든 후 국제적 압력과 제재를 가하려는 국제사회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써 이 모든 행위가 침략의 서곡이라고 주장한다. 세 번째 단계로 북한은 유엔의 특정적 관여로 인하여 촉발되는 무력 침략에 대처하고 주민의 인권과 북한의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서 강력한 자위적 힘을 길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지키는데 있어서 가장 믿음직한 자위적 힘이 바로 막강한 군사력임을 밝히는 한편, 선군의 기치를 높이 들고 군대를 강화하여 군대와 인민이 하나로 단결해야만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이를 인지적 논리로 구조화 시켜 노동신문 독보회 시간을 통해 지속적으로 북한주민들에게 학습시키고 있다. 나아가 “인권이 곧 주권이며 유엔 인권메커니즘이 인권의 이름으로 북한의 국권을 위협하기 때문에 선군정치 하에 군사력을 확대하여 유엔 인권메커니즘으로 관여하는 데에 항의하는 군중집회를 열어 단결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북한이 사회주의권의 붕괴과정에서 서구의 인권문제 개입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믿는 것에 기인한다. 즉, 국제사회가 북한의 수령체제를 무너뜨리는 길은 인권사상을 북한 내부에 자리 잡게 하는 것이라고 보고, 체제에 대한 압박수단으로 인권문제를 활용한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때문에 유엔인권이사회와 유엔총회의 인권결의안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협조하면서도 미국 등 개별 국가의 북한인권법 제정 등에 대해서는 체제안보논리를 내세워 주권 및 내정간섭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강력히 반발하는 것이다. 최근 김정은의 인민중시정책과 관련된 문헌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북한 지도자의 모든 지시사항과 연설문 및 회의 결론 등은 노작(勞作)을 통해 사상적·이론적 지침을 담는 점을 고려하여 2012년부터 발표된 김정은 노작을 중심으로 그 의도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김정은은 2012년에 “위대한 김정일 동지를 우리당의 영원한 총비서로 높이 모시고 주체혁명위업을 빛나게 완성해 나가자”라는 노작을 통해 “인민생활향상과 경제강국 건설에서 결정적 전환을 맞이하여 인민들이 먹는 문제를 원만히 해결할 것”을 주장하였다. 2013년에는 “마식령속도를 창조하여 사회주의 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새로운 전기를 열어나가자”라는 노작을 통해 인권과 무관한 ‘마식령속도’라는 특징만을 나타냈다. 2014년 노작에서는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우리식 경제관리 방법을 확립할 데 대하여” 라고 주장하며 경제 분야 개혁에 집중하는 특징만을 나타냈다. 이는 2015년 노동당 창건 70돌이 되는 시점을 중요한 결속 해로 보고 경제 분야에 집중하기 위함이었다. 2015년도가 되어 비로소 김정은은 신년사를 통해 ‘인민대중제일주의’를 강조한 이후 “세포 지구 축산기지건설을 다그치며 축산발전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자”라는 노작에서 “인민들에게 넉넉한 생활을 마련해 주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라며 인민중심의 정책을 실현할 것을 예고하였다. 그리고 10월 당 창건 70주년 열병식에서는 25분간의 연설을 통해 “인민중시, 인민존중, 인민사랑”을 표방하면서 “앞으로 영원히 인민대중제일주의의 성스러운 역사를 수놓아가겠다”며 총 90여 번의 인민중시 역할을 강조하였다. 이어 당 창건 기념일을 맞아 발표한 논문에서도 “인민을 하늘같이 여겨 인민을 무시하는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 투쟁을 강도 높이 벌일 것”을 주문하였다. 북한이 이러한 인민중시정책을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권력의 상대적 안정화가 필요한 상태임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두 가지 북한의 의도가 고려될 수 있다. 첫째, 경제 분야에 대한 개혁과 이를 통한 자신감을 통해 대중적 신념을 도모하여 체제유지를 위한 확고한 틀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이거나 둘째, 체제 자체의 위협을 미리 예견하고, 이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대중적 지지를 이끌기 위한 심리적 노력의 일환으로서 이 모든 것이 민심이반을 우려하여 이를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큰 것으로 분석된다. 결론적으로 김정은의 인권중시정책은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表裏不同)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때문에 2013년에 한국에 설치된 인권조사위원회의 활동이 결실을 맺게 되어 국제사회의 압력이 더욱 세지고 더불어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인권법이 통과가 되면 북한은 체제유지를 위해 민심이반을 적절히 통제하면서 반발의 이중전략을 구현할 것이다. 즉 유엔에는 형식적인 협조를, 한국과 미국에는 비난과 도발을 병행하는 형태가 나타날 개연성이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응방향으로 주민생활 향상과 관련하여 4가지의 관여방법으로 구분하여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 구체적인 방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적 관여방법으로 북한 여성들이 실질적인 남녀평등권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북한은 광복과 함께 남녀평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정권 수립 이후 헌법 등을 통해 남녀평등을 보장한다고 하였지만, 현실적으로 여성은 사회 활동 분양의 노동력 확보차원에서만 집중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식량난으로 인하여 가족의 생계를 여성들이 떠맡에 됨으로써 가장으로서 절대적 지위를 누려왔던 남편들의 태도가 바뀌게 됨에 따라 북한 여성들의 사고 또한 변하고 있다. 따라서 북·중, 남·북 접경지역에 일자리를 더 많이 창출하여 자연스럽게 여성인력들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과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여성의 사회적 인구가 증가하게 되면 민주주의적 인권을 인지한 여성들은 지위 향상의 당위성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둘째, 특정적 관여방법으로 북한 주민들의 종교적 믿음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1990년대 이후, 북한은 식량난으로 구호물자 획득을 위해 미국의 선교단체를 평양에 초청하는 등 서방종교단체들과의 접촉을 적극적으로 시도한 사례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종교적 지원이라는 형식 속에 동시예배·미사·법회 등을 개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종교에 종사하는 인원이 증가하면 자연스럽게 종교적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어 인권향상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셋째, 전문적 관여방법으로 장마당의 여건을 활용하여 주민들의 생활여건을 향상시키는 한편, 북한의 경제여건을 장악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현재 북한은 대외환경이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허용하는 폭이 점차 늘어나고 주민의 소비생활이 개선되고 있으며, 도시건설시장이 활성화되는 등 시장화 효과가 경제전반에 나타나고 있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북한의 장마당은 가격을 조절하는 기능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수요공급에 대한 시장원리를 장마당에 접목을 시켜 가격 안정화에 직접 참여하는 방안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지역별로 상이한 쌀값을 평균화시키는 노력을 통해 수요공급을 서서히 장악해 가는 방법을 한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넷째, 군사적 관여방법으로 심리방송작전 외에 전단작전까지 실시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인권 압박에 대한 대안을 핵보유국 인정과 핵을 운반할 수 있는 미사일 확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북한은 1월 6일에 4차 핵실험이라는 깜짝 카드를 사용하였으며, SLBM 등의 미사일 실험을 통해 주민들로부터 체제에 대한 신뢰를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에게 핵무기가 강성대국의 상징이자 체제결속을 도모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믿는 북한 주민들에게 핵을 기반으로 한 ‘핵 인질전략’과 ‘핵 그림자전략’은 오히려 주민들의 삶의 질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안 된다는 현실을 북한의 전 지역 주민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 現 현재 국방대학교 안보문제연구소에서 전문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경남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음. 논문으로는 "북한 강성대국론의 구조적 한계와 변화 전망"(2013), "남남갈등이 통일정책에 미치는 영향"(2014) 등이 있음.
  • EU의 이민망명 정책: 전망과 한계
    저자
    이종서(중원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발간호
    2016-5
    [fusion_builder_container hundred_percent="no" equal_height_columns="no" menu_anchor="" hide_on_mobile="small-visibility,medium-visibility,large-visibility" class="" id="" background_color="" background_image="" background_position="center center" background_repeat="no-repeat" fade="no" background_parallax="none" parallax_speed="0.3" video_mp4="" video_webm="" video_ogv="" video_url="" video_aspect_ratio="16:9" video_loop="yes" video_mute="yes" overlay_color="" video_preview_image="" border_size="" border_color="" border_style="solid" padding_top="" padding_bottom="" padding_left="" padding_right=""][fusion_builder_row][fusion_builder_column type="1_1" layout="1_1" background_position="left top" background_color="" border_size="" border_color="" border_style="solid" border_position="all" spacing="yes" background_image="" background_repeat="no-repeat" padding_top="" padding_right="" padding_bottom="" padding_left="" margin_top="0px" margin_bottom="0px" class="" id="" animation_type="" animation_speed="0.3" animation_direction="left" hide_on_mobile="small-visibility,medium-visibility,large-visibility" center_content="no" last="no" min_height="" hover_type="none" link=""][fusion_text]   유럽연합은 리스본 조약의 발효에도 불구하고 역내시장, 사회, 지역, 환경, 에너지, 운송, 소비자 보호, 자유·안전·사법 지대와 같은 정책을 비롯한 이민·망명정책은 여전히 유럽연합과 회원국 간의 공유 권한으로 남겨 놓았다. 이는 개별 회원국이 정책 선호의 차이와 자국의 사회안보가 위협받는 상황에 따라 공동체의 정책 결정에 반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회원국들이 이민·망명정책을 국가주권 및 자율성 문제 등과 함께 안보적 측면에서 접근함으로써 이민자 유입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려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28개 회원국은 아프리카 국가들과 ‘순환이민(Circular Migration) 협력기반(Co-operation Platform)’을 조성할 필요성에 대해 합의하였다. 순환이민이란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국가의 이민정책 수단 중 하나로, 고급 기술과 일거리를 가져오는 이민자들에게는 국경을 개방하는 반면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들은 단기적으로 순환하도록 만드는 제도이다. 그러나 실제로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회원국마다 인식의 차이가 있어 이 제도는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다. 몇몇 회원국들은 순환이민이라는 제도를 숙련 노동자들에게만 적용하였고, 또다른 회원국들은 농업, 건설, 여행업계에서 일자리를 찾는 계절이민에만 적용했기 때문이다. 순환이민제도에 앞서 2007년 유럽연합은 역외국가들에 유럽연합 내에서의 교육훈련 기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불법이민문제를 공동으로 관리하자는 취지로 ‘이동동반자협력(mobility partnership)’ 프로그램을 추진한 바 있다. 2008년, 케이프베르데(Cape Verde)와 몰도바(Moldova)가 이동동반자협력 프로그램을 먼저 진행하였다. 이후 2009년 그루지아(Georgia), 2011년 아르메니아(Armenia), 2013년 아제르바이젠(Azerbaijan), 모로코(Morocco), 2014년 튜니지아(Tunisia), 요르단(Jordan)등 협정을 맺은 국가와는 새로운 거주 허가 및 노동 비자와 장기간의 다국 입국 비자와 같은 혜택을 부여하였다. 그러나 협정을 맺은 국가 수가 적고 법률적 구속력이 없어서 실질적 효과는 크지 않은 상태이다. 이번 시리아 난민사태로 망명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난민들의 본국 귀환을 받아들이는 아프리카 국가들에 10억 유로(약 1조 3300억 원)를 지원해주는 방안을 마련했다. 회원국에게는 난민 한 명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1인당 800만 원이 지급될 것이다. 또한, 유럽연합의 정상들은 인접국 간접지원 방안으로 국제난민구호기구에도 10억 유로를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난민 쿼터제’로 유럽연합은 기존 목표 4만 명에 추가로 12만 명의 난민을 회원국별로 할당하는 방안이다.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등 4개 국가는 반대했고 핀란드는 기권했다. 난민 쿼터제를 둘러싼 갈등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동유럽 국가들은 경제적 이득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은 난민 수용을 거부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사회결속기금을 줄인다고 압박을 가하는 반면, 동유럽 국가들은 국내 반발을 고려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움으로써 협상력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난민들의 시민권 획득은 이와 별개의 문제이다. 난민들이 유럽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회원국  국적 취득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유럽시민권 획득 자격 요건은 회원국마다 다르기 때문에 취득의 용이함에 따른 이민 선호국이 생겨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속지주의를 표방하는 프랑스에 거주하는 이민자 후손들은 18세가 되어야 프랑스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이는 18세 이후에나 자연스럽게 유럽연합 시민이 되어 역내에서 자유롭게 이동하고, 거주할 수 있는 유럽연합의 권리를 누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독일은 속인주의와 속지주의를 모두 채택하고 있다. 아이의 출생 시 적어도 부모가 독일에 8년 이상 합법적으로 거주했고, 무기한 체류허가나 영주권을 소유하고 있다면 그 자녀는 자동으로 독일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다. 이처럼 회원국별로 다양한 국적 취득 방법은 난민들의 유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과거 집행위원회는 유럽연합의 고질적인 전문인력 부족 현상을 완화할 목적으로 2007년 가을 블루카드(blue card)라는 유럽연합 차원의 노동 비자를 제안했다. 블루카드를 소지한 노동자는 2년 동안 유럽연합 내 어느 국가에서라도 2년간 거주할 수 있다. 주로 비유럽권 출신의 의사, 엔지니어, IT 전문가 등이 대상이다. 30~90일 이내에 노동 및 체류 허가를 내주고 블루카드를 발급받으면 90일 이내에 가족도 데려올 수 있다. 이들을 고용한 고용주는 임금을 역내 최저임금의 3배로 지불해야 하며, 이는 적어도 1년 이상 보장되어야만 한다. 집행위원회는 블루카드를 인정할 수 있는 범위와 블루카드 소지자의 보건, 세금, 연금을 보장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이주자들에게 있어서 블루카드의 장점은 체류 만기 이후 기한 연장이 가능하며, 유럽연합의 어떤 곳에서라도 일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한편, 이번 시리아 난민 사태로 인해 향후 블루카드 소지자들의 이동을 둘러싼 회원국들의 반대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며 지속 여부 또한 불투명하다. 영국은 블루카드 시스템에 참여하지 않고 스스로 마련한 ‘점수에 기반을 둔(pointed-based)’ 이주 관리 시스템을 채택했다. 이 시스템은 항목별로 점수를 만들어서 75점 이상의 점수를 받게 되면 비자를 내주고, 그렇지 않으면 비자를 주지 않는다. 영국은 이 시스템 하에 노동시장에서 부족한 인력을 보충하기 위해 기술자와 숙련 노동자에게 취업비자를 내주었다. 영국은 포인트 제도가 관료주의적이고 비효율적이라고 비난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쿼터제보다 세련된 제도라고 반박한다. 집행위원회의 초국가적 결단과 달리 회원국들은 난민 문제를 국가주권 및 자율성 문제 등과 함께 안보적 측면에서 접근함으로써 난민 유입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려 하고 있다. 난민 유입으로 인한 사회보장제도의 붕괴, 극우세력의 확산 등 국가안전망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보는 시각이 존재하는 한, 회원국들은 난민 문제를 철저하게 국익에 부합하게끔 노력할 것이다. 독일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리스 부채 해결을 위해 온정을 베풀려는 타 유럽연합 회원국들과 정면으로 맞섰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협박과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의 양적 완화정책 제안도 단호하게 배격했다. 메르켈 총리는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며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면서 원칙을 내세우고 온정주의를 배격했다. 그러나 이번 시리아 난민사태를 대하는 메르켈의 태도는 온정주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선 독일은 비록 시리아 전체 난민 수에 비하면 그리 많지 않은 숫자이지만 이들 중 약 3만 1000명을 추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독일이 이러한 정책을 펼치는 이유는 독일이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과 같이 출산율 저하로 노동력 부족이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독일 인구가 2013년 기준 8,130명에서 2060년 7,080명으로 감소할 것이라 전망했다. 최근 폭스바겐 사태가 독일 경제의 발목을 잡고는 있지만, 독일 경제는 눈에 띄게 회복되고 있으며 경제성장에 따른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즉, 노동 수요 부족은 난민으로 메우면서 임금 상승 억제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임금 상승의 억제는 2016년 독일의 경제성장률을 1.9% 정도 상승시킬 것이다. 이는 난민 유입으로 발생한 GDP의 0.2~0.3%의 증가치를 합한 숫자이다. 유럽연합의 어떤 국가도 안보와 연관된 난민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는 없다. 따라서 회원국들은 초국가 차원의 통합된 망명정책을 취하는 동시에 난민 문제를 철저하게 국익에 부합하게끔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유럽연합의 시리아 난민수용정책은 온정주의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익의 최대화라는 측면이 기저에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경을 넘는 이동은 빈곤국들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현상이지만, 난민을 받아들이는 국가는 상당한 수준의 관리를 필요로 한다. 난민 문제는 국가 내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이슈인 동시에 국제범죄, 테러리즘, 마약 문제 등 새로운 안보 위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유럽연합 회원국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정책을 철저하게 국익에 부합하게끔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당분간 보충성의 원칙을 앞세운 회원국의 독자적인 문제해결방식을 외면할 수 없는 구조로 인해 유럽연합의 이민·망명정책은 규범적 권력의 확산과 회원국의 이익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중적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現 중원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 한국외국어대학교 EU 연구소 초빙연구원.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저서로는 EU Discovery 및 유럽연합의 대외정책 등이 있음.[/fusion_text][/fusion_builder_column][/fusion_builder_row][/fusion_builder_container]
  • 북핵해결을 위한 3단계 방안
    저자
    곽태환(전 통일연구원 원장)
    발간호
    2016-6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의 출범과 함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창의적 해법’으로 한∙미∙중 3자 전략대화를 추진했지만, 2013년 7월 서울에서의 첫 회의 이후 미∙중이 미지근한 반응을 보여 그 추동력을 잃었다. 그 후 박근혜 정부가 제시한 비핵화 해법은 북한이 요구하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창의적인 해법은커녕 결과적으로 정치적 구호로 전락하게 되었다. 윤병세 외교장관은 2014년 8월에 한 방송에 출연하여 ‘코리안 포뮬러(Korean formula-한국 방안)’을 제의하였다. 그러나 한국이 주도하는 세일즈 외교에만 주력하다 보니 성과가 없이 정치적 구호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에 북한은 진정성을 보이기는커녕 경제-핵 개발 병진노선을 헌법에 삽입하고 핵 억제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한국 정부는 고사상태에 빠진 6자회담을 소생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6자회담 당사국이 한자리에 모이는 대화의 장을 먼저 마련하자는 탐색적 대화라는 구상을 하였다. 한편, 중국과 러시아는 한미 정부에게 사전조치에 대한 문턱을 낮추라고 계속 요구하였다. 한∙미 정부의 전제조건인 사전조치가 6자회담 재개의 걸림돌이었기 때문이다. 이어 지난해 도쿄에서 6자 당사국이 모두 참석하기로 한 1.5 트랙 회의가 개최되었지만 북한은 불참하였다. 그리고 금년 1월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박근혜 정부의 비핵화 해법은 실질적으로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북한이 제4차 핵실험(수소탄실험)을 감행하자 유엔 안보리에서 고강도 대북 제재 결의안을 논의하는 한편, 한∙미 정부도 중국에게 이를 권유하는 압박을 했지만 중국은 북핵 해결을 위한 비핵화, 한반도 안정, 평화적 해결 3대 원칙만을 반복하였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6자회담 무용론’을 거론하면서 미∙중∙러∙일∙한 5자 회담을 대북 압박용으로 제안했으나, 북한의 경제적 파탄을 두려워한 중국은 즉각 거부하였다. 한∙미 양국 정부는 현 시점에서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은 바라지 않고 있고, 더욱이 미국은 핵 포기의 진정성을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고집하고 있다.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북미 대화나 지난 7년간 고사상태인 6자회담 재개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북한의 비핵화를 원하는 박 대통령이 6자회담 무용론 견해를 피력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 북한이 국제적 압박 때문에 핵 문제를 풀 것으로 믿는다면 큰 오산이다. 북한이 핵 억제력을 증강하는 근본적인 논리를 이해한다면 새로운 구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 남아있는 수단은 북한과 결실 있는 대화를 얻어내기 위한 국내외 분위기 조성이다. 한∙미 양국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새로운 접근을 담은 로드맵을 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은 핵 억제력을 지속적으로 소량화, 경량화, 다종화할 것이고, 2020년에는 수소탄을 포함한 핵무기를 100개 이상 소유하는 실질적인 핵 국가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빠른 시일 내에 북한과의 핵 협상을 위한 진정한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 북핵 해법의 실패 이유는 북한체제의 생존 보장 없이 핵 억제력을 포기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은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의 유훈이라고 천명하며 체제의 생존과 안보를 보장하면 핵을 가질 필요성이 없다고 설파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고강도 대북 제재와 압박정책으로 인해 북한은 더 많은 핵무기를 만들었고, 북한체제의 생존을 위한 ‘자위권’ 차원에서 핵 억제력을 최고 수준까지 증강한 것이 사실이다. 만약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이 스스로 핵무기 보유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핵 억제력을 증강하지 않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면 북한은 궁극적으로 핵 포기를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피포위강박증(siege mentality)’을 앓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강박증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가? 북핵 문제의 핵심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포기로, 이것이 바로 북한을 피포위강박증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지름길이다. 그러므로 한∙미 정부는 소탐대실하지 말고 대북 제재 압박정책을 접고, 큰 틀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 평화협력을 장기적으로 구상하는 새로운 로드맵을 구상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한∙미 양국 정부의 새로운 구상을 위해 북한 입장을 아래 간단히 요약한다. 스티븐 보스워스 전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북한이 붕괴될 것이라는 전제로 대북 전략을 짜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며 "북한이 비핵화에 진정성이 있는지를 테스트해 보려면 테이블에 앉아 대화해 보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필자는 그의 견해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 테스트를 해 봐야 한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북한에게 비핵화의 진정성을 행동으로 보이라고 고집한다면 오히려 미국의 대화 진실성 여부가 문제될 수도 있다. 북한은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이라고 재강조하며 "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우리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전제조건 없이 6자회담을 재개해 한반도 현안을 논의하자는 입장을 강조하면서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는 것이 조선반도 핵 문제 해결의 선결 과제"라고 강변했다. 미국이 6자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북한의 선(先) 조치를 고집하는 것은 미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시킬 의사가 있는지 의심스럽게 한다. 현재 미국의 선 조치와 관련해 미국의 군산복합체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은 북한의 핵 위협을 강조해 사드 한반도 배치를 시도하고 있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중국도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를 강조하고 있어 미국이 선 조치를 주장하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과거 트랙2 차원의 북미 간 세 차례 회동에서 북한은 유연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첫째로, 북한에게서 비핵화 협상을 하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2012년 2.29 합의 당시 비핵화 사전조치의 일부인 핵∙미사일 실험에 대한 모라토리엄을 이행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6자회담 수석대표인 리용호 북한 외무성 부상이 "이는 대화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대화를 시작하는 초기에 이뤄질 수 있는 조치"라고 말했다고 알려졌다. 그는 또 "그러나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비핵화 사전조치들을 이행하는 것은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이며 대화 초기에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과 관련한 신뢰 구축 단계를 밟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셋째로 북한은 비핵화를 위해 '다단계 협상 프로세스'를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제네바 합의나 일련의 6자회담 합의와 마찬가지로 여러 단계로 나눠 양측이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나가는 방식이다. 종착역은 한반도 비핵화이다. 협상 분야는 비핵화, 정치, 군사, 경제 등 네 가지로 나눴다. 군사 분야에는 평화조약과 한미 군사훈련도 논의될 수 있으며 경제 분야는 장기적으로 미국의 대북 제재 해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북한의 입장을 고려하여 미국이 사전조치에 유연성을 갖고 새로운 구상을 하길 기대한다. 북한에게 비핵화를 위한 사전조치를 행동으로 보여 줄 것을 고집하는 것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북한으로 하여금 핵 활동을 동결하고 6자회담을 조속히 재개할 것을 촉구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시작함이 바람직하다. 새로운 로드맵으로, 먼저 한∙미 정부가 고수해 온 선 비핵화 후 평화체제 구축 전략을 탈피하고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동시에 논의를 고려해 주길 바란다.  6자회담이 재개될 경우, 북핵 문제의 논의와 6자회담 틀 속에서 미∙중∙남∙북 4자가 한반도 평화조약을 논의하는 것을 병행 추진하여 일괄 타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필자는 이에 대해 요약하여 3단계 구상을 제안하고자 한다. 제1단계로 현재 극도로 고조되어 있는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미국과 남북한 3자회담을 개최할 것을 먼저 제의한다. 이 회담에서 한미 합동 군사훈련 중단과 동시에 북한이 핵 동결에 합의할 것을 제안하며, 이 단계에서는 2.29 북미 합의를 준수, 실천 및 이행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2.29 합의의 핵심은 북한은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발사를 유예하고, 미국은 인도주의적·경제적 지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한∙미가 합동 군사훈련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겠다는 결심 역시 필수적이다. 그리고 과연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오바마 행정부에 그런 의지가 있는지가 관건이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강조하여 사드 한국 배치를 원하는 군산복합체는 결렬하게 반대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에 대하여 박근혜 정부가 오바마 행정부를 설득할 의지와 결단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1단계에서 이런 조치에 미, 남북한 3자가 합의한다면 다음 2단계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1단계가 성공적으로 진전되면 제2단계에서는 자연히 6자회담이 재개되고, 동시에 북미 간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한 대화도 진행될 것이다. 6자회담이 재개되면 7년 동안 고사상태인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사항을 활성화해야 한다. 그러므로 2008년 12월 초에 합의를 이루지 못한 6자간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북한과 협상부터 시작해야 한다. 동시에 9.19 공동성명에 합의한 북미, 북일 관계의 정상화를 위한 회담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제3단계는 한반도 비핵화 실현 및 한반도 평화조약 체결 단계이다. 한반도 평화조약 체결과 관련한 필자의 구상1)이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구체적 논의를 생략하기로 한다. 강조할 필요도 없이 3단계 방안은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제안이지만 각 단계마다 핵심이슈들이 동시에 타결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한반도 문제해결을 위한 거시적인 구상을 소개하였다. 이러한 3단계가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북한체제의 생존이 보장되고, 남북 간 적대적 관계가 협력적 관계로 전환될 것이며 북한이 피포위강박증으로부터 해방이 될 것이기에 북한은 핵무기를 가질 논리가 자연히 없어질 것이다. 대북 압박제재정책이 북핵 문제를 풀 수 없다면 우리가 그의 대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순차적인 새로운 구상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며 대북 압박정책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비핵화된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그 다음 단계는 남과 북이 함께 평화통일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관해 합의를 해야 할 것이다. ________ 1) "북한의 '호전적 행동'과 한반도 평화구축", 통일뉴스, 2013.05.10. ​ 미국 클레어먼트 대학원 대학교 국제관계학 박사(1969). 미국 이스턴 켄터키 대 국제정치학 교수(1969-1999)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소장(1995-1999) 통일연구원 원장(1999-2000). 현재 경남대 석좌교수, 미국 이스턴 켄터키대 명예교수, 한반도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한반도 중립화통일협의회 이사장, (사)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상임고문, 통일전략연구협의회(Los Angeles) 회장.
  • Does THAAD Pose a Threat to China?
    저자
    WOO Jung-yeop(Director, Washington, D.C. Office at the Asan Institute for Policy Studies)
    발간호
    2016-7
      It has been reported that Chinese Defense Minister Chang Wanquan expressed concerns over the US proposal for installing THAAD in South Korea during the Korea-China Defense Ministers Talks held on February 4. At his regular press conference on February 5, Chinese Foreign Ministry Spokesperson Hong Lei responded to the question of China’s position regarding Washington’s plan to deploy its THAAD battery in South Korea by expressing hope that “...countries concerned can properly deal with relevant issues in the larger interests of regional peace and stability and bilateral relations.” He further added that “China holds a consistent and clear position on anti-missile issues.  It is our belief that every country should keep in mind others’ security interests and regional peace and stability while pursuing its own security interests. ” It has also been reported that Chinese President Xi Jinping directly commented on the issue of a missile defense system in his meeting with South Korean President Park Geun-hye during the summit in Seoul last July, expressing his opposition to the US THAAD deployment out of consideration for state sovereignty. He asserted that if the US were to deploy THAAD in South Korea for the purpose of protecting American troops, South Korea should exercise its right as a sovereign state and express opposition. As the Korean government has already clearly expressed its dissatisfaction with Beijing’s objections to Washington’s deployment of THAAD in South Korea, and as some news media speculate that Beijing’s opposition stems from possible security concerns, I feel compelled to address some misconceptions of THAAD and of missile defense in general. The issue of THAAD deployment became a topic of debate after United States Forces Korea (USFK) Commander General WSharp’s nomination hearing in 2008, during which he emphasized that South Korea must develop a systematic missile defense solution including the deployment of THAAD. This was followed by General James Thurman’s statement at his nomination hearing in front of the US Senate Armed Services Committee in 2011 regarding the need to deploy THAAD. THAAD deployment became an especially contentious issue after General Curtis Scaparrotti’s recommendation to deploy THAAD to South Korea at a national defense forum organized by the Korea Institute for Defense Analyses last June. While some had anticipated that the deployment of THAAD would bring South Korea into the US missile defense system, the debate escalated into a political issue. In order to clarify what it means to participate or join in the US missile defense system, which is yet to be clearly defined, it is necessary to first examine the strategic and political concepts regarding the US missile defense system. Only then can we determine if the US missile defense system poses a security threat to China and if China should be worried about THAAD a lower-tier missile defense system. What should we make of THAAD? The key phrase in understanding the US missile defense system is “defending the territory of the United States against limited ballistic missile attack.” There have been several revisions made upon this initial version, and the purpose of the US missile defense system is now defined as: 1) protecting the US homeland against nuclear weapons, other WMD, or conventional ballistic missile attacks 2) protecting US forces (including military bases, logistics, command and control facilities, and deployed forces) in theaters of operation against ballistic missile attacks armed with WMD and/or conventional munitions 3) protecting US allies, partners against ballistic-missile-delivered WMD and/or conventional weapons and 4) protecting against accidental or unauthorized launch of ballistic missile attacks. What deserves attention here is that large-scale attacks from Russia and China are not the subjects of US missile defense. A common misconception regarding the US missile defense system is related to its mission that the US missile defense system targets Russia and China. The real objective of the US missile defense system is to counter the estimated 6,300 ballistic missiles outside the control of the US, NATO, Russia, and China. In fact, the US has neither the intention nor the capability to target Russia or China with its missile defense system. The intention of the US missile defense system has been a topic of debate since its conception. Currently, from a strategic point of view, the US is not considering the establishment of a defense system against ballistic missiles from Russia and China. The US affirms that its construction of a missile defense system in Europe and Asia will not change the existing strategic balance with Russia and China for the following reasons: First, strategically speaking, the construction of a missile defense system aimed at a powerful nation would lead to a highly costly arms race. If one side were to begin constructing a defense system, the other side would increase its offensive armaments in order to incapacitate the said defense system. Therefore if the US were to direct the construction of such a system at a powerful country, it would face serious consequences. Furthermore, the construction of a missile defense system would change the strategic calculations of the other country and increase the likelihood of war. If a counterattack were staged after a preemptive strike in response to the construction of such a defense system, it would likely be futile if the defense were strong enough. One would thus gain an advantage by attacking first. With mounting strategic distrust between the two sides, a preemptive strike would not bode well for the US. The US also lacks the capability of establishing a missile defense system aimed at Russia and China. Considering the nuclear capabilities of Russia and of China in terms of nuclear warheads and ballistic missiles, the US would not be able to defend itself effectively from a major attack by either country in the event of such. Suppose, for example, that either Russia or China were to strike US territory with 100 missiles. Even if the technologically advanced US defense system succeeded in intercepting 70 of them, the remaining 30 that reach the US territory would still be sufficient and practically render the US defense meaningless. It should also be noted that failure to shoot down missiles and repeated attempts to shoot down missiles are entirely different circumstances. In addition, a missile defense system comes at an astronomical cost. Building a system to defend against ballistic missiles of powerful nations is like shoveling sand against the tide. The conclusion is therefore that the US must depend on mutual deterrence with Russia and China, as China also considers mutual vulnerability to be the basis of its strategic relationship with the US. Next, I will discuss why THAAD by itself cannot pose a threat to China. Some Koreans argue that THAAD may be a threat to China because an X-Band radar needed for the THAAD system, specifically the AN/TPY-2 X-Band radar, can be used to track China’s movements by identifying long-range missile threats (up to 1,000 kilometers). They therefore consider this to be the purpose of the US proposal to deploy THAAD to South Korea. However, two AN/TPY-2 radars with similar specifications have already been installed in Japan and the UHF long-range EWR based on AN/FPS-115 Pave Paws, known as the world’s strongest radar, has been constructed in Taiwan. The radar in Taiwan, which was completed in 2009 after construction began in 2004 with an investment of approximately USD 1.2 billion (currently equivalent to KRW 1.5 trillion), can simultaneously detect 1,000 targets within a 3,000 kilometer radius. Given such radars have already been installed in Japan and in Taiwan, a comparable if not less potent radar system to be deployed in South Korea should come as neither a surprise nor an alarm. The argument that the purpose of deploying THAAD to South Korea is to intercept China’s missiles therefore lacks empirical basis. THAAD provides the capability to intercept ballistic missiles during their terminal phase of flight in which they re-enter the atmosphere on their way to the target. This means that it does not intercept the boost phase of ballistic missiles or the phase of their flight outside the atmosphere. The US stopped funding the boost phase interception program which it considered impractical. THAAD is a defense system that can only be used against missiles entering South Korean territory. Why does China oppose THAAD? The US ballistic missile defense system is neither intended against China nor capable of being used for that purpose. Why, then, is China still pressuring South Korea to oppose it? There are two main reasons. First, considering South Korea’s domestic politics and the current situation in Northeast Asia, China likely sees Korea as the weakest link in the US Northeast Asian alliance system which could potentially threaten the system’s survival. While the THAAD issue is unlikely to affect ROK-US alliance, China may continue seeing such opportunities as a way of weakening the alliance in the future. To be sure, there are certainly those in Korea that support China’s opposition to the THAAD deployment. For China which, unlike the US, has no allies, the weakening of ROK-US relations aligns with its strategic interests. This means that such attempts by China will continue, given that its objective is to test the pressure needed to strain ROK-US alliance. Second, China seeks to prevent any changes in the current strategic situ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that could result from changes to South Korea’s current missile defense system. North Korea’s continued development of ballistic missile capabilities and nuclear weapons has put South Korea at a strategic disadvantage. Although South Korea is able to respond to this through the extended deterrence of the US, based on relative missile and nuclear capabilities between the two Koreas North Korea still maintains strategic asymmetry over South Korea. This advantage has allowed North Korea to exercise coercive diplomacy and other provocative acts. Therefore, any changes to South Korea’s defense capabilities to deter North Korea’s missiles—which would thereby change the strategic situation in the region—is seen as highly undesirable by China. How should South Korea respond? First, we cannot sustain the strategic ambiguity that the deployment of THAAD to South Korea has not been officially negotiated or determined. Rather, we need to strongly assert that China’s stance on the matter can be interpreted as siding with North Korea even if that is not what China intends to do. Second, South Korea should shift from the debate over whether deploying THAAD means participating in the US missile defense system to that over whether THAAD is essential at this stage with respect to South Korea’s security, budgetary concerns and, most importantly, North Korea’s missile threat. The argument that THAAD is a US missile defense system because it was not originally intended to be part of the existing Korean Air and Missile Defense system (KAMD) should be put aside. Instead, we need to establish missile defense strategies and policies that are adaptable to the ever-changing threats of North Korea’s missiles and possible methods of attack which go beyond what this missile defense system may afford us. WOO Jung-Yeop is Director of the Washington, D.C. Office at the Asan Institute for Policy Studies. Previously, Dr. Woo received a B.A. in business administration from Seoul National University, an M.P.P. from Georgetown University, and a Ph.D. in Political Science from the University of Wisconsin-Milwaukee. Dr. Woo was a postdoctoral fellow at the Korean Studies Institute at the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His research focuses on the relationship between foreign policy-making and public opinion and foreign military intervention in civil wars.
  • 파리 테러공격, 글로벌 테러와의 전쟁으로 확산될 것인가?
    저자
    조성권(한성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발간호
    2015-50
    1. 제2의 글로벌 테러와의 전쟁으로 확산될 것인가?   2015년 11월 시리아 반군이자 테러조직인 IS(Islamic State) 소속 13명에 의한 파리 테러공격으로 130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을 당했다.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은 2001년 9/11 테러이후 부시 대통령이 “전쟁 행위(an act of war)”라고 명명한 것처럼 이번 테러를 “전쟁 행위”로 선언하고 시리아 내의 IS의 근거지에 대한 전격적인 공습을 단행했다. IS도 이번 테러가 “폭풍의 서곡(the first of the storm)”이라고 명명하면서 다음 테러는 워싱턴, 뉴욕, 런던, 로마가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UN의 안보리는 IS 척결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바야흐로 국제사회는 제2의 글로벌 테러와의 전쟁을 암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서방국들이 과연 시리아에 지상군을 파견할 것인지가 새로운 관심사로 급부상했다. 2. 테러의 새로운 경향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테러리즘의 주요 경향은 1950~60년대 미국과 소련의 좌우이데올로기 투쟁 하에서 일종의 대리전(proxy warfare)의 양상을 보인 제3세계에서의 농촌 게릴라 운동, 70년대 미국과 유럽 및 중동지역에서의 도시 테러, 1980년대 국가 지원 테러리즘, 90년대 과격 이슬람 조직에 의한 반미(反美) 테러, 그리고 21세기 9/11 테러 이후부터 2011년 5월 오사마 빈 라덴이 피살될 때까지 알카에다를 중심으로 반(反)서방 테러가 특징을 이루었다. 그러나 빈 라덴 피살 이래 이번 파리 테러까지 IS를 중심으로 테러행위는 기존 알카에다에 의한 글로벌 차원의 과격 이슬람 테러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구별되는 새로운 양상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테러장소의 측면에서 2001년부터 2011년까지의 테러행위는 주로 아프간과 이라크 내에서 미국을 비롯한 참전국에 대한 테러가 주류를 이루었다면, 2011년부터 파리 테러공격까지는 아프간과 이라크를 포함한 이슬람 국가들(나이지리아, 시리아, 파키스탄, 예멘, 소말리아 등)에 집중되어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테러조직의 경우는 아프간의 탈리반과 알카에다(특히 아라비아 반도의 알카에다인 AQAP: Al-Queda in the Arabian Peninsula)보다는 새로운 조직인 시리아의 IS, 나이지리아의 보코하람, 보코하람과 연계한 소말리아의 알-샤바브(Al-Shabaab) 등이 급부상하고 있다. 이들 새로 부상하는 테러조직들은 알카에다보다 더욱 과격하고 무슬림에도 테러행위를 하는 순니 이슬람의 극단적 신봉자들이다. 이 때문에 2014년 2월 알카에다의 리더(Ayman al-Zawahiri)도 IS와 결별하고 투쟁노선에서 거리를 두고 있다. 무슬림 테러의 대표적인 사례는 2014년 11월 나이지리아의 카노(Kano)에서 발생한 이슬람 사원에 대한 자살테러로, 이로 인해 120명 이상이 사망했다. 활동 거점의 측면에서 새로운 조직들은 1960년대 중남미에서의 농촌 게릴라 운동처럼 모두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거나 내전이 발생하는 지역에서 일정 부분의 거점을 확보하면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테러자금의 경우 알카에다가 주로 기부금에 의존했다면 새로운 조직들은  마약·석유 밀매, 납치, 약탈 등 소위 범죄조직들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활동목표의 경우, 알카에다가 사우디아라비아의 부패한 독재국가의 타도와 그런 사우디아라비아를 조장한 미국에 대한 테러행위를 목표로 한다면, 새로운 조직들은 칼리프, 즉 엄격한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Sharia)에 의한 초기 사라센 제국의 통치형태인 정교일치 국가의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3. 지상군을 파견할 것인가?     파리 테러공격 이후 국제사회의 초미의 관심사는 지상군의 시리아 파견 여부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테러공격은 지상군을 파견할 정도로 제2의 글로벌 테러와의 전쟁으로 유도하기에는 9/11 테러와는 완전히 상황이 다르다. 또한 중동지역 관련 강대국들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시리아 내전을 둘러싼 복잡한 국제정치의 구도로 볼 때, 지상군 파견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를 좀 더 상세히 분석하기 위해 먼저 미국의 기본적인 중동정책 및 내부사정에 대한 이해와 함께 테러 피해 당사자인 프랑스와 러시아의 입장은 물론, 시리아 내전을 둘러싼 주변국들인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이라크, 이란 등의 입장도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제2차 세계대전 이래 미국의 대(對)중동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이스라엘에 대한 정치군사적 보호와 석유자원의 안정적 확보이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미국은 한편으로는 중동평화협정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중동지역에서의 미군의 군사적 개입 혹은 친미정권의 수립으로 중동정책을 펼쳐 왔다. 전자의 사례들로는 닉슨 행정부에서 키신저의 중동평화협상, 1979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 1998년 와이리버 협정 등이 있다. 후자의 대표적인 사례는 레바논 내전의 개입, 걸프전, 이라크전 등이며 또한 친미정권들인 이란의 샤 독재정권, 사우디아라비아의 부패정권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중동정책으로 인해 9/11 테러범 19명 중에서 15명이 사우디아라비아 국적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다만 2003년 이라크를 공격하기 위한 군사기지를 제공받은 것이 전부였다. 또한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지 않았다는 미국 정보기관의 보고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가 9/11 테러와 무관한 이라크를 공격한 것은 당시 미국의 중동 교두보였던 이란의 샤 정권이 1979년 회교혁명에 의해 붕괴되고 더구나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이라크 후세인 정권이 부상하면서 이스라엘의 안전에 매우 심각한 위협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 이라크 후세인 정권을 축출하고 친미정권을 수립한 것은 이스라엘의 안전을 확립함과 동시에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양질의 이라크 석유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문제는 이런 미국의 대중동정책이 현재 파리 테러공격의 근원이라는 사실이다. 부시 행정부의 ‘글로벌 테러와의 전쟁’ 10년 동안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았든 미군의 공습과 드론 공격에 희생된 사람들 중에는 공격의 목표였던 테러리스트 혹은 반군보다는 민간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런 무차별 공격에서 부모와 형제·자매가 희생된 무슬림들이 지금 현재의 극단적 테러리스트들의 모태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원한들은 부분적으로 자살테러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의 IS가 2006년 이라크에서 미군의 공습으로 사망한 알카에다의 지도자 자르카위(Zarqawi)가 사망한 후 결성한 ISI(Islamic State in Iraq)에서 기원한다는 것은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런 행태가 2011년 ‘아랍의 봄’의 여파로 아사드 독재정권(Bashar al-Assad: 2000~)의 타도를 외치면서 악화된 시리아 내전에서도 등장했다. 당시부터 미국과 프랑스는 시리아 반군들을 선택적으로 지원해왔다. 이 때문에 파리 테러에 대한 IS의 공식발표에서도 나타나듯 IS는 시리아 내전에서 미국의 동맹국을 표적으로 삼는다고 선언한 것이다.   둘째, 현재 미국의 대선후보들은 IS 토벌을 위한 지상군의 파병에 대해 찬반논쟁을 하고 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지상군의 파병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사실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 이유는 지상군을 파병할 명분이 분명하지 않으며, 미국 국민이 부시행정부 10년 동안 진행된 ‘글로벌 테러와의 전쟁’에 심각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고, 미국의 경제회복이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에서 막대한 군사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바마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미군의 철군이 거의 마무리되고 임기를 1년 정도 남은 시점에서 굳이 지상군을 파병하여 새로운 불씨를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한, 설령 미군이 시리아에 지상군을 파병하더라도 얻는 결과가 크지 않다. 다시 말하면 아사드 정권이 몰락하고 새로운 민주주의 정권이 등장하더라도 친미정권이 된다는 보장도 없으며, 그러한 변화가 이스라엘의 안전에 획기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되돌아오는 것은 반미감정이란 사실을 미국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것은 이미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뼈저리게 경험한 것이다. 더구나 이런 반미감정의 결과로 결국 중동지역에서 러시아 혹은 중국의 정치경제적 입지만 넓혀주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이 굳이 지상군 파병이라는 불필요한 도박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셋째, 미국의 이런 입장 때문에 테러 피해 당사국인 프랑스는 독자적으로 지상군을 파병하기가 쉽지 않다.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될 때까지 시리아를 식민 통치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 식민지였던 인도차이나 지역에 군사적 개입을 한 사례가 있는데 결국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1945~1954)에서 참담한 패배를 경험한 후 미국에 넘겨주었다. 이런 과거의 경험이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비록 테러의 직접 피해국이지만 프랑스가 독자적으로 시리아에 지상군을 파병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미국이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는 한 영국과 독일도 마찬가지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러시아를 비롯한 이라크와 이란 그리고 이란이 후원하고 있는 레바논의 헤즈볼라(Hezbollah) 등이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아사드 정권도 시리아 반군을 지원하는 터키,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친미국가들과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특히 러시아의 경우, 이미 오래 전부터 아사드 정권과는 정치군사적으로 전략적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 이 때문에 제정 러시아 이래 러시아의 전통적인 남하정책의 일환으로 지중해로 진출을 원하는 러시아에게 아사드 정권은 시리아의 지중해 항구(Tartus)에 러시아 함대가 정박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시리아에 새로운 친미정권이 등장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또한, 러시아는 2015년 10월 이집트에서 탑승 인원 224명이 전원 사망한 여객기 추락사고가 IS의 폭탄 설치에 의한 것이라는 설로 인해 IS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파리 테러공격으로 서방과 보조를 맞추면서 러시아군의 IS에 대한 공습은 친러정권인 아사드 정권을 이롭게 하는 행위이다. 이런 요인들이 러시아가 미국 및 EU와는 다른 입장을 보이는 것이다. 동시에 미국은 IS에 대한 러시아 공습을 떨떠름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다. 4. 미국의 분열정책인가?   9/11 이후 오바마 행정부의 대중동정책은 이스라엘의 보호라는 제1원칙은 변하지 않았지만 중동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의 탈피라는 새로운 정책을 추진했다. 이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제 더 이상 중동 석유자원에 대한 스윙국가(swing state)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정책의 가장 뚜렷한 가시적인 효과가 OPEC의 힘이 1970년대에 비해 현저하게 하락된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런 OPEC의 세력약화와 분열은 이스라엘의 보호와 부합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제1원칙을 위해 미국은 지지부진한 중동 평화협상도, 미국의 군사적 개입도 아닌 중동 이슬람 국가들의 분열정책을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런 미국의 정책을 공식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분열정책은 순니와 시아는 물론 다양한 종족, 인종, 종교적 갈등으로 복잡한 중동지역에 대한 미국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   시리아도 순니파 시리안 아랍민족의 인구가 다수를 차지하지만 여전히 또 다른 7개의 종족과 7개의 인종이 뒤섞여 있는 복잡한 국가이다. 현재 아사드 정권의 붕괴를 원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인 시리아 반군들에 대한 미국과 서방의 군사적 지원은 이런 분열정책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런 미국의 정책에 순니파인 사우디아라비아도 시아파인 아사드 정권-이라크-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편승하고 있다. 결국 중동국가들 자체적인 내란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이라는 외부의 적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감소시키면서 미국은 중동 분쟁국 혹은 내란이 발생할 때 양쪽 모두에게 무기를 판매할 수 있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시너지 효과도 볼 수 있다. 과거 이런 대표적인 사례가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 중에서도 나타났고 결국 1986년에 터진 이란-콘트라 스캔들의 주요 원인이 됐다.   한편 1980년대 아프간에서의 대소항쟁(1979~1989)에서 빈 라덴과 미국 CIA가 함께 손을 잡았지만 결국 9/11 테러라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듯이, 2011년 이래 아사드 독재정권을 몰아내기 위한 미국 주도의 시리아 반군들에 대한 군사적 지원이 다시 부메랑이 되어 등장한 것이 파리 테러공격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파리 테러공격에서 미국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은 IS의 활동자금을 차단하기 위해 석유밀매에 대한 공습을 목표로 하는 방향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이 전략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주로 터키로 향하는 석유밀매에 의한 테러자금이 줄어든다 하더라도 아프간의 탈리반에서 생산되는 아편과 헤로인이 이란→이라크를 거쳐 시리아→터키→서유럽으로 향하는 중계망으로 통해 벌어들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이란-이라크-시리아라는 보이지 않는 부패의 연결고리를 활용하여 마약밀매를 통해 테러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시리아의 이웃국가인 레바논의 경우 지중해→서유럽으로 향하는 마약밀매의 주요 루트로 활용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이 시리아 내전을 종식시키고 IS를 시리아에서 몰아내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미국에게 시리아 내전에 지상군을 파병할 충분한 명분이 필요하다. 이런 명분은 파리 테러공격과 같은 형태가 아닌 미국 본토에서, 혹은 미군이 주둔한 지역에 대한 핵, 생물, 화학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이용한 슈퍼테러가 발생하여 미국에 심각한 피해가 나타나야 국민적 합의를 얻을 수 있다. 둘째, 아프간전과 이라크전의 사례에서 보듯 친미성향의 시리아 정치인을 내세워 새로운 정권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내전 중인 이라크 지역에 미군의 지상군을 파견하는 것은 매우 커다란 도박이기 때문에 결국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를 교두보로 삼아야 하는데,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국가적 반발이 매우 심할 것이다. 또한, 이런 조건들이 충족된다 하더라도 서방국가의 군사적 지원은 물론, 시리아 내전에 군사적 개입을 하지 않는 국가들인 한국과 일본 같은 국가들에서 미군 군사비의 일정부분을 얼마나 확보하느냐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이런 모든 것이 미국의 지상군 파견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들이다. 現 한성대학교 행정대학원 마약알콜학과 교수. 미국 University of New Mexico 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국제범죄정보센터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음. 주요 저서는 『세계화와 인간안보』(공저), 『한국조직범죄사: 정치권력과 조직범죄』(2006), 『21세기 초국가적 조직범죄와 통합안보』(2011), 『마약의 역사』(2012) 등이 있음.
  • 동북아의 역기능적 외교
    저자
    Mark BEESON(University of Western Australia)
    발간호
    2015-51
      동북아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근래 초미의 관심사는 동북아 국제정치가 드디어 긍정적인 변화를 보여줄 것인지 여부일 것이다. 최근, 역내 주요국인 중국, 일본, 한국의 지도자가 마침내 회담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과 대만의 지도자도 직접 대화를 나누기에 이르렀다. 과연 이러한 변화가 이 지역 전체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최근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동북아평화협력 공동선언’으로 미루어 볼 때 동북아 정세에 대한 긍정적 전망도 일리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역 활성화 조약을 체결한 것 외에도 리커창(李克?) 중국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앞으로 3국이 서로 공존과 협력의 길을 걸어나가기를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역외 국가들에게는 동북아가 여기에 이르기까지 왜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인지 의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내 협력을 통한 잠재적 이익이 분명한데도 왜 동북아 역내 정치는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것일까? 유럽연합 협력의 역사와 현 동북아시아 정세는 종종 비교되고는 하며, 이것은 꽤 유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유럽을 파괴했던 갈등의 여파 후, 유럽 역내 협력은 합리적인 것이며, 필수불가결해 보이기까지 했다. 당시 미국은 유럽의 경제 부흥과 국제공조가 소련과의 대치 상황에서 필수라고 믿었다. 곤경에 처해 있던 유럽의 지도자들은 협력만이 살 길이라는, 새로운 패권국 미국의 믿음과 손을 잡았다. 그러나 아시아의 경우는 달랐다. 유럽의 각국이 지정학적으로 공조하도록 유도한 냉전이 동아시아에서는 서로의 분열을 더욱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당시 덩샤오핑(鄧小平)이 서구 자본주의를 수용하기 전까지 중국은 소련의 편이자, 전후 미국 패권 하의 경제 효과를 톡톡히 본 일본의 관념상 적이었다. 이러한 정세에서 포괄적 역내협력은 어떠한 형태로든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었다. 한반도의 분단과 국제사회에서 대만의 지위는 냉전이 동북아에 남긴 가장 큰 상흔이다. 물론 냉전이 동북아의 냉랭한 분위기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보다는 이 지역 내 국가 간 오랜 적대감, 긴장감 및 국민 간 깊이 패인 감정의 골이 더 심각한 문제라는, 게다가 사실은 냉전이 이러한 감정을 더욱 증폭시켰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한중 양국이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에 얼마나 분개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사실 그에 대한 직접적인 기억을 가진 사람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렇다면 왜 동북아 지도자들은 유럽연합 협력의 역사적 교훈을 따르지도, 과거를 청산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일본의 경우와는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독일 지도자와 국민들의 행동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과오를 절대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일본 국민들이 군국주의에 대해 감복할 만할 정도로, 또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싶은 거부감을 드러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일본의 대한(對韓)관계나 대중(對中)관계 개선에 거의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중일(中日) 양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이에 대한 책임이 크다. 우선,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은 그들의 군국주의가 20세기 전반에 미친 영향에 대해 명확히 인식하거나 과거를 청산하는 일을 마뜩잖아 해 왔는데, 아베 신조는 그러한 전통의 명맥을 잇는 지도자이다. 한편, 중국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일본의 무감각을 십분 활용하였고, 일본에 대한 중국 국민들의 국가주의적 적대감에는 따로 기름을 부을 필요도 없었다. 이러한 점들은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설명이 필요하다. 유럽에서는 마법처럼 통했던 경제적 상호의존성과 비교우위의 논리가 왜 아시아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중국과 대만의 경제협력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의 경제적 유대도 대중의 정서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국과의 경제협력이 중국의 장기적인 재통합 계획의 일부일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대만 대중들 사이의 일반적인 정서이다.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그것만으로 상황을 역전시킬 수는 없다. 유럽의 경우는 실패 시의 위험 부담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협력의 가치에 더 주목할 수 있었다. 냉전 당시 유럽의 것과 같은, 동북아 역내 지정학적 긴급 사안의 부재를 역내 국가들을 외교의 장으로 이끌지 못한 주된 요인으로 봐야 할 까? 중국과 미국의 지정학적 긴장감이 긴박할 정도로 증대된 상황에서 마침내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이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을 만나기로 결정한 것은 단지 우연일까? 최근 유럽의 정치경제적 문제를 접하면서, 몇몇 아시아 지도자들은 유럽연합의 공조로부터 배울 점이 많지 않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역내 협력은 그다지 쓸모 있는 카드로 여겨지지도, 성취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유럽연합은 의도치 않게 동북아에 또 하나의 교훈을 주고 있다. 그 교훈은 바로, 국제공조가 어려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협력 없이는 잠시 가라앉은 듯 하던 국가주의적 긴장감이 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동북아 역내 긴장감은 표면적으로 거의 드러나고 있다. 세계무대에서의 중국의 부상과 자주적 군사권을 가진, ‘평범’한 국가가 되고자 하는 일본의 열망은 역내 관계 향상에 실상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있다. 거기다 예측 불가능한 북한까지 더하면, 신뢰 구축을 위한 역내 대화가 이어져야 할 이유가 한 가지만은 아닐 것이다. 골이 깊은 역사적 굴레에도 불구하고, 역내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동북아시아가 역내 외교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들이 분명히 있다. 물론, 동북아의 현(現) 지도자들이 이에 대해 전 세대 지도자들보다 나을지는 아직 더 지켜보아야 할 문제다. 現 University of Western Australia 정치외교학과 교수
  • 국제정치 이론을 통해 본 새로운 국제질서의 가능성
    저자
    이성우(제주평화연구원 분쟁해결연구부장)
    발간호
    2015-52
      국제정치학에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세계질서를 설명하는 주류 이론이 변화해왔다. 영국의 시대에는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 이론으로 ‘Pax Britannica’를 설명하였고, 미국의 시대는 ‘힘의 우위(Power Preponderance)’ 이론으로 ‘Pax Americana’를 설명했다. 오늘날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지위가 흔들리고 중국의 추격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하지만 새로운 국제질서, 즉 'post Pax-Americana'의 출현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힘의 균형 이론에 기초한 Pax Britannica에서 국제질서의 위협요소는 패권을 획득하기 위한 유럽의 주요국들의 무한 경쟁이었다. 이때, 영국이 균형자의 역할을 자임하여 유럽의 세력균형을 유지하여 국제질서의 안정을 추구했다. 당시 영국은 상당한 국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국제질서를 주도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과 이를 바탕으로 한 리더십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정학적으로 유럽에서 분리된 섬나라 영국은 대륙의 안정을 위해, 그리고 강력한 대륙국가의 출현을 방지하는 것이 자국의 국익과 안보에 부합되었기 때문에 시대와 사안에 따라 대립하는 세력 간 균형자의 역할을 하면서 유럽의 안정을 추구해왔다. 힘의 우위 이론에 기초한 Pax Americana에서는 각국이 패권을 추구하는 국가이기주의가 어느 정도 종식된 상태였다. 그러나 이 시기 국제질서를 위협하는 것은 각 국가들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에 따라 두 개의 진영으로 분리되어 대결하는 냉전이었다. 소련의 붕괴로 미국의 패권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미국이 강력한 국력에 근거하여 세계질서를 집행해 나가면서 패권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국제질서에 긍정적이라는 것이 힘의 우위에서 설명하는 Pax Americana이다. 힘의 균형 이론과 힘의 우위 이론 모두 현실주의 국제정치, 즉 힘의 정치를 바탕으로 국제질서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그 근본은 같다고 할 수 있다. 냉전이 종식되고 국제질서의 위협은 다양한 방향에서 제기되고 있다. 불량국가들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급속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국력이 증대되면서 중국은 그에 상응하는 새로운 역할과 위상을 요구하고, 미국의 패권지위에 도전하고 있다. 북한은 긴 냉전의 그림자를 남기며 미국에 대한 위협을 지속하고 있고 냉전 시기 미국의 우방이었던 이라크는 국제질서의 변화로 미국을 겨냥하는 테러의 진원지로 지목되었다. 9·11을 통해 이미 표면화되었지만 알카에다, IS와 같은 테러집단의 위협은 미국과 서유럽뿐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을 포함하는 무차별적이고 광범위한 위협을 제기하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위협은 다양하지만 그 저변의 공통점은 종교, 문화, 가치관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탈냉전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힘의 우위는 중국, 러시아와 같은 냉전 시기 적대국뿐 아니라 서유럽 및 동아시아의 우방국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세계적 차원에서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국제질서를 구현해 나가는 것이 미국의 안전을 보장하는 정책 수단이자 패권적 지위를 보장해주는 정책의 목표였다. 힘의 균형에 요구되는 국력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국력이 존재해야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세계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현재 국제질서에서의 위협은 공격자가 난민과 함께 침투하고 공격의 형식도 총과 화약을 이용한 재래식 무기에서 생물학 무기까지 다양한 가능성이 언급되며 SNS, you tube, 그리고 게임통신망을 대원모집, 홍보, 그리고 교신의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전례 없던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위협은 국가가 아닌 집단 및 단체 수준에서 제기되는 새로운 위협이다. 2015년 10월 31일의 러시아 여객기 폭파·추락 사고에 이어 11월 13일 파리 도심에서 발생한 동시다발적 테러로 국제사회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시리아의 IS 기지에 대한 폭격을 지속하고 있다. 피해 당사국인 러시아와 프랑스의 주도 하에 미국, 영국, 독일을 비롯한 서구사회뿐 아니라 중국까지 동참하여 IS의 격퇴를 외치고 있다. 강력한 첨단 군사력을 갖춘 초강대국들의 힘의 우위는 IS와 비교가 무의미한 수준이다. 새로운 안보의 패러다임은 여전히 국력을 바탕으로 하지만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도 단일 패권국은 세계안보를 보장할 수 없다. 테러집단인 질서교란세력이 수시로 공격의 상대를 변경하고 위협수단도 다양화하기 때문에 강대국의 군사적 대응만으로 위협을 제거하고 안전을 확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새로운 형태의 위협을 효과적으로 극복하여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국제사회 구성원들 간 합의에 기초한 ‘통합된 힘(coordinated power based on agreement)’을 창출해야 한다. 통합된 힘을 만들어 내더라도 군사력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수반되어야 할 중요한 무형의 자원은 ‘도덕성(morality)’이다. 사회과학에서 도덕성이라는 개념은 구체화하기에 어려운 점이 많고, 특히 현실주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정치를 논의하는 데 이 기준을 적용할 여지가 많지 않았다. 힘의 균형을 논의하던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유럽의 국제질서에서는 힘이 곧 정의였다. 냉전 시기 미국은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정당성을 확보하여 도덕성에 도전을 받지 않고 구성원의 동의와 지지를 얻어 안전을 확보하였다. 지금 테러집단으로부터 미국을 포함한 서구사회가 지키려는 가치가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이라는 점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존엄성과 생명을 보호받아야 하는 인간의 범주에 난민이 배제된다면 테러와의 전쟁에서 서구사회의 도덕성과 정당성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미국 University of North Texas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미국국제정치학회가 주관하는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의 Referee로 활동한 바 있음. 저서로는 『2011 한국인의 평화관: 통일정책과 여론』 및 『2010 한국인의 평화관: 외교정책과 여론』 등이 있음.
  • 난민위기: 인도적 관심과 정치적 무관심
    저자
    송영훈(강원대학교 교수)
    발간호
    2015-53
    난민은 분쟁과 박해, 폭력과 인권 유린 등으로 인해 고향과 고국을 떠난다. 이들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타국이 국경을 열게도 하고, 닫게도 한다. 지중해를 통해 유럽으로 향하는 보트피플, 거친 말라카 해협을 통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으로 떠난 미얀마 로힝야족 출신의 보트피플 등은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유럽과 동아시아 각국의 국경을 열지 못했다. 그러나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어린 아일란 쿠르디의 모습에 국제사회는 난민 위기에 대한 무관심을 반성하고 국경을 열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경제상황 악화와 파리 등지에서 발생한 테러리즘은 유럽으로 하여금 난민 문제 해결에 대한 인도적 지지를 철회하고 국경을 닫게 만들었다. 2015년, 국제사회의 난민 위기를 목도하면서 다시 한 번 난민 위기는 정치적 무관심에 의해 오히려 더욱 심화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난민들의 인간 존엄성을 존중하고 이들의 인간안보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회의 인도적 노력이 확대되어야 함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 혹은 ‘우리’와 먼 곳에서 벌어지는 난민 문제에 대해서는 규범적으로 인식하고 대응하고는 한다. 반면, 난민 문제가 ‘나’ 혹은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발생한다면 그것은 함께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과도 같은 것이 되어 버린다. 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적 의지의 부재 속에 오히려 난민 위기는 악화되고 있다. 파리 테러 이후 각국이 난민들을 안보를 위협하는 사람들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는 현실이 아일란의 죽음이 일깨운 국제사회의 인도적 책무를 약화시키고 있다. 겨울의 추위와 국제사회의 무관심 속에 어려움에 처한 난민들의 문제가 각국 지도자들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 점차 개선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 지나친 낙관이 아니길 바란다.? 난민 위기: 안보, 주권, 정치의 복합적 위기 난민 문제의 본질적 해결이 어려워지면서 결국 25,000명 이상의 난민들이 한 곳에서 최소 5년 이상 거주하는 ‘장기화된 난민 상황(protracted refugee situations)’이 확산되고 있다. 본국의 불안정 요인이 해소되지 않고, 국제사회의 지원이 감소하면서 이러한 상황에 처한 난민들은 스스로 생존을 모색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케냐의 다다브 난민캠프에 거주하는 소말리아 난민들은 스스로 캠프 안팎에서 경제활동을 해야만 한다. 캠프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은 소말리아에 가 본 적도 없고 소말리아 정치에 대한 관심도 적다. 그들은 케냐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런데 케냐 정부는 소말리아 내전이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말리아 난민들이 케냐 내에서 발생하는 테러를 감행하는 ‘알 샤바브(Al Shabaab)’를 지원한다고 주장하며 이들을 본국으로 송환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대부분 20년 이상씩 국경을 떠나 캠프에서 생활을 한 이들은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경쟁력 있는 사회구성원으로 생활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 따라서 난민 위기가 장기화될수록 근본적인 난민 문제의 해결이 더욱 어렵게 된다. 난민 위기의 종합적 이해를 위해서는 단순히 자연인으로서 ‘난민’의 인권과 인도주의적 관심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에서 더 나아가 구조적이고 정치적인 요인들로 인해 발생되는 ‘난민 문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난민들을 법적인 보호의 대상으로만 이해하기보다 그들로 인해 파생되는 정치적 현상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난민 문제의 정치적 속성은 난민 지위 부여와 관련된 개인 중심성, 난민의 발생과 수용 과정에서 나타나는 국제규범과 주권의 갈등, 난민의 이동에 의한 안보위기 등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이 세 가지 속성으로 인해 난민 문제는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지를 받더라도 국내의 정치사회적 요인에 의해 관심과 지지가 쉽게 철회되고, 안보화 경향으로 인해 정치적 무관심의 영역으로 밀려나는 현상이 반복된다. 난민 문제의 첫 번째 특징은 개인을 대상으로 난민 지위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난민은 ‘인종, 종교, 국적, 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그 보호를 받기를 원하지 않는 ‘개인’을 의미한다. 즉, 난민 지위는 집단 혹은 국적에 따라서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최근의 상황을 고려하여 시리아 국적을 가진 사람은 자동적으로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아야 할 것 같지만 ‘국적’(nationality)이라는 해석 때문에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시리아 국민이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에서 난민 지위를 신청한다고 해서 모두가 그 지위를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난민 정의의 요소로 포함되어 있는 국적은 오히려 민족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것으로, 시리아인들이 국가를 떠났어도 그들이 경제적 이주를 선택한 것인지, 박해를 피해서 떠나 온 것인지 수용국 정부가 따지게 된다. 물론 이에 대한 구분이 모호하고 어렵지만, 난민 지위는 개인별로 인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수용국에서는 쟁점이 되는 사안이다. 두 번째 특징은 난민 문제가 국가 간 관계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난민 지위의 인정은 수용국 정부와 발생국 정부의 주권 및 정통성과 관련된 사안이다. 자국 시민에 대한 일차적 보호 책임이 각국 정부에 있기 때문에 난민 지위의 인정은 발생국 정부가 그 책무를 다하지 못하였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된다. 이로 인하여 인접국가 난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종종 두 나라 간 외교적 갈등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시리아 내전사태와 같이 국제적으로 긴급한 사안인 경우에는 수용국이 발생국과의 외교적 관계를 고려하기보다는 우선 잠정적으로 난민들을 수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중국은 미얀마 정부와의 관계가 악화되었을 때, 중국 내 미얀마 난민의 근본적 해결을 촉구하였다. 반면, 미얀마와의 관계가 개선되었을 때는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을 자제파면서 난민들의 일시적 체류를 허가하였다. 한편, 난민 지위의 인정은 국제사회가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난민을 수용하는 국가의 정부는 국제적 기준에 맞는 절차에 의해 난민을 수용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으며, 그러한 결정은 재정적 부담을 수반하기 때문에 개별국가의 주권과 관련된 사항이 된다. 9월 22일부터 23일까지 개최된 유엔난민특별회의에서도 글로벌 쿼터제와 시리아 내 안전지대 설치 등 난상 토론이 있었지만, 유엔과 국제사회가 유럽 각국에 난민 수용을 강제하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이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정책을 펼치더라도 난민 이동의 길목에 있는 동유럽 및 남부유럽 국가들은 수용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특징은 난민을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결정이 국가마다 안보의 문제를 고려하기 때문에 달리 나타난다는 것이다. 케냐 웨스트케이트몰 테러사건, 파리 테러사건 등이 발생하면 각국 정부는 난민들을 안보위기 요인으로 의심하고 입국을 저지하거나 본국으로 송환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한다. 현재 유럽 국가들이 중동으로부터 유입되는 난민 행렬 속에 이슬람국가(IS) 대원이 포함되어 있을 것을 우려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규모 난민의 유입은 제한된 자원과 일자리 확보를 위한 난민과 정주민들 간의 경쟁을 유발하기도 하며, 정부 재정의 급속한 악화로 이어져 국내적으로 정치적 불안정이 확산될 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소규모의 난민 유입에 대해서 포용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국가들은 많다. 그러나 하루에 15,000명이 넘는 난민이 계속 유입된다면 아무리 포용적인 독일과 같은 국가라도 국경에서 IS 대원의 적발을 위한 수사를 하는 등 난민 문제를 안보 관점에서 다루게 된다. 난민 문제가 안보 및 주권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이 된다는 주장은 이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도적 책무를 부인하는 것과 다른 것이다. 난민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은 누구나 동등하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보유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법과 도덕적인 차원에서 난민 문제는 국제사회가 협력해하여 해결해야 할 일인 것이다. 자연인으로서 난민이 지니고 있는 인간 존엄성은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존중되어야 한다. 한편, 난민의 이동이 안보와 주권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된다는 특징이 국제정치 현실에서 지니는 함의는 각국 정부의 정치적 의지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난민 위기의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는 것이다. 독일 정부는 9월 초, 유럽연합 내에서의 ‘망명쇼핑’을 방지하기 위해 최초 입국 국가에서 난민 신청을 하도록 한 ‘더블린 조약’의 유예까지 선언하면서 시리아 난민 수용에 나섰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 달 후, 독일 정부가 난민에 대한 현금 지원 삭감, 난민 신청 결격자 신속 귀국 조치 등 난민 규제 강화를 추진하게 된 것도 이와 같은 난민 위기의 속성을 보여준다. 심지어 영국 내무부 장관이 난민들에게 TV를 지원하는 것은 사치라고 주장하거나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난민캠프에 대한 공격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례들은 각국 정부의 난민 문제와 관련된 인도적 원칙 및 그에 따른 정책도 국내정치적 반발이 거세진다면 국익과 안보의 차원에서 쉽게 바뀔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정치적 의지 없이는 인도적 위기의 해결도 없다 냉전 종식 후, 국제정치의 소용돌이 속 내전과 분쟁의 현장에서 난민 구호에 앞장섰던 전 유엔난민기구 대표 사다코 오가타는 “난민은 죄인이 아니다. 난민을 만든 정치와 국가, 정부의 책임이다”라고 하였다. 그런 그녀가 10년의 재임기간의 교훈으로 난민에 대한 지원과 보호활동은 인도적 규범과 동인에 의해서 이뤄지지만 난민 위기의 본질적 해결은 지도자들의 정치적 의지(political will) 없이 이룰 수 없는 꿈임을 강조하였다.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 앞에 인도적 관심과 도덕적 책무의식이 깨어날 수 있지만, 파리 테러사건에 직면한 상황에서 정치적 의지 없이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한 인도주의 캠페인은 성공하기 어렵다. 난민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의지는 두 가지 차원에서 필요하다. 첫째, 난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의 지원과 이들의 재정착에 대해 정치적 결단이 요구된다. 시리아 난민 위기는 국제적 수준의 협력이 필요하지만, 우선적으로 유럽으로의 정착을 희망하는 피난민들이 난민 지위 인정을 위한 절차를 밟을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를 열어 주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유럽이 아닌, 시리아의 인접국가에 체류하는 난민들의 경우에는 난민캠프에서 적절한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국제사회의 지원 규모도 늘려야 한다. 이들이 향후 고향으로 되돌아가서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면 캠프에 대한 지원도 긴급구호와 더불어 이들의 사회적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교육과 보건 분야의 지원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 둘째, 난민 발생을 야기하는 근본적 원인 해소를 위한 국제사회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그리고 IS까지 개입된 분쟁을 해결하지 않고서 시리아 난민 위기의 근본적 해결은 불가하다. 최근 IS에 대응하는 국제사회의 공조 속에서 시리아 내전은 오히려 미국과 러시아의 역내 주도권 경쟁으로 더욱 국제화되고 정치적으로 복잡해지고 있다. 파리 테러 이후 IS 기지에 대한 공습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IS가 축출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가? 시리아의 독재권력에 대해서 국제사회는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이 모든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볼 때, 난민 문제는 인도적 책무로만은 해결될 수 없는 지극히 정치적인 것이다. 2015년, 국제사회의 난민 위기를 목도하면서 다시 한 번 난민 위기는 정치적 무관심에 의해 오히려 더욱 심화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난민들의 인간 존엄성을 존중하고 이들의 인간안보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회의 인도적 노력이 확대되어야 함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 혹은 ‘우리’와 먼 곳에서 벌어지는 난민 문제에 대해서는 규범적으로 인식하고 대응하고는 한다. 반면, 난민 문제가 ‘나’ 혹은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발생한다면 그것은 함께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과도 같은 것이 되어 버린다. 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적 의지의 부재 속에 오히려 난민 위기는 악화되고 있다. 파리 테러 이후 각국이 난민들을 안보를 위협하는 사람들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는 현실이 아일란의 죽음이 일깨운 국제사회의 인도적 책무를 약화시키고 있다. 겨울의 추위와 국제사회의 무관심 속에 어려움에 처한 난민들의 문제가 각국 지도자들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 점차 개선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 지나친 낙관이 아니길 바란다.?? 現 강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 University of South Carolina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한국정치학회 및 북한연구학회 연구위원, 한국유엔체제학회 출판이사, 한국이민학회 및 국제이해교육학회 연구이사, Asian Journal of Peacebuilding Book Review Editor로 활동하고 있음. 주요 저서는 『신통일대계 구현을 위한 구조분석』(공저), 『남북통합을 위한 국민의식조사』(공저), 『유엔 인권매커니즘과 북한인권』(공저), 『인간안보와 남북한 협력』(공저) 등이 있음
  • Regional Models of Security Cooperation
    저자
    Intaek HAN(Jeju Peace Institute)
    발간호
    2015-54
    1. Emerging Security Multilateralism in Northeast Asia Multilateralism in Asia has often been called an oxymoron however, the two recently proposed multilateral security processes indicate new-found interest in multilateral security cooperation for Northeast Asia. South Korea has proposed the Northeast Asia Peace and Cooperation Initiative (NAPCI) and China has proposed a new multilateral security process based on the Conference on Interaction and Confidence Building Measures in Asia (CICA). What explains the increased interest in security multilateralism in Northeast Asia? Why do countries propose these “oxymoronic” processes? One answer is due to the existing mechanisms for peace and security in Northeast Asia that prove increasingly costly and irrelevant, with an additional exasperation of the security dilemma. For example, the ROK-US alliance has been effective in deterring North Korea from a conventional attack on the South, but is becoming increasingly irrelevant in deterring the North from a cyber or nuclear attack on the South (or even on the United States). The North has already launched successful cyber attacks on South Korean and US targets (such as Sony Pictures Entertainment). A capable North Korean ICBM or SLBM threat that can reach a US mainland target will cast doubt on the credibility of US nuclear umbrella and the very existence of the ROK-US alliance. An effective ROK-US alliance is unable to force the North to denuclearize or provide incentive to implement regime change on the contrary, past behavior by the North indicates that a strong ROK-US alliance is likely to harden rather than soften the North Korea’s stance. Efforts to strengthen and the ROK-US alliance in response to new threats from the North agitate China and exasperate the security dilemma between the US and North Korea as well as between the US and China. Existing security mechanisms prove insufficient while new security risks multiply and a natural impulse to “fix” existing security measures. Consequently, ideas on a multilateral security process or a multilateral security architecture that can offer an efficient or effective solution have nearly simultaneously appeared in South Korea and China. 2. Europe vs Southeast Asia The challenge for Northeast Asia is that the region lacks successful precedents of multilateral security cooperation to build on. The Six-Party Talks may be what comes closest to a precedent of multilateral security cooperation in the region, but the talks have been stalled for years without any progress towards DPRK denuclearization. Quite the contrary, North Korea has developed a viable nuclear threat to the United States despite six rounds of Six-Party Talks. No successful precedents in Northeast Asia have led to an analysis of paradigms found outside of Northeast Asia that can provide a successful security cooperation precedent to emulate. The search for a successful precedent has always placed Europe at the top of the list. Multilateral security cooperation in Europe, as embodied in the Conference on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 (CSCE) and later in the Organization for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 (OSCE), has inspired Northeast Asia ever since the Helsinki Final Act was signed in 1975. Multilateral security cooperation in Europe is an inspiration for Northeast Asia as well as the rest of the world despite current OSCE shortcomings such as the Ukrainian crisis. However, is it possible for Europe to offer a practical road-map on where Northeast Asia should go as well as how to get there, despite differences in history, geography, and culture? 3. Southeast Asian Style of Multilateral Security Cooperation The success of Europe has overshadowed the successful examples of Southeast Asia multilateral security cooperation. At the beginning of the 1990's, there was almost no multilateral security cooperation in the Asia-Pacific region. Now, war among ASEAN countries is unimaginable due to the multiple layers of security cooperation that exist between ASEAN countries. Southeast Asia’s equivalent of the Conference on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 the ASEAN Regional Forum, draws participants from Southeast Asia and beyond. The end of the Cold War helped Southeast Asia achieve multilateral security cooperation in such a short period of time despite the virtual absence of multilateralism. Improved relations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with the subsequent peaceful dissolution of the Soviet Union, removed significant tension from inter-state relations in Asia as well as in Europe. With the Cold War over, old lines of cleavages suddenly became less salient ideological differences, for instance, did not continue to pit countries against one another. The Cold War created a global phenomenon that was not specific to Southeast Asia. We also need region-specific factor (or factors) to explain the emergence of security multilateralism in Southeast Asia. One unique feature in multilateral security cooperation in Southeast Asia is the prominent role of Track 2 diplomacy seen in the informal policy dialogue between experts and officials in their private capacities. A lose but influential network of experts in Southeast Asia advocated multilateral security cooperation consequently, frequent policy dialogues between officials and experts created multilateral security cooperation ideas that came to be accepted and implemented as actual policies by governments in the region. There were also notable activists and experts in Western Europe who called for denuclearization or disarmament in the 1960's and 1970's however, their message was subdued due to the context of the Cold War. These activists were also not officially involved in negotiations between the West and the East in the run-up to the Conference on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 that revolved around intergovernmental talks by ambassadors and political principals. Southeast Asia had a different experience where security experts played a critical role. The combination of an active transnational epistemic community advocating cooperative security and receptive national governments was the key to success for multilateral security cooperation in Southeast Asia. This combination was not necessarily truly unique to Southeast Asia. Peter Haas’ study on the Mediterranean Action Plan indicated that an ecological epistemic community played a similarly crucial role in international efforts to fight marine pollution in the Mediterranean Sea in the 1970's. Epistemic communities that Peter Haas has found and Track 2 diplomacy in Southeast Asia point to the same phenomenon of interaction between experts and officials: Cooperation occurs when knowledge and power are joined. 4. Which Style of Security Cooperation for Northeast Asia? Each region indicates a different road to multilateral security cooperation in Northeast Asia. The European case shows that the road to multilateral security cooperation can be active Track 1 diplomacy or intergovernmental multilateral talks. The Southeast Asian case shows that the road to multilateral security cooperation can be vibrant Track 1 diplomacy or security epistemic community. The problem so far has been the superfluous examination of Southeast Asia. We have overtly focused on Europe despite differences between Europe and Northeast Asia and difficulties of Track 1 diplomacy in Northeast Asia. Official diplomacy in Northeast Asia is currently “dysfunctional.” Official diplomacy between South and North Korea is almost non-existent with scarce official interaction. Any official bilateral diplomacy among South Korea, China and Japan is also at a low point. A recent trilateral summit held in Seoul demonstrated the difficulty of gathering the leaders of China, Japan, and South Korea, let alone providing any meaningful progress on issues that require trilateral cooperation. Relations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a are more strained than ever since the Tiananmen Square protests of 1989. The current dismal state of intergovernmental relations shows that the Track 1 road to regional security cooperation will be long and arduous. It is important to study and try to replicate the Southeast Asian style of multilateral security cooperation in Northeast Asia in addition to CSCE/OSCE-style of security cooperation. It is also important to recognize that the Track 2 road will have problems. The experience of Southeast Asia and the Mediterranean indicates the need for a vibrant transnational epistemic community that can successfully implement international cooperation. Unlike Southeast Asia or the Mediterranean, the security epistemic community in Northeast Asia is weak and fragmented along national lines. The underdevelopment of a transnational epistemic community in Northeast Asia is a similar setback to multilateral security cooperation akin to dysfunctional Track 1 diplomacy. However, it is important to realize that Southeast Asia did not have vibrant Track 2 diplomacy until the early 1990s. For instance, ASEAN ISIS was officially launched in 1988 with the signing of its charter. In 1991, just three years after the ASEAN ISIS was officially formed, ASEAN ISIS made a proposal to start a regional security dialogue titled “A Time for Initiative.” This proposal was accepted by governments in Southeast Asia and the ASEAN Regional Forum was born. ASEAN ISIS soon created a loose network of experts to advise and support the ASEAN Regional Forum: Council for Security and Cooperation in the Asia Pacific (CSCAP). The experience of Southeast Asia shows that the transnational epistemic community can develop over a relative short period of time with a newly formed epistemic community that can have a big impact. 5. Implications for NAPCI Europe has long provided East Asia a model for economic integration and security cooperation. The ongoing financial crisis in Europe has led an increasing number of East Asians to rethink the European style of economic integration however, not so for security cooperation. Despite the crisis in Ukraine, Europe is still an inspiration and model for security cooperation for a large number of East Asians. Europe is and will remain an inspiration for security cooperation. However, this brief paper argues that Southeast Asia may be actually more relevant for Northeast Asia than Europe as a model. Like Northeast Asia, Southeast Asia lacked strong multilateralism despite the substantial and rapid progress in security cooperation since the 1990's. Strong Track 2 diplomacy (or a vibrant security epistemic community) is the key to Southeast Asia’s success. If this analysis is right, what NAPCI needs to promote is not so much Track 1 diplomacy as Track 2 diplomacy. NAPCI needs to be more than government-to-government diplomacy and requires the engagement and empowerment of security experts who share a common vision of multilateral security cooperation.      * An earlier version of this essay was presented at the KSCES-JPI joint conference titled "The Northeast Asia Peace and Cooperation Initiative and the Trust-building Process on the Korean Peninsula" held in Seoul on November 27th, 2015 in commemoration of the 40th anniversary of the Helsinki Final Act. The views expressed here are those of the author and do not reflect the position of the Jeju Peace Institute. Intaek HAN is Research Fellow and Chair of the Peace and Cooperation Program at the Jeju Peace Institute, an independent think tank located in Jeju, South Korea.
  • 파리 테러리즘이 남긴 과제
    저자
    도종윤(제주평화연구원 지역통합연구부장)
    발간호
    2015-55
       지난 11월 13일, 현지시각 오후 9시 20분 경부터 새벽 1시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일련의 자살폭탄, 인질극, 총기난사로 130명이 사망(테러리스트 제외)하고 35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 테러리스트들은 최소 3개 팀으로 나뉘어 6곳에서 공격을 감행하였고 일부는 이웃국가로 도주하였다. 이 사건은 2004년 3월 11일 마드리드 열차 역에서 있었던 ‘테러리스들의 공격(attentat)’으로 191명이 사망한 기록을 넘는 대형 참사다.    테러리즘은 무차별적인 인명 살상을 가져오며,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다. 또한 실행 주체와 객체가 구분되지 않아 어렴풋하며, 정치적 주장이 있지만 모호하다. 따라서, 국가, 주권, 무정부적 국제질서 등 전통 국제정치학이 중요시했던 접근법으로는 설명이 어렵다. 테러리즘은 국가를 단위로 행사하는 외교·군사적 설명보다 개인, 특히 민간인이 느끼는 공포와 심리적 충격에 보다 초점이 맞춰진다. 따라서 테러리즘은 전통적·근대적 의미의 안보 이슈를 넘어서는 ‘탈근대 안보 이슈(Post-modern security issue)’라고 할 만하다. 프랑스의 형사정책 전문가인 장-프랑소와 게이로(Jean-Francois Gayraud)는 2002년에 발간된 Le Terrorisme에서 현대적 의미의 테러리즘은 “폭력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심리전”이라고 말한다. 국가가 아닌 개인과 사회에 주는 심리적 타격에 방점이 놓여있다는 것이다. 이번 파리사건은 탈근대 안보 이슈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다음과 같은 성격을 띤다.    첫째, 선거를 앞두고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유권자들로 하여금 기존 정부에 책임을 묻게 하고 정치권에 혼란을 주었다. 과거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총선 직전에 발생한 2004년 마드리드 열차 역 사건으로 스페인 민심은 우파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총리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좌파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에게 정권을 넘겼다. 정권이 바뀌면서 미국과 함께 이라크 전쟁에 뛰어들었던 스페인은 이라크에 주둔했던 자국 병력을 철수시켰다. 이번 파리 사건도 지방선거를 불과 한 달 앞두고 벌어져 극우파인 국민전선(FN)이 1차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는 등 프랑스 정치권에 변화를 주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가 12월 7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젊은 층(18-24세)일수록 FN을 선지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이는 프랑스 사회가 어떤 충격을 받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좌파인 사회당과 우파인 공화당이 연합하여 2차 선거에서 공동 전선을 구축하여 FN의 승리를 저지하기는 했지만, 집권당인 사회당은 극우파의 저지를 위해 우파에게 많은 것을 양보해야 했다. 민주주의 정치지형에 영향을 주는 것이 테러리즘의 목적 중 하나라면, 이번 테러리즘은 심리전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고전적 의미의 국가 간 전쟁 대신,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살상을 꾀하는 테러리즘은 인간에 대한 신뢰에 의문을 갖게 한다. 이제 전쟁은 국가만의 것이 아니고 정치는 정치인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인간에 대한 신뢰 손상은 특히 타문화, 이방인 등에 대한 경계와 적개심을 심어 준다. 프랑스 당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난민 심사를 강화하였고, 그들의 이동을 강력히 제한하기로 하였다. ‘솅겐협정’ 국가를 왕래할지라도, 향후 6개월간 관광객들은 항공은 물론 국제열차 등 육로 이동에서도 신분증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번 사건을 통해 무슬림은 물론, 난민들(refugees)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조성됨으로써 이민정책은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이제 인도주의적 도움의 범위가 어디까지여야 하는지 의구심이 나타나고 있다.    셋째, 테러리즘은 사생활 침해와 사회적 안전이라는 두 가지 선택 사이에서 갈등을 조장하였다. 유럽은 반 테러리즘 법안 입안과 더불어 첩보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관련 기구의 설치를 서두르고 있다. 9.11 이후 유럽연합은 약 239개의 반 테러리즘 법률을 만들었으나 이중 88개 법령만 강제력이 있을 뿐이다. 파리 테러리즘 이후 프랑스는 여행객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데이터베이스의 범위와 폭을 넓히기 위한 입법을 유럽의회에 촉구하고 있다. 지난 1월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 공격 이후 고개를 들었던 EU차원의 통합첩보국 창설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한편, 향후 첩보국이 창설되면 담당하게 될 개인 데이터 수집 및 축적은 사생활 침해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테러리즘은 개인의 공포를 조장하고, 인간에 대한 신뢰에 손상을 주며, 제도의 선택에 혼동을 준다. 테러리즘은 특히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 원리에 도전한다. 고전적 의미의 안보가 타국과의 경쟁과 투쟁에서 살아남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면, 탈근대 안보 이슈인 현대의 테러리즘은 국가의 전복보다는 사회의 혼란과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고 민주주의의 약점을 공격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오늘날 테러리즘에 대한 대응책도 탈근대적일 필요가 있다.    첫째,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진지한 테러리즘’과 그렇지 않은 ‘자폐적 테러리즘(외로운 늑대)’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진지한 테러리즘’에 대해서는 그들이 원하는 국제정치 질서와 배열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고민하고 이에 대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자폐적 테러리즘’의 경우, 정치적, 법률적 접근보다는 이들을 형성시킨 사회적, 문화적 불만을 찾아내고 그들과 화해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건전한 가족 관계의 형성, 학교 교육의 정상화, 빈부격차의 최소화, 따뜻한 사회적 분위기 등이 그러한 예이다.    둘째, 인간 기저의 ‘생활세계’가 국가 또는 사회의 ‘체계’와 융합되지 못할 때 저항과 투쟁은 반드시 일어난다. 비폭력 저항과 투쟁이 민주주의의 성취를 위한 하나의 과정임을 받아들일 때 폭력은 사라진다. 저항과 투쟁이 민주주의의 긍정적 과정이 되도록 통로를 열어둘 필요가 있다. 표결보다 총의(總意), 언쟁보다 숙고(熟考)가 민주주의를 긍정적 과정으로 이끄는 방법이다.    셋째, ‘테러리즘’을 ‘테러’로 남발하는 수사(rhetorique)를 경계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이들을 견제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테러리즘은 사건 이후 남은 잔상(殘像)과 이미지는 공포와 떨림의 스트레스를 남긴다. 테러리즘의 의미와 효과를 ‘테러’라는 단어로 남발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사람들을 자극하여 위축시키는 구호가 된다. 공포를 중화시키기 위해 고안된 보복과 응징은 탈근대 전략이 아니다. 희생된 이들을 애도하는 언어를 공유하고 일상의 침착성을 되찾으며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치유의 대화가 필요하다.    테러리즘에 대한 대처는 단지 근대적 의미의 제도적, 법률적 처방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와 아울러 테러리스트들의 삶의 기저를 성찰하고, 정치과정으로서 대중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길을 찾으면서 치유와 안정의 언어를 공유하는 등 탈근대 전략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지역통합연구부장. 브뤼셀 자유대학교에서 정치사회학 박사 학위취득. 주요 논문으로 "국제정치학에서 주체물음(2013)", "유럽연합의 개발협력전략(2013)" 등이 있음.